2019년 뮤지컬 속 여성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3) 갓 헬프 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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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뮤지컬 속 여성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3) 갓 헬프 더 걸

이응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God Help the Girl>

개봉 2014년 1월18일 Sundance Film Festival
감독 Stuart Murdoch
대본 Stuart Murdoch
출연 Emily Browning (Eve)
Olly Alexander (James)
Hannah Murray (Cassie)
Pierre Boulanger (Anton)



 

줄거리

십대 후반의 이브는 거식증 환자로 정신병동에서 생활 중이다. 탈출이 몸에 밴 듯 익숙하게 병원을 빠져나와 간 곳은 작은 클럽. 그곳에서 드러머와 싸운 기타리스트 제임스가 무대 밖으로 던져지는 걸 보다 기절한 뒤 제임스의 집에서 눈을 뜬다. 

병원으로 돌아간 이브는 의사의 도움으로 거식증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을 시작하지만 이내 다시 병원을 나와 제임스가 가드로 일하는 수영장으로 찾아온다. 제임스는 자신의 아파트에 빈 방이 있다며 묵어도 된다고 제안하고, 이브는 제임스의 방에서 묵으면서 제임스가 음악을 가르치는 캐시와 안면을 트고 이내 밴드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자신의 노래를 담은 테이프를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는 안톤에게 건내지만 안톤은 이브의 음악에는 관심이 없고 이브의 육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작은 스코틀랜드의 마을에서 이브의 밴드 모집 공고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밴드는 이브가 만든 노래를 녹음한다. 

안톤이 자신과의 섹스에만 관심이 있다는 사실에 이브는 상처를 입지만 마침 그 때 캐시는 마을을 비우고 이브에게 마음이 있었던 제임스는 데면데면하다. 인생은 혼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이브. 이브는 병원이 아니라 런던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밴드는 처음이자 마지막 콘서트를 연다. 지역 라디오에서는 뒤늦게 이브의 테이프를 틀어주며 보물을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이브는 그대로 홀로 런던으로 향한다.

사실 이 작품의 서사는 느슨하다. 해석에 따라 여러 각도로 볼 수 있는 작품도 아니다. 그저 느슨할 뿐이다. 마치 OST를 부른 밴드 ‘벨 앤 세바스찬’의 색감 예쁜 뮤직 비디오들의 빈 자리를 얼기설기 엮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벨 앤 세바스찬

영화를 직접 쓰고 감독한 스튜어트 머독은 스코틀랜드의 인디밴드 ‘벨 앤 세바스찬’의 멤버이자 실질적인 리더다. 영화의 OST 를 맡았다가 혹독하게 시달린 뒤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킥스타터 ‘God Help The Girl - Musical Film’프로젝트 모금을 통해 제작비를 모았다. 최소 목표액은 10만 달러였는데 팬들이 힘을 모았던지 2012년, 최종적으로 12만 달러 모금에 성공하여 촬영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촬영 전에 발표한 동명의 앨범 <God Help The Girl>이 꽤 좋은 평가를 받았기에 영화 제작도 탄력을 받았다. 영화 크레딧 뒤에는 후원자들의 이름이 나열된다. 감독인 머독도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여 인건비를 줄이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만든 영화답게 가장 전면에 나서는 것은 드라마가 아니라 노래들이다. 어떤 노래도 배경으로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다. 스토리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뻔하지만 이 영화는 미묘한 매력이 있다. 뮤지컬로 무대 위에서 보고 싶은 그런 매력은 단지 밴드 '벨 앤 세바스찬'의 멋진 노래들 때문만은 아니다.


전형적이어도 괜찮아


주인공인 이브도, 이브와 친구가 되는 캐시나 제임스도 그 누구도 부모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마치 부모가 낳은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듯 ‘가족’이라는 테두리의 바깥에 머문다. 단 한 번 캐시가 가족 여행을 위해 마을을 떠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때에도 캐시의 가족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 여행마저 캐시가 원하는 여행이었기 떠나는 것으로 설정된다. 이브를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담고 있었던 제임스도 마찬가지다. 

보통 주인공이 이브처럼 거식증이 걸린 십대라면, 거식증에 걸리게 된 전사와 거식증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게 다루어지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거식증은 이브의 ‘결여’를 보여주기 위해 넣은 장치일 뿐이다. 거식증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다. 

가볍게 쓰여진 빈틈 많은 시나리오가 오히려 이 작품의 빈 곳을 채우거나 혹은 비울 때 크게 도움이 된다. 등장인물 중에서 배경이 되는 글래스고에 전혀 연고가 없는 이브는 그야말로 낯선 곳에 뚝 떨어진 존재다. 그 자체가 어찌 보면 환타지다. 이브라는 이름부터 밴드를 만들고 싶어하는 거식증 환자라는 설정까지 큰 고민 없이 만들어진 전형적인 캐릭터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브는 더욱 보편성을 획득한다. 도대체 흠 없는 십대는 존재할 수가 없지 않은가.

“If You Could Speak" 

십대의 두 여성과 한 남성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조화가 좋다. 캐시와 이브는 처음 만나 서먹해 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작곡은 어렵다는 캐시에게 이브와 제임스는 그렇지 않다며 그 자리에서 곡 하나를 뚝딱 만들어낸다. 기타와 피아노로 만들어진 이 곡의 제목이 ‘말만 할 수 있다면’이다. 

방금 만든 곡에 맞추어 키치한 느낌의 안무로 춤을 추고 노래하는 이 장면은 이브가 밴드를 결성하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다. 노래의 가사는 불안정한 이브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모험을 찾아 왔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모르는 이브는 지나가는 개에게 길을 보여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개가 말을 할 수 있어야만 하지만. 

제목만 보면 마치 말을 할 수 있다면 곡을 쓸 수 있다는 내용같지만 실제로는 공허한 이브의 내면이 담겨있는 노래다. 이 노래에 맞춰 캐시와 제임스 이브는 미묘하지만 귀여운 춤을 춘다. 밝은 햇살 아래, 피아노가 있는 작은 방에서 세 사람이 노래하고 휘파람을 불고 춤을 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십대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은 모습이다.

개야, 네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뭘 해야 할지 알겠지 
돌아서서 달려가 땅을 파고 뼈를 파내고
나에게 집으로 가는 길을 보여줘
침대 위 소녀의 잠옷에는 아무것도 없어
아침도, 친절함도, 즐거움도

이브는 자신이 두고 온 병상 위에 아무것도 두고 오지 않았다. 어떤 미련도 어떤 두려움도 남겨두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단지 탈출만으로 이브의 병이 나은 것도, 이브의 심리상태가 나어진 것도 아니다. 단지, 이브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한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브는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Band Shit

이 장면은 노래가 아니다. 이브와 제임스가 집에 있는 캐시를 꼬셔서 느닷없이 ‘어드벤처’에 나섰을 때의 일이다. 

세 사람의 모험은 거창하지 않다. 카약을 하나 빌려 셋이 노를 저어 간 게 전부다. 동네의 불량배들이 두 여자가 탄 모습을 보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수작을 걸지만, 이들은 더 열심히 노를 저어 그들을 벗어난다. 글래스고 출신은 캐시 한 명 뿐이다. 세 사람은 깔깔 웃으며 카약을 저어 잔디밭에 도착한 뒤 팔을 베고 누워서 시간을 보낸다. 캐시가 그 순간 씩 웃으며 말한다. 

"우리 완전 밴드 짓(band shit) 한다, 그치?"

한 번도 밴드를 만들어본 적이 없는 이브지만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낮에 카약을 타고 뒹굴어 노는 것이 밴드 짓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자신들만의 선택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그것이 충분히 밴드다운 행동이다. 그 순간 이브는 밴드를 결성하겠다고 말하고 캐시는 즉각적으로 호응한다. 

제임스는 이 순간 ‘맨스플레인’을 시전한다. 유일하게 밴드를 결성해 보았고 드러머와 싸워서 밴드에서 쫓겨난 전적이 있는 그에게 밴드를 만드는 데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밴드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밴드가 너를 찾오는 것이라고 말하는 제임스에게 이브가 말한다. 

“우린 드럼은 필요없어.” 

구구절절한 제임스의 말들에서 그의 마음을 바로 눈치채고 건넨 이 말에 제임스는 하고 싶은 음악 장르가 뭐냐고 묻는다. ‘팝?’ 이브의 대답에 제임스는 웃는다. “그럼 드럼 없이는 못해.” 캐시가 “우리는 밴드를 할거야. 넌 같이 안할 거면 빠져.” 

그리고 셋은 밴드 멤버를 구한다는 전단지를 만들어 붙인다. 작가이자 감독을 맡은 머독은 이 두 장면을 완전히 분리해서 밴드 짓을 하는 장면은 대사로, 전단지를 붙이는 장면은 뮤직 비디오처럼 대사 없는 음악 장면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앞의 장면을 노래로, 뒤의 장면을 안무로 이어가는 무대 위의 한 순간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Come Monday Night" 

밴드를 결성하고 이름을 “God Help the Girl"로 붙인 세 주인공. 이들이 처음 만나 연습을 할 때, 보컬을 맡은 이브가 부르는 노래다. 일을 시작하는 월요일의 우울함이 남아 있는 일요일 밤에 찾아오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가사다. 드럼과 베이스가 가세해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선사한다. 그렇게 월요일 밤을 보내고 나면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거라는 내용으로 끝난다. 

이 노래는 가사 그 자체보다 밴드를 구성한 뒤 처음 노래를 불러보는 두근거림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에 귀엽다. 물론 이 밴드는 영화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이브와 캐시 제임스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밴드의 빈 자리를 채워줄 뿐이다. 

셋이 붙인 밴드원 모집 전단에 수많은 사람들이(심지어 제임스를 내쫓은 드러마까지!) 몰려드는데, 그것은 세 사람이 매력적이어서가 아니라 글래스고라는 지역의 ‘지루함’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감독은 그 정도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지루한 곳으로 그리고 있다. 그 안에서 꽤 힙한 밴드 모집 전단이 붙었으니 작은 사회가 난리가 난다.

“musician please take heed”

'충고를 받아들여 뮤지션'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이 노래는 이브가 캐시도 제임스도 없이 혼자 남겨진 뒤 부르는 노래다. 친구도 생기고 하고 싶었던 밴드도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점에서 안톤이라는 단순한 남자를 만나 하룻밤으로 버려진 뒤, 외로움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를 때 혼자 이 노래를 부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밝은 곡이 많지 않은 이 영화 속에서 이 노래가 가장 템포가 빠른 편이다. 

휴일인데 혼자인 나에게는
그건 그저 최악의 휴일일 뿐
친구들은 떠나고
니가 날 떠나는 것보다
나는 더 빨리 좋아질 거야

스스로 다짐하는 노래지만 어쩐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브는 이 노래를 부른 뒤 하루에 한 알씩 먹어야 하는 약을 한꺼번에 털어넣고 병원에서 눈을 뜨게 된다. 이브의 절망은 안톤이라는 남자 때문에 입은 상처 때문일까,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외로움 때문일까, 아니면 이브 자신의 병 때문일까? 결국 셋 모두이겠지만, 이 장면은 이브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상태인지를 보여준다. 

병원에서 눈을 뜬 이브가 처음 본 사람은 제임스다. 결국 이브는 혼자가 아니었음을, 제임스의 격려하는 웃음이 말해준다. 그 웃음을 발판으로 이브는 좀 더 강해진다. 이브가 혼잣말처럼 “난 나아질거야. 더 좋아질 거야.” 하고 말할 때마다 그 말을 믿고 싶어진다.

“God Help the Girl"

영화 제목과 동명의 곡으로, 이브가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이브를 도와주는 것은 신이 아니다. 이 제목은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브를 포함해 그 어디에도 신의 손길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애당초 이 제목으로 컨셉 앨범을 냈고 영화 제작비를 모금했기에 이 노래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으며, 이브의 히트곡으로 묘사된다. 

사실 가장 기대되는 노래는 원래 앨범에 들어가 있었지만 영화에서는 빠진 "Hiding Neath My Umbrella"다. 꽤 큰 규모의 노래로 뮤지컬 무대에 잘 어울린다. 그럴 기미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지만 혹시라도 누군가 이 영화를 기반으로 뮤지컬을 만든다면 이 노래는 반드시 살려서 넣어주기를 기대한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는 더더욱 아닌

이름부터 행동까지 무엇 하나 클리셰가 아닌 것이 없고, 스토리는 찬 곳 보다 빈 곳이 더 많은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도 아니고 아이는 더더욱 아닌 이 세 사람의 소소한 성장기는 큰 울림을 준다. 

이브가 가는 곳마다 남자들은 이브에게 반하는데, 그것은 단지 이브가 다른 지역에서 왔고 용모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내일 죽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 때문이다. 내일도 함께 아침을 먹고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이브 특유의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어필한다. 

하지만 사실 이브는 반드시 내일 아침에 눈을 떠서 아침을 먹고 힘을 내서 발을 디디고 싶다. 잘 안넘어가는 게 탈이지만. 이브의 이런 모습은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십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눈물 흠뻑 적시는 부모와의 싸움이나 남자친구와의 연애에 목숨을 걸지 않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오롯이 책임지고 걸어가는 이브는 그 자체로 훌륭하다. 

게다가 더할 나위 없는 음악들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 누군가 좀 뮤지컬로 만들어 주시길. 머독은 그만큼 스토리를 만들어 놨으면 충분하니 무대를 아는 다른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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