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 10. 앨리슨 벡델

알다여성 주인공뮤지컬

브로드웨이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 10. 앨리슨 벡델

이응

일러스트레이터 솜솜


뮤지컬 <Fun Home> 

초연 Circle in the Square Theatre, (2015 - 2016)
대본 Lisa Kron
작곡 Jeanine Tesori
작사 Lisa Kron
원작 <Fun Home> graphic novel by Alison Bechdel
수상 Tony 상 작품상, 대본상, 스코어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 이하 뮤지컬 <펀 홈>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즐거운 집의 슬픈 비밀 

뮤지컬 Fun Home이 브로드웨이에 올라오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작가인 리사 크론과 작곡가 지닌 테소리의 협업은 7년 가까이 지속됐고 연출가 샘 골드까지 가세한 수정 작업은 지난했다. 마지막 계단에서 이들은 마침내 무대 셋트에 남아있던 원작 그래픽 노블의 흔적을 마지막으로 지우며 <펀 홈>을 성공적으로 무대화했다. 도대체 이들이 그토록 매달리고 매달렸던 그래픽 노블 <펀 홈>이 뭐길래.

뮤지컬 <펀 홈>의 원작은 앨리슨 벡델이 2006년에 내놓은 그래픽 노블 <펀 홈 : 가족 희비극>이 원작이다. 이 그래픽 노블은 2008년에 <즐거운 집 : 기묘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출판됐다가 2017년 10월에 출판사 움직씨에서 새로이 번역되어 출판됐다. 움직씨의 새로운 버전 출판에는 아무래도 뮤지컬의 토니상 작품상 수상이 꽤 큰 자극제가 되었을 듯 하다. 

그래픽 노블은 앨리슨 벡델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돌아보는 자서전적인 내용이다. 앨리슨의 아버지인 부르스 벡델은 여러 면에서 자신과 정 반대편에 선 삶을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앨리슨의 소원이 굿나잇 키스를 해주는 부모와 가족을 가지는 것이었을 정도로, 부모는 애정표현이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앨리슨의 기억에 흔치 않은 아버지와의 스킨쉽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이 책을 쓴 가장 강력한 이유는 아버지 부르스의 죽음에 대한 앨리슨의 의문 때문이다. 아버지는 44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앨리슨의 내면은 아버지의 죽음을 자살로 받아들인다. 아버지의 죽음 두 달 전, 앨리슨은 부모에게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을 한다. 그에 대한 부모의 반응이 궁금해 몸이 달았던 앨리슨은 결국 자신이 먼저 집에 전화를 걸었다가 어머니로부터 "네 아버지 바람났다. 남자랑."이라는 말을 듣고 인생에는 또 다른 국면이 있음을 깨닫는다.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기대했던 커밍아웃은 오히려 부모와 더욱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아버지와 정체성에 대해서 처음으로 대화한 날을 앨리슨은 몇 번이고 되짚어본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레이스와 여성적인 복장이 좋았다. 앨리슨은 소리를 높인다. "아빠, 나도, 나도 꼭 그랬어!" 아버지는 여성적인 복장이 좋았고 앨리슨은 청바지와 티셔츠가 좋았다. 

앨리슨은 아버지의 죽음을 소재로 아버지가 경멸했던 만화를 그리기 위해 아버지의 유품들을 하나 하나 정리하고 아버지의 기록들, 아버지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기억을 수집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의 죽음이 매우 'queer'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와 어릴 때 종종 했던 ’이카루스‘ 게임을 떠올린다. 자신이 균형을 잃고 떨어지면 끝나는 게임이었다. 막상 추락한 건 앨리슨이 아니라 아버지였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 게임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버지가 가장 선망했던 작가 스콧 피츠제랄드가 세상을 떠났을 때가 44살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고작 2주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탈출을 딛고 앨리슨은 비상했다. 아버지답다고 앨리슨은 생각한다.

처음으로 '부치'를 본 순간

지극히 담담한 그래픽 노블과 다르게 뮤지컬을 보는 관객은 담담하게만 볼 수는 없다.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가 무엇인지 물으면, 대부분 아버지 부르스가 다가오는 트럭 불빛 앞에서 부르는 "Edges of the World"라는 노래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또 다른 두 개의 장면을 클라이막스로 꼽고 싶다. 첫 번째, 부르스가 죽음 앞에서 "신이여 내가 뭘 잘못했나요?" 하고 부르짖는 장면은 그래픽 노블에는 존재하지 않는 뮤지컬만의 장면이자 부르스의 클라이막스다. 관객들은 손수건을 찾는다. 

그리고 앨리슨의 클라이막스가 있다. 앨리슨이 아버지와 들른 식당에서 인생 처음으로 ‘부치’를 본 날이다. 아버지로부터 방금 전 머리에 핀을 꽂으라는 핀잔을 듣고 입이 댓발로 나왔던 앨리슨은 바로 자신이 원하는 그대로 입은 여성을 처음으로 본다. 택배를 배달원인 그녀는 짧은 머리에 허리에는 열쇠 꾸러미를 출렁이며 당당하게 걸어 들어와 앨리슨의 기억과 앨리슨의 유년을 점령한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아니 핸섬했다! "Ring of Keys"를 부를 때, 자신이 무엇인지 말로 설명할 수 없어도 그 순간 앨리슨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진 : "Ring of Keys"를 부르는 앨리슨. 앨리슨이 바라보는 상대는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는다.

앨리슨보다 더 빨리 앨리슨의 정체성을 알아챈 부르스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너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니?"하고 묻고, 앨리슨은 그 말투의 부정성을 똑똑히 깨닫고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잘 안다. 

뮤지컬 <펀 홈>에는 동떨어진 시간대의 앨리슨 세 사람이 한 무대에 등장한다. 42살의 앨리슨은 나레이터고, 그 안에는 9살의 앨리슨과 19살의 대학 신입생 앨리슨이 있다. 뮤지컬 <펀 홈> 안의 앨리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만화가이자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 운동가인 앨리슨 벡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 앨리슨 벡델의 자전적 그래픽 노블을 뮤지컬로 만든 것이니 당연한 얘기다. 

원작과는 또 다른 앨리슨, 냉소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여자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 우선 뮤지컬 안의 앨리슨은 세상에 이보다 더 사랑스러울 수가 없는 사람이다. 앨리슨이 첫 사랑인 조안과 처음 하룻밤을 보낸 후 자신의 전공을 조로 바꾸겠다며 흥분해서 "Changing My Major"를 노래할 때, 최소한 그래픽 노블 속의 앨리슨과는 매우 다르다. 

앨리슨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인 부르스를 당혹스럽게 한다. 분홍색을 강요하거나 드레스를 입으라고 할 때마다 앨리슨은 격렬하게 아버지에게 대든다. 나는 청바지가 좋아요! 나는 셔츠를 입을 거야! 아버지는 앨리슨에게 매를 들겠다고 경고하고서야 앨리슨의 복장을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옷을 바꿔 입었다 해도 앨리슨의 의지는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앨리슨의 모습이 부르스에게는 경이롭고 불편하다. 초지일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그였기에, 자신이 원하는 걸 아무 거리낌없이 크게 소리치는 앨리슨의 모습은 두려움마저 들게 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입고 행동할 수 없었기에 그러한 자신의 욕구를 커다랗고 낡은 집을 사들여 집을 수리하는 것으로 풀었다. 집을 고치는 데는 그를 제외한 누구도 참견할 수 없었지만 모두가 거들어야만 했다. 앨리슨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무임금 인부라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았다. 

앨리슨은 아버지와 모든 면에서 반대였다. 아버지는 앨리슨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방어막을 쳤다. 앨리슨이 스스로의 모습을 예술적인 취향 탓으로 여기도록 유도했다. 그러면서도 앨리슨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달았을 때를 대비해 ‘콜레트’와 같은 레즈비언 작가들의 소설도 읽게 하는 노파심도 드러낸다. 

앨리슨은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다. 자신의 욕망과 자신의 유별남이 바로 레즈비언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앨리슨은 나는 레즈비언이야! 하고 환호한다. 반대로 부르스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홀로 침구를 적시며 울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부르스는 당당하게 자신을 레즈비언이라 칭하는 앨리슨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진 : 세 명의 앨리슨. 왼쪽부터 어린 시절, 청년 시절, 현재.

나는 레즈비언이야!

앨리슨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서야 자신이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토록 아버지의 사랑을 열망했지만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만들어두고 진짜 아버지가 그 상에서 얼마나 먼 지만 투덜댔을 뿐이다. 이 뮤지컬 안에서 앨리슨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 일말의 회의나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받은 억압에 대해서도 눈꼽만큼도 알 수 없다. 그것은 앨리슨이 지닌 냉소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아니면 불도저같은 면 때문일 것이다.

뮤지컬 <펀 홈>은 여러 면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브로드웨이 최초로 레즈비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뮤지컬이며, 브로드웨이 최초로 여성 작가와 작곡가가 토니상 작사/작곡 부문을 수상했다. 그토록 오랜 세월 여성들이 뮤지컬을 보아왔건만, 브로드웨이 뮤지컬 창작자들의 다수는 여전히 남성들이다. 이제 그 금녀의 벽은 무너지고 있고 그 맨 앞에 뮤지컬 <펀 홈>이 있다. 

뮤지컬 <펀 홈>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즐거운 집이고 두번째는 ‘Funeral Home', 즉 장례식장의 준말이다. 앨리슨의 아버지 부르스는 파트타임 영어교사이자 장례사였다. 그의 화려한 집은 사실은 장례식장이었고, 앨리슨과 두 남동생은 장례식장이 집이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집에 ’펀 홈‘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냉랭한 부모, 차가운 시체를 완벽하게 화장해서 살아있을 때처럼 보이게 하는 직업의 아버지를 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자기방어였다. 

뮤지컬은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몇 번이고 유년으로 돌아갔다가 가파르게 대학시절로, 현재로 돌아온다. 작품은 전적으로 앨리슨의 기억의 강도에 의지해 달려간다. 작품의 형식마저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남성적 서사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관객의 심장을 울린다. 관객들은 눈 앞의 세 앨리슨의 출몰을 보면서도 혼동하지 않고 잘 따라갈 수 있다. 

1년 반 남짓 공연한 이 작품은 미국 전국투어팀을 꾸려 2년간 공연했고 흥행에 성공했다. 레즈비언이 주인공인 뮤지컬이 지방 공연에서 성공하다니 ,세상이 바뀐 것일까? 그 세상을 바꾼 사람이 바로 앨리슨 벡델과 작가 리사 크론, 지닌 테소리다. 벡델 테스트의 바로 그 벡델답다. "뮤지컬의 경계는 없다"는 오스카 해머스타인 주니어의 말을 뮤지컬 <펀 홈>은 실천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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