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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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촛불

김평범

나는 기자로서 생생한 현장을 빠르게, 왜곡없이 전달해야 한다고 늘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내게는 집회시위 현장 취재 기회가 자주 주어졌고, 나는 발언자가 달랑 3명인(두 명은 현수막을 잡고, 한 명은 마이크를 잡았다) 집회부터 수십만명에 이르는 큰 집회까지 다양한 현장을 뛰어다녔다.

이런 나에게도 지난 11월 12일 19일 연속으로 서울 광화문광장과 시청 앞 서울광장 일대 모든 도로가 반짝이는 촛불로 물든 장면은 특별한 순간이었다.

나는 가장 큰 규모가 예고됐던 12일 집회와,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집회가 열렸던 19일 집회 모두에 참가했다. 12일은 취재 기자로, 19일은 참가자로.

취재기자로 나선 12일 집회

우선 12일 집회는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집회라고 모두가 떠들어 댔다. 경찰은 광화문 앞 전체 차로에서 집회 후 시민이 행진을 벌이는 것은 건국 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여러모로 '처음'이 많은 집회였다.

광화문 광장  ⓒ연합뉴스

이날은 낮부터 많은 시민이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중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최순실 게이트 관련 언론 보도는 이미 넘쳐날 대로 넘친 상태였고, 진실성 없는 '대국민 담화'까지 더해지자 시민들의 마음에 불이 붙었다. SNS에 보이는 지인 모두 주말 집회에 나가겠다고 벼르더니, 정말로 온 국민이 모두 광화문에 뛰쳐 나온 듯 했다.

점심시간 무렵부터 서울 곳곳에서 사전집회가 열렸다. 사전집회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교복 입은 학생 무리였다. 이들은 '중고생혁명'이라고 스스로 이름지었다. 세월호 사건과 국정교과서 논란을 포함한 각종 교육정책 등으로 많은 문제의식을 느껴 고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서로 서로를 높여가며 부르고(계속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띄는 집행부끼리는 서로 존칭하고 있었다) 홍보 담당이나 총무 담당 등 역할을 분담해 일을 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나와 비슷한 기자들이 마찬가지로 교복 입은 무리에 관심이 많았다. 

광화문 전 차로가 차량 통행이 막혀 그야말로 탁 트인 기분이었다. 차가 없는 도로를 맘껏 활보하며 잠깐의 자유도 만끽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였다. 오후 4시에 가까워지자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금세 가득 찼다. 

나는 집회 기사를 처리한 뒤 행사 시작 시간인 오후 4시에 맞춰 서울광장으로 가야 했는데, 가는 길에 정말 몇 번이나 눌려 죽을 뻔했고 예상보다도 15분 늦게 광장에 꾸역꾸역 자리를 잡았다.

서울광장 ⓒ연합뉴스

드넓은 광장에 사람이 가득했다. 김제동의 사회와 시민의 자유발언, 흥겨운 공연이 광화문 광장의 메인 테마였다면 서울시청 앞 광장은 그보다 좀 더 비장했다. 시민사회 각계단체의 선언문이 울려 퍼지고 노조 몸짓패의 박력 넘치는 공연이 이어지자 분위기는 그야말로 뜨겁게 달아오른 듯 했다.

흔히 현장에서 보는 각종 시민단체나 노조 단위 참가자 외에도 개인, 가족, 친구, 연인끼리 온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자녀의 손을 붙잡고 광장에 나와 아이들에게 집회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직접 체험하게 해 주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서울광장에서는 오후 6시가 되자 서울광장에 있던 노조와 시민사회 원로들이 앞장서서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나는 행진을 시작할 때는 가장 앞열에 서 있었는데 어느샌가 인파에 밀려 행진 대오를 놓쳤다. 그 때부터 또다시 인파를 헤치는 일은 전쟁이었다. 

청와대로 가는 길목,
내자사거리

ⓒ연합뉴스

오후 6시30분쯤 되었을까 어느덧 경찰이 허용한 최후의 보루인 내자사거리 앞에 도착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경찰의 차벽과 경찰 병력이 몇겹 둘러 쳐져 있었고, 그 앞에 각종 단체들이 모여들어 진을 치고 구호를 외치고 하야송을 부르고 있었다.

인파 벽을 뚫고 어찌어찌 내자사거리 대치 지점 바로 앞까지 갔더니 열기로 땀이 비질비질 새어나왔다. 밤이 되면 비가 내리고 추워질 거라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날씨는 무척 좋았고, 누구 말마따나 "하야하기 딱 좋은 날씨" 였다. 하늘마저도 집회 참가자의 편에 선 것 같았다. 참가자들은 기뻤겠지만 나는 주룩주룩 흐른 육수 덕분에 몇 겹으로 껴 입은 옷이 흠뻑 젖었다.

가장 앞에서 마주 보고 있는 의경들과 집회 참가자 일부는 서로 딱 붙어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경찰 중 관리자급으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이 참가자에게 자기 군생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참가자 중 한 명은 의경에게 먹을거리를 건네기도 하고 집회 참가자끼리 생수를 나누어 마시며 장기전을 준비했다.

ⓒ연합뉴스

어딜 가나 촘촘히 들어선 경찰 차벽과 의경에 갑갑함이 느껴진 건 예전과 같았지만, 그나마 달라진 것은 경찰의 태도였다. 예전에는 경찰이 집회 해산 방송에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협박 투의 말을 즐겼지만, 이날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달라. 모든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지금껏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방송은 대체로 '밥맛’이었다. 지난해 4월18일 열린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빚자,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이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 등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가라"는 망발을 한 적이 있을 정도다.

같은달 20일에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열린 집회에서 "우리 경찰관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처하라"는 식의 막말을 했다가 결국 구은수 서울청장의 사과와 해당 경비과장에 대한 인사 조치까지 이어지게 됐다.

내자사거리 앞에 당도한 이후로는 대치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구호를 외쳐도 경찰이 꿈쩍도 않자 일부 흥분한 참가자가 경찰버스를 타고 넘어 차벽 뒤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어느덧 새벽 1시40분쯤 되자 노동당의 빨간 트럭이 등장했다. 이때부터 방금까지와는 제법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박근혜 게이트 '5대 주범' 처벌"이라는 현수막이 달린 노동당의 빨간 버스가 "하야, 하야, 하야"하고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요란하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등장하더니 EDM에 맞춰 핑크색 옷을 입은 사람이 춤을 췄다.

오전부터 새벽까지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이미 발에 불나게 걸어 다닌 나는 저 사람들의 흥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이미 저 춤사위는 잠을 잊은 지 오래였다.

나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대치를 바라보며 우선 순대국으로 허한 속을 달래고 다음을 기약하며 엉거주춤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날 새벽 4시쯤 경찰은 23명이 해산 과정에서 연행됐다는 안내를 보내왔다.

참가자로 나선 19일 집회

12일 집회에서 취재기자로 많은 것을 느꼈지만 사실 가장 감정은 어찌보면 함께하지 못한 '안타까움'이었던 것 같다. 내가 기사 몇 줄을 여기서 더 쓴다고 세상이 바뀔까? 아니면 내가 함께 소리를 내고 촛불을 드는 게 더 도움이 되는 걸까? 아직도 그 답을 모르겠지만 이번에 나는 LED 촛불을 드는 편을 택했다.

ⓒ연합뉴스

SNS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만든 깃발 아래로 약속된 시간에 모였다. 광장에 서서 자유발언을 듣고, 전인권의 노래도 함께 들었다. 

일부 발언 중에 강남 아줌마, 미스 박과 같은 표현이 나올 때는 속상하고 화도 났다. 그러나 곧이어 발언자들의 질타가 여러 차례 쏟아지고, 무대에서 주최측의 공식적인 지적도 나왔다. 그 지적 하나 하나가 너무나 주옥같아서 발언자의 말이 끝날 때마다 나는 종교도 없으면서 연신 '할렐루야, 아멘'을 외쳤다.

나는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는 하야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 이 세 가지 구호를 연달아 외치다가 "박근혜를 구속하야"로 합쳐 목청껏 외쳤고, 다음날 목소리를 잃었다. 2000원을 주고 급히 산 LED 촛불이 내 팔뚝 힘 때문에 안에 뭐가 잘못됐는지 불빛을 잃고 깜빡깜빡 해갈 무렵, 내 목소리도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됐다.

자정에 가까워질 무렵 사람들은 조금씩 자진 해산했고 전주와 달리 어떤 충돌도 없었다. 집회를 마친 사람들은 뭔가 아쉽다는 듯이 광화문 일대 순대국집으로, 술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술집마다 집회는 계속되는 것 같이 보였다. 

내가 이동한 삼겹살집은 이미 거나하게 취한 중년 집회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어쩌다 보니 이들과 옆테이블에 앉아 '바위처럼' 같은 민중가요를 부르고 서로 진한 전우애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한 번 더

26일은 100만명이 모였다는 12일 집회보다도 더 큰 규모의 집회가 예고됐다. 경찰 역시 그날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올 것으로 보고 대비할 계획이라고 순순히 인정했다. 야3당 뿐만 아니라 여당 비주류계까지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준비하기 시작한 지금, 26일 집회는 그야말로 박근혜 대통령 하야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26일도 어쩌다 보니 근무는 피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거리에 나서서 목이 쉴 때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 수사와 탄핵 혹은 퇴진을 외칠 것이다.

ⓒ연합뉴스

지난주, 지지난주보다 더 많은 가족과 친구와 연인을 거리에서 만나게 되기를 기원하고 소망한다. 법원이 청와대에서 불과 200m 거리인 청운동파출소 앞까지 행진을 허락한 것은 이같은 국민적 열망과 무관하지 않다. 

LED 촛불에 건전지 바꿔 끼우고 거리로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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