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Avenue Q>
뮤지컬 <에브뉴 Q>는 한국에서는 단 한 번의 투어공연을 끝으로 다시는 공연되지 않는 비운의 작품이지만, <겨울왕국>으로 전 지구를 얼음여왕 엘사와 안나로 들썩이게 만들었던 작곡가 로버트 로페즈의 신화가 시작된 작품이다.
이 작품이 토니상 작품상을 받은 데는 제작자인 제프리 셀러의 <유린타운>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캠페인도 주력했다. 뮤지컬 <유린타운>은 훌륭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치고는 작은 무대 규모 때문에 지방 흥행이 잘 안 될 것 같다는 선입견 때문에 작품상을 놓쳤다. 제프리 셀러는 <유린타운>에 투표하지 않았던 심사의원들의 죄책감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에브뉴 Q>는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물론 작품 자체가 지닌 유쾌함과 선을 넘지 않는 풍자, 명쾌한 멜로디가 아니었다면 토니상 작품상을 수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에브뉴 Q>가 한 때 신드롬에 가까운 힌기를 모았던 것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어린이 프로그램인 <새서미 스트릿>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가져왔기 때문이다. <세서미 스트릿>의 주인공들이 성인이 된 현실적인 미래의 내용이 갖은 풍자와 함께 담겨있다. 이 작품 속 세계에는 사람과 인형, 몬스터 인형들이 함께 산다. 다양한 인종과 성별에 더해 인형들도 등장하기에 이 작품은 인형극이기도 하다.
<새서미 스트릿>의 세계는 사는 어린이들과 어른들, 인형들은 인종, 장애, 성적취향까지 골고루 어울려 사는 아름다운 곳이다. 쿠키를 단 한 번도 부숴먹지 않으면서도 쿠키에 환장하는 쿠키몬스터가 가끔 출몰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에브뉴 Q>는 이들이 뉴욕의 끝에서 만나 헐렁한 가족 같은 관계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줄거리
프린스턴은 막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영어밖에 없는 미국의 흔한 젊은이다. 집과 일을 구하기 위해 헤매다가 알파벳 시티의 끝 에브뉴 큐까지 왔다. 실제 맨하탄 동쪽 툭 튀어나온 지역의 짧은 에브뉴에 알파벳 A, B, C를 붙여서 알파벳 시티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뮤지컬은 그 끝에 가상의 거리 에브뉴 Q를 만들었다.
프린스턴은 거기서 마침내 월세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저렴한 집을 구한다. 집주인은 1980년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트콤 <신나는 개구쟁이>의 주인공이었던 게리 콜만(물론 실존 인물 게리 콜만은 임대업을 한 적이 없다). 게리 콜만의 집에 사는 식구들을 보면 대학원을 두 군데나 나와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땄지만 아무도 상담을 하려 하지 않는 크리스마스 이브와 그의 남편,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지만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증권사 직원 닉과 그의 룸메이트인 자유로운 영혼 브라이언, 지붕 밑 방에 사는 포르노 사업자인 트리키 몬스터, 유치원의 보조 교사인 케이트 등이다.
모두가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유일하게 프린스턴만 미래에 뭐가 되고 싶은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의 꿈을 찾는 게 프린스턴의 꿈이다. 케이트 몬스터는 그런 프린스턴과 사랑에 빠지고 뜨거운 밤을 보내지만 그 때문에 유치원에 지각해 직장을 잃는다. 하지만 프린스턴은 섹시한 루시와 사랑에 빠지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프린스턴을 기다리던 케이트 몬스터는 바람을 맞는다.
이 와중에 크리스마스 이브 커플은 아이가 생겨서 이사를 가게 되고, 브라이언과 닉은 과감하게 커밍아웃한다. 케이트는 자신 만의 교육관을 관철할 유치원을 차리고 싶어하고 프린스턴은 케이트의 꿈을 응원한다. 그러자 지붕 밑 방에서 인터넷 포르노 사업을 하던 트리키 몬스터가 거액을 쾌척한다. 인생은 계속되고 프린스턴은 여전히 자신의 꿈이 뭔지는 알지 못하지만 타인의 꿈을 응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케이트 몬스터
브로드웨이의 여성 주인공들은 백인, 흑인, 아시안 등 다양한 인종이 있다. 하지만 그 어느 인종에도 속하지 않는 주인공이 딱 두 명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위키드>의 엘파바고, 나머지 한 명이 바로 아이보리 털투성이 몬스터인 케이트 몬스터다.
케이트 몬스터는 겉으로 보나 속으로 보나 단정한 모범생에 자신의 일을 똑바로 해내는 인물이지만, 자신의 유일한 단점이 섹시하지 않아서 남자를 사귀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자신처럼 인형인 프린스턴이 이사오자 한 눈에 반한다(물론 같은 건물에는 이미 인형인 브라이언과 닉이 있긴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이미 서로가 있다).
하지만 프린스턴은 케이트 몬스터의 기대와 달리 무례한 질문을 던진다. 같은 건물 지붕 밑 방에 사는 트리키 몬스터와 같은 몬스터니까 혹시 둘이 친척은 아니냐며. 이 질문은 다른 문화권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백인들이 아시안에게 던지는 전형적인 질문들 가운데 하나다. 이를테면 성이 김씨인 사람에게 너와 북한의 김정은은 무슨 관계냐고 묻는 것과 똑같은 행태다.
케이트는 프린스턴의 내면에 있는 인종차별주의를 그 자리에서 지적해준다. 프린스턴은 조금 무식하고, 유혹에 약하고, 우유부단한 인형이지만 케이트의 지적을 그 자리에서 수용한다. 더불어 케이트에게 그런 식으로 차별 받는 몬스터 아이들을 위한 몬스터 유치원을 설립하면 어떻겠냐는 적극적인 제안까지 내놓으며 훌륭한 선생님인 케이트를 칭찬한다.
두 사람의 이러한 대화에서 나오는 노래가 ‘Everyone's a Little Bit Racist’다. 누구든 조금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기가 막힌 노래로, 진짜 차별의 당사자들인 흑인과 동양인, 여성이 하나씩 가담하면서 그들 자신이 들어도 타 인종에 대한 농담 안에 뼈가 들어 있음을 지적하는 노래다.
성장하는 주인공
케이트는 이 작품 안에서 쑥쑥 성장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전형적인 미국 뮤지컬의 주인공인 ‘발전해 가는 주인공’의 지위에 케이트만큼 잘 들어맞는 등장인물은 없다. 뮤지컬 <에브뉴 Q>는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 등장인물들 모두가 고루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그 누구도 타인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거나 생각을 바꿀 만큼 깊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저 사이좋은 이웃일 뿐이다. 어쩌면 뉴요커들의 모래알 같은 우정과 공동체를 이보다 더 잘 보여준 작품도 없을 것이다.
그런 헐렁한 공동체 안에서 타인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고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는 유일한 사람, 아니 인형이 바로 케이트다. 케이트는 처음에는 프린스턴에게 흔들리고 상처입지만, 자신이 원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연애’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고 이내 자신의 목표로 되돌아간다. 연애는 케이트라는 인물을 설명하기 위한 조건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케이트는 자신의 남자친구를 뺏어간 인물인 루시와 대립하기보다 자신의 감정과 주어진 현실을 먼저 살펴본다. 목표를 설정한 케이트는 우직하게 돌진해 나간다. 그런 케이트이기에 같은 집에 살면서도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던 포르노 사업자 트리키 몬스터의 마음을 움직인다.
케이트는 복슬복슬한 작은 인형이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심지어 프린스턴의 실낱 같은 꿈의 실마리마저 찾아준다. 목표를 향해 성장해 가는 복슬복슬한 인형을 어떻게 하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자신의 운명을,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우뚝 서서 만들어 가는 이 단발머리의 몬스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