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열세번째 주, 뮤지컬 속 여성 : 샬롯 드 베르니에

알다뮤지컬여성 주인공

2019년 열세번째 주, 뮤지컬 속 여성 : 샬롯 드 베르니에

이응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뮤지컬 <파가니니>

초연 2018,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
공연 2019년 2월15일~3월31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작곡 김은영, 임세영
대본 김은혜, 김선미
연출 김은영
안무 정도영
무대디자인 김대한
의상디자인 윤나래

 


파가니니를 음악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물로 처음 접한 것은  1989년 영화 <파가니니>에서였다. 독일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가 연출하고 연기했던 영화 <파가니니>는 광기와 폭력, 집착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영화 속의 파가니니는 십대 여자들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변태 난봉꾼에, 신이고 규범이고 모두 내버린 듯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하나 뿐인 아들 앞에서는 내다버린 이성과 감정이 한꺼번에 돌아오는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 마지막 사랑으로 알려져 있는 샬롯 왓슨은 뮤지컬 <파가니니>에서 샬롯 드 베르니에의 모델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만났을 당시 파가니니의 나이는 오십대였고, 샬롯은 열여섯에 불과했다. 파가니니는 평생 미성년의 여자만 밝혔고 일찍부터 매독에 시달렸다. 죽기 전에 찾아온 신부에게 바이올린에 악마가 깃들어 있다고 말하는 바람에, 영혼을 악마에 팔았다는 세간의 루머에 못을 박은 것도 그 자신이다. 이 신부는 뮤지컬 속에서 루치오의 모티브가 된다. 

영화 속의 광기 어린 파가니니와 그의 실제 인생이 남긴 루머에 가까운 이야깃거리가 준 인상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2014년에 개봉한 데이빗 가렛의 <파가니니>나 뮤지컬 <파가니니>속의 파가니니는 어쩐지 사실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든다. 뮤지컬 <파가니니> 역시 파가니니가 악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뮤지컬 속 파가니니는 세상 음악 밖에 모르는 순수한 인물로 그려진다.

줄거리

뮤지컬 <파가니니>는 일종의 법정 드라마다. 안건은 파가니니의 매장을 허가해 달라는 것이고, 이를 요청한 사람은 파가니니의 아들 아킬레다. 교회로부터 매장을 거부 당해 떠도는 아버지의 시신을 고향인 제노바에 묻게 해달라는 그의 요청은 퇴마사로 유명한 신부 루치오에 의해 가로막힌다. 두 사람의 증언을 통해, 뮤지컬은 죽기 전 파가니니의 마지막 사랑이었다고 알려진 샬롯과 함께하던 시기로부터 회상을 시작한다. 

파가니니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인 1836년, 파리에서는 사업가 콜랭이 ‘카지노 파가니니’의 개업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 투자한 귀족 베르니에의 딸 샬롯은 콜랭과 약혼한 사이로 가수가 꿈이다. 파가니니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이름을 따 개업하려는 콜랭의 카지노를 무시하고, 대신 자신이 거기서 공연을 열겠다고 공언한다. 이 때문에 투자금을 날리게 된 베르니에는 콜랭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궁지에 몰린 콜랭은 퇴마 신부인 루치오를 찾아가 파가니니가 악마라고 고발한다. 반신반의 했던 루치오 신부는 파가니니의 연주를 보고 그가 악마라고 확신한다. 루치오는 파가니니의 고백서를 받아 악마 퇴치사인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려 든다. 

한편, 가수가 되고 싶은 샬롯은 가수를 구하는 파가니니의 오디션 공고를 보고 찾아가 선택 받은 후, 자신의 이름을 크리스틴 다미에로 속이고 공연을 준비한다. 그러나 루치오 신부의 강압에 넘어가 공연날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줄을 끊어놓는다. 하지만 한 줄만 남은 바이올린으로 완벽하게 연주해 파가니니의 명성과 악명은 오히려 높아진다. 

샬롯이 자신의 허락 없이 파가니니와의 공연에 출연한 사실을 안 콜랭은 샬롯을 자신의 집 다락에 가둬버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파가니니는 콜랭을 찾아간다. 콜랭은 샬롯을 풀어주는 댓가로 이십만 프랑을 요구하고, 파가니니는 자신이 연주회로 번 돈을 가져가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파가니니는 공연에 혹사당하면서 점점 생명의 불이 꺼져가고, 루치오에 의해 풀려난 샬롯은 파가니니에게 달려간다. 결국 교회는 파가니니의 매장을 거부하고, 아들인 아킬레는 36년이 지난 후에야 교회에 뇌물을 주고 매장을 허가받는다.

샬롯은 이 뮤지컬에 등장하는 이름이 있는 유일한 여성 배역이다. 때문에 이 작품은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 벡델 테스트의 성립 조건은 최소한 두 명의 이름을 가진 여성이 남성이 아닌 다른 소재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샬롯은 남자 등장인물들이 모조리 검은 옷을 입고 악마 아닌 악마를 연기할 때 유일하게 흰 드레스를 입고 천사같은 인물을 연기한다. 티 한 점 없는 순수한 샬롯은 마치 오페라의 유령의 주인공인 크리스틴 다에를 연상케 한다. 샬롯도 크리스틴도 자신을 이끌어줄 스승을 원하고, 이를 통해서 유명한 가수가 되기를 바란다. 이들은 모두 스승의 사랑을 받고 마침내는 그 스승을 구원한다. 샬롯은 크리스틴과 달리 마지막 '구원' 단계 전에서 멈춘다. 극이 그 이후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운명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가?
NO

샬롯의 운명은 파가니니에게 묶여있다. 샬롯만을 위한 운명은 이 작품에 존재하지 않는다. 샬롯의 운명은 파가니니의 사랑을 받고 파가니니를 파멸로 이끌기에 충분한 ‘순수한’ 뮤즈가 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샬롯이 그 기능마저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 작품은 샬롯의 유일한 '뮤즈'로서의 운명조차 유지해 주지 않는다. 

가수가 되고 싶은 샬롯은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면서 ‘카지노 파가니니’의 개업 전 무대에 서지만 관객들로부터 조롱만 받는다. 아버지는 왕족의 혈통임을 강조하며 저급한 무대에 섰다고 역정을 내지만, 샬롯을 그 무대에 세워준 사람은 돈 많은 그의 약혼자 콜랭이자 카지노의 주인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딸에 대한 소유권을 콜랭의 손에 건넨 뒤로는 모든 관심사를 투자금에만 집중한다. 그에게도 콜랭에게도 샬롯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다. 콜랭에게는 돈으로 지위를 사기 위한 상징이고 아버지에게는 비싼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장식품 같은 존재다. 

심지어 아버지는 샬롯이 콜랭에게 인질로 잡혀도 얼씬도 하지 않는다. 대신 샬롯의 아버지는 해결되지 않은 투자금과 함께 어디론가 어물쩡 사라져버린다. 샬롯은 돈만 부르짖다 무대 위에서 증발하는 아버지에 비하면 나름 비중 있는 역할이다. 샬롯은 첫 등장 장면을 통해 자신의 꿈이 가수라는 사실을 드러내지만, 그 꿈이 이루어졌는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이 작품 안에서 샬롯의 꿈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샬롯이 파가니니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조건을 지닌 여자라는 사실이다. 나아가 샬롯은 파가니니의 사랑을 받아서, 파가니니를 파멸로 이끌 악조건의 계약을 하는 원인이 될만큼 ‘순수한’ 여성이어야만 한다. 

샬롯은 루치오와 콜랭의 계략에 의해 이리저리 휘말리며 파가니니를 대중에게 악마로 보이게끔 하는데 일조하다가, 그 역시 결말을 알지 못한 채로 아버지처럼 증발한다. 자신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 드레스를 입은 채로.

목표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이 있는가?
Yes, but...

샬롯의 목표는 유명한 가수가 되는 것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주인공 크리스틴 다에는 그 꿈이라도 이루지만, 샬롯은 갈팡질팡 하다가 극에서 사라져버린다. 

샬롯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제일 처음 의지한 사람은 약혼자인 콜랭이다. 콜랭은 다정한 약혼자의 탈을 쓰고 샬롯에게 제대로 된 무대를 약속하지만, 이미 파가니니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한 샬롯은 자신을 이끌어줄 사람으로 약혼자 대신 파가니니를 선택한다. 그때 마침 내걸린 파가니니의 오디션 공고는 샬롯에게는 계시와도 같다. 샬롯은 꿈은 있지만 스스로의 실력을 믿지 못했기에, 전 유럽을 휩쓴 파가니니가 자신의 날개를 펼쳐줄 거라 믿는다. 단, 자신을 알아봐 주기만 한다면.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바이올린으로 온갖 소리를 다 낼 줄 알았던 파가니니는 샬롯에게 고양이 소리를 내보라고 주문하고, 훌륭하게 고양이 소리를 따라한 샬롯은 파가니니의 오디션에 합격하여 바로 파가니니의 뮤즈로 등극한다. 하지만 샬롯은 아직 자신의 두 발로 설 힘이 없기에, 약혼자와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가명을 쓰고 가면을 쓰고 무대 위에 등장한다. 

하지만 무대에 등장하기도 전에, 샬롯은 파가니니가 악마라는 루치오 신부의 말에 넘어가 버린다. 공연도 하고 싶고 루치오 신부의 협박에도 응해야 하는 샬롯은 ‘미안해요’를 거듭 남기고 줄 끊어진 바이올린을 남긴 채 파가니니를 떠나버린다. 하나 남은 현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파가니니를 보고 샬롯은 후회한다. 신이 아니라면 그런 재능을 주실 리가 없다고. 똑같은 연주를 보며 관객들이 파가니니가 악마라고 수근거릴 때, 샬롯만이 그가 악마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이런 확신도 의미가 없다. 샬롯은 콜랭에게 파혼을 선언하자마자 그의 집에 감금되는 신세로 전락한다.

뮤지컬 <파가니니> 에서 뚜렷한 목적성을 지닌 인간은 세 명이다. 가문의 명예는 빌미고 돈 밖에 모르는 샬롯의 아버지, 역시 돈 밖에 모르지만 거기에 권력도 탐하는 고리대금업 가문 출신의 콜랭, 자신이 신의 뜻을 대리한다고 굳게 믿고 싶은 퇴마 사제 루치오. 이 세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를 외친다. 그 중 제일 직접적으로 인간을 향해 '죽어!'라는 외침이 잦은 인물이 신부인 루치오라는 사실이 매우 재미있다. 이 세 사람은 파가니니보다 훨씬 더 악마 같은 면모를 보여주며 파가니니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 드는데, 이를 위한 지랫대로 쓰이는 인물이 샬롯이다.

일관성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가?
Yes, but...

샬롯의 일관성은 오로지 그가 입은 하얀 드레스로 설명될 뿐이다. 샬롯이 상징하는 바는 너무 뻔해서 사실 말을 더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처럼, 샬롯은 파가니니를 구원하러 내려온 천사 같은 존재다. 이런 샬롯에게는 캐릭터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샬롯에게도 최소한의 캐릭터는 있다. 어리고 귀가 얇은 인물로서 샬롯은 처절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순수하다기보다는 순진하고, 순진하다보니 잘도 속아 넘어간다. 루치오 신부에게 홀랑 넘어가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줄을 끊어 놓고 달아났다가, 콜랭에게 감금 당한 후에 루치오 신부가 자신을 구해주자 그의 속셈을 의심하면서도 결국 또 다시 그의 말에 홀랑 넘어간다. 파가니니에게 한 달음에 달려가 바티칸의 사제들에 대한 경고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전한다. 극 중에서 바티칸의 사제들이 파리로 온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극이 끝날 때까지 모호하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런 위협을 전하는 사람이 샬롯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샬롯은 파가니니를 파멸로 이끈다. 

실제 파가니니의 삶으로 유추해 본 샬롯의 역할은 난봉꾼인 파가니니가 그을 만나 진짜 사랑을 깨닫고, 자신을 희생하며 고결한 사랑의 가치를 깨닫고, 비록 세상을 떠나지만 구원 받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뮤지컬 <파가니니>에서는 안타깝게도 파가니니의 난봉질도, 사랑도, 특히나 구원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샬롯 역시 자신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파가니니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주요 원인이 될 뿐이다.

결정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가?
Yes, but...

샬롯이 가명을 쓰고 파가니니의 오디션을 보러 가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뜻이다. 하지만 이름을 바꾼 의미도 없이, 루치오 신부도 파가니니도 콜랭도 모두 그가 샬롯이라는 사실을 알아채 버린다. 

이후 샬롯의 모든 결정은 파가니니를 위해서 내리는 결정이다. 샬롯이 콜랭에 의해 감금되었을 때 그 방을 탈출하는 것도 전혀 자신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한 번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콜랭의 집 하인 한 명이 루치오에게 가서 콜랭의 만행을 고발한 덕에 샬롯은 풀려난다.샬롯은 풀려나자마자 루치오의 말을 전하러 파가니니에게 달려간다. 

이 인물은 사실 연애 상대라기보다는, 등장하는 모든 남성 인물에게 휘둘리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도 단 한 번, 자신의 이 인물의 발이 움직였던 순간을,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고 걸어갔음을 깨알 같이 기록에 남기고 싶다.

발전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는가?
Yes, but...

샬롯이 어디까지 변화하고 발전하는지 관객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샬롯의 첫 반항 시도는 가명으로 파가니니와 공연한 것이고, 실질적인 첫 반항은 콜랭에게 파혼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샬롯은 반항하는 순간 바로 꺾인다. 자신의 의지가 꺾인 순간, 샬롯은 상대를 저주하지도, 하다 못해 뺨 한 번 때리지도  못하고 울면서 갇혔다가 루치오 신부에게 구조된다. 

샬롯이 파가니니에게 달려가 콜랭이 바티칸의 타락한 주교들과 결탁해 파가니니를 찾는다는 걸 알려줄 때도, 파가니니는 샬롯이 뭐라고 하든 연주를 그만두지 않는다. 한 마디로, 샬롯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인간이 이 작품 속에는 단 한 명도 없다. 샬롯에게 반한 파가니니조차 샬롯의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샬롯은 남성 인물들이 각기 다른 형태의 감정을 자신에게 쏟아내는 것을 속절없이 덮어쓸 뿐이다. 

감금된 샬롯을 두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인 콜랭, 파가니니, 루치오의 행동이 전혀 다를 바 없다는 사실도 놀랍다. 파가니니는 샬롯을 자신의 재산이라고 선언하고 감금한 루치오 앞에 나타나 샬롯의 빚을 대신 갚겠다며 얼마면 되냐고 물은 뒤, 샬롯의 안부는 커녕 자신이 낸 돈으로 샬롯을 풀어줄 수 있다는 사실에만 만족하고 돌아간다. 루치오는 샬롯을 구조해 파가니니로 하여금 악마라는 고백서에 서명하게 할 생각이다. 둘 다 모두 샬롯을 무섭도록 대상화한다. 그 방식이 비록 소유, 사랑, 이용이라는 각각의 다른 옷을 입고 있다 한들, 이 남자들의 내면 속 샬롯은 한결같이 ‘누군가의 것’이다. 심지어 샬롯 스스로 파가니니의 것임을 선언해 버릴 정도다. 그러니 샬롯의 작은 반항은 그저 파가니니를 위한 것일 뿐이다.

종합 별점 ★★

더디게 앞으로 나아가다 사라져 버린

뮤지컬 <파가니니> 는 파가니니의 아들 아킬레의 청원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 아킬레와 파가니니의 일화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의 파가니니는 말년에 매독으로 시력을 잃고 치아도 다 빠져 말도 못하여 어린 아킬레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해야 했다. 자신의 딸을 성폭행한 것으로 사후에 고발 당한 클라우스 킨스키의 1989년 개봉 영화에서조차 방탕한 파가니니의 삶의 유일한 밝은 면으로 아들에 대한 사랑을 내세울 정도로, 아들에 대한 파가니니의 사랑은 이견이 없는 사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뮤지컬 <파가니니>에 나오는 파가니니는 그 아들을 위해 모았던 돈마저 사랑하는 샬롯을 위해 다 쏟아 붓는 인물이 되어버린다. 그나마 이 작품에서 플롯을 위해 널을 뛰는 인물은 샬롯 뿐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위안을 주지는 않는다. 

파가니니의 선함을 보여줄 방법이 정말로 존재하지 않았던 여성을 만들어내는 것뿐이었을까? 이 작품에는 사실 파가니니의 의견이나 그의 시점조차 전혀 들어있지 않다. 파가니니를 악마로 몰고 싶었던 루치오 신부와 콜랭의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모습을 통해, 파가니니를 악마로 몰았던 동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과장해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말하자면 파가니니의 재능을 극도로 질투했던 시인 하이네나 리스트 등이 이들보다는 더 연관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는 굳이 흰 옷을 입은 여인, 샬롯이 등장한다. 그레첸이 파우스트를 구원하듯, 엠마가 지킬을 구원하듯, 남자 주인공을 구원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느릿느릿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가는 인물이 뮤지컬 <파가니니> 속의 샬롯이다. 안타깝다. 작품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를 감지하는 것과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그 목표를 향해 제대로 걸어가고 있는가는 꽤 다른 문제임을, 이 매력적이면서도 안타까운 작품을 통해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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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뮤지컬 속 여성

01

2019년 첫째 주, 마리 퀴리

02

2019년 둘째 주,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

03

2019년 셋째 주, 오목

04

2019년 넷째 주, 클레어

05

2019년 다섯째 주, 알렉산드라 오웬스

06

2019년 일곱째 주, 그레첸

07

2019년 여덟째 주, 제루샤 '주디' 애봇

08

2019년 아홉째 주, 메리 포핀스

09

2019년 열번째 주, 핑크 레이디

10

2019년 열한번째 주,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11

2019년 열두번째 주, 아랑

12

2019년 열세번째 주, 샬롯 드 베르니에

현재 글
13

2019년 열네번째 주, 나팔, 혜란, 이은숙

14

2019년 열다섯번째 주, 에바 호프

15

2019년 열여섯번째 주, 1976 할란카운티의 여성들

16

2019년 열일곱번째 주, 앤 보니, 메리 리드

17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1) 마법에 걸린 사랑

18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2) 바그다드 카페

19

2019년 스물한번째 주, 빨래

20

2019년 스물두번째 주, 자스민

21

2019년 스물세번째 주, 심청

22

2019년 스물네번째 주 안나 아르카지예브나 카레니나

23

2019년 스물다섯번째 주, 조왕, 덕춘

24

2019년 스물여섯번째 주, 테레즈 라캥

25

2019년 스물일곱번째 주, 음악극 <섬>

26

2019년 스물여덟번째 주, 기네비어와 모르가나

27

2019년 스물아홉번째 주, 허초희

28

2019년 서른번째 주, 강향란, 차순화

29

2019년 서른한번째 주, 진

30

2019년 서른두번째 주, 개비, 바비, 도나, 울리

31

2019년 서른세번째 주, 록산

32

2019년 서른네번째 주, 옹녀

33

2019년 서른다섯번째 주, 엠마 커루

34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3) 갓 헬프 더 걸

35

2019년 서른여섯번째 주, 마리 앙투와네트

36

2019년 서른일곱번째 주, 베스

37

2019년 서른여덟번째 주, 그 여자

38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4) 호커스 포커스

39

2019년 마흔세번째 주, 루미 헌터

40

2019년 마흔다섯번째 주, 아드리아나와 엘로이즈

41

2019년 마흔여섯번째 주, 레베카 드 윈터스

42

2019년 마흔일곱번째 주, 아이다

43

2019년 마지막 주, 암네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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