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K 3’에서 몽환적인 목소리로 대중을 사로 잡은 김예림은 사람들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 들었다.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언젠가 꾸었던 어렴풋한 꿈을 기억하거나, 계절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3년의 공백 이후, 새로운 싱글 앨범 [Salki]가 얼굴을 드러냈다. [Salki]는 이전의 김예림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인 변신 그 자체였다. 목소리와 창법, 가사 내용과 멜로디, 기획과 구성. 새가 알을 깨어나오기 위해 숱하게 보냈을 시간처럼, 그가 홀로 보냈을 여러 밤을 헤아리게 된다.
현재 텀블벅에서는 그의 새로운 앨범 발매를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여성’과 ‘동양인’이라는 키워드를 두고 그만의 눈으로, 경험으로, 마음으로, 시간으로 해석하고 제작한 여섯 곡이 담길 예정이다. 나는 종종 누군가의 마음 속에 놓여진 작은 방을 떠올리곤 한다. ‘Lim Kim’의 방은 얼마나 많은 상념이 머물다 갈까.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그 방으로부터 촘촘히 연결될 것이다.
Off to start a new
longer silence,
Yeah we stand up brave.
You can't block or control it.
I need to change up this game.
Don't identify self in the male gaze.
I'm raising my voice to be heard,
Building my world.
On me?
Take dirty hands off of me.
Bigger the fights, Bigger rewards
Fire! Trigger go bang
- Lim Kim, [Salki] 중에서
이번에 텀블벅 프로젝트로 신곡 6곡을 수록한 앨범을 발매할 계획이에요. 대중 가수들 사이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우는 드물었거든요.
거의 없죠. 메인 스트림에 있는 뮤지션들은 텀블벅 프로젝트를 후보로 두지 않으니까요. 사실 저도 그 전에는 이런 방식을 생각하지 못했어요. 실제로 앨범 준비를 하면서 음반관계자를 만났을 때, 크라우드 펀딩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해도 잘 모르시더라고요. 개념 자체가 친숙하지 않은 거죠. 회사는 어디서 투자를 받았고, 그걸로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지 아티스트한테 일일이 공유하지 않거든요. 그렇다 보니 뮤지션도 그 투자금이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고, 앨범 제작에 투입되는 정확한 액수를 알 수 없죠. 해외는 크라우드 펀딩도 사례가 많긴 한데, 한국에서는 드물어서 저도 부딪혀 가면서 알게 된 것들이 많아요. 다행히도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과거의 김예림을 스스로 ‘온실 속 화초’였다고 표현했었어요.
물론 지금도 크게 그런 편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더더욱 현실감각이 없었어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작하기도 했고요. 음악을 하는 목적 자체가 ‘이걸 통해서 큰 돈을 벌고 싶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를 나왔을 때에도 막연하게 어떻게 되겠지, 했었어요. 무조건 독립을 해야겠다라기 보다는 음악을 만들어야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다음 앨범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똘똘 뭉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에요.
이 앨범을 2~3년 정도 혼자 이끌면서 힘이 조금 빠진 상태였어요. 음악을 만드는 게 어렵기도 했고, 혼자라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래서 이걸 언제 내야 할지도 답이 없었어요. 요즘에는 저도 좀 놀라워요. 앨범의 의도에 공감해서 인지, 제가 대견해서 인지 호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심 없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많으니까요(웃음).
일반인 뿐만 아니라 대중 아티스트들에게도 좋은 선례가 될 것 같아요.
연락이 오기도 해요. SNS를 통해서 뮤지션이나 다른 아티스트들이 보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데, 아마 ‘이런 게 가능하구나.’ 하는 느낌들은 받는 것 같았어요.
싱글 앨범 [Salki]이 발매된 이후 대중의 호응이 무척 뜨거웠어요. 기억에 남는 반응이 궁금해요.
사실 다 재미있기는 했어요. 이전과 다른 드라마틱한 변화니까요. 사람들이 [Salki]라는 곡을 이해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제각각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어요. 제 입장에서는 저에게 천천히 점진적으로 바뀐 부분들이 있었을 테지만, 대중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갑자기 변한 거잖아요. 그런 반응이 바로 느껴져서 흥미로웠어요.
단순히 영어 가사를 해석하는 걸 넘어서 다양한 의미를 주고 받았어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두고 관람객들이 해석하는 것처럼요. 하나의 큰 논의 대상이 됐어요.
생각보다 의도와 가까운 해석이 많아서 놀랐어요. 곡을 만들 때에 대부분 저랑 비슷한 사람들이 어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막상 작업할 때에는 혼자다 보니, 그런 존재가 눈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번에 눈에 보이고 느껴지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처음 싱글을 냈었을 때에도 그렇고 지금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호불호는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반응 하나하나가 세세하게 기억에 남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이나 각각의 생각과 의견을 눈 여겨 봤어요. 4-5년 전, 미스틱에서 활동할 때보다 대중 전반의 반응도 많이 달라진 것 같거든요. 시간의 흐름도 많이 흘렀죠. 만약 지금 앨범을 그때 당시 제작했다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메시지가 잘 맞고, 잘 수용될 수 있는 시대성이 무척 중요하니까요.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이 앨범이 실험적이어서 발매가 지연된 게 오히려 지금과 더 잘 맞았을 수도 있었다고요.
리스너의 태도도 무척 중요하죠. 더 이상 듣지 못하는 노래도 아주 많아졌고요.
그런 변화를 보는 게 너무 흥미로워요.
이번 앨범의 키워드를 정리해 보자면 ‘동양인’과 ‘여성’이에요. 얼마 전 인터뷰에서 “나만의 이야기만 하는 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았다.”는 말을 한 것을 봤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타인과의 연결고리로 볼 수 있을까요?
다음 앨범에서도 그렇고, [Salki]에서도 그렇고 ‘I’ 보다는 ‘We’가 더 많아요. 모두가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성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담긴 거죠.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나만 그런 건가?’ 하는 의문을 품곤 하잖아요. 많은 여성들에게 비슷한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고, 그런 것들이 충분히 공유되고 소통될 때 긍정적인 힘이 되기를 바랐어요. [Salki]가 공격적으로 들릴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인 목표로 보자면 긍정적인 흐름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여성 뮤지션이 이런 목소리를 드러냈을 때 위험성을 우려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Girls Can Do Anything’ 이라고 적힌 핸드폰 케이스만 써도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키니까요. 그런 지점이 두렵지는 않았나요?
작은 거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있어요. 작업을 해 온 지난 3년 동안 우리 주변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흐름이 생기기 전부터 작업을 해오긴 했지만, 다양한 사건과 논란을 보면서 느낀 건 사람들에게 의도가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과대해석이 될 때도 있고요. 그래서 증명을 해야겠다 싶었어요.
어떤 증명이요?
이게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흐름이라는 증명이요. 음악의 완성도나 음악이 가진 힘, 혹은 그걸로 이뤄내는 또 다른 일들처럼 여기서 파생되는 모든 요소가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흐름을 증명하는 데 쓰였으면 좋겠어요.
앨범에 관해서는 호불호가 당연히 있을 거라고 짐작했어요. 예상보다 호의적인 반응이 컸던 것은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그 메시지를 잠시 차치하고서도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부족한 것에 대중의 목이 말랐던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주로 이야기하는 게 동양과 여성이에요. 그런데 동양이라는 주제는 여성만을 포함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더 폭 넓게 나눌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느끼고 공유하는 것들이 더 많을 수도 있을 테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에요. 그리고 그 끝이 결국 사회적 선순환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동양인도 사회에 포함돼 있고, 우리도 한국에만 머무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더더욱 이런 시선이 필요해요.
여기서 만들어진 성과가 좋은 결과로서 증명되길 바라고 있어요. 텀블벅 프로젝트도 그런 일환일 수 있겠죠. 음악적으로도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줄 테니까요.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서구 사회가 동양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이잖아요. 그들의 시선인 거죠. 백인일 수도 흑인일 수도 있는데, 결국 서양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이라서 엄연히 우리의 것은 아니에요. 그렇다 보니 왜곡된 지점도 있을 거고요. 동양적인 판타지나 무드가 그들의 눈과 생각에서 정의되니까 음악이든 사회든 동양인을 수동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와 성향으로 연결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그런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동서양이 소통이 잘 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그런데 말하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그들이 왜곡시킨 부분도 있겠지만 우리도 우리의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하지 않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그런 의문도 들어요.
동양인조차도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서구 사회의 시선과 정의에 편승해서요.
미국에서 살 때 한인사회나 거주민을 보면 부모님 세대 보다는 우리 세대가 더 많은 것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도 흑인이나 백인에 비해서 아직은 자기자신에 대해 주체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넘치진 않는 것 같아요.
비 아시안이 아시안을 ‘수동적이고 부드럽게 바라본다’는 행위는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일맥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더 강한 사람이 덜 강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 비슷한 점이 있어요. 지금은 그래도 시간이 많이 흐르고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생긴 것 같아요.
앨범을 완성하는데 흘러간 3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에요. 김예림과 림킴의 변화를 3년 동안 계속해서 궁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사실 가수 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제야 생각하게 된 부분들이 많아요. 저의 성향이나 취향은 어렸을 적에 구축이 됐겠지만, 어떤 말을 전하고 싶다는 의지가 들었던 건 사회 생활을 하고 난 뒤였던 거죠. 가수라는 직업 자체가 대중적인 직군에 속하면서도, ‘여자 연예인’ 이라는 강한 속박이 있던 것 같아요.
많죠?
너무 많죠. 주위에서 속박하려는 이야기도 너무 많고요. 주변인들도 당연하게 여겨요. 저는 그런 분위기가 좀 당황스럽더라고요. 어느 순간 너무 그 틀 안으로 들어가버린 거죠. 이렇게까지 들어갈 줄 몰랐는데, 하면서(웃음).
어린 여자 가수 혹은 연예인들이 해야 하는 것들이 비슷하잖아요. 외모가 이래야만 한다, 그렇게 보여야 한다, 이렇게 어필을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무척 당연했어요.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이고 보여지는 직업이기 때문에 아주 상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게 뭐라 해야 할까. 턱 밑까지 오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그 틀 안에 안 들어가면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요. 그런 분위기가 잘 이해가 안 갔어요.
전혀 자유로울 수 없는 환경이네요.
대중가요 시스템에 대부분 적용되는 것 같아요. 안 그래 보이는 사람들도 그 시스템에 갇혀 있기도 하고요. 저의 경우에도 20대 초반에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예뻐 보이기 위해 살아야 하는 느낌 같은.
김예림이라는 인물을 수면 위로 올린 건 ‘인어공주 목소리’ 라는 수식어였어요. 여성 뮤지션에게 붙는 수식어 대부분이 오히려 그를 타자화 시키는 게 대부분이에요. 공주, 홍대 여신, 뮤즈, 꽃. 대중과 가까이 하게 하면서 동시에 한계를 만드는 거죠.
시스템 상 회사 안에서 저를 만들어 내는 팀이 있을 때, 개인의 의견을 주체적으로 드러내는 건 사실상 힘들어요. 제가 꾸리고 만든 팀이면 다르겠지만, 어느 한 팀이 나를 만든다고 할 때 그들이 바라보는 저로 인증이 되거든요. 보통 프로듀서나 작곡가가 곡을 쓸 때 “예림이에게 맞는 곡을 써 줘.” 하면 그거에 따라서 곡이 나오고, 비주얼 기획이 나와요. 따라서 그들의 시선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어떻게 보면 그 당시엔 그런 결정들이 당연했던 것 같아요. 타인의 시선에 따라 내가 다르게 정의되니까 내게도 다른 잠재력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당시에 열린 마음으로 생각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거 나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하나의 틀이 부여됐을 때 어떤 식으로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에서 조금 빗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건 어떤 시점의 일이에요?
두 번째 EP였던 [Simple Mind]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앨범이 나왔을 때에도 티저에 노출이 있었어요. 사실 저는 그 장면이 그렇게 비춰질 줄 몰랐어요. 매체에서도 다뤄지고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라서 결국 마케팅에 도움은 돼요. 하지만 이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이런 시선이 처음이기도 해서 그때 상황이 좋은 건지 아닌 건지도 잘 몰랐어요.
저 스스로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싶다고 뚜렷하게 정해둔 채 출발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비슷한 문제가 하나씩 벌어질 때마다 대처를 잘 못했어요. 시간이 점점 지나니까 이런 건 아닌 거구나, 하고 확신이 들었죠. 그때부터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게 생긴 것 같아요.
당시 티저가 많이 거론됐었죠.
심지어 그거 저도 아니에요. 그때 영상에서 제 얼굴은 딱 한번 나올 거예요. 아, 이런 식으로 되는 거구나 싶었죠.
창법과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그 전의 무드를 그리워하는 분들에게 이전과 같은 곡은 언제든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변화를 더 꾀하고 싶었다고 했어요. 과연 돌아갈 수 있는 걸까요?
물론 똑같이 돌아가지는 않을 거예요. 노래라는 건 그 안에 무척 다양한 요소가 있어요. 장르일 수 있고, 목소리일 수 있고, 메시지일 수 있고요. 제 생각엔 사람들이 원하고 기억한다는 것은 아마도 저의 목소리나 장르적으로 편안한 무드인 것 같아요. 같은 맥락에서 보면 그런 목소리는 언제든 다시 낼 수 있을 테니까요.
사실 이번 앨범에 [Salki]와 같은 목소리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제 시선에서 다루는 음악과 다른 사람이 저에게 만들어준 음악은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저도 앨범 전체가 하나로 만들어졌을 때 어떻게 발현이 될까도 궁금하고요. 보통 대중가요에서 실험하다가 돌아오면, ‘다시 갈아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단순히 콘셉트의 변화가 아니라 제 인생이 바뀐 느낌이어서요. 전환이 된 느낌이에요. 그렇다 보니 예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겠죠.
지난 3년 동안 가장 도움이 되었던 콘텐츠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근본적인 궁금증과 호기심이 컸어요. ‘원래 나는 무슨 인종이지?’, ‘한국이라는 국가는 단군신화 때부터 인식이 어떻게 발전한 걸까?’, ‘역사적으로 우리의 인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현재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 걸까?’. 책도 보고 정보도 찾아보았죠. 그런 게 궁금했어요. 덕분에 흥미로운 사실도 많이 접했고,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도 있었어요.
동양 여성의 지위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하나요?
그들의 경험이 있죠. 미국 같은 해외 국가에서 교포1세들이 당시 서양 미디어에 처음으로 등장하거나 영화나 드라마에 처음 다뤄졌을 때 그 이미지를 볼 수 있었어요. 여성 교포들이 살아오면서 느꼈던 감정들도 등장하고요.
그런데 백인 여성이나 흑인 여성, 동양 여성은 모두 다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하나의 여성 카테고리에 넣기에는 부족해요. 그들의 경험이 너무 다르거든요. 이건 결국 동양 여성은 동양 여성이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아요. 백인 여성도 흑인 여성도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 주어야 알 수 있는 거고요.
원활한 소통을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이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사도 일부러 영어로 쓰신 건가요?
맞아요.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길 바랐어요.
인식과 가치에 대한 변화가 생기고 그 흐름에 일조하고 싶다는 의지가 들 때, 자기만의 도구가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느껴져요.
그 감정을 앨범을 직접 만들면서 처음 느꼈어요. 그 전에는 음악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고, 단순히 ‘음악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다.’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표현 수단이 되었어요. 무엇을 담고, 뭘 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다르니까 좋은 것 같아요. 주체적인 창작자가 되는 게요.
작업자들도 직접 알아보고, SNS를 통해 DM도 보냈다고요. 이런 게 처음에 좀 꺼려지진 않았나요?
하고 싶은 게 확실하면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저는 사람들 앞에서 바로 감정 표현을 드러내거나 직설적으로 말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다만 기준은 명확해서 맞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해도 괜찮아해요. 잘 안 맞는다고 느껴지면 금방 마음을 접기도 하고요. 그래서 작업자를 찾을 때도 스스럼 없이 연락하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제가 트러블을 굳이 만드는 유형도 아니거든요.
합리적이시네요.
그런가요(웃음)? 물론 단호함이 엄청 필요한 상황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면 결과적으로 이런 방법이 좋더라고요. 그런데 종종 단호하기는 한데 기준은 없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몇 번 봤어요(웃음).
자기 확신이 중요한 요소겠죠?
표현 방식은 다양할 수 있어요. 다만 명확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사회가 단호한 모습을 이해하지 않는 건 문제가 있겠죠. 각자 자기 일에 확신은 자기가 알아서 갖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림킴 님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일에서 두려워하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현실감각이 덜한 걸 수도 있어요. 돈을 많이 벌어야만 하고 성공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덜한 편 같거든요.
그보다는 음, 불확실한 것들. 현실에 관한 것들 말고 내 마음 속에 불확실한 게 생기면 불안해져요. 제가 확실한 편이어서 더더욱 그런 편이에요. 보통 불확실이라는 게 제 의지만으로 되는 일들이 아니잖아요. 지난 3년 동안 그런 일들의 연속이어서 그런 지점이 어려웠어요.
불확신이 내 통제 밖인데, 대개 어떻게 다스리나요?
그런 것들은 혼자 해결하기 어려워요. 저에게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아주 작은 거라도 성취를 하는 거예요.
제 일화를 들어 보면 별로 안 작을 수도 있는데(웃음). 제가 이번에 같이 작업한 친구 중에 비주얼 아트를 담당한 친구가 있었어요. 동갑이라서 편하게 얘기를 나누던 와중, 어쩌다 사진 촬영을 진행하게 된 거예요. 그러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고 그때 새로운 결과물이 만들어졌어요. 그런 식의 성취가 꽤 오랜만이었어요. 그때 마음 속으로 '그래, 내가 뭘 할 수 있겠구나. 작은 결과물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겠구나.’ 했어요.
그 일을 시초로 싱글 앨범을 결심했던 거예요. 저도 좀 놀랐어요. 저에게 이런 성취가 부족했다는 게요. 사실 개인이 혼자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그런 게 도움이 될 거예요.
작은 성취는 아니네요(웃음).
그 모임이 모인 것만으로 신기했어요. 어쨌든 다같이 하고 싶은 걸 해보자, 하면서 만난 거잖아요. 다른 이들의 경우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일 수도 있고, 동호회일 수도 있고요. 특히 지쳐있을 때에는 혼자 있다 보면 가능하지 않아 보이는 게 대부분이잖아요. 별 거 아닌 것도 부정적으로 보이고요.
마음가짐에 따라 할 수 있는 게 너무 다른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긍정적인 태도는 혼자서 유지하기는 힘드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좋은 계기가 생길 거예요. ‘그럴 마음 있음’ 만으로 해결의 의지를 만드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어떤 시도를 이어가고 싶나요?
먼저 이 앨범을 세상에 내어 놓고 싶어요. 그 다음은 어느 순간 알게 될 것 같아요. 이걸 하면서요. 분명 그럴 것 같아요.
림킴의 앨범 속 여섯 편의 수록곡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질문을 건넨다. 단조로운 일상 속 우리는 어떤 태도를 견지하며 살아야 할까? 주변에 있는 여성들과 어떤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까? 나의 근원을 찾는 것은 왜 중요할까? 연이은 질문이 좀처럼 쉬워 보이지 않지만 그 해답은 꼭 찾아내고 싶다.
림킴의 변화와 변신이 우리게 남긴 것은 어쩌면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로서 소신을 전하는 것은 정말이지 아름답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물음이 된 질문들이 사람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온다. 더 이상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