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둘째 주, 뮤지컬 속 여성 :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

알다여성 주인공뮤지컬

2019년 둘째 주, 뮤지컬 속 여성 :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

이응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뮤지컬 <엘리자벳>

초연 1992년, Theater an der Wien in Vienna, Austria.
대본, 가사 Michael Kunze
작곡 Sylvester Levay
연출 Harry Kupfer
한국 초연 2012년,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공연 정보 2018년 11월17일 ~ 2019년 2월10일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2월21일~2월24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3월1일~3월3일,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
3월9일~3월10일, 천안예술의전당 대공연장
3월15일~3월17일, 계명아트센터
3월22일~3월24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3월29일~3월31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EMK Musical comapany

<엘리자벳>은 한국에서 공연되기 전부터 뮤지컬 팬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했다. 우베 크뢰거가 죽음을 의인화한 토드 역으로 등장한 DVD 버전이 자막도 없이 돌아다녔고 옆 나라 일본에서 1996년에 공연된 다카라즈카 버전도 화제가 됐다. 결국 오스트리아 비엔나 초연 20년이 지난 후 한국에서 초연이 성사됐다. 그 후로도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어, <엘리자벳>은 제작사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굳게 군림 중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엘리자벳이 '원톱'을 맡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끌어가는 흔하지 않은 여성 주인공 작품이다. 하지만 가장 큰 화제를 모으는 것은 늘 '죽음'의 배역이었다. 죽음 배역은 초연을 했던 오스트리아부터 한국까지 모두 남자 배우들이 도맡았다. 죽음에 성별이 있을 리 없는데도 이 배역은 항상 남자 배우들의 영역으로 굳게 자리 잡았다. 출연진 전원이 여성인 일본의 다카라즈카 극단에서는 당연히 여자 배우가 죽음 역을 맡았지만, 이 때도 남자로서 연기하기 때문에 단지 여성 배우가 연기한다고 해서 여성 배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줄거리

* 여기부터 뮤지컬 <엘리자벳>의 내용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의 화자는 엘리자벳을 죽인 암살자 루케니다. 루케니는 엘리자벳을 암살한 죄로 백 년 동안 목 매달린 채 재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루케니의 증언은 한결 같다. 죽음을 원한 것은 엘리자벳이었고, 자신은 그걸 도와주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그 시대를 죽음으로부터 불러들인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막바지, 하라는 건 하기 싫고 하지 말라는 건 하고 싶은 귀족 아가씨 엘리자벳은 나무를 타다 떨어져서 처음 죽음(토드)과 마주친다. 토드는 독일어로 죽음이라는 뜻이다. 죽음은 소름 돋게 아름다운 엘리자벳의 생명을 빼앗지 않는 대신 계속 엘리자벳을 주시한다. 뮤지컬 속에는 전체 이야기를 지켜보는 루케니와, 뮤지컬 안에서 엘리자벳을 지켜보는 죽음이라는 이중의 액자 구조가 느슨하게 형성된다.

엘리자벳의 어머니 루도비카는 오스트리아의 젊은 황제인 요제프의 어머니 조피와 자매지간으로, 장녀인 헬레나와 요제프를 결혼시키려 한다. 그러나 정작 황제는 아직 어린 16살 씨씨(엘리자벳의 애칭)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강행한다. 엘리자벳은 엄격한 시어머니 조피와 사사건건 대립하지만 이기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이 낳은 아기들도 다 빼앗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엘리자벳이 남편의 사랑과 정치적 수단으로 조피를 압박하자, 조피는 요제프를 유곽으로 유혹해 엘리자벳과의 사이를 깨버린다. 

엘리자벳의 아들 루돌프는 조피에게 반기를 들었던 어머니의 뜻을 따라 헝가리의 독립을 지지하다 아버지와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틀어지자 씨씨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씨씨는 응하지 않는다. 루돌프가 자살한 후에도 씨씨는 궁전으로 돌아오지 않고 유럽을 떠돌다 마침내 루케니의 손에 찔려 죽은 후에야 죽음의 손을 잡고 자유를 찾는다. 

ⓒEMK Musical comapany

실체 없는 욕망의 주인

운명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가?
YES, but...

뮤지컬 <엘리자벳>은 주인공인 씨씨를 위한 특별한 운명을 준비해 놓았다. 바로 죽음이다. 아니,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운명의 인간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씨씨는 죽음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인물이다. 죽음은 씨씨가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극한의 순간마다 나타나 죽음의 세계로 오라고 유혹한다. 씨씨는 늙어서 더 여행할 기운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죽음의 유혹을 거절하며 생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이 운명은 씨씨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씨가 그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씨씨의 운명은 그저 세월에 맡겨진다. 극 중에서 씨씨의 죽음을 결정하는 것도 본인이 아니다. 죽음이 루케니에게 칼을 쥐어주며 더이상 씨씨를 지상 위에 걸어다니게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다.

목표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이 있는가?
NO

씨씨의 아버지 막스는 자유주의자로 씨씨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묘사된다. 씨씨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하게 너는 안된다고 대답한다. 씨씨가 바랬던 게 대단했던 것도 아니었다. 시를 쓰고 말을 타고 꿈을 꾸는 것. 씨씨가 말을 타고 시를 쓰는 모습은 뮤지컬에서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정말 궁금한 것은 씨씨의 꿈이다. 뮤지컬이 끝나도록 씨씨의 꿈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자유를 원한다고 그토록 애절하고 강렬한 노래를 부르지만, 그 노래에도 나 자신의 주인은 나라는 아주 기본적인 정보만이 들어 있을 뿐이다. 씨씨는 자신의 주인이 되어서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씨씨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헝가리의 여왕으로 즉위하는데, 그 역시 자신의 신념 때문이라기보다 시어머니인 조피와 남편이 싫어하는 일이라는 게 가장 큰 동기다. 

씨씨의 자유란 무엇일까? 무엇을 하고 싶은 자유일까?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유럽을 하릴없이 떠돌았던 씨씨는 무대 위에서도 명백히 그런 자신을 자유롭다고 여기지 못한다. 죽어서야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고 말한다. 씨씨에게는 결혼 전 아버지와 함께 살았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자유’도 ‘신념’도 그저 잡히지 않는 개념이었을 뿐이었다.

ⓒEMK Musical comapany

일관성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가?
NO

씨씨는 실제 인생을 돌이켜 보아도 일관성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고 알려져 있다. 오히려 뮤지컬이 씨씨의 변덕에 합당한 이유를 부여하기 위해 감싸주는 형국이다. 씨씨는 아이를 조피 대공비로부터 되찾기 위해 절망에 가득 차 울고 남편에게 매달리고 협박까지 하지만, 정작 그 아이를 되찾고 한 일은 모두가 말리는 추운 겨울에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는 일이었다. 그토록 힘들게 되찾은 아이지만 소피는 그 아이를 죽음의 손에 내준다. 다음 아이도, 루돌프에게도 마찬가지다. 

씨씨가 조피 대공비를 괴롭히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핑퐁의 공처럼 여기는 인물이었다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뮤지컬은 씨씨를 애절하게 자신의 아이를 그리워하는 사람으로 그려놓았기에 씨씨의 성격은 널을 뛴다. 

그렇다고 씨씨가 점점 냉정하고 강한 인물로 변모해가며 아이를 협상대상으로 놓고 치열한 권력싸움을 벌이는 것도 아니다. 권력을 원하지도 않는다. 남편이 성병에 걸리자 미련없이 떠돌이 생활을 시작해 버린다. 그 자신의 인생의 바로미터나 신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로 그려진다. 이 작품을 쓴 작가인 미하엘 쿤체가 씨씨라고 불리웠던 엘리자벳이라는 인물에 대해 정말 애정을 지니고 작품을 썼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사실 이런 일관성 없는 모습은 요제프도 마찬가지다. 요제프는 루돌프에게는 한없이 냉정하고 잔인한 황제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내인 씨씨에게는 늘상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정작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도 들어주지 않는다. 정말 씨씨를 사랑하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성격도 널을 뛴다. 어렸을 때는 몰랐던 권력의 맛을 나이가 들어서 알았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씨씨를  향한 일관된 애정 구걸은 변함이 없으니, 요제프의 캐릭터도 씨씨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인물이라는 설정을 유지하기 위해 일관성을 잃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EMK Musical comapany

결정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가?
NO

씨씨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던 자신의 말을 바로 다음 장면에서 깨버린다. 황제의 청혼을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16살 소녀가 황후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겠지만. 황후가 된 이후에도 씨씨의 모든 결정은 남편과 조피 대공비에게 달려 있다. 씨씨의 모든 행동은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반대하기 위한 것이다. 씨씨의 인생은 궁전을 떠나든 떠나지 않든, 나가서 무엇이 되든 견고하게 요제프에게 묶여 있다. 남편을 위해서든, 남편을 화나게 하기 위해서든, 그녀는 죽음이 아니라 남편에게 매인 인생을 산다. 무대 위에서 애원하는 것은 요제프지만 사실 발목이 잡힌 것은 씨씨였다.

발전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는가?
NO

씨씨가 "나는 나만의 것"을 부를 때 가슴이 벅찼다. 아, 이 인물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나갈 것인가,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씨씨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앞에서 했던 눈물바람과 악다구니, 그리고 협박을 거듭할 뿐이다. 어른이 된 씨씨는 자신의 신념을 ‘시어머니와 그 아들 괴롭히기’로 설정한 후 그에 따른 음모와 술수를 익힌다. 실존 인물 엘리자벳이 자신의 이름으로 자선을 하거나 명령을 내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리가 없지만, 뮤지컬 속의 씨씨는 여전히 부모가 올라가지 말라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자기 자신의 육체와 미래를 인질로 삼는 그 어린아이에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다.

종합 별점 ★☆☆☆☆

주인공 엘리자벳을 중심으로 뮤지컬 <엘리자벳>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파악해 본 별점은 1.5개에 불과하다. 물론 그렇다고 뮤지컬이 가진 고유한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씨씨가 부르는 그 많은 아름답고 파워풀한 노래들 가운데 씨씨의 욕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그녀가 살고 싶은 삶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씨씨는 그 욕망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황제거나 황후라도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의사대로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 작품 속의 씨씨는 너무나 주어진 인생 만을 살아간다. 아름다운 여자로 태어나 타인의 인생에 묶인 채 죽음을 기다리는 여인, 그것이 씨씨다. 문득 죽은 씨씨를 깨워 부르고 싶은 노래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다. 대본과 플롯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는 엘리자벳 역할을 맡은 출중한 배우들이 쓰러진 씨씨를 일으켜 자신만의 방식으로 씩씩하게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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