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생활일지 1. 혈연보다 우연

생각하다독립주거가족

동반생활일지 1. 혈연보다 우연

백희원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하면 돌아오는 사람들의 반응은 선선한 편이다. 젊은 여성 둘의 생활이라는 게 아기자기한 인상을 주는 모양이다. 어쩐지 귀여워하는 느낌이랄까. 여기에 함께 산 지 5년이 넘었다고 하면 조금 놀란다. 싸우지 않느냐는 말 다음으로 많이 듣는 질문은 “친구는 결혼 안한대?” 다. 줄곧 “글쎄요. 저희 둘 다 아직은 별 생각이 없어서요” 로 가볍게 일관해 왔지만 어느 순간 질문이 울컥 올라왔다. 왜 우리의 현재를 건너뛰고 미래를 물어보지? 지금 나와 친구가 꾸려나가고 있는 생활은 결혼 전의 일시적인 소꿉장난에 불과해보이는 걸까?

독립의 두 갈래 길: 결혼 아니면 홀로서기?

나의 독립은 5년 전 우연히, 속전 속결로 진행되었다. 원룸에서 자취중이던 친구가 이사를 가게 되면서 함께 집을 구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고, 때 마침 취직한지 얼마 안되어 소득원이 있었던 나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좋다고 말했다. 우리 둘 다 모아둔 돈이 많지 않았기에 열악한 주거환경은 어느정도 감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집을 찾으러 나선 첫째 날, 부동산에서 소개해 준 집은 상상한 것보다는 괜찮았다.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는 건 월세 계약을 마친 다음 순서로 미뤘다. “친구랑 같이 살기로 했어. 집은 이미 구했고, 3주 뒤에 이사 나갈 거야.” 부모님은 사후 통보에 약간 어이없어 하면서도 독립을 축하하는 쿨한 모습을 연출해주었다. 비록 산지 얼마 안된 매트리스를 들고 나가는 건 허락해주지 않았지만.

자신의 욕구를 파악하는데 게으른 편인 나는 이 모든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가족으로부터의 탈출을 열망했는지 깨달았다. 가족들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평생을 살아온 집이 편안하기보다 버거웠다. 버거운 마음은 또 죄책감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는데 어찌할 줄 모르고 마비된 것 처럼 매일을 견딜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과 대졸자 여성의 월급봉투라는 게 뻔했고 서울에서의 독립은 너무 요원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결혼이 답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평생 같이 산 가족의 딸 역할도 견디기 힘든데, 누군가의 아내에다가 며느리, 더 나아가 엄마라니. 그런 식으로 이 가족에서 다음 가족으로 건너가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단 말이야?

내가 바라는 것은 단순했다. 사회적인 가면을 쓰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에 사는 것. 그런데 이것을 얻기 위해 크게 돌아가는 길 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때 친구의 제안을 통해 경제적, 심리적 부담을 덜면서 가족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졌고 나는 앞뒤 재지 않고 이 기회를 냅다 낚아챈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운이 좋았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운이 좋지 않아도 이런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결혼 바깥의 가족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자 친밀성을 나누는 관계를 가족이라고 한다면, 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느 정도 서로의 가족이 되어버린 것 같다. 얼마 전 이 사실을 인지하고 나는 처음으로 가족을 편안하고 좋은 관계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 가족은 각자 자기만의 방을 가진 가족, 서로가 가사일을 챙기면 지당히 고마움을 느끼는 가족, 친족들이 개입하지 않는 가족, 서로의 독립적인 삶을 인정하면서 응원과 지지를 나누는 가족이다. 동거를 계기로 천천히 만들어져 온 이 가족 관계는 내게 전에 없는 느슨한 안정감을 준다. 만약에 과거로 돌아간다면, 우연에 기대지 않고 적극적으로 지금의 이 삶을 선택하고 계획할 것이다. 문제는 과거에도, 지금도 이런 선택지가 공식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사회적으로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 두 명의 1인 가구일 뿐이다. 공동으로 주거를 위한 대출을 받을 수도 없고, 혹시나 한 명이 크게 아플 때 병원에서 보호자 역할을 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언젠가 우리가 각자 짝을 찾아 떠날 것이라고 가정한다. 나도 친구와 내가 영원히 평생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삶에는 여러가지 변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이 삶을 더 잘 가꾸는 일을 언젠가의 결혼이나 번듯한 생활을 위해 유예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사랑을 경유하지 않고, 영원을 약속하는 의례 없이도 축적된 신뢰 위에서 안정적으로 잘 지내왔다. 친구로서, 같은 여성으로서, 또래로서 서로의 삶을 설명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감정적 토대를 이미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관계가 가족이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이성애 4인 가족이라는 표준 모델은 오늘날의 보편적인 삶을 포괄하지 못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 다양한 가족이 존재한다. 비혼 여성 커플, 동거 중인 고연령대의 이성 커플 등을 지인 중에서도 찾기 어렵지 않다. 다만 이러한 생활양식들이 아직 파편화 된 경험들로 흩어져 있어 예외적인 사례로 느껴지는 것 뿐이다. 지난 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이성 동거 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이 결혼의 준비단계가 아닌, 대안으로서 동거를 선택했다고 답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동거생활을 완전히 공개했다는 답변의 비율은 고작 6%에 불과했다. 같은 설문에서 ‘동거에 대한 타인들의 인식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88%나 되었다는 데서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행복한 가족을 찾아서

그러니까 결혼 제도 바깥의 가족은 이미 실재하는데 사회적 편견의 압력으로 인해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 연재에서 이런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수면 위로 드러내고자 한다. 특히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들로 구성된 가구의 현실을 살펴볼 예정이다. 거기에 딸도, 아내도, 엄마도 아닌 여성 개인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적 환경의 변화를 함께 논하기 위해 생활동반자법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혈연 관계나 혼인이 아니어도 성인이라면 누구나 합의를 통해 ‘생활동반자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게 이 법안의 골자다. 물론 동성 간의 생활동반자 관계도 인정하며, 결혼에 준하는 상호 간의 권리와 의무를 담보한다. 2014년 진선미 의원이 본인의 삶을 반영한 적극적인 이슈파이팅과 함께 이 법안의 발의를 한 차례 시도한 바 있으나 성사되지 못했고, 그 이후 제도권에서 별다른 논의가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해 동반자등록법 법안에 대한 청와대 청원에 6만명 가까이 서명하는 등 사회적인 수요는 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멀리 갈 것 없이 주변 여성들과의 사이에서 생활동반자법 이야기를 꺼내면 격한 공감과 함께 환영받고는 한다. 환영의 이유는 제각각일 것이다. 내게 생활동반자법은 여성을 억압하지 않는, 여성을 돌보는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맥락에서 가장 와닿는다. 우리에게는 소망하는 대로 살 자유가 있다. 최선의 행복으로 나아가는 일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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