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 4. 러벳 부인

알다여성 주인공뮤지컬

브로드웨이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 4. 러벳 부인

이응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사랑하는 사람이여 살인을 합시다?

뮤지컬 <Sweeney Todd>

초연 Uris Theatre, (3/01/1979 - 6/29/1980)
대본 Hugh Wheeler
작곡/작사 Stephen Sondheim
원작 "Sweeney Todd" by Christopher Bond
연출 Harold Prince
무대 디자인 Eugene Lee


잔혹한 복수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주인공은 ‘스위니 토드’다. 그리고 그 스위니 토드에게 지독한 복수심을 심어주는 사람이 바로 러벳 부인이다. 스위니 토드가 벤자민 베이커라는 평범한 이름의 남자였을 때 그는 다정하고 순진하고 세상의 추악함을 알지 못했다. 너무 아름다웠던 그의 아내가 사회의 권력자인 터핀 판사의 욕망의 대상이 되어 잔인하게 유린당한 뒤 버림받는 동안, 그는 알지도 못하는 죄목으로 나라에서 추방되어 15년을 떠돈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집 아래층에서 늘 윗층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파이집 주인 러벳 부인이다. 

그녀는 스위니 토드가 벤자민 베이커였을 때부터 이미 그를 사랑했다. 쥐를 잡아 파이를 만들 지경으로 돈에 쪼들리면서도, 그가 남기고 간 번쩍이는 면도날 셋트를 저당 잡히지 않고 그대로 간직할 정도로 그를 사랑했다. 마침내 그가 스위니 토드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돌아왔을 때도, 러벳 부인의 눈에 비친 그는 그대로였다. 오히려 자신에게 더욱 더 딱 맞는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이제 더 이상 그와의 사랑을 가로막는 아름다운 아내도 딸도 없었다. 너무 순수해서 손 한 번 댈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은 이제 자신의 숨겨둔 욕망을 껍질을 뒤집듯 밖으로 드러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러벳 부인은 그를 향해 군침을 삼킨다. 이 욕망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만 보자면 러벳 부인은 그저 욕망의 노예, 그 자체인 전형적인 악역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뮤지컬 <스위니 토드> 속의 러벳부인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 이하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석탄 연기가 자욱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이 배경이다. 고기 파이집에서 쓰는 고기가 사실은 사람고기였다는 흉흉한 도시 전설에 기초한 이야기다. 2층에는 이발소가, 1층에는 파이 가게가 자리 잡고, 머리카락을 자르러 온 사람들의 목이 잘려 곧바로 이발소 의자에서 지하실로 이어지는 미끄럼틀을 통해 고기가 되었다. 

<스위니 토드> 초연 당시 포스터.

이 기가 막한 이야기로 1973년 연극 대본을 쓴 크리스토퍼 본드는 스위니 토드의 살인 행각에 복수라는 동기를 끼얹었다. 영문도 모르고 15년 간의 추방 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터핀 판사에게 강간 당한 아내는 독약을 먹었고, 아기였던 딸은 터핀 판사가 키워 곧 결혼을 할 참이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못지 않은 복수심에 활활 타오르지만, 그에게 있는 것은 파리아 신부가 남긴 보물 대신 번쩍이는 면도날 한 셋트뿐. 

그를 사랑해 온 러벳 부인은 자신의 파이 가게 위층에서 다시 이발소를 열게 해 주고, 스위니 토드는 옛 동료인 피렐리를 필두로 면도날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러벳 부인은 그가 도축한 고기를 '낭비하지 않고' 파이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다. 복수에 눈이 먼 스위니는 판사를 죽이는데 급급해, "나를 아냐"고 물으며 찾아 온 거지 여인의 목도 그어버린다. 스위니는 마침내 복수에 성공하지만, 자신이 죽인 거지 여인이 사실은 죽은 줄 알았던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러벳 부인의 거짓말을 알게 된 그는 러벳 부인을 아궁이에 밀어 넣고, 그 자신은 러벳 부인이 거둬 준 피렐리의 조수 토비아스의 손에 죽는다.

러벳 부인은 귀엽다

러벳 부인은 스위니 토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해 내려오든 항상 그의 파트너였다. 어떤 버전에서는 사업 파트너, 어떤 버전에서는 애인으로 바뀌지만, 어쨌든 러벳 부인은 그들의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당사자로 등장하여 시체의 살을 바르고 뼈를 갈라 고기파이를 만든다. 대부분의 스위니 토드 이야기에 등장하는 러벳 부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지만,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러벳 부인은 좀 다르다. 

특히 초연의 러벳 부인을 연기한 안젤라 랜즈배리의 러벳 부인은 정말 다르다. 놀라울 정도로 뻔뻔하면서, 동시에 사랑스럽고 귀여우며, 모성애에 지고지순한 순정마저 갖췄다. 태연하게 손님 앞에서 파이 반죽 밀던 밀대로 파리를 내리치는 인물이지만, 그 모습이 역겹기는 커녕 귀엽고 유머러스하게 느껴진다면 거기서 게임은 이미 끝이다. 

스위니 토드가 예전의 자신을 알아보고 돈을 뜯으러 협박하러 온 동료 이발사 피렐리를 죽여서 트렁크에 넣고 시체 처리를 고민할 때, 그에게 "왜 고기를 버리냐"며 입맛을 다시며 완전범죄의 힌트를 줄 때조차도 귀엽다. 사람이 멋져 보이면 몰라도 귀여워 보이면 헤어나올 수 없다고 했던가. 안젤라 랜즈배리의 러벳부인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러벳 부인은 결코 귀엽지 않다

하지만 러벳 부인의 대사들을 뜯어보면, 그는 결코 귀여울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악역은 성공적인 여주인공이 될 수 없다. "신부는 죄를 안 지어 고기가 깨끗하다"고 노래하는 이 사람이 귀엽고 상냥하고 모성애까지 갖추어야만 했던 것이 어쩌면 1979년의 브로드웨이가 가진 편견이었을 것이다. 죽은 피렐리의 시체에서 동전지갑을 태연히 챙겨 자신이 쓸 정도로 타인의 죽음에 무신경한 인물을 관객에게 설득하기 위해 캐스팅한 배우가 안젤라 랜즈배리였고, 그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다.

2005년에 리바이벌된 프로덕션은 달랐다. 영국 연출가 존 도일이 연출을 맡고, <에비타>로 스타가 되었던 페티 뤼폰이 러벳 부인을 연기했다. 배우들이 노래하고 악기까지 연주하는 액터/뮤지션 뮤지컬이었고, 여기서 러벳 부인이 손에 든 악기는 튜바였다(트라이앵글도 가끔 손에 들었다.) 사실 주연배우가 악기를 연주 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튜바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밑바닥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듯한 둔탁한 음이 그저 부우, 부우 하고 단조롭게 울려퍼지는 게 다였지만, 마치 채워지지 않는 그녀의 욕망이 아우성을 지르는 듯 했다. 

안젤라 랜즈배리의 러벳 부인 이후 그 역을 맡은 배우들은 안젤라 랜즈배리를 흉내 내든지 완전히 다른 해석을 선택하든지, 두 개의 길 밖에 없었다. 영국 배우 일레인 페이지가 안젤라 랜즈배리의 노선을 걸었다면, 미국 배우 페티 뤼폰은 완전히 다른 노선을 선택했다. 우선 모성애를 버렸고, 대신 강렬한 섹시함을 더해 욕망의 화신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7년 영화 버전에서 헬레나 본햄 카터가 선택한 것도 이 노선이다. 

러벳 부인은 피렐리가 학대하며 데리고 다녔던 토비아스를 거두지만 모성애나 애잔함 때문이 아니다. 아이의 입을 막고 파이 가게에서 부려먹기 위해서다. 학대를 당해 살짝 지능이 떨어지는 듯한 토비아스는 상냥한 말 한 마디 들어본 적 없는 아이였기에, 러벳 부인이 적선처럼 던져 주는 따뜻한 대사에 자신을 다 던져 넣는다. 러벳 부인의 욕망의 대상은 스위니 토드에서 부(富)로 확장된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그 두 가지가 한꺼번에 굴러 들어와 손에 잡힐 것만 같은 그 때, 러벳 부인은 스위니 토드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독을 먹었댔지 죽었다고는 안했다고, 아니 사실은 너를 사랑해서라고 외쳐도 죽음을 면할 수는 없었다. 

러벳 부인은 미쳤지만 미치지 않았다

<스위니 토드>에서 다른 모든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성격으로 1막부터 2막까지 초지일관 유지하는 동안, 러벳 부인은 혼자 무수히 많은 성격들을 오간다. 스위니 토드에게 비참하게 죽은 아내와 빼앗긴 딸의 이야기를 해주어 복수심을 부추기고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끔 이끄는 것도 러벳 부인이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인 중 제정신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러벳 부인은 물론, 스위니의 딸인 조안나 역시 터핀 판사의 성적인 학대로 인해 처음 본 남자에게 도망치자고 할 정도로 반쯤 정신이 나갔다. 스위니 토드의 아내인 루시는 설정 자체가 미친 거지 여인이다. 

하지만 굳이 여성 캐릭터로 한정하지 않아도, 사실상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 제정신인 인물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누구도 제정신으로 살기 어려웠던 시대를 그렸기 때문일까? 그 안에서 러벳 부인 혼자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접점을 만든다. 누구도 이입할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이웃집 아줌마 같은 일상적인 대사들로 머릿속을 헤집는다. 러벳 부인이 관객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종잡을 수 없는 귀여움을 벗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까지 걸린 세월이 삼십년. 미워할 수도 두려워 할 수도 없는 그녀는 관객들과 함께 걸어온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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