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애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6. 평등해야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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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애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6. 평등해야 자유롭다

승은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폴리아모리랑 평등이 대체 무슨 상관이죠?
:평등하지 않으면 폴리아모리에 필요한 상호 합의와 비독점성이 가능한가요?

폴리아모리랑 페미니즘이 무슨 상관이에요.
:페미니즘 없는 폴리아모리는 일부다처제와 얼마나 다를 수 있나요?

페미니즘은 역차별이잖아요. 제 후배는 여자라서 혜택 받는 게 많다고 오히려 좋아하던데요.
: 네? 역차별이요? 그리고 자꾸 ‘여자, 남자’를 언급하시는데, 지금 이 카톡방에도 다양한 성별이 존재한다는 걸 지우지 말아주세요.

내 여자친구는 여자여자하다고 하면 좋아하던데. 이제 그런 말도 하지 말아야겠네.
:그건 두 분이 알아서 하면 될 문제고요. 굳이 카톡방에 올릴 필요가 있나요.

어느 폴리아모리 단톡방에 올라온 발언에 하나하나 답변하던 나는 참지 못하고 마지막 메시지를 보낸 뒤 방을 나왔다.

‘저는 폴리아모리 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페미니즘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등하지 않으면 폴리아모리는 소수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보다 안전한 공간에서 폴리아모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다음에 좋은 자리에서 뵐 수 있길 바라고,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폴리아모리+페미니즘

페미니스트가 모두 같지 않듯, 폴리아모리스트도 하나의 덩어리는 아니다. 웬만하면 각 세우지 않고 소통하려고 마음먹었는데, 평등은 입에 담지도 말라는 요구와 역차별이란 단어를 듣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참을 수 없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갈등이 있었다. 누군가 단톡방에서 정치적인 발언은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나머지 인원들은 “우리 존재가 이미 정치적이지 않나요? 일대일 이성애 규범을 깨고 있는 존재잖아요. 정치를 정의하는 방식이 너무 협소하신 것 같은데요”라고 항의했다. 폴리아모리를 단지 자유로운 다자 만남으로만 해석하는 사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자유에서 누락된 그림자를 나는 외면할 수 없다.

폴리아모리 연구자 정영에 따르면, ‘폴리아모리’의 태동은 페미니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대일 결혼 제도의 규범을 깨고 공동체적 삶을 꾸린 케리스타 빌리지Kerista Village는 1960년대 미국에서 반자본, 반사회, 반문화 운동을 지향한 공동체이다. 1990년대 모닝 글로리 젤Morning Glory Zell은 ‘폴리아모러스적’ 관계의 개념을 최초로 정의했다. 그는 에코 페미니스트였고, 이단종교(pagan church)에서 목사로 활동했다. 이 종교는 모닝 글로리의 남편 Oberon Zell-Ravenheart가 창시했으며, 성의 자유와 성평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97년에는 처음으로 ‘폴리아모리’를 제목으로 한 저서 <폴리아모리: 한계 없는 사랑 Polyamory: The New Love Without Limits> 역시 페미니스트가 출간한 책이다. 이후 출간된 <윤리적 잡것 The Ethical Slut>, <더 레즈비언 폴리아모리 리더 The Lesbian Polyamory Reader>, <에로스: 다양한 사랑의 여정 Eros: A Journey of Multiple Loves>도 페미니스트들이 집필한 저서이다. 폴리아모리 초기 담론이 반 기독교적이고 반문화, 반자본적이었다는 점, 페미니스트들이 목소리를 내온 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폴리아모리 초기 페미니스트들의 고민은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지점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권을 통제해왔던 통념을 문제 삼았다. 특히 <윤리적 잡것 The Ethical Slut >의 두 저자는 성적으로 난잡한 생활을 즐기는 남자를 뜻하는 stud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동경을 상징하지만, 난잡한 여자라는 말을 뜻하는 slut은 그 반대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에 반기를 들면서 slut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들이 말한 윤리적 잡것의 개념은 ‘젠더에 상관없이 섹스 및 성적쾌락은 좋은 것이라는 신념에 따라,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이다. 한국만 해도 여전히 대학에서 혼전순결 서약을 하는 문화가 버젓이 존재하니, 단지 전래동화처럼 읽힐 이야기가 아니다.

평화운동가로 알려진 데보라 아나폴Deborah Anapol도 대표적인 폴리아모리 운동가다. 그는 평생 베트남 반전 운동을 하면서 평화운동에 기여했는데, 이후 가정과 섹스의 평등을 말하며 러빙 모어 Loving more 라는 최대 폴리아모리 단체 창단에 함께했다. 그는 러빙 모어라는 잡지와 매년 진행하는 컨퍼런스를 기획하는 사람으로, ‘폴리아모리 운동가’로 살았다. 데보라 아나폴의 운동 방향은 나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평화 운동은 퀴어, 에코 페미니즘과 뗄 수 없으며, 가장 일상적인 폭력과 억압에서의 자유 역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구조와 더불어 사적인 관계의 변화를 고민한 아나폴의 고민을 공감할 수 있었다.

일러스트 이민 


개인의 자유로운 사랑 그 이상

폴리아모리를 단지 개인의 자유와 다자관계로만 해석할 경우, ‘폴리아모리’라는 범주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처첩제도 뿐만 아니라 오피스 와이프, 일부다처제 등 다양한 관계가 이미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많은 페미니스트가 폴리아모리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던 것은 성별 이분법을 강화하는 이성애 중심의 1:1 연애와 결혼 신화가 근대 가족에게 부여했던 성별 역할(남성은 생산노동, 여성은 재생산노동)을 해체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한국 사회에는 ‘재생산권’에 대한 다채로운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재생산권은 단지 아이를 낳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거나 박탈 당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장애나 질병을 이유로 불임 수술을 강요하고, ‘저출산 문제’라며 재생산권을 통제하려는 국가의 제도들. 그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기획되었던 연애와 가족에 대한 규범적 신화에 관한 질문이 없다면, 폴리아모리는 아주 작은 범위에서 개개인의 일탈로만 연결될 수밖에 없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SHARE 기획운영위원 나영정은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이렇게 언급한다. “성과 재생산 권리는 신체의 자유 및 성생활과 성정체성에 관한 자신의 결정을 확보하고, 성적 파트너와의 합의에 기반한 평등한 관계를 맺으며 성과 재생산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정보와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고, 강간 및 강제 임신·낙태·불임이나 강제 결혼, 할례 강요 등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가며 성과 재생산 활동의 과정에서 누구도 위협이나 강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로 구체화할 수 있다.”

폴리아모리스트에게 쏟아지는 대표적인 비난이 ‘더럽다, 문란하다’라는 점, 가정과 국가가 파괴된다는 우려, 정상이 아닌 비정상이라는 딱지만 봐도 폴리아모리가 놓인 사회적 위치를 알 수 있다. 폴리아모리가 왜 재생산권 혹은 가족구성권, 나아가 평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논의되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나와 우주와 지민은 현재 법적으로 같은 주거 공간에 등록된 ‘동거인’인데, 법원의 등기 우편을 받을 때도 이런 대화가 일상적이다.

“지민 씨랑 어떤 관계이신가요?”
“동거인입니다.”
“결혼한 사이이신가요?”
“아니요. 동거인이에요.”
“앞으로 결혼할 사이인 거죠?”
“……”

결혼할 사이는 아니라고 했다가 “친척이세요? 가족? 도대체 어떤 관계에요?”라고 따지듯 추궁 당한 적도 있다. 의료 시스템이나 각종 가족 단위로 구성된 제도적 혜택과 복지 제도에서 밀려난 건 당연하다. 만약 우리 셋이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해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할 테고, 지민은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는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쫓겨나고 보수 기독교에서 ‘빵에 핀 곰팡이, 문란한 영’이라며 마녀사냥 당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폴리아모리를 단지 개인의 자유로운 사랑 정도로 해석하기는 불가능하다.

사회에서 승인되는 ‘정상적인’ 연애와 결혼의 정의는 무엇인지, 누가 그 정의를 정의했는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정치와 비정치적인 것의 경계를 질문해야 한다.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페미니즘 없는 폴리아모리는 가능한지, 평등 없는 자유는 가능한지 묻게 된다. 우리는 역사와 사회적 규범의 연속선에 존재하며, 결코 진공 속에 존재할 수 없으니까. 나는 그림자가 없는 방향으로 자유롭고 싶다.

“재생산으로 연결되지 않는 섹슈얼리티, 가족제도를 바꾸거나 넘어서는 재생산 행위와 새로운 관계들, 국가의 관점에서 인구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권리와 자원을 배분했던 시스템에 도전하고 바꾸는 노력은 우리 사회의 인권의 지평을 확장하고 인권을 더욱 인권답게 만들 것이다.”

- 나영정,『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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