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에서 어떻게 승리하실 생각이신가요?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캠프에서 일하는 이들을 만나면 꼭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후보를 내는 것 자체가 도전일만큼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싸움이지만, 여당 후보가 연일 50% 이상의 지지율을 보이며 낙승할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선거니까. 분명 모두들 승리하기 위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과연 그랬다. 나는 이날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선거캠프의 실무자들과 대화하면서 그들 각자가 거두고 있는 승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로 무언가가 시작된 뒤, 내가 이겨내고 싶었던 것과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를 숫자로 증명해내는 것
캠프에서 홍보국장을 맡고 있는 은정씨는 명확한 목표를 말했다.
당연히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거지만 제게는 득표율 5%라는 목표도 중요해요. 서울에 사는 여성 시민으로서, 이 도시에 페미니스트라는 타이틀을 단 후보를 뽑는 사람이 백 명 중 다섯 명은 있다는 걸 확인한 뒤의 서울은 그 전과 완전히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5%가 된다고 매일매일 여성으로서 불안감을 느껴야 하는 생활이 해결되진 않겠지만 용기가 생길 것 같아요.
또 지금 이 과정이 승리를 위해 필요한 수순이라고 생각해요. 신지예 후보가 나중에 정말로 국회에 들어가려면 지지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를 확인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20대 총선에서 녹색당의 정당 득표율은 0.76%였다. 5%는 보기보다 공격적인 목표다. 선거철만 되면 소수 진보정당을 둘러싸고 사표론이 등장한다. 어차피 당선되지 않을 표면 더 힘있는 정당의 후보와 단일화 하라는 압박이다. 하지만 선거 결과의 의미는 당선에만 있지 않다. 정책과 가치를 전면에 내 건 후보가 있다면 그 선거는 시민들이 지향하는 사회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은정씨는 말한다.
한국사회에서 선거는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누구 라인에 있는 사람인가를 확인하는 장치로 작용해왔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페미니스트 후보 신지예가 출마했기 때문에 서울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의 지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이벤트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캠프 차원에서는 적어도 신지예를 몰라서 못뽑는 경우는 없도록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약 누군가가 신지예를 알게 됨으로서 6월 13일에 집에서 씻고 나와서 투표소로 발걸음 하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굉장히 보람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장면과 새로운 서사
채영씨의 경우, 이미 바라던 것을 향해 한 발 내딛었다고 말한다.
저는 원래 녹색당원이었어요. 청년 녹색당 총회에 갔다가 신지예 후보가 출마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요. 그때 먼저 나서서 손이 모자라면 돕고싶다고 자원했어요. 젊은 여성 정치인이 이번 선거에 나오는 걸 정말 보고 싶었던 거에요. 넷플릭스의 여성 주인공 컨텐츠도 그런 마음으로 보잖아요. 내가 보고싶은 서사를 볼 수 있으니까.
물론 그가 생각하는 승리는 한 발 더 나아가 그 서사가 정치권과 사회를 앞으로 추동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아주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갈 수록 더 똑똑해지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보고있어요. 저는 정말 이 흐름을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는데 이 사회와 정치권은 여기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잖아요. 공화국이라면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이 새로운 상황이 무엇인지 계속 되묻고 함께 생각해야 마땅한데 그냥 서로 떨어져서 평행선을 그리고 있단 말이에요. 지금 현실이 이 수준이라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가 그걸 뛰어넘을 서사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저는 승리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어요. 제가 캠프에서 하는 기획도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의 등장은 채영씨가 이야기한 두 평행선을 통합시키지는 못하지만,적어도 충돌시킴으로서 양측을 같은 시간대로 불러오고 있다. 또렷한 시선이 유권자를 직시하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벽보를 보고 한 쪽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오고, 다른 한 쪽에서는 “개시건방지다”는 평가와 익명의 벽보 훼손과 같은 현실 부정이 튀어나온다. 페미니스트 후보의 존재 자체가 논쟁의 지형을 드러내면서 유권자들이 이 사회에서 어떤 선택을 드러내야 할 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서진씨도 채영씨와 비슷한 욕구에서 출발했다. 본래 영상을 업으로 삼고있는 그에게 찾아온 동기는 페미니스트가 정치를 하는 장면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야심이었다.
페미니스트가 선거에 나와서 ‘이런 장면을 만들 수도 있구나’, ‘이런 말을 해도되는 구나’ 하고 보여주는 장면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장면들을 보지못했고 가져보지 못했으니까요. 젊은 여성이 한국사회에서 이런 액션도 이런 워딩도 할 수 있다고 보여줌으로써 페미니스트들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최초의 사례를 만드는 거잖아요. 이게 곧 역사를 만드는 과정인데, 이 과정을 홍보팀으로서 잘 보여주고 잘 아카이빙 해놓는 게 목표에요.
내 삶을 바꾸는 정치가 주는 효능감
한편, 소진씨는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선거캠프에 참여함으로서 내면의 벽을 뛰어넘는 승리를 거두고자 한다. 학교 선배였던 서진씨의 제안으로 캠프에 참여하게 된 그는 녹색당에 대해서도 이번 참여를 계기로 알아보았다고 한다.
사실 저는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굉장히 커요. 주변에서 비난 받을 것 같고요. 제게는 이 공포심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승리에요. 유독 보수적인 동네에서 자랐어요. 어느 가정이든 아빠가 돈 벌어오고 엄마는 집에서 가사일을 하시고, 여자아이들은 당연히 다 엄마처럼 될 거라고 생각하는 동네요. 그리고 제 주변에는 여전히 이런 삶에서 굳이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생각이 달라졌는데, 친구들은 계속 그대로니까 그 격차에서 오는 답답함이 되게 큰 거에요. 제가 페미니즘에 대해 편하게 말할 수 있고 의견을 밝힐 수 있게 되면 저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온 비슷한 친구들도 변화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제 먼저 공포심을 없애는 게 중요해요.
그에게는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선거캠프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소진씨는 이미 자신이 낸 용기만큼의 승리를 거두고 있다.
친구들은 페미니즘이 공론장에 잘 안보이니까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안될 거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으면 정말로 안되는 거 잖아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도 해봐야 바뀔 기미라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실 다른 사람이 나서서 계란으로 바위를 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아무도 안하면 그냥 내가 해야 하는 거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제가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보니까 할 수 있더라고요. 캠프에 들어와서 페미니스트로서 말하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많이 없어져가고 있어요.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서는 캠프의 실무자들이 페미니스트로서 스스로 정치적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정치를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 유권자들의 해방감과 공명한다.
이전에 개인으로 친구들과 강남역 10번 출구 앞 집회에 갔을 때와 이번에 선거 캠프의 일원으로 강남역 2주기 추모에 갔을 때의 느낌이 달랐어요. 전에는 조금 무력감이 들었다면, 이번에는 내가 생각해 온 여성 이슈를 정면으로 내세운 사람과 같이 만들어나가고 있는 대안이 있고, 또 그 대안이 가능한 공간에 대한 상상을 만들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무력하지 않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승리는 우리가 매일매일 만들어나가고 있는 거에요. 선거까지 가는 과정에서 나가는 논평과 영상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고 함께 분노하고 피드백 줄 때 매일매일 승리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서의 ‘일’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모였을까? 녹색당이라는 당의 문화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녹색당다운 선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선거의 기조와 목표를 정했다고 말한다. 당원들이 내린 답은 ‘녹색당이 이야기하는 가치를 안에서부터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선거’였다. 녹색당은 ‘녹색당다움’을 위해 선거 과정에서 지켜야 할 성평등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후보 개인들이 빚질 일 없도록 팀 녹색당으로서 후원 캠페인을 진행했으며 그 과정에서도 고액 후원 조직 대신 소액후원 캠페인에 집중했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서는 현수막 하나를 어디에 달지 캠프를 어떻게 꾸밀지 하나하나에도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수평적인 문화 위에 열린 정치의 장은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기획을 펼쳐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소진씨는 캠프의 회의에 참여했을 때 “사려깊다”는 생각이 들어 일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채영씨는 다른 시민단체나 민주당에서 일하며 겪었던 부정적인 경험을 이곳에서는 겪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채영: 사실 처음엔 선거캠프에서 시키는 일만 해야할까봐 꺼려지기도 했어요. 다른 선거캠프 같은 데 가면 젊은 여성은 특히 저임금으로 일만 많이 시키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원래 여성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편이라 이전에도 여성 국회의원실에서 인턴으로 일한적이 있었고, 단체에서 일한 경험도 있었어요. 근데 참고할 레퍼런스가 너무 적더라고요. 제 세대의 기획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곳에는 나이대가 있는 사람들의 레퍼런스 밖에 없었고 저는 그런 정치가 재미없는 거에요. 그 때는 일하면서 기획이란 걸 한 번도 해보고 싶지 않았어요. 홍보도 시키고 기획도 시키고 한 꺼번에 다 시키니까 일을 쳐내느라 너무 바빠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거든요. 여기서도 바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편안한 환경에서 해보고 싶은 걸 하나씩 해보니까 내가 뭘 재밌어하는지 알 수 있어요. 그걸 갖고 계속 페미니즘 정치 기획을 해보고 싶고, 저도 성장하는 것 같아요.
지은 : 저도 비슷해요. 알바만 해도 위계 때문에 내 의견은 잘 못말하기 십상인데 캠프에서는 아예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을 안해도 돼서 좋아요. 무척 인상적이었던 순간이 있어요. 제가 영상을 전공했는데 영화만드는 현장이나 학교에서는 소위 군대문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면 일을 할 수 없다고 하거든요. 수평적인 분위기에서는 효율이 떨어진다고요. 그런데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개소식 때 심각한 문제가 생겼었어요. 그때 저는 정말 ‘어떻게 해야하지’ 하고 가만히 벙 쪄있었는데, 모두가 동시에 자기의 방식으로 문제해결을 바로바로 하고 있는 거에요. 그 때 되게 놀랐어요. 남들이 신경쓰지 않아도 자기가 스스로 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라는 걸 수직적인 문화에서는 본 적이 없었거든요.
항상 급박하게 돌아가는 선거캠프에서 이런 문화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채영씨의 답은 커뮤니케이션에 있었다. 다 함께 회의를 하며 합의한 사항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서로 두 번 세 번 이야기할 것 없이 각자 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못할 일은 솔직하게 거절할 수 있어서 관계적인 측면이나 평가에 대한 불안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신지예 후보와 대안학교을 함께 다닌 친구이기도 한 은정씨는 놀라움을 담은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에게 이러한 협업의 방식은 이 시대에 당연한 것이다.
저는 이렇게 같이 이십대를 살아가는 친구들과 상부상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함께하는 게 저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가족 같으니까 가까운 사이니까 돕는 게 아니라 서로 하는 일이 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면, 당연히 함께 하고 싶은 거에요. 이걸 스스로의 일로 받아들이니까 익숙해요. 누가 뭐한다고 ‘같이할래?’ 라고 할 때 ‘같이 하자!’에는 이런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어요. 친구의 새로운 도전에 내 몫이 있다면 기꺼이 하고 싶어요. 물론 말로는 ‘서울시장 출마한다고? 재밌겠는데? 대박사건!’ 하면서 참여했지만요.
선거가 끝난 뒤의 일상
매일 새로운 경험의 나날들. 선거가 끝난 뒤에는 무엇을 할 예정이냐는 질문에 평범한 답이 돌아왔다. “취업해야죠.” 새로운 시도들이 상황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전과 좀 더 다른 태도로 상황을 마주할 수는 있다.
서진 : 사건이 있을 때마다 모이고 흩어지는 게 아니라 매번 모일 때마다 이기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승리의 대상이 나의 두려움일 수도 있고 일상의 여혐일 수도 있죠. 예를 들어 일상에서 여혐을 당할 때 이겨낼 수 있는 '페미 근육' 같은 걸 키우는, 그런 트레이닝을 같이 하고 있어요. 저는 페미니스트들이 방에서 광장으로 나오는 장면을 만들고 싶어요.
소진 : 페미 근육이 이 공간에서 생긴 것 같아요. 끝나면 취업해야죠. 그렇지만 불과 몇 개월 전이었다면 취업 하는 거나 주변의 시선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텐데, 지금은 여혐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네가 이상한 거야’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경험을 여기서 했으니까 괜찮아요.
유토피아를 경험한 뒤 비추어 본 현실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이 더 많다.
서진 : 현실이 너무 이상해보일 때가 있잖아요. 현실이 상상을 뛰어넘으니까요.(웃음) 모두가 느끼는 이런 이상함을 ‘원래 이상한거야’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영상을 통해서 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걸 기록하고 표현하는 작업을 계속 하게 될 것 같아요. 그게 저를 보호하면서 현실을 바꾸는 일이 될 거에요.
이 유토피아는 6월 13일까지 방배동 카페거리에, 보라색 유세차량이 움직이는 곳에 존재한다. 페미니스트 후보 신지예는 자신의 발화를, 공보물을, 거리에 내걸린 포스터를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드러낼 수 있는 코드로 인용할 수 있도록 세팅한 야심만만한 정치를 해나가고 있다. 드러내면 숨기거나 사과해야 할 일이 되어버리던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이 이렇게 공적인 공간에서 거듭 강화된다. 이것이 숫자로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서, 캠프를 후원하고 지켜보고, 지지하는 우리 모두의 승리로 돌아오기를, 그리고 더 큰 승리를 위한 씨앗이 되기를 기대한다. 역사에 남게 될 이야기는 이런 장면들로, 이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