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 36. 캐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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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 36. 캐서린

이응

뮤지컬 <Pajama Game>

초연 1954년, St. James Theatre, NYC
대본 George Abbott, Richard Bissellsic
작곡 Richard Adler, Jerry Ross
작사 Richard Adler, Jerry Ross
원작 소설 "7-1/2 Cents" by Richard Bissell
연출 George Abbott
안무 Bob Fosse
무대디자인 Lemuel Ayers
의상디자인 Lemuel Ayers
수상 1955년 토니상 뮤지컬 작품상, 뮤지컬 여우조연상(Carol Haney), 안무상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브로 만든 뮤지컬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번스타인이 작곡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다. 1950년대 후반의 뉴욕으로 배경을 옮겨 인종 간의 차별과 반목으로 희생되는 청춘 스토리를 그렸다. 그보다 몇 년 먼저 나온 <파자마 게임>은 조금 다르다. 큰 틀은 분명히 <로미오와 줄리엣>인데, 이야기 흐름으로 보자면 줄리엣이 제목에 먼저 나와야 한다. 게다가 그 줄리엣은 일과 사랑 사이에서 자기 가치관의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는 인물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원수인 두 가문의 이야기였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인 ‘캐서린(베이브)’와 ‘시드’는 노조 대표와 회사 관리인으로 만나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울 수 밖에 없는 위치에서 서로 사랑에 빠진다. 성품도 대쪽 같고 사랑도 직진인 두 사람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자신들의 사랑을 세상에 숨기지도, 비극을 향해 돌진하지도 않는다. 

이 작품의 곡과 가사를 함께 쓴 제리 로스와 리차드 아들러 콤비는 이 작품으로 1955년 토니상 작품상을 나눠 받았고 이듬해인 1956년에도 <Damn Yankees>로 작품상을 받아 토니상 역사상 전무후무한 2년 연속 작품상을 받은 콤비로 등극했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작곡·작사가인 제리 로스는 두 번째 토니상을 직접 받지 못했다. 시상식 전에 스물 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2006년 리바이벌 공연에서 베이브 역을 맡은 Kelli O'Hara와 시드 역의 Harry Connick, Jr. 

줄거리

주인공 캐서린은 본명보다 별명인 ‘베이브’로 더 유명한 잠옷공장의 노조 불만처리위원회 대표다. 회사에서는 불량품이 많이 나온다고 직원들을 몰아붙이지만, 직원들은 회사가 더 많은 수익을 위해 그들을 시계와 경주를 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시간당 수당을 7.5센트 인상을 요구한다. 하지만 사장인 마이런은 적반하장이라며 공장 직원들의 요구를 단숨에 묵살하고, 그들을 감시하고 공장을 돌아가게 할 새 매니저인 시드를 고용한다. 

시드는 노동자들과의 원활한 관계를 통해 효율성을 올릴 생각으로 노조를 찾아와 불만처리위원회의 베이브와 마주친다. 시드는 그 자리에서 베이브에서 호감을 표시하지만, 총파업을 계획 중인 베이브는 시드의 관심을 모른 척한다. 결국 회사가 주최한 소풍에서 시작된 언쟁으로 베이브의 집까지 함께 간 시드는 그곳에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하지만 앞날은 험난하다. 사장은 총파업이 불법이라며 공장 폐쇄로 맞서고, 의외로 강경한 사장의 태도에 베이브는 시드를 의심한다. 시드는 시드대로 자신이 직접 본 조업 상태와 사장이 주장하는 실적 사이의 갭이 있다는 의심을 하지만, 이 사실을 베이브에게 털어 놓을 수도 없는 상황. 그는 사장의 비서인 글래디스와 저녁을 먹으며 글래디스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사장의 금고 열쇠를 노리는데, 이 모습을 본 베이브는 시드가 믿지 못할 사람이었다고 오해해 분노하며 자리를 떠난다.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는 시드는 그 상황을 미처 설명하지 못한 채 사장실의 금고를 열어 이중장부를 찾아내고 사장이 이사진에 이미 직원들에게 7.5센트를 올려주었다고 거짓으로 보고한 뒤 운영비를 착복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사장이 파업에 가담한 노조를 해고하려고 할 때, 시드가 사장의 만행을 알린다. 사장은 공장을 떠나고, 노조는 임금이 오르고, 시드와 베이브는 연인이 되어 모두의 축복을 받는다.

여성이 이끈다

사실 이 작품 속의 노조와 공장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판타지 같은 양념에 지나지 않는다. <파자마 게임>보다 약 20년 전에 노조를 다룬 작품인 <Pins and Needles(1937)>는 국제 여성복 노조를 다룬 본격적인 노조에 관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파자마 게임>은 주인공인 베이브가 노조의 간부고 남자 주인공인 시드가 공장 관리인이라는 사실만 빼면 흔한 로맨스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처음 만났을 때는 티격태격 하지만, 서로에게 점점 이끌리다, 난관 몇 개를 극복하고 사랑에 빠진다. 물론 이 작품은 1954년에 올라왔기 때문에, 지금은 클리셰란 말을 붙이기도 부끄러운 '티격태격 로맨스 플롯'의 조상님 격이긴 하다. 

다소 뻔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그저 그런 작품에 그치지 않고 2000년대에도 꾸준히 재공연이 되는 것은, 이 모든 일을 끌어가는 노조의 핵심이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일단 배경부터 '파자마'를 만드는 공장이다. 그 시절의 공장 가운데 여성들이 가장 많이 일하는  곳이다. 여기에는 여성들을 등장시켜야 갖가지 댄스 장면을 흥미롭게 만들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이 여성들은 노조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았다. 덕분에 서슴없이 농담을 던지고 그들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도 겉으로 보기에 가장 심지 있는 인물은 베이브의 멘토이자 공장 전체의 어머니인 메이블이다. 메이블은 여장부로 묘사되지만 이 작품 속에서 메이블의 가치는 병아리를 지키는 어미닭, 즉 모성의 상징이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성적 매력이 없는 여성으로 분류되어 스스로는 ‘여장부’가 되지만, 동시에 젊은 여성들에게 '남자에게는 다정하게 대하라'며 전통적인 충고를 하는 구시대의 ‘엄마’다. 

'사회적 어머니'의 충고를 무시하고

베이브는 메이블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시드에게 지닌 의혹을 돌려 말하지 않고 직구로 던진다. 시드가 처음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할 때도 노조의 중요한 간부인 자신이 사측의 관리인과 연인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시드를 향한 호감을 누른다. 남성인 시드가 베이브에게 "당신이 누구든 무슨 일을 하든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다"라고 순진하게 말하는 것과 달리 베이브는 상황을 직시한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사람의 눈에는 계급 차이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사람 눈에는 그들이 다른 층에 서있음이 똑똑히 보이기 마련이다. 

베이브는 회사가 마련한 정례 소풍을 통해 처음으로 시드의 진심을 확인하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는데, 그 때 부르는 노래가 "There Once Was a Man" 이다. '한 남자가 있었다'는 제목의 이 노래는 제목만 보면 마치 시드가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처럼 보이지만, 사실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베이브의 파트다. 시드가 전설 속의 여성을 사랑했던 남성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그런 남자들보다 더 당신을 사랑한다고 노래하는 반면, 베이브의 가사는 현실 속의 사랑이다. 

"There Once Was a Man" 으로 시작해 시드가 글래디스를 유혹해 열쇠를 훔치는 장면의 "Hernando's Hideaway"까지 메들리로 엮은 토니상 시상식 쇼케이스 

용에게 잡혀갔다가 기사에게 구출 당하는 여성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독약을 대신 먹을 만큼 사랑하는 여성보다, 바다를 수영하는 여성보다 더 자신이 시드를 사랑하고 있다며, 사랑이라면 지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경쾌한 컨츄리 음악으로 쓰여진 이 노래는 돌아가지 않는 성격의 베이브를 명확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베이브가 얼마나 연애 경험이 없는지를 보여주는 이중의 장치다. 즉, 대본 상에서 베이브의 용기는 ‘순진함’에서 오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 이 배역을 연기한 배우들은 베이브의 용기를 ‘순진함’에 머물게 두지 않는다. 그들은 당당하게 허리에 손을 얹고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과시한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는 1954년 작품

<파자마 게임>이 시작할 때 아무런 편견 없이 주변을 바라보던 베이브의 시선은 음흉한 사장과 바람둥이 유부남 프레즈, 게다가 믿었던 시드의 바람기(비록 오해지만) 등의 상황을 겪으며 모든 것을 의심하고 돌다리도 한 번씩 두들겨 보는 성격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노조가 승리한 후에도 베이브는 시드의 '선물'을 받아들이기 전에 자신을 믿지 않았던 그에 대한 원망을 먼저 쏟아낸다. 시드가 베이브에 대한 사랑으로 사장의 비리를 밝혀내는 것과 달리, 베이브는 자신에 대한 동료들의 믿음을 우선으로 여긴다.

이 작품이 비록 여성들에 의해 이끌어 가는 작품이지만, 작품이 제작된 1954년의 한계 역시 명확하게 남아있다. 모든 관리직은 남자고, 여자들의 직업은 직공과 비서로 한정되며, 문제 해결 역시 남자인 시드의 의지에 달려 있다. 주인공인 베이브는 시드의 행동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도 하나 받지 못하며 단지 결과를 '선물' 받는 입장이 된다. 때문에 베이브의 성공은 반쪽짜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1954년에 제작된 이 작품이 거뜬하게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다. 여기 등장하는 여성들은 이름이 있고, '섹시한 램프'로 대체할 수 없으며, 그들이 대화하는 내용의 절반 이상이 파업 계획과 일이다. 2006년 리바이벌 버전에서 추가된 노래 "If You Win, You Lose" 에서 베이브는 시드와 헤어지기로 결정한 뒤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를 잊어. 강하게 모든 걸 받아들여.
그가 너를 망가뜨리게 두지 마. 네 행동, 네 선택에 늘 자긍심을 가져.

베이브도 시대와 함께 진화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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