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첫째 주, 뮤지컬 속 여성: 마리 퀴리

알다여성 주인공

2019년 첫째 주, 뮤지컬 속 여성: 마리 퀴리

이응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지금 만날 수 있는
뮤지컬 속 여성을 소개합니다

브로드웨이를 이끌어 가는 여성 캐릭터를 분석하는 일은 확실히 의미가 있는 일이긴 하지만, 사실 한국의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지금 여기, 한국에서 공연 중인 작품 속의 여성들일 것이다. 때로 그들은 브로드웨이 라이센스 뮤지컬 속에 있고 때로는 유럽 뮤지컬, 때로는 한국 뮤지컬, 그리고 때로는 영화 속에 있기도 하다. 

지금 공연 중인 한국 뮤지컬 속의 인물들을 수입된 작품들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조금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입된 작품들은 오랜 세월 다듬어지고 단련된 결과물들이다. 반면 한국 초연의 작품들은 때로는 첫 공연 전체가 마치 프리뷰인 듯 흘러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공연들은 결코 적지 않은 티켓 값을 받고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맞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객석에 앉은 수많은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그 모든 무대를 동등한 위치에서 가늠할 수 밖에 없다.

나름의 기준을 갖고 소개합니다

2019년부터는 나름의 평가 기준을 세워 별 다섯 개 만점의 뮤지컬 속 여성 캐릭터를 찾는 지난한 길을 가보려 한다. 항상 그렇듯이 평가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주관적이지만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별점은 치우치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며 일관된 기준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기본은 벡델지수다. 여성 인물에게 이름이 있고, 다른 여성 인물과 관계를 맺으며, 연애나 남성이 아닌 주제의 대화를 하는 인물인지. 무대 위에 존재하기 위한 가장 기본이다. 물론 이름만 있고 나머지가 충족되지 않는 인물들이 수도 없이 많을 수도 있다. 만약 이 기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 외의 다른 모든 별점을 채운다 해도 별 하나를 삭제하고 백델의 별이 뜨지 않았음을 표시한다. 

다음은 2018년 한 해 동안 여성 인물들에 대해 쓰며 여러 상황을 참고해 세운 기준이다. 혹시 이 기준이 바뀐다면 그 이유와 새로운 기준을 함께 명시할 예정이다.

  1. 운명 -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는지.
  2. 목표 -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 의지가 있는 인물인지.
  3. 일관성 - 작품 안에서 일관된 성격이 유지되고 그 성격으로 인해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즉, 정해진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 인물인가의 여부.
  4. 결정 -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인물인지.
  5. 발전 -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어가는지.

그 외에도 다치거나 죽지 않으면서도 줄거리와 다른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성적인 고정관념에 스스로 얽매인 인물인지도 눈여겨 볼 예정이다. 이 기준을 적용해 처음 살펴본 작품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해 주목받은 창작 초연 뮤지컬 <마리 퀴리>다.

뮤지컬 <마리 퀴리>

초연 2018년 12월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서울

대본 천세은
작곡 최종윤
연출 김현우

 

뮤지컬에는 없는 이야기

‘퀴리 부인’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 두 가지가 있다. 교과서에 실렸던 어린 시절의 일화와 한 장의 흑백사진이다. 교과서에 실린 마리 퀴리의 일화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책만 읽는 마리를 놀려주려고 친언니들이 마리 주변에 책과 잡동사니들을 쌓아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마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조차 모르고 계속 책만 읽으며 방을 나가버렸다는 내용이었다.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수상한 유일한 인물의 집중력은 떡잎부터 남달랐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두 번째 흑백사진은 솔베이 국제 물리학 학회의 사진이다. 검은색의 긴 스커트를 입고 다리를 꼰 마리 퀴리가 아인슈타인의 옆옆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 안에는 아인슈타인 만이 아니라 보어, 슈뢰딩거 등, 문과생도 이름은 들어 본 과학자들이 마리 퀴리의 뒤에 서 있다. 그 중 마리 퀴리만이 여성이었고, 마리 퀴리만이 노벨상을 다른 분야에서 두 번 수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마리는 여성이자 폴란드인이라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화학 아카데미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 화학 아카데미는 행여라도 마리가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게 두려웠는지 여성은 화학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없다는 조항까지 새로 만들었다. 혁명을 일으켰던 자유와 평등과 박애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여성의 참정권은 유럽에서도 한참 늦은 1944년에서야 보장됐고, 화학 아카데미의 여성 금지령은 그보다 20년은 더 뒤인 1966년에서야 해제됐다. 

드레퓌스의 무고함을 알려주는 모든 증거들을 밀어버리고 그를 감옥에 처박은 시기에 마리는 라듐을 발견해 첫 번째 노벨상을 받았다. 민족주의와 군국주의가 만연했던 프랑스에서 폴란드 출신의 여성이 노벨상을 타는 것, 그것도 프랑스 출신 남편과 함께 이름을 올려 나눠 먹는 것은 뻔뻔하고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그저 남편 잘 만난 여자다, 거기다 프랑스인이 아닌 폴란드인이라는 이중의 멸시에 마리는 평생을 시달렸다.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는 노벨상을 공동 수상하면서 라듐의 특허를 내지 않고 모두에게 공개한다. 이 발표를 하는 사람은 피에르다. 특허를 냈다면 평생을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겠지만 마리 퀴리는 말년에 스스로 연구할 라듐 1그램을 구할 수 없어 고생할 정도로 가난에 허덕였다. 

뮤지컬에 있는 이야기


* 여기부터 뮤지컬 <마리 퀴리>의 내용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에는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뮤지컬에는 라듐의 이중성 때문에 고통 받는 직공들이 등장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밝혀줄 거라며 라듐이 들어간 페인트를 붓에 찍어 입에 넣는 그들의 모습은 아찔하다. 아무리 즐거운 내일을 노래해도 그들은 팔이 아프고 이가 빠지고 턱이 무너져 내리는 중이다. 

폴란드에서 언니의 초청을 받고 공장으로 온 안느는 그곳에서 언니와 직공들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목격하고 그 원인이 라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계 공장 언다크의 사장인 루벤은 안나와 직공들의 의견을 무시해 버리고, 그들을 사생활이 더러운 매독환자들이라고 매도해버린다. 안나는 라듐을 발견한 퀴리 부부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이 죽어가는 원인이 라듐 때문이라고 알리며 도움을 요청한다. 

마리와 피에르는 그 말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시작하는데, 동시에 병원에서 진행한 방사선 실험이 암세포를 감소시키고 있다는 결과도 도착한다. 한 곳에서는 사람이 죽어가고 다른 곳에서는 아픈 사람이 소생하고 있다는 상반된 결과 앞에서 피에르는 직공들을 위해 증언하겠다며 집을 나섰다가 마차에 치어 죽는다. 마리는 피에르의 죽음을 딛고 끝까지 실험을 계속해 라듐에는 유해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주의를 당부하지만 죽은 직공들과 안나에게는 사과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실험을 계속해 나간다.


ⓒ콘텐츠제작사 라이브


운명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가?
YES

마리에게는 자신만의 운명이 분명히 존재한다. 뮤지컬은 마리가 그 운명을 실현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란 물리학의 위대한 발견을 해내는 인물이 되는 것.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마리는 자신의 입으로 회고했듯이,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아버지에게 물에 빠지는 인간의 질량에 대한 질문을 하여 해서 혼이 났던 어린 시절로부터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않은 듯한, 어떻게 보면 소시오패스와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도 마리 퀴리의 가장 유명한 일화 중의 하나는 피에르 퀴리 사후 그의 강의를 이어받았을 때, 피에르에 대한 어떠한 감상적인 말도 없이 정확하게 피에르가 강의했던 바로 다음부터 강의를 시작하며 수업에 들어갔던 일이다. 마리 퀴리의 굳건함은 일에 몰두함으로서 드러나곤 했었다. 그리고 실제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 앞에서 마리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전장에도 뛰어들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극 중에서 마리는 자신의 실험이 막힐까봐 두려워 피에르와 반목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노래 가사마저 그저 실험을 계속할 뿐이어서, 마리라는 사람의 운명에 녹아 있을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가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목표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 의지가 있는 인물인가?
YES 

마리의 운명만큼 그의 목표나 신념도 무서울 정도로 뚜렷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반복적으로 마리가 '원하는 것을 하겠다'는 말만 할 뿐, 그것이 무엇인지를 구체화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마리가 원하는 목표는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과학적인 무언가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라거나 원하는 대로 살겠다는 추상적인 문장들보다 욕망을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장면들이나 대사들이 있었다면 마리 퀴리라는 인물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관성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가?
NO

점을 보러 가면 점쟁이가 하는 말 중 가장 흔하면서도 백발백중의 효과를 지닌 말이 있다. "당신은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내면은 부드럽고 약한 사람입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같은 효과를 보인다. 사람들은 대부분 복잡한 성격을 지녔고 사회적인 성격과 실제 성격 사이에도 격차가 있기 마련이다. 

마리 퀴리는 오랫동안 실험밖에 모르는 냉정한 인물로 그려져왔다. 실존 인물이 무대 위에서 되살아나는 지점은 선입견이나 편견을 깨고 나오는 반대의 면모나 편견이 생긴 사건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때문이다. 그 순간, 그 인물은 객석에 앉은 관객들과 같은 생생한 인물이 되서 살아 숨쉰다. 

하지만 뮤지컬 <마리 퀴리> 속의 마리는 단지 하나의 성격만으로 존재한다. 차갑고, 이성적이고, 전투적이다. 여성이기에, 이민자이기에 수많은 차별을 겪어왔던 마리의 환경을 돌이켜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수 있다. 하지만 마리의 인간애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실험의 동료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던 피에르 퀴리와 함께 있을 때조차도 마리는 오직 실험만 외치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보내자고 약속했던 자식들마저 팽개치고 연구실에 남는데 심지어 그 결정마저도 즉흥적이다. 의미 있는 결과를 내기 위해 실험 과정을 반드시 지켜봐야만 한다는 최소한의 합리적인 이유조차도 없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반면 남편인 피에르는 온화하고 포용적인 인물이며 조급해 하는 마리에게 키플링의 <정글북>을 읽어주는 인문학적 소양까지 갖춘 사람으로 그려진다. 피에르는 전반부에 등장하고 세상을 떠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이성적인 과학자, 자상한 아버지, 실험으로 바쁜 날들 중에도 소설까지 챙겨보는 취미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반면 마리는 어떤가? 자상한 피에르와 냉철한 마리라는 오래된 공식을 그저 재현하고 있을 뿐이다. 인류 전체를 위해 부자가 될 기회를 차버리고 라듐을 공개한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 걸까? 1차 세계대전 때 손수 이동형 엑스레이 자동차를 개발해 전장을 누비며 수많은 부상병을 치료했던 그 헌신적인 사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플롯을 위해 인물의 성격이 널을 뛰기도 하지만 이 뮤지컬은 냉철한 마리를 지키기 위해 마리라는 ‘사람’을 지워버린 건 아닐까? 마리의 유일한 후원자인 루벤이 돈 밖에 모르는 악덕 자본가의 역을 떠맡은 것처럼. 

마리는 자신의 후원자에게 후원을 끊지 말라고 부탁하는 대신 불같이 화를 내고 라듐 때문에 죽어간 직공들과 피해자인 안나에게 사과하지 않는 ‘미친’ 과학자의 모습을 유지한다. 덕분에 루벤이 무대 가운데 서서 두 팔 활짝 벌리고 악당송을 불러도 마리에 비하면 루벤의 악마성은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뮤지컬 초반에 노벨상을 받고 라듐을 온 인류에게 공개한다는 발표를 피에르 혼자 한 것이 사실은 마리의 반대 때문이었다는 숨은 비화라도 있지 않는 한, 그 장면에서 위대한 인류애를 보여주었던 마리가 이렇게까지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은 이상하다.

결정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가?
YES

마리는 남편인 피에르에 의해 어떠한 결정도 번복하지 않는다. 논문 주제도 스스로 찾을 뿐만 아니라 라듐의 유해성에 대한 피에르의 염려도 묵살한다. 정작 피에르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피에르가 죽고 난 이후다. 그리고 그것도 자신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발전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는가?
NO

마리는 변하지 않는다. 캐릭터가 발전하지도 않는다. 마리가 라듐의 유해성을 인정한 것은 그 자신의 과학적인 신념에 엄격했기 때문으로 그려진다. 사과하지 않는 마리의 모습은 실험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이런 모습 어디에서도 라듐을 공개해 모든 사람들이 실험하고 사용할 수 있게 했던 실존 인물 마리 퀴리의 신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종합 별점 ★★★

이 뮤지컬 속의 마리 퀴리에게 피에르는 ‘당신은 왜 과학을 합니까?’ 하고 묻는다. 마리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답한다. 내가 여자니까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되묻지 않는다. 피에르가 '여자가 왜 과학을 하느냐'고 질문한 게 아니라, 온전한 동료 과학자로서 자신을 대해 주었다고 판단했었기에, 마리는 서슴없이 호기심 때문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뮤지컬 속의 마리 퀴리가 보여주는 ‘성공한 여성’으로서의 모습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남자 못지 않은’ 여성의 모습이다. 성공한 남자들이 종종 보여주는, 자신의 목표만을 위해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때로는 비인간적으로 밀고 나가는 모습과 닮았다. 뮤지컬 속 마리의 모습은 마치 이런 비인간성이 ‘성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며, 마리가 성공한 여성이라면 그러한 남성들 못지 않은 모습을 입어야 가능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성공한 여성을 다루었다고 해서 그 작품이 여성주의나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때가 타지 않는다는 실용적인 이유로 검은 치마를 즐겨 입었던 마리에게 남성 세계의 성공의 조건을 입힘으로서, 이 작품은 남성 세계의 탈을 쓴 마리 퀴리라는 굴절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라듐을 공개할 때나 자신의 새로운 주제를 발표할 때조차 마리의 앞에는 죽었든 살았든 피에르가 정신적 지주로 존재한다. 정서를 나누는 순간에는 자신을 내세우고, 정작 성과를 내세울 때 피에르의 뒤에 서는 것이 정말 생전의 마리 퀴리였을까? 주인공인 마리의 실험실은 무대 왼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마리를 지원하면서도 악당이어야 하는 남성 캐릭터 루벤은 커다란 라듐 시계와 함께 항상 무대 한가운데로 등장해서 마음껏 악당의 노래를 부른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정말 마리 퀴리일까? 

2019.01.02 14:03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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