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서른여섯번째 주, 뮤지컬 속 여성 : 마리 앙투와네트

알다뮤지컬여성 주인공

2019년 서른여섯번째 주, 뮤지컬 속 여성 : 마리 앙투와네트

이응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뮤지컬 <마리 앙투와네트>

초연 2006년, 일본 도쿄, Imperial Garden Theater
대본, 가사 Michael Kunze
작곡 Sylvester Levay
원작 엔도 수사쿠 <여왕 마리 앙투와네트>(1979)
연출 쿠리야마 타미야

한국 초연 2014년 11월, 샤롯데씨어터
한국 공연 2019년 8월24일~11월17일, 디큐브아트센터
한국어 가사 권은아, 김문정
음악감독 김문정
연출 로버트 요한슨
의상 아케자와 요시코
무대 Micahael Schweikrdt
안무 Jayme Mcdaniel

 

2006년에 개봉한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 <마리 앙투와네트>는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를 파리 사교계의 패션 아이콘으로서 보여주었다. 때로는 컨버스 신발 같은 신문물이 ‘갑툭튀’하면서 먹고 입고 노는 것만 그린 영화라고, 금수저 출신 여성 감독의 '돈지랄'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열여섯에 낯선 나라 프랑스에 도착한 마리가 발가벗겨진 채로 수많은 귀족들 앞에 마치 암퇘지처럼 품평을 당하는 장면이 꽤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공주였고, 프랑스에서는 황태자비이자 왕비였지만, 신분과 상관없이 정략에 의해 주고 받는 존재가 된 여성으로서, 사생활이라고는 없는 생활에 반쯤 정신을 놓고 살아가는 마리 앙투와네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19년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마리 앙투와네트>에도 마리를 한 순간에 벗기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실루엣으로 처리되지만 ‘발가벗겨짐’ 그 자체가 마리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는 장면으로 바뀐다. 오히려 영화 속에서 홀로 고립되어 프랑스로 물건처럼 전달되는 마리의 심경이 더 잘 드러났다. 

마리 앙투와네트가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를 죽을 때까지 사랑한 사람으로 유명한 동갑내기 연인 스웨덴의 페르젠이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마리 앙투와네트는 상냥하고 소박하고 현명하고 따뜻한 어머니였다. 하지만 뮤지컬 전체를 통틀어 마리 앙투와네트를 수식하는 가장 흔한 말은 바로 ‘창녀’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창녀, 프랑스를 망친 창녀, 국민의 빵을 빼앗아 혼자 다 먹은 창녀. 남성을 모욕할 때 여성을 소환한다면, 여성을 모욕할 때는 창녀를 소환하는 그 오래되고 확고한 방식이 이보다 더 견고하게 드러난 뮤지컬도 흔하지 않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리 앙투와네트는 자신의 몸을 팔아 프랑스의 부귀영화를 독점하여 ‘창녀’가 됐다. 사치와 향락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뮤지컬이 마리 앙투와네트의 숨겨진 진실이나,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있던 이야기를 더욱 더 평면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아니, 오늘날에도 마리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첫 장면부터 거대한 기요틴이 굉음을 내며 떨어지고, 이는 마리 앙투와네트의 목이 떨어지기 전에는 이 작품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줄거리

마리 앙투와네트는 오스트리아의 마리 테레지아의 열한번째 아이로 태어나 열여섯에 프랑스의 황태자이자 미래의 루이 16세와 결혼하기 위해 프랑스로 보내졌다. 대장장이가 천직이라 여기는 루이에게 마음을 붙이지 못한 마리는 동갑의 스웨덴 출신 군인 페르젠과 연인 사이가 된다. 

프랑스는 미국 독립 전쟁에 참여하면서 재정 상태가 더욱 악화되고, 약화된 왕권을 틈타 오를레앙 공은 왕위를 노린다. 거리에서 살던 마그리드 아르노는 오를레왕 공의 파티에 침투해 마리의 얼굴에 샴페인을 끼얹고도 용서 받는 사건을 일으킨다. 오를레앙은 왕비를 창녀라고 부르는 노래를 만든 시인 에베르와 마그리드를 고용해 여왕을 음해하는 신문을 찍어내고, 에베르의 노래를 유행시킨다. 또한 마그리드를 마리로 변장시켜 목걸이 사기사건을 주도해 외국에서 온 왕비인 마리의 평판을 더욱 끌어내린다. 

혁명이 일어나고 왕가는 사로 잡힌 몸이 되는데, 왕은 시민에게 총을 쏘아서는 안 된다며 막아선다. 결국 왕가는 프랑스를 탈출하려다가 잡히고 루이 16세와 마리는 차례로 처형되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며 마그리드는 그들이 여느 가정처럼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자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결국 마리를 위해 거짓 증언을 하는 마그리드. 알고 보니 마그리드는 마리의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던 수많은 여인들 중에 한 명이 낳은 이복 자매. 마리의 목이 잘린 후 혁명재판에 회부된 마그리드는 과거 오를레앙공과 시인 에베르가 맺은 계약서를 증거로 내밀어 그들이 진짜 혁명의 반역자임을 증언하고 두 사람은 끌려 나간다. 마지막으로 모든 등장인물은 정의란 무엇인지 노래하며 막을 내린다. 

뮤지컬 <마리 앙투와네트>는 마리와 마그리드가 만나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다. 하지만 이 뮤지컬은 벡델 테스트의 허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단지 '남성이나 연애와 무관한 대화를 하는가' 하는 아주 간단한 기준을 통과한다고 해서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둘의 대화는 결코 겹치지 않을 듯이 평행선을 걷다가 거의 마지막에 가서 같은 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불현듯 접점이 생긴다. 감옥에 갇힌 채로 아들에게 아버지에게 배운 자장가를 불러주던 마리는 그 노래를 마그리드가 따라 부르자 마그리드가 자신의 이복 자매라는 사실을 짐작한다. 그리고 자매라 믿은 마그리드에게 페르젠에게 보내는 자신의 편지를 맡기지만 이 편지는 결국 혁명 재판부로 넘겨지고 마리 앙투와네트를 죽이는 결정적 증거로 작용한다. 

마리 앙투와네트와 마그리드 아르노의 상반된 삶은 마치 엇갈린 운명을 보여주는 장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들의 인생은 다를 것도 없이 똑같다. 한 명은 왕비이고 한 명은 거리의 여자일 뿐, 이들의 인생에서 진정으로 대비되는 것은 입은 옷이 누더기 치마냐 화려한 드레스냐, 그것 뿐이다. 마리도 마그리드도 주체적인 인생을 살지 못하고 그저 휘둘리기만 하고, 그들의 시야는 모래 밑에 머리를 처박고 운명이 피해 가기를 기다리는 타조만도 못하다. 이들이 정말 그토록 어리석게 그려져야만 했을까? 그리고 그런 인물이 마리 한 명으로도 부족하여 마그리드라는 가상의 인물까지 만들어내야 했을까?

운명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가?
No

마리 앙투와네트가 다른 이와의 관계가 아닌 스스로의 운명을 지니고 있던가? 루이 16세의 아내가 아니었다면, 마리 앙투와네트는 여전히 역사서의 다른 페이지를 똑같은 사건으로 장식할만한 인물이었을까? 

실존 인물은 그렇다 치고, 뮤지컬 안의 마리 앙투와네트에게 자신만의 운명은 없다. 운명을 만들어 가는 인물이 아니라 전적으로 질질 끌려가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페르젠이 그토록 혁명에 대해 설명하고 정신 차리라고 조언하지만 마리는 생글생글 웃으며 귓등으로 넘긴다. 페르젠의 경고는 그저 ‘내 옆에 머물라’는 마리의 역공으로 돌아올 뿐이다. 우습기도 한 것이 페르젠은 프랑스인도 아니다. 그는 옆 나라 스웨덴의 귀족이자 군인이다. 그런 그에게 틈만 나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곁에 남으라는 마리는 이성이 없는 인물이라고 인식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1막을 화려하게 보낸 이후 혁명군에게 사로잡힌 2막에서는 마리가 위엄 있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화는 사실 울화에 가깝다. 왕비로서의 위엄은 자신을 가둔 사람들과 자신이 결코 같지 않다는 권위의식과 특권의식에서 나온다. 마리는 마그리드를 천박하게 여기며 우리는 결코 같지 않다고 노래하며 경멸한다. 

하지만 그가 마음을 여는 순간은 마그리드가 아버지의 노래를 부를 때다. 아버지가 죽은 해부터 지원금이 끊겼다는 말에 자신의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리는 비로소 마그리드에게 마음을 연다. 혈연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자마자 위험하기 짝이 없는 편지를, 그것도 페르젠에게 보내는 편지를 그토록 경멸하던 마그리드에게 대뜸 맡긴다. 

마리 앙투와네트가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의 오빠인 소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드 2세에게 프랑스를 공격하고 자신을 구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거나 페르젠에게 구해달라는 편지를 보내는 것이 전부인데 ,그것을 자신을 감시하라고 보낸 마그리드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편지를 들고 나오는 마그리드 앞에 페르젠이 떡하니 나타난다. 더 이상 이런 우연이 놀랍지도 않다. 

마리는 시민군이 베르사이유를 공격해 올 때도 서슴없이 왜 그들을 공격하지 않냐고 루이 16세에게 따져 묻는다. 그러자 자상하고도 관대하게 그려지는 루이 16세는 자신의 국민을 죽이라는 명령은 할 수 없다며 순순히 시민군에게 잡힌다. 극단적일 정도로 향략을 누리다가 여왕의 권위만 내세우다 세상을 떠나는 마리 앙투와네트와 달리, 마리를 사랑하는 두 남자로 등장하는 페르젠과 루이 16세는 그야말로 고매한 인격체의 대명사처럼 그려진다. 루이 16세는 프랑스 국민을 진심으로 아끼고 왕보다는 대장장이가 되고 싶었던 한 남자로, 페르젠은 혁명을 지지하여 미국의 독립을 돕고 마리에게 스스로 서라고 충고하는 인물이다. 

이 두 남자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며 마리는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어찌 보면 이 뮤지컬은 마리 앙투와네트가 얼마나 죽어도 싼 인물인지, 프랑스인이 미워해 마땅한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마리 앙투와네트의 무기력한 모습은 1막에서도 2막에서도 초지일관 이어진다.

일러스트 이민

목표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이 있는가?
No

마리의 목표나 신념은 보이지 않는다. 단 하나가 있다면 페르젠과 도망가서 그와 함께 남은 여생을 사는 것 정도? 물론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토록 페르젠을 사랑하면서도 루이 16세가 도망가라고 하자 그의 손을 꼭 잡고 자신은 프랑스의 왕비이니 곁을 지키겠다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 속에서 마리의 유일한 신념은 자신의 혈관에 흐르는 왕족의 핏줄 하나 뿐이다. 타고나길 공주로 태어나 화려한 왕비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눈 앞에 있는 누더기를 입은 마그리드나 다른 혁명 세력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리의 이러한 생각은 마그리드와 처음 조우했을 때 시종이 따라준 샴페인을 마그리드에게 내밀며 ‘샴페인 맛볼래?’ 하고 내밀 때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다. 누더기를 입은 마그리드에게 맛보라며 주는 것은 마리에게는 자선이고 박애다. 구두 끝에 묻은 티끌보다 못한 존재에게 자신이 마시려던 샴페인의 맛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한 은혜가 어디 있는가. 그것도 자신을 욕하는 하층민의 여자에게. 

그러나 마그리드는 자신이 일생 벌 수 있는 돈보다 더 비싼 샴페인의 맛을 보기보다 마리의 얼굴에 그 술을 끼얹는다. 맛을 보겠냐는 그 말에 담긴 모욕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렬하게 등장한 마그리드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게 바로 마리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심의 이유다. 그 이유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마그리드는 오스트리아 창녀 마리 앙투와네트만 무너뜨릴 수 있다면 똑같은 귀족인 오를레앙 공을 ‘우리 편’이라고 부르며 은인으로 모시면서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는, 오를레앙의 개처럼 행동한다. 대사로는 자신들은 빵도 못 먹을 정도로 배가 고픈데 그 이유가 마리 때문이라지만, 마그리드가 조금이라도 머리가 있다면 귀족과 고위 성직자들, 앙시엥 레짐 그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극 중에서 다른 모든 사람이 아는 이 문제를 마그리드만 모른다. 

결국 마리도 마그리드도 ‘좁은 시야’를 가진 경주마처럼 극단적인 결말을 향해 죽어라 달려가기만 하는 인물이다. 마그리드는 원작자인 엔도 수사쿠의 소설 <여왕 마리 앙투와네트>에는 없는, 뮤지컬의 대본 작가 미하엘 쿤체가 덧붙인 캐릭터이다. 마그리드의 존재는 프랑스 혁명을 모욕하고 마리의 어리석음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일 뿐이다. 마그리드는 마치 마리의 핏줄에는 주변을 돌아볼 능력이 없는 유전자가 있다고 증명하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마리 앙투와네트가 자신의 지위가 영원할 거라고 믿는 것처럼, 마그리드는 마리만 끌어내리면 정의가 구현될 거라고 믿는다. 심지어 오를레앙이 지시한 온갖 비열한 짓들을 서슴없이 해치우면서도 그것이 정의라고 굳게 믿는다. 정작 자신의 ‘편’이라고 믿었던 파리의 하층민 여성들로부터는 거부당하고 오를레앙이 내민 돈에 그들이 매수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도 여전히 그 신념은 유효하다. 

그리고 이 신념이 무너지는 지점은 루이 16세의 가족이 ‘평범한’ 여느 가족처럼 기도하고 자장가를 부르고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다. 심지어 마리가 흔들리기 전에 마그리드가 먼저 흔들린다. 오를레앙이 마리를 감시하라고 마그리드를 하녀로 들여보낼 때 혁명 정부는 “여자는 감정적이라 동요될 수 있다!”고 반대하는데, 마그리드는 딱 그 말대로 감정적으로 흔들린다. 이 뮤지컬이 생각하는 여자란 얼마나 비이성적인 존재이며 못 믿을 존재인가! 

마그리드를 존재하게 했던 마리 앙투와네트에 대한 증오심이 그토록 쉽게 흔들리는 것은 권력을 상실한 왕비에 대한 감정이입 때문이다. 마그리드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그 권력을 잃고 ‘평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토록 감정을 뒤흔드는 일일까? 아니면 이복 자매라서, 피가 끌렸기 때문에? 마리도 마그리드도, 무엇도 보여주지 못한 채로, 빈약하게 지니고 있던 근거가 희박한 목표의식마저 희미해진 채로 무기력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일관성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가?
No, but...

마리 앙투와네트는 철저하게 짜인 플롯에 의해 움직이고 행동한다. 그 플롯이란 파티를 즐기며 즐겁게 살다가 혁명으로 인해 기요틴에 목이 잘리는 것이다. 마리는 입으로는 페르젠에 대한 사랑을 말하지만 그 사랑을 위해 하는 행동은 무작정 페르젠에게 자신의 곁에 머물러 달라고 애걸하는 것뿐이다. 사실 그런 점에서는 페르젠도 만만치 않은데, 그 역시 마리에게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애당초 어쩌다 사랑에 빠졌는지는 관객들은 알 수가 없다. 이들은 만나면 다투기만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페르젠은 전적으로 정의롭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며 마리가 반역을 저지르자 차마 구해주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는 귀족이면서 혁명주의자고, 마리를 사랑한다지만 루이 16세가 떠나라고 하면 떠나버리며, 마리가 곁에 있어달라고 몇 번이나 애걸하지만 그 역시 듣지 않는다. 

마리의 성격은 장면마다 다르다. 루이 옆에 있을 때는 자상한 어머니고, 페르젠 앞에서는 한없이 가녀린 여인이고, 마그리드 앞에서는 그야말로 거만한 왕족이다. 로앙 추기경이 문란한 사람이라며 미워하지만 정작 자신은 남편이 아닌 페르젠과 연인 사이다. 

마리의 정의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어떻게 보면 지독한 이 자기중심적인 사고 하나만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된다. 처형되기 전날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버린 마리는 신부로 변장하고 찾아온 페르젠 앞에서 가장 먼저 세어버린 자신의 머리를 감추려 들며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고 절규한다. 마리의 허영은 마리의 자기중심적 사고 그 자체이기도 하다.

결정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가?
No

마리의 결정 대부분은 사랑 때문이다. 심지어 마지막에 마리가 반역죄로 사형당하게 되는 편지조차도 페르젠에게 보냈던 편지다. 실제 마리의 인생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리가 무대 위에서 부르는 솔로송은 모두 페르젠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을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마그리드인데, 마그리드의 노래 내용은 마리 앙투와네트를 증오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마리 앙투와네트는 페르젠을, 마그리드는 마리를 노래한다. 사랑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누가 그러던가. 마그리드의 정의는 마리를 처단하는 것이고, 마리의 바람은 페르젠과 도망가는 것이다. 둘 다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꿈이며, 둘 다 그 꿈을 위해 스스로 하는 행동은 자기기만이다. 

그리고 두 여인 모두 페르젠으로 인해 구원받는다. 아니 잠깐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페르젠일지도 모르겠다. 페르젠의 마리 앙투와네트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해 그의 애타는 눈물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페르젠의 시각으로 본 마리 앙투와네트도 아니지만 말이다.

발전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는가?
No

마리는 뮤지컬 속에서 엄청난 일들을 겪지만 그 일을 통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도 더 나쁜 사람이 되지도 않는다. 이 작품 속에서 마리의 권위는 변하지 않음을 통해 유지된다. 왕위에 있을 때도 처형을 당하던 순간까지도 마리 앙투와네트는 초지일관 고고함을 유지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 사이에서 머리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처형 전날 마리의 심정은 노래 한 줄로도 등장하지 않고, 그저 하얗게 변한 머리만이 깜짝쇼처럼 드러난다. 

마리가 이 작품 안에서 겪는 세 번의 위기가 있다. 한 번은 목걸이 사건의 주동자로 오인 받아 전국적인 ‘창녀’로 등극할 때, 두 번째는 혁명군에게 사로잡힐 때, 세 번째는 죽기 직전이다. 그런데 이 모든 순간에서 마리는 어떤 심정도 노래 부를 기회를 얻지 못한다. 마리는 그저 전시될 뿐이다. 오히려 그 와중에 자신의 마음과 심정을 노래할 기회를 얻는 것은 고매한 국왕이자 한없이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로 그려지는 루이 16세다. 대장장이가 되어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는 한 남자의 소원은 노래가 되지만, 정작 뮤지컬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마리 앙투와네트는 위기의 순간마다 남자 배역의 등 뒤에서 그들의 노래나 행동을 지켜보며 그저 가련하게 전시되거나 비명을 지를 뿐이다. 정말 이 작품의 주인공이 마리 앙투와네트이긴 한 걸까?

마리의 천민 버전인 마그리드 역시 그 자신만의 감정을 노래할 기회는 거의 갖지 못한다. 마그리드의 노래들은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정의를 노래하든가 마리 앙투와네트를 증오할 뿐이다. 이 두 사람이 유일하게 공유하는 노래마저도 그들의 아버지가 남긴 자장가이다. 이들은 상황이 나빠질수록 더욱 퇴보한다. 마그리드는 에르베가 자신을 향해 ‘너는 내 여자야!’ 하고 외치자 ‘나는 누구의 여자도 아니야!’하고 받아치지만 그 이후 보여주는 모든 행동은 마그리드가 오를레앙 공의 충실한 개가 됐음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페르젠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마리 앙투와네트처럼, 자신의 이복 자매처럼.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양면에 같은 무늬가 새겨져 사용할 수 없는 동전과도 같이 무대 위에 존재한다.

언제까지 창녀를 죽이자고
'떼창'할 것인가

뮤지컬 <마리 앙투와네트> 안에는 마음을 의지할 배역이 많지 않다. 차라리 철저하게 악역이고 나름 사실을 근거로 한 오를레앙 공이 인간적일 정도다. 프랑스 최고의 부자지만 왕은 되지 못한 그는 왕이 되고 싶어 마리 앙투와네트를 공격하고, 혁명파를 자기 집 안에 끌어들여 보호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혁명 때문에 왕이 될 기회를 잃는다. 혁명군이 자신을 추대해 주기를 기대하지만 그들은 그 누구도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결국 오를레앙 공은 자신만의 왕조를 일으키려다 쿠데타 혐의를 받고 기요틴에 머리를 잘리고, 그의 아들이 공포정치가 끝난 후 왕좌에 오른다. 왕과 같은 기요틴에 머리를 잘려 결국에는 왕과 같은 바구니에 머리통을 담갔으니 기뻤으려나. 

이 작품 속에서 제대로 된 욕망, 제대로 된 사상, 제대로 된 박애주의를 가진 인물은 각각 오를레앙 공, 페르젠, 루이 16세로 드러난다. 마리 앙투와네트와 마그리드 아르노, 이니셜이 같은 두 M.A는 그들 사이에서 장기말처럼 이리 저리 움직이며 사랑 말고는 내면의 긴장도 고통도 노래 부르지 않는다. 언제까지 여성의 이름을 앞세워서 그들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씩씩한 떼창으로 듣고 보아야만 할까? 그리고 그 이유는 수십번 반복되는 ‘창녀’다.

루이 16세가 정말로 그토록 자상하고 좋은 왕이었을까? 그랬다면 그는 왜 자신의 백성들을 학살하라는 편지를 몇 통이나 여기 저기 보냈을까? 여담으로 실제로 루이 16세 가족의 프랑스 탈출이 실패한 이유는 루이 16세가 마지막으로 들른 여관의 특산품이 돼지 족발 요리였고 그 요리를 먹겠다고 루이 16세가 박박 우겼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요리한 돼지 족발을 먹고 그는 발이 묶였다. 입헌군주제에 찬성해서 목숨을 유지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권력을 되돌려 받으려다 실패하자 도망쳤던 루이 16세가 과연 프랑스 민중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뮤지컬에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든지, 기요틴의 칼날을 기울게 설계한 것은 루이 16세였다든가 하는 역사적 비화들을 사실인 듯이 나열하면서 한 편으로는 유럽 최초로 왕정 자체를 제거했던 이 혁명을 오를레앙 공의 왕권욕이 부추긴 일로 폄하하기도 한다.

일본 작가가 쓰고
독일 작가가 뮤지컬로 만든
프랑스 혁명의 여성혐오

 프랑스는 혁명으로 터진 계급 간의 갈등이 천민 여성 강간으로 이어지면서 유럽에서 가장 먼저 공화국을 세웠으면서도 가장 늦게 여성 참정권을 법전에 쓴 나라가 됐다. 그 생생한 여성혐오가 2019년에 일본 작가 원작으로 독일 대본작가가 쓰고 한국 팀에서 첨삭한 결과물로 펼쳐지는 현장을 보는 기분이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마리와 마그리드는 무대 위의 신분이 어떻게 차이가 나든 다루어지는 방식은 무서울 정도로 똑같다. 이들은 자유의지가 충분하지 않으며 감정적일 뿐인 존재다. 그래서 마리는 기요틴에 머리가 잘리고 마그리드는 자신의 손으로 고발한 마리의 유죄를 증언하기를 거부한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들의 머리는 잘리기 위해 달려 있는 게 아니다. 마리 앙투와네트가 무조건 옳은 인간으로 그려질 필요도 없고, 그를 위한 변명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기 발로 걸어 갈 수 있을 정도의 일관된 성격과 대사 간의 인과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하다못해 남자라면 악당에게도 주어지는 그것이 여성 인물들에게는 왜 그토록 어려운가? 

마지막으로 페르젠의 입을 빌려 작가가 마리와 마그리드에게 부여한 가치를 들어보자. 그것은 바로 ‘사랑받기에 충분한 여자’라는 것이다. 마리가 그랬듯이 마그리드도 페르젠과 사랑에 빠지는데, 페르젠은 두 여성 모두 사랑받아 마땅하다며 ‘칭찬’한다. 물론 두 여성은 그 말에 위안을 얻는다. 무대 위 다른 어디서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두 여성이 페르젠의 인정을 받으면서 없던 가치가 생기다니, 남자의 사랑의 힘은 참으로도 위대하여 좋겠다. 

이응님의 글은 어땠나요?
1점2점3점4점5점
SERIES

뮤지컬 속 여성

01

2019년 첫째 주, 마리 퀴리

02

2019년 둘째 주,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

03

2019년 셋째 주, 오목

04

2019년 넷째 주, 클레어

05

2019년 다섯째 주, 알렉산드라 오웬스

06

2019년 일곱째 주, 그레첸

07

2019년 여덟째 주, 제루샤 '주디' 애봇

08

2019년 아홉째 주, 메리 포핀스

09

2019년 열번째 주, 핑크 레이디

10

2019년 열한번째 주,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11

2019년 열두번째 주, 아랑

12

2019년 열세번째 주, 샬롯 드 베르니에

13

2019년 열네번째 주, 나팔, 혜란, 이은숙

14

2019년 열다섯번째 주, 에바 호프

15

2019년 열여섯번째 주, 1976 할란카운티의 여성들

16

2019년 열일곱번째 주, 앤 보니, 메리 리드

17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1) 마법에 걸린 사랑

18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2) 바그다드 카페

19

2019년 스물한번째 주, 빨래

20

2019년 스물두번째 주, 자스민

21

2019년 스물세번째 주, 심청

22

2019년 스물네번째 주 안나 아르카지예브나 카레니나

23

2019년 스물다섯번째 주, 조왕, 덕춘

24

2019년 스물여섯번째 주, 테레즈 라캥

25

2019년 스물일곱번째 주, 음악극 <섬>

26

2019년 스물여덟번째 주, 기네비어와 모르가나

27

2019년 스물아홉번째 주, 허초희

28

2019년 서른번째 주, 강향란, 차순화

29

2019년 서른한번째 주, 진

30

2019년 서른두번째 주, 개비, 바비, 도나, 울리

31

2019년 서른세번째 주, 록산

32

2019년 서른네번째 주, 옹녀

33

2019년 서른다섯번째 주, 엠마 커루

34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3) 갓 헬프 더 걸

35

2019년 서른여섯번째 주, 마리 앙투와네트

현재 글
36

2019년 서른일곱번째 주, 베스

37

2019년 서른여덟번째 주, 그 여자

38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4) 호커스 포커스

39

2019년 마흔세번째 주, 루미 헌터

40

2019년 마흔다섯번째 주, 아드리아나와 엘로이즈

41

2019년 마흔여섯번째 주, 레베카 드 윈터스

42

2019년 마흔일곱번째 주, 아이다

43

2019년 마지막 주, 암네리스

첫편부터 보기

이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뮤지컬에 관한 다른 콘텐츠

여성 주인공에 관한 다른 콘텐츠

콘텐츠 더 보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