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 33. 신데렐라

알다여성 주인공뮤지컬

브로드웨이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 33. 신데렐라

이응


뮤지컬 <Into the Woods>

초연 1987년, Martin Beck Theatre
작곡, 작사 Stephen Sondheim
대본 James Lapine
연출 James Lapine
무대디자인 Tony Straiges
조명디자인 Richard Nelson
의상디자인 Ann Hould-Ward(오리지널 컨셉: Patricia Zipprodt)
음향디자인 Alan Stieb, James Brousseau
수상 1988 토니상, 뮤지컬 대본상, 스코어상, 여우주연상(Joanna Gleason - 빵장수의 아내 역)

 그림 동화의 뒷이야기는 잔혹하다. 신데렐라의 언니들은 자신들의 친엄마에게 뒤꿈치와 발가락이 잘려 절름발이가 되고 계모는 새들에게 눈알이 뽑혀 장님이 된다. 씹어 삼키는 법을 잊어 배가 고팠던 늑대는 뱃속에 들었던 빨간 망토 과 할머니에게 토막이 나서 우물에 던져진다. 악당의 앞날만 어두컴컴한 게 아니다. 아무리 시련을 이겨야 영웅이 되고 주인공이 된다지만 주인공들에게 주어지는 시련도 소름 돋는다. 애비 없는 쌍둥이를 낳은 라푼젤은 쥐에게 먹힌 듯 뜯긴 머리로 아이들을 키우다, 가시덤불에 찔려 장님이 되어 거지꼴로 헤매던 왕자와 재회한다. 아무리 그 이후로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 한들 트라우마가 가실 것 같지가 않다. 어쨌거나 마지막은 영원한 행복이다. 

뮤지컬 <Into the Woods>는 바로 그 영원한 행복을 찾아 숲길을 헤맸던 인물들의 이야기다. 사실 그 옛날에는 어디를 가든 숲길을 통과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이 뮤지컬은 그림 동화의 주인공에게 약속된 '영원한 행복'이라는 단어의 다음 장을 펼쳐 보이는 이야기다. 

작곡가이자 작사가인 스티븐 손드하임은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지만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신과 동급이라는 농담이 돌 정도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는 뮤지컬의 황금기의 끄트머리에 작사가로 뮤지컬에 발을 디딘 후 브로드웨이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등장부터 ‘네가 그렇게 천재적이라며?’라는 말을 들으며 브로드웨이에 진입했고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의 호칭 앞에는 늘 ‘천재’가 붙는다. 

그가 천재 소리를 듣는 건 흥행 때문은 아니다. 사실 그의 작품들은 흥행에는 그렇게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라이벌로 꼽히는 영국 출신의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웨버는 롱런 뮤지컬 안에 자기 작품을 두 개나 올려놨지만,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품은 100위 안에서도 찾기 힘들다. 그는 뮤지컬을 제자리에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천재라고 불린다. 많은 작곡가들이 그의 후예를 자처한다. 한국에서도 공연되었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로버트 제이슨-브라운, <The Light in the Piaza>의 아담 귀틀 등이 대표적이다. 

그의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완벽하기 보다는 흠이 많은 인물들이다. 여성 등장인물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경우도 그닥 많지 않다. 하지만 <Into the Woods>는 다르다. 여성 인물들이 끌어간다. 그들은 신분과 상관없이 동화 속의 행복이 아닌 진짜 자신의 행복을 찾는 인물들로 변해간다.

줄거리

뮤지컬 <Into the Woods> 는 많고 많은 그림 동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네 가지를 선택해 하나의 숲 속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헤매게 만들었다. 잭과 콩나무, 라푼젤, 신데렐라, 빨간 망토다. 이 네 가지 이야기의 주인공 외에 동화 속에 지나가는 인물처럼 등장하는 빵장수가 있다. 빨간 망토가 할머니 집에 가기 전에 빵을 사는 바로 그 빵집이다. 빵집 옆에는 마녀가 사는데, 그 마녀는 아무도 몰래 숲 속에 마법의 성을 짓고 라푼젤이라 이름 붙인 딸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 딸은 빵장수의 여동생이다. 빵장수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입덧을 하자 마녀의 밭을 서리하러 갔는데, 동화와 달리 양배추든 뭐든 다 퍼 가도 괜찮았지만 욕심을 부리다 결국에는 마녀의 엄마가 저주를 건 강낭콩까지 훔쳐가고 만다. 그 콩을 빼앗기면 마녀는 추한 늙은이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 댓가로 마녀는 빵장수의 집안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저주를 걸었다. 

빵장수 부부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다. 마녀는 빵장수에게 네 가지를 사흘 뒤의 푸른 만월이 뜨는 밤까지 준비하라고 이른다. 눈처럼 흰 소, 옥수수 같은 머리카락, 금 슬리퍼, 피처럼 붉은 망토. 흰 소는 잭에게서, 옥수수 같은 머리카락은 라푼젤, 붉은 망토는 당연히 빨간 망토에게서, 금 슬리퍼는 신데렐라에게서 받는다. 이 과정에서 빵장수는 아내에게 이 일은 자신의 집안에 내려진 저주니 혼자 풀겠다며 안전하게 집에서 기다리라고 말한다. 아내는 그럴 수 없다며 옥신각신 하다 결국 함께 저주를 풀기 위해 나서게 된다. 신데렐라는 왕자와 결혼하고, 라푼젤도 왕자를 찾고, 빨간 망토는 늑대 두건을 얻고, 잭은 부자가 된다. 마녀는 아름다운 외모를 되찾는다.

여기까지는 그림 형제의 동화를 잘 섞은 것 같다. 그렇지만 진짜 문제는 2막에 시작된다. 잭을 거인 남편에게서 숨겨줬던 거인 부인이 은혜를 저버린 잭을 찾아서 구름 나라에서 내려와 잭을 내놓으라고 소동을 피우고, 온 나라가 위기에 처한다. 라푼젤의 왕자와 신데렐라의 왕자는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며 말을 타고 달려가 보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위기에 몰리자 마녀와 모든 인간들은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기 시작한다. 비난의 화살을 돌고 돌 뿐, 귀족들은 이미 멀리 도망가고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할 사람들은 결국 다시 그림 동화 속의 그들이다. 

그들은 힘을 합쳐 거인 부인을 쓰러트린다. 그 와중에 잠시 신데렐라의 왕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빵장수의 아내가 거인 때문에 세상을 떠난다. 신데렐라는 왕자의 바람기와 허언증에 질려 이별을 고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영원한 행복은 없다. 빵장수의 아내와 잭의 엄마 등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지만, 인생은 계속되고 아이들은 자란다.

신데렐라

이 뮤지컬 속의 신데렐라는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신데렐라는 가질 수 없을 거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꿈꾼다. 아버지가 재혼하는 바람에 새엄마와 새언니들이 자기 대신 차지한 모든 것들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왕궁의 파티를 꿈꾼다. 신데렐라의 꿈은 동화처럼 허망한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가 동화 속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신데렐라는 불가능한 미션을 새엄마가 던지고 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노래를 부르자 새들이 날아와 신데렐라의 일을 해준다. 이러니 신데렐라는 왕궁의 파티에 갈 수 있을 거라는 굳은 믿음을 지닐 밖에. 

신데렐라는 파티의 마지막 날 밤, 매일 자정이면 도망치던 자신을 잡기 위해 왕자가 왕궁 계단에 뿌려놓은 끈끈이에 신발이 벗겨지던 순간, 번개처럼 머리를 굴린다. 이 즐거움을 남몰래 간직할 것인가, 현실화 할 것인가. 신데렐라는 신발 한 짝을 남기고 남은 한 짝을 들고 달리다가 숲 속에서 빵장수의 아내를 만난다. 왕궁의 파티에서 온 신데렐라에게 빵장수의 아내는 왕자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 사흘 내내 왕자하고만 춤을 췄던 신데렐라건만, 왕자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어 말을 더듬을 지경이다. 

뮤지컬 속의 신데렐라보다 영화 버전 속의 신데렐라는 훨씬 더 구체적으로 이 관계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아직은 이 문제에 구체적을 매달릴 수가 없다. 신데렐라의 삶이 너무 고달프기 때문이다. 귀족이 아니기 때문에 왕궁의 일이라면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빵장수의 아내지만 신데렐라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랑한다면서 그 대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 여자는 대체 뭘까?

행동하는 자가 주인공이 된다

2막이 되어 고난이 닥치자 신데렐라는 즉시 행동하는 인물로 나서는데, 사실 이것은 변화한 모습이라기보단 1막의 신데렐라 그대로다. 신데렐라는 새엄마에게 구박 받으며 벽난로 앞에서 잘 때조차도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방구석에 처박혀 눈물 흘리는 인물이 아니다. 때문에 신데렐라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된다. 

특히 신데렐라는 각색된 영화 버전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성장을 이루는 인물이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이 철저하게 성인관객을 위한 작품인데 비해, 영화는 어린 관객들까지 노렸다가 이도저도 못 잡았다. 그러나 신데렐라의 성장을 착실하게 잡았다는 점은 높이 사줄 만하다. 신데렐라는 귀족들이 다 도망간 숲에서 빨간 망토와 잭을 비롯한 시민들과 함께 대책을 세우고 피난길을 마련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는 리더로 성장한다.

그의 남편인 왕자는 그런 신데렐라의 진짜 모습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신데렐라는 이 짧고 굵은 고난 속에서 그 자신도 짧고 굵게 성장한다. 신데렐라는 전혀 몰랐던 것에 환상을 품고 선망하던 인물이지만 곧 환상의 실체를 깨닫는다. 신데렐라는 거짓된 삶과 사랑에 작별을 고한다. 

누가 누가 제일 나쁜가?

이 와중에 어리석고 우유부단했던 빵장수 '베이커'도 성장을 겪는다. 아내의 죽음을 통해서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처럼 아내의 죽음을 통해 각성을 하는 뻔한 서사가 아니다. 아내가 죽음 직전까지 그에게 준 ‘교훈’들이 그를 성장하게 한다. 자신이 남편이기 때문에 가게를 운영하고 가족을 먹여 살린다고 착각했던 나날들에 대해 그는 처절한 반성을 하지만 이미 아내는 없다. 대신 그에게는 엄마를 잃은 잭, 할머니와 부모를 잃은 빨간 망토, 남편과 헤어진 신데렐라와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

그들은 피가 아니라 고통을 공유한 기억을 통해 가족이 된다. 베이커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결말은 많은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설정이다. 불륜을 저지른 아내는 그 전에 아무리 영민하고 똑똑했어도 벌을 받아야 한단 의미일까? 앞서 수많은 말실수와 무시와 독단을 저지르며 고구마를 선사했던 그의 남편이 깨달음과 동료들을 얻는 동안에? 처음 등장부터 카리스마로 가득했던 마녀의 어이없는 소멸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Into the Woods> 1막에서 그토록 반짝이며 등장했던 여성 인물들은 2막에서 하나씩 제거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모든 등장인물들의 살 길을 찾아주는 것은 신데렐라다. 신데델라 이야기를 각색한 수많은 버전의 작품들은 어쨌거나 마지막엔 왕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는 구조 속에서 항상 길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작품 속의 신데렐라는 바로 그 곳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데렐라 컴플렉스를 깨기 위해서가 아니다. 신데렐라 그 자신이 온전히 살기 위해서다. 단지 왕자를 떠나기 위해 내린 결정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과정을 거친 뒤에 내린 결론이 왕자를 떠나는 것이다.

많은 의문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귀 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다. 그리고 아직도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품들은 대부분 시대와 함께 새롭게 해석될 준비가 되어 있다. 특히 <Into the Woods>는 동화를 매개로 하기에 더욱 그렇다. 아이들은 듣는다. 어른들이 듣지 않기를 원하는 것도, 어른들이 꼭 들어주었으면 하는 것도.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미로 속을 헤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길을 잘 찾아낸 <Into the Woods> 속의 신데렐라는 10점 만점에 9점을 서슴없이 줄 수 있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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