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사랑에 잡혀 먹힐 정도로 나약하고, 사악함에 불쌍한 나의 아름다운 구원자. 당신으로 인해 다시금 피어날 나의 찬란한 생을 축복한다. 너는 내 가시마저 사랑해야 할 나의 아름다운 남자. 영화의 나레이션같기도, 지독한 로맨스 소설의 한 구절 같기도 한 이 문장의 출처는 <가시연>이다. 그 유명한 ‘8반 이쁜이’ 김재중을 탄생시킨 동방신기 팬픽, <가시연>말이다. 사실 팬픽은 ‘팬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등장인물로 활용하여 쓴 창작 소설’이라는 설명이 쓸데없이 길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무한도전 작가가 방송 중간에 등장해 버젓이 자신이 쓴 ‘준하-명수’ 팬픽을 읽어주는 시대다.&n...
의사는 내게 ‘좀 봐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산부인과 의자에 다리를 벌리고 누웠고 그는 “확실히 왼쪽이 좀 더 크네요”라고 말했다. 내심 이 정도면 수술을 안 해도 된다고 말해주길 바라고 있었는데, 그의 입을 통해서 내 비대칭을 다시 한 번 확인 받는 것이 썩 기분 좋진 않았다. 소음순 성형수술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고등학생 때였다. 나는 샤워를 하면서 자주 내 성기를 들여다봤고, 왼쪽 소음순이 오른쪽보다 조금 크다는 게 항상 마음에 걸렸다. 약간 늘어진 모양 역시 별로였다. 그동안 봤던 포르노에 나온 다른 여자들의 그곳은 분명 나와 다른 모양이었으니까. 게다가 여성 성기 각 부분의 명칭을...
1949.01.15 K-데이트살인의 첫 희생자는 이화여대생 한국 데이트폭력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었다. 1949년 1월 15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짝사랑으로 불붙는 청춘의 연모를 이기지 못해” 한 고려대 남학생이 이대생의 하숙집에 찾아가 그를 권총으로 쏘고 본인도 자살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은 데이트폭력을 ‘짝사랑’ ‘청춘’ 따위로 포장하기 바빴다. 1955.06.22 ‘이대생에게 충언 함’ “역시 이화여대생들은 내일의 이 나라 여주인공과 현모양처는 될 수 없다고 단정할 수 밖에 없다” 동아일보에 실린 이 칼럼은 이화여대생들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그들이 땐스홀에 열심히 다니며 외래사조의...
2 육, 해, 공군을 다 합쳐 장성 이상의 현역 여군은 단 두 명이다. 2003년에 진급한 양승숙 준장 (간호장교), 2010년 진급한 송명순 준장 (여군 전투병과). (*송명숙 장군은 예편.) 11% 해마다 11% 가량의 여군이 성희롱 및 성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여군 인권상황 실태조사’의 응답자 중 11.8%가 최근 1년 내에 성희롱 및 성군기위반 행위를 당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다른 여군이 성희롱/성폭력을 당한 경우를 보거나 들은 비율은 41.3%에 이르렀다. 성희롱을 당한 여군의 38.2%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여군이 가장 많이 겪는 성희롱은 어깨 두드리기...
항상 그곳에 있었으나 그 존재가 삭제되어 온 곳. 내 몸의 일부지만 나조차도 잘 몰랐던 곳. 그래서 병에 걸려도, 걸린 줄 모르고 지나쳤던 곳. 바로 ‘보지’ 다. 몸이 괜히 으슬으슬하거나, 머리가 띵 하면 우리는 감기에 걸릴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또, 감기에 걸렸다고 호들갑을 떨지도 않는다. 그저 며칠 푹 쉬거나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는 등, 그에 맞는 대응을 할 뿐이다. 그러나 여성 질환의 경우엔 다르다.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말하지 못한 채 쉬쉬하고 지나가거나, 혹은 정말 자신이 여성 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를 때도 있다. 감기만큼 흔하게 찾아오는 것이 여성 생식기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네이버나 다음 등의 국내 포털에서 ‘몰카' 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청소년에게 적합하지 않은 검색결과를 제외하였다'라는 안내가 등장한다. 하지만 몰카를 판매하는 매장 정보는 지역정보로 버젓이 나타난다. 지금도 서울 세운상가나 용산에 가면 몰래카메라 매장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몰카'는 염산 만큼이나 구하기 쉽고, 그 형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몰래카메라는 전세계에서 생산되고 있다. 중국산, 대만산, 벨기에산, 그리고 한국산까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몰카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 또한 방대하게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은 '보안 전문 업체'라는 탈을 쓰고서, 보안과는 아무 상관없는 욕망에 조용히 편승해 매출...
5월23일,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폐지 공개 변론을 앞두고 제출한 변론요지서의 일부 내용이 CBS 노컷뉴스를 통해 보도됐다. “자의에 의한 성교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에 따른 임신을 가리켜 원하지 않는 임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피임의 기본적인 개념도 이해하지 못하는 놀라운 성 인지 수준이다. 보도 이후 비판이 커지자 법무부는 24일 설명자료를 발표했다. 하지만 해명이라고 내놓은 자료는 더욱 문제가 심각했다. “낙태 허용 시 낙태율 급증,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훼손, 생명 경시 풍조 확산 등 오히려 더 큰 사회적 병리 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 라는 주장이 포함된 것이다....
* 부자 나라 미국에서 빈민 여성으로 사는 린다 티라도는 2013년 ‘Why I make Terrible Decisions, or poverty thoughts(왜 나는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는가)’ 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미국 주요 매체에 보도되며 가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린다 티라도는 첫 책인 <핸드 투 마우스(2017, 클)>에서 가난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편견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는 선택을 하는 이유를 썼다. 가난한 사람이라는 낙인, 그 삶을 살아가는 가난한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봤다. 가난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갖는 편견은 비슷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게으르다고, 옳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누군가는 그들이 계속해서 가난을 자처하는 거라고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벤츠를 타다가 현대차로 바꿔야 하는 가난이 아니다. 지난 달까지는 스테이크를 먹었지만 오늘은 샌드위치를 먹어야 하는 가난도 아니다. 당장 내일 학교에 갈 차비가 없다거나 오늘 저녁에 먹을 밥이 없는 가난이다. 단 하루도 돈 걱정에서 자유롭지 않은 날을 살아본 적이 없는 가난이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밑창으로 생리대를 만들고 돈이 없어 밥을 굶...
페미니스트 충동구매자의 구매 가이드는 많이 사고, 많이 영업하고, 많이 후회하는 필자가 직접 써본 아이템들을 대상으로 리뷰하는 시리즈입니다. 첫 번째 아이템은 생리컵 입니다. 급작스럽게 생리컵을 사야겠다고 결정하고 난 뒤, 호기롭게 바로 구매에 나섰으나 여의치 않았다. ‘아픔’이나 ‘불편’을 토로하는 글이 의외로 많더라. 몸 안에 착용하는 민감한 제품이라 찬찬히 살펴볼 수 밖에 없었는데, 많은 후기들을 보다 보니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키워드가 보였다. “삽입/꺼내기가 어려움” “잘못된 길이로 인한 자극” “ “비우고 나서 다시 착용하는 것의 어려움” – 이 불편들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서칭을 계속하니 “길이” / “탄성” / “용량” 이라는 세 가지 구매 기준이 드러났다....
20대 중반,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생리불순을 겪고 있었지만 그 심각성을 느끼진 못했다. 회사에서 점심도 거르고 밀린 보고서를 쓸 때였다. 물을 마시려고 사무실 의자에서 일어나자마자 아랫도리가 순간적으로 왈칵, 했고 롱스커트 아래로 뜨거운 것이 주르륵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놀라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니, 세상에, 다리 사이로 피가 흘러 양말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핏방울은 사무실 바닥에도 떨어졌다. 순간적으로 하혈을 하는 건가 싶어서 겁이 덜컥 났지만, 이 장면을 사무실 사람들에게 들키면 쪽팔림을 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화장실에서 휴지를 통째로 가져와 아랫도리를 급하게 틀어막고 사무실 바...
원문: Susan J. Fowler, 'Reflecting On One Very, Very Strange Year At Uber'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우버 1) 를 작년 12월에 떠났고 1월에 스트라이프 2) 에 합류했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왜 내가 우버를 떠났고, 우버에서 보낸 시간들이 어땠는지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내가 우버에서 겪은 일들은 이상하고, 매혹적이며, 동시에 조금 무서운 이야기다. 그러니 아직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을 때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나는 우버에 2015년 11월 SRE 3) 로 입사했다. 엔지니어로 팀에 합류하기 제법 좋은 시점이었다. 개발자들은 촘촘히 엮여 있는 API들과 씨름하고 있었고, 재밌는 작업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정신이 없을 무렵이었다. SRE 팀은 내가...
게임계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노출도와 방어력은 비례한다.” 게임 캐릭터들은 상위 등급으로 가게 될수록 거적때기를 벗어던지고 매력적인 장비를 입게 되는데, 등급이 올라갈수록 각종 장비를 껴입는 남성 캐릭터들과는 달리 여성 캐릭터들의 노출은 점점 증가하게 되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타입의 여성 캐릭터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농담이 널리 통용될 정도로 여성 캐릭터들의 노출은 게임계에서 당연한 것으로 통용됐다. 게임 제작사는 여성 캐릭터의 특정 신체 부위를 구현하는데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이를 홍보하기도 한다. 다양한 작품의 로봇들이 콜라보레이션해 전투를 펼치는 <슈퍼로봇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