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이다>
뮤지컬 <아이다>는 무대 디자이너이자 의상 디자이너, 연출가인 밥 크로울리가 디즈니의 <타잔>, <알라딘>, <메리 포핀즈> 등을 연속으로 작업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다. 밥 크로울리는 뮤지컬이 처음이었던 연출가 로버트 폴스의 믿는 구석이었는데, 자기 역할을 넘치도록 해냈다. 뮤지컬 <아이다>는 스텝 대부분이 하차하는 등, 브로드웨이에 올라오기까지 온갖 산을 넘어서 토니상을 받으며 안착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디즈니의 영화가 아니라 오래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베르디의 인기 오페라 <아이다>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데 있다. 물론 그 바탕은 어린 관객을 위해 소프라노 가수 리온틴 프라이스가 베르디의 오페라를 개작한 버전이다. <라이언킹>의 성공으로 고무된 디즈니는 엘튼 존에게 다음 작품을 선택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딱히 땡기는 게 없던 엘튼 존은 딱 잘라 거절했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디즈니는 에니메이션 대본용으로 사둔 어린이용 리온틴 프라이스의 버전을 내밀었는데, 엘튼 존과 팀 라이스가 홀린 듯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대본은 거듭 거듭 수정을 계속했지만, 팀 라이스와 엘튼 존은 신들린 듯이 레게부터 아프리칸 음악, 엘튼 존 특유의 팝 스타일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곡을 써냈다. 이 작품은 덕분에 오리지널 영화 없이 만들어졌고 그 결과 시작과는 조금 다르게 어린이보다는 좀 더 높은 나이대의 관객을 노리는 작품이 되었다. 디즈니의 전작들이 ‘어른들도 재미있게 보는’ 뮤지컬이라면 <아이다>는 청소년도 보고 싶어 하는 성인 타겟의 뮤지컬로 자리잡았다. 물론 디즈니 작품이기 때문에 자녀와 함께 극장을 찾는 가족 관객들이 다른 작품보다 많다. 특히나 엘튼 존의 음악은 부모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오게 만드는 보증수표와도 같다.
이 뮤지컬의 대본 컨설턴트로 투입된 데이빗 핸리 황은 중국인 이민 3세로 연극 <M. 버터플라이> 로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토니상 대본상을 받은 인물이고 아직도 ‘동양인’으로 대본상을 받은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인으로 살아왔지만 확연한 그의 아시아인 외모와 성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현재 그는 오프브로드웨이 극장인 퍼블릭 극장에서 뮤지컬 <펀 홈>의 작곡가로 잘 알려진 지닌 테소리와 함께 작업한 뮤지컬 <Soft Power>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폐쇄적인 이민정책을 비판하는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원작 영화가 없는 덕분에 디즈니의 전형성을 슬쩍 비껴간다. 디즈니의 고질병인 공주 스토리에는 변함이 없고, 무려 두 명의 공주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우선 두 공주는 첫사랑에 빠지는 십대가 아니고, 한 남자의 사랑을 두고 본의 아니게 경쟁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악역이 되기보다는 친구가 되며, 안타깝게도 둘 다 원하던 인생을 손에 넣지 못하지만 자신이 가야 하는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다>는 비극이다.
줄거리
아이다는 누비아의 공주지만 호기심에 아버지가 금지한 외출을 나왔다가 이집트군에게 포로로 잡힌다. 젊은 장군 라다메스 앞에서 그의 병사의 목에 칼을 대고 자신을 풀어달라고 협박하다가 다른 누비아인들을 다 죽이겠다는 말에 탈출을 포기한다. 라다메스는 그런 아이다에게 관심을 가지고 특별히 아이다를 약혼자인 이집트의 공주 암네리스의 노예로 선물한다.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와의 결혼을 기다리며 그의 사랑을 바라는 인물로 새 노예인 아이다의 당돌할 정도의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친구처럼 대한다.
라다메스의 아버지는 아들을 공주와 결혼시켜 왕실을 집어삼길 음모를 꾸미는 야심가. 하지만 라다메스는 아이다와 사랑에 빠진다. 아이다는 이집트에 노예로 잡혀온 누비아인들의 희망이 되는데, 라다메스에 대한 사랑과 나라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다. 라다메스의 태도가 어쩐지 멀어진 걸 눈치챈 암네리스는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연인사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아이다는 아버지와 재회하고, 그걸 목격한 라다메스는 아이다를 살리기 위해 아군에게 칼을 빼든다. 반역자가 된 라다메스를 두고 갈 수가 없었던 아이다는 아버지를 보내고 라다메스와 함께 남고,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의 아버지의 음모를 파헤치고 파면한 뒤 자신이 왕위를 이을 것을 천명한다. 암네리스는 왕으로서 첫 명령으로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죽음을, 그러나 한 무덤에 생매장 할 것을 명한다. 점점 어두워지는 무덤 속에서 아이다와 라다메스는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몇 천 년이 지난 후 박물관에서 그들은 암네리스의 의상 앞에서 재회한다.
우선 이 작품은 아이다와 암네리스가 나누는 대화로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다. 라다메스의 궁전에서 파라오의 외동딸로 살아오며 응석받이지만 공주로서의 압박도 받아온 암네리스는 아이다를 만나 처음으로 자신을 내면부터 이해해 주는 사람을 대면한다.
고전적인 의미로 보자면 뮤지컬 <아이다>는 암네리스와 아이다가 라다메스라는 인물을 두고 벌이는 사랑싸움처럼 볼 수도 있겠지만, 뒤집어 보자면 이 작품은 아이다를 사이에 둔 암네리스와 라다메스의 쟁탈전으로도 볼 수 있다. 암네리스와 라다메스 모두 아이다를 만나자마자 호감을 표시하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감정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아이다를 처음 보았던 2000년으로부터 19년이 흐른 후, 아이다에 대한 생각도 조금 변했다. 우선 아이다를 더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금지된 외출을 하다 노예로 잡혀와서 금지된 사랑에 빠지고 나라도 배신한 이 캐릭터를 지금은 ‘그럴 만도 하지’라는 눈으로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운명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가?
Yes
아이다의 운명을 무엇이라고 말하랴. 오페라에서도 뮤지컬에서도 아이다의 운명은 그 자체가 플롯이다. 하지만 시작될 때 이미 연인 사이로 설정되어 있는 오페라의 라다메스와는 달리, 뮤지컬은 아이다가 포로로 잡혀 와서 라다메스와 처음 대면하면서 시작된다. 아이다는 누비아의 공주지만 이집트의 장군 라다메스와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의 나라와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처지가 된다. 이집트도 누비아도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상상해 보아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왕실의 핏줄을 타고난 아이다는 왕국보다 사랑을 택하고 싶은 마음에 갈등하지만, 왕족도 아닌 누비아인들은 공주인 아이다보다 애국심이 출중하다. 충실한 자국민인 메렙은 공주인 아이다와 왕인 아모나로스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 아이다는 결국 배를 타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아버지를 따라 나서지 못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집트 군에게 칼을 빼어든 라다메스의 곁에 남아 그와 함께 피라미드에 산채로 매장되는 결말을 맞는다.
아이다는 공주로 태어났지만 강력한 이웃 나라인 이집트와의 전쟁에 대비해 아버지로부터 궁전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잔소리와 더불어 칼 쓰는 법 등의 기본적인 무술도 전수받았다. 아이다는 그저 얌전히 치마만 입고 앉아서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는 아니었다. 이집트 병사 한 명 정도는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도록 교육받았고 강대국인 이집트와의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아이다는 궁전 안에 갇혀 살기보다 자신의 눈으로 바깥 세상을 보기를 원한다. 마치 뮤지컬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처럼. 궁전을 답답하게 여기며 ‘자유’를 꿈꾸는 것은 디즈니 공주들의 전형적인 특징이지만 궁전 밖으로 나선 아이다에게 주어진 운명은 다른 공주들과 비교과 되지 않을 정도로 가혹하다.
그런데 아이다는 노예로 전락하여 이집트 공주인 암네리스가 받는 자신과는 또 다른 종류의 압박을 보며 미움보다 동질감을 느끼고 결국 친구가 된다. 아이다가 누비아에서 어떤 친구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다와 암네리스는 처음으로 자신과 동등한 지위, 동등한 처지에 놓인 자로서 서로를 알아보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군사 지도자로서 강하게 키워진 아이다는 이집트의 장군을 사랑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지만 그 일은 벌어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대치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는 아버지와 누비아인들이 자신에게서 기대하는 역할과 라다메스의 사랑 두 가지를 다 얻고 싶다. 방법은 라다메스가 반역자가 되면 간단한 일이지만, 아이다는 그것이 라다메스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도 확실히 안다.
결국 아이다는 타인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을 채우지 못하되, 자신의 사랑을 향한 확신을 택한다. 아니, 자신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아군인 이집트 군에게 칼을 빼든 라다메스를 배신하지 않기를 선택한다. 한 편으로는 왕인 아버지를 탈출시켜 누비아를 배신하지 않는 길 역시 선택한다. 하지만 그 자신의 선택의 끝이 죽음이라는 사실은 아이다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목표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이 있는가?
Yes
뮤지컬의 시작 부분에서는 아이다에게 목표나 신념이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 이집트 병사의 목에 칼을 댔다가 누비아인들을 죽인다는 협박 앞에서 칼을 떨어트리면서 이미 아이다의 정체성은 명확해진다. 누비아의 공주로 살아가는 일에 압박을 느끼며 다른 평범한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자유를 갈망했던 아이다지만, 어느새 아이다의 목표는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는 누비아인들을 이끌고 그들을 위로하는 인물이 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이다라는 존재 자체가 누비아인들을 하나로 만들고 그들의 노예 혁명을 이끌어내는 구심점이 된다.
"The Gods Love Nubia"에서 아이다는 곡의 도입부에서는 주어진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망설이고 피하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그 역할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목표를 자신의 목표로 삼는다. 단순하고 추상적이었던 ‘자유’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집트에 노예로 잡혀와 분명한 형태를 띄고 완성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아이다는 그 책임의 무게에 괴로워한다. 어릴 때부터 그에게 지워진 짐과도 같은 의무, 그 의무를 한 순간이나마 벗어나 보겠다고 나왔던 단 한 번의 일탈로 아이다는 권리는 없고 주어진 일만 해야 하는 노예로 전락하지만 그곳에서조차도 누비아 공주로서의 의무는 변하지 않는다. 아이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이다의 목표는 애당초 자신이 원하는대로 사는 것이다. 아이다는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죽음을 통해 이룬다. 비극이지만 비극이 아니기도 한 이유는 단지 아이다가 환생해서 현대에서 다시 삶을 꾸렸기 때문이 아니라, 짧은 순간에도 자신의 선택에 자신의 목숨으로 책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일관성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가?
Yes
아이다는 강하고, 커브가 아니라 직구를 던지는 성격이며, 필요할 때는 몸싸움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아이다를 몽글몽글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누비아 뿐이었지만, 예기치 않게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지위나 상황과 상관없이 전력으로 다가오는 라다메스와 교통사고 같은 사랑에 치인다. 이 사랑이 <아이다>의 플롯이니 아이다는 여기서 도망갈 도리가 없지만, 아이다는 라다메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고,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이용해 라다메스를 누비아인을 구하는 수단으로 쓰지도 않는다.
아이다는 우직하고 권모술수를 모르는 인물이다. 때문에 아이다는 결국 자신을 구하려는 라다메스를 배신하지 못하고 곁에 남는다. 앞에서 잘 쌓인 아이다의 성격이 아이다의 마지막 선택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결정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가?
Yes
아이다에게 라다메스와의 사랑은 결코 분홍빛이 아니다. 누비아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누비안들의 독립과 탈출을 위한 중심 인물이 되었을 때, 아이다는 라다메스와의 사랑에 불안해 하고 고통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다는 그 사랑을 자신의 내면에서 인정했을 때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인물이다.
아이다가 내리는 가장 큰 결정이자 아이다를 죽음으로 이끄는 마지막 결정, 라다메스의 곁에 남는 것, 아버지의 배에 함께 타고 도망가지 않는 것은 물론 라다메스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무사로서 교육 받아온 아이다의 우직한 결정이기도 하다. 누비아를 배신하지 않는 아이다는 사랑 앞에서도 배신하지 않는다.
물론 아이다는 그 외에도 여러 결정들을 연애와 상관없이 내린다. 배 위에서 이집트 병사의 목에 칼을 들이댈 때, 암네리스와 대화를 나눌 때, 아버지를 탈출 시킬 때, 아이다의 결정은 연애와 상관이 없다.
발전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는가?
Yes
처음 <아이다>를 보았을 때, 아이다의 비극은 자업자득이라고 여겼다. 아버지가 금지한 성 밖 산책을 나와 포로로 잡히고, 그것도 모자라 적국의 장군과 사랑에 빠져서는, 자신을 위해 누비아 사람들이 목숨을 거는 걸 보면서도 그들의 지도자로서 살아가는 일에 대해 망설이는 장면이 마치 '여성은 이렇게 큰 결정 앞에서 약한 존재야'하고 말하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칼을 빼들고 싸울 줄 아는 여성이 왜 그 능력을 쓰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본 아이다는 아직 어리고, 내면의 열정에 흔들리며, 그 흔들리는 마음 때문에 스스로도 다치면서도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거부하지 않는, 꽤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이었다. 늘 여성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고, 실수도 하고 배신도 하고 후회도 하고 잘못도 하는 살아있는 인물을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실수하고 사랑에 빠지고 나라를 배신하고 감정에 충실한 인물을 보는 것에는 왜 인색했을까.
아이다는 여성으로서 위대한 운명을 이끈다. 뮤지컬 제목부터가 <아이다>고 아이다는 그에 걸맞는 인물이다. 오페라에서 아이다는 도망갔다가 라다메스가 생매장할 무덤에 몰래 먼저 들어와 있지만, 뮤지컬의 아이다는 도망가지 않는다. 라다메스와 아이다의 사랑에 비하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가벼워 보일 지경이다. 이들의 죽음은 심지어 두 나라의 화해를 끌어내지조차 못한다. 이들은 그야말로 전쟁의 수레바퀴 아래서 사랑을 하고 그 수레바퀴에 말려들어가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나라를 배신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배신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이다는 라다메스보다 훨씬 복잡한 상황에 놓인다. 심지어 노예가 된 뒤 자신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던 기대치가 사라진 현실에서 아주 잠시나마 자유로움을 느낄 정도다. 벗어날 수 없는 의무와 그 의무를 마지막까지 다 하고, 자신의 사랑에 대한 의리까지 지킨 아이다는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다.
아이다의 맞은 편에는 암네리스가 있다. 암네리스와 아이다의 공통점은 권력을 원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암네리스는 결국 스스로의 선택으로 권력을 손에 쥔다. 아이다가 군사 지도자로 키워진 반면 암네리스는 얌전히 앉아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며 파라오의 후계자에게 건네질 트로피로 자라났다. 아름다워야 하고 사랑받는 것이 목표였던 암네리스 역시 변한다.
암네리스는 다음 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암네리스에게 주어진 현실은 아이다보다 훨씬 안정적이지만 감정의 폭과 변화의 폭은 아이다보다 크다. 권력을 잡는 여성과, 위대한 운명을 이끄는 두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반목하기보다 우정을 나누고 배신하기보다 마지막까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모습을 볼 기회는 흔하지 않다. 그 사이에 남자가 끼어 있다면 더욱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