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여자가 이긴다, 뜨거웠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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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여자가 이긴다, 뜨거웠던 현장

신한슬

디자인: 이민

일주일 중 가장 놀고 싶다는 수요일, 평일 저녁 여덟 시. 하필이면 비가 내렸다.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에 모인 <핀치> 스태프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모든 행사 주최자들이 당일 한 번쯤 생각하는 불안한 예감일 것이다.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지?’

걱정이 무색했다. <핀치>가 지난 6월 처음 런칭한 ‘나서다’ 첫 번째 콘텐츠 <버티는 여자가 이긴다> 토크쇼 신청자들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행사 시작 약 1시간 전부터 하나 둘씩 자리를 채웠다.

출석률도 기대 이상이었지만 가장 놀라운 건 참석자들의 집중력이었다. 애초 예정됐던 90분을 15분 정도 초과했지만 자리를 떠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관객들 모두 패널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토크쇼 내용을 완성했다.

이 날 토크쇼는 여성 창업가 패널 네 명과 함께했다. 이은빈 알디프 대표, 이서현 에브리마인드 심리상담센터 대표, 김지양 66100 대표, 홍진아 빌라선샤인 대표다. 여기에 핀치에서 <창업하는 여자> 시리즈를 연재했던 양효진 히든트랙 데이터옵스 팀장이 모더레이터로 진행을 맡았다. 창업을 해 본 여자 다섯 명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그 솔직한 심경과 빛나는 비전을 공유했다. 90분 동안 오간 이야기를 전부 옮길 수는 없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몇 가지 대목을 소개한다.

동지, 딴짓, 단련

모더레이터 양효진님

양효진: 과거의 나에게 창업을 위해 [  ]를 해 두라고 말하고 싶다. 이 빈 칸을 어떻게 채우시겠나?

홍진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데,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걸치고 하셔도 되고(웃음). 회사를 다니는 도중에라도 창업 프로젝트를 ‘프로토타입’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하고, 여기서 발을 떼서 두 발을 여기 붙여도 된다는 판단이 올 때 창업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다시 취직을 해야 할지, 창업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정신적으로 소진된다. 창업을 시작하기 전에 정확히 언제쯤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을지, 적지만 나에게 월급을 줄 수 있을 때는 언제일지 아주 꼼꼼하게 계산해야 한다. 돈을 버는 문제 뿐 아니라 본인의 에너지가 소진되는 문제다.

이은빈: 머릿속으로 많은 게 지나갔다. 코딩, 인맥, 디지털마케팅...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건 ‘몸과 마음의 단련’ 같다. 저는 스스로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느 정도 단단하다. 그런데 창업을 시작한 초반에는 정말 작은 바람에도, 하다못해 온라인 평만 약간 안 좋아도 흔들렸다. 

창업하는 과정에서 워낙 사람을 많이 만나다보니 진짜 이상한 사람도 만난다. “어차피 결혼 잘 하려고 창업하는 거 아니야?”라든가, “오늘 되게 마담처럼 입었다” 같은 말을 면전에서 하는 ‘공대남’도 봤다. 지금은 잘 넘길 수 있게 됐다. 마음 수련을 열심히 한 덕이다. 명상을 시작하고,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체력도 너무 중요하다. 에너지가 딸리면 창업을 못한다. 1년 이상 매일 밤 샐 수 없다, 그럼 창업하면 안 된다. 농담이 아니다. 최대 48시간까지 안 자고 상해에 출장 간 적도 있다. 과거의 나에게 운동하고, 술 먹지 말고, 마음의 수련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서현: 저는 임상심리전문가를 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보니, ‘딴짓’을 많이 하라고 알려주고 싶다. 내 분야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게 비즈니스적으로 정말 도움이 된다. 자신이 익숙한 곳을 떠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

김지양: ‘동지’를 만나기 위해 애써라,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홍진아 대표님은 직장을 그만두지 말라고 하셨지만, 사실 창업을 할 사람들은 언젠가 그만둔다. 저에겐 오히려 용기가 더 필요했던 거 같다. 욕먹을까봐 두려워하거나 주춤거리지 않았다면 66100의 비즈니스 모델은 훨씬 달라지고, 넓어지고, 커졌을 거 같은데 용기가 부족했다. 혼자 일하면서 소진되기도 했다. 동지가 정말 중요하다.

자랑의 시간

양효진: 지금부터 ‘60초 동안 자랑만 하는 시간’을 가져보겠다. 1분 내내 자랑만 하는 거다. 준비, 시작!

66100  대표 김지양 님

김지양: 매출이 작년에 1억을 넘겼다. 국내외 언론 중에 안 소개된 곳 찾기 어려운 것 같다. 제가 국내 1호 플러스사이즈 모델인데, 더 이상 플러스사이즈가 뭐냐고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다. 66100 쇼핑몰은 반품률이 10% 미만. 아직도 30초나 남았다고?!(웃음) 먹고 살 만하고요. 고양이 두 마리를 건사하고 있다. 서울은 아니지만 전세로 50평대 집에 살고 있다. 고통스럽긴 한데, (창업을) 하지 않아도 행복했을 거 같진 않다. 제가 좀 대단한 거 같아요. (관객 박수)

에브리마인드 대표 이서현 님

이서현: 심리상담센터를 연 지 2년 만에 연매출 5억이다. 2년 동안 2억을 모아서 뿌듯하다. 센터에서 일하는 상담 선생님들이 만족하셔서, 다른 데서 일하는 걸 줄이고 여기서 일을 늘리고 있다. 저희는 센터에서 퇴근할 때 ‘다녀오세요’ 라고 인사한다. 저는 주 이틀 출근한다. 시스템으로 돈을 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다. 우리 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상담사 뿐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와 연대하며 이 사회 한 구석은 안전하게 지켜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게 저의 자랑이다. (관객 박수)

알디프 대표 이은빈  님

이은빈: 저는 여기 포스터에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당당하게 적었다. 차 업계 자체가 소위 말하는 ‘선생님들’이 많고, 나이 드신 고객분들께 백만원, 천만원 되는 보이차 팔아서 돈 버는 방식이 흔하다. 저는 해외 거주 경험이 있어, ‘중국어도 하는데 비싼 거 파는 게 낫지 않냐’ 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저희 고객은 대부분 20대 젊은 분들이다. 그게 자랑스럽다. 취향이란 20대 때 대부분 결정되는데, 20대 분들이 알디프로 차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저는 ‘웨딩 임페리얼’이라는 차로 시작했는데, 트위터에서 어떤 고객이 “웨딩 임페리얼, 이거 알디프 벨벳 골드라운드랑 비슷하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저희 제품을 먼저 드신 거다.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관객 박수)

빌라선샤인 대표 홍진아 님

홍진아: 창업할 때 “커뮤니티 서비스 할 거야? 시즌 1은 지인 장사야. 50% 이상 아는 사람이 와서 채워줄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 빌라선샤인 시즌 1 고객이 80명인데, 이 중 저희 지인은 10명 미만이고, 70명이 처음 아는 분들이다. 저희 고객들은 일하는 밀레니얼들이다. 누구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시민으로 살고자 하고 내 일과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고자 하는 멤버들이다. 이런 고객 80명과 함께 한다는 것이 제 자랑이다. 여기서 무엇을 궁금해 하고, 무엇에 관심을 가지느냐가 곧 ‘가장 앞서가고 있는 밀레니얼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저희 고객들이 저의 자랑이다.

성공 또는 실패, 모두 과정이지만

양효진: 나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란 [ ]다. 빈 칸을 채워본다면?

김지양: 지금 자랑을 하면서 ‘내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가 자랑거리구나’라는 걸 깨달아서 부끄럽다. 사실은 그게 콤플렉스였다. “너 그거 돈 안 될 거야. 못 먹고 살아. 아무 의미 없는 거야.” 그런 편견을 깨부수고 싶었다. 66100을 만나고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날 때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저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그런 가치를 전달하는 기능을 상실했다는 생각이 들 때 실패했다고 판단할 것 같다.

이서현: 창업을 시작하고 제일 당황스러웠던 게 누구도 절 평가해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성적표가 나오지도 않고, 인사고과가 나오지도 않고, 잘해도 칭찬해 줄 사람이 없다. 혼란스러웠다. 지금은 다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업이라는 큰 줄기 안에 작은 실패도 있고 작은 성공도 있다. 저만의 기준이라면 3년 버티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2년 했고, 이제 1년 남았다. 5년 하면 대박이고, 10년 버티면 대성공이다. 10년 하면 엄청나게 성공한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려고 한다.

이은빈: 저도 작은 성공과 작은 실패가 다 과정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성공이냐 실패냐를 가르는 건 지금은 보이지 않고, 다 지나고 나서 돌아봤을 때 알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저는 3년 이상 되어 가니까 성공인가?(웃음) 저의 기준은 ‘자취’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삶을 바꿨는지, 안 바꿨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지금 제가 누군가에게 남긴 자취로 의미 있을 것이다. 오늘 여기 계신 분이 저에게 영감을 받아 더 좋은 사업을 시작한다면, 내가 실패하더라도 “그 때 그 여성 창업가가 이런 가치 있는 걸 만들었는데 그 업계에서는 꽤 잘됐어”라고 누군가가 기억해준다면, 그 자취로 의미 있지 않을까.

홍진아: 창업을 시작하기 전에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왜 나를 평가하는 기준을 자꾸 다른 사람들의 눈에 두지? 그게 날 힘들게 하는 구나”라고 느꼈다. 사실 나를 깊이 알고 싶다면 창업을 하면 된다. 저는 내가 잘 돼야 내 옆에 있는 여성들이 잘 되고, 내 옆의 여성들이 잘 돼야 내가 잘된다고 믿는다. 친구가 말하길 ‘여성상호지지세계관’이라고 명명하더라. 저는 빌라선샤인이 필요 없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여성들이 나답게 살지 못하는 삶이 있고, 그걸 해소하는 판을 만들자고 시작한 사업이다. 누군가는 다른 방식으로 판을 넓히고 있을 것이다. 그것에 도움이 된다면 성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질의응답

관객: 창업 전에 일반 기업에서 실무자로서 일한 경험이 대부분 있으신데, 담배 정치라든지, 실무진의 공을 가로채는 상사라든지, 이런 문제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김지양: 그걸 못했으니까 여기 나와 앉아있는 거다.(웃음) 그걸 버텼으면 여기 없었을 것이다. 드러운 꼴 못 보고 뛰쳐나온 사람들이 창업하는 거다. 요즘은 그래도 조금씩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그래도 이건 정말 해당 업계 실무에서 일하고 있지 않으면 와닿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할까요, 커피에 뭘 좀 타야 하나?(웃음)

이은빈: 저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완전 난리쳤다. 전 정말 그런 걸 잘하는 사람이었다. 절대 참지 않았다. 대충 넘어가면 전 괜찮을지 몰라도, 그 다음에 다른 여성이 그런 일을 또 겪을 수 있기 때문에, 툭툭 밟고 가는 게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직접 뭐라고 안 하면 절대 모른다. 그냥 대충 씹고 넘어가면 전 괜찮을지 몰라도 제 다음 여성이 그런 일을 안 겪도록 툭툭 밟고 가는 게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걸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게 못하는 건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분은 하는 게 좋다.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절대 못 알아듣기 때문이다.

홍진아: 누구나 이은빈 대표님만큼 싸움하는 힘을 가지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받아쳤을 때 오는 불이익이 굉장히 많아서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주 다행인 건 옛날보다는 조금씩 불편함을 느끼는 여성들이 많다. 해결책도 해답도 아직은 없지만, 해답을 찾아나가려는 여성들이 있다. 이런 긍정적인 신호를 발견하면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가고 있는 우리를 감각하면서 가자. 어쩌면 내가 그 자리에 갈 때까지 해결이 안 될 수도 있지만, 10년 뒤에 내가 그 자리에 가면 해결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나랑 비슷한 생각 하는 사람을 회사 안팎에서 모으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해답을 모아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그게 지금 우리에겐 답이 되지 않을까. 우리가 상사를 자를 순 없으니까.

이은빈: 정말로 연대가 중요하고, 목소리를 많이 내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동네 빵집이나 이런 것까지도 여성들이 하는 브랜드에서만 소비하려고 노력 중이다. 사랑은 돈으로만 표현하는 거니까요.

관객: 토크쇼 제목이 ‘버티는 여자가 이긴다’인데, ‘여자’이기 때문에 버티는 게 있는가?

김지양: 처음 창업 준비할 때 여러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많이 들어간다. 벤처 업계 특성상 남성이 굉장히 많다. 특히 멘토 중에는 남성이 대부분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정말 일부 욕이 나오는 상황을 만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게 가장 버티기 힘들기 힘들다. 여자여서 힘든 거, 전 정말 그거 하나였다.

이서현: 심리학 분야가 여초라서 이 분야 내에서는 차별이 없는데, 여초라는 이유로 분야 자체가 차별을 받는다. 어떤 기관에서도 40대 이상 여성이 전문가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자리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사업을 생각했고, 그래서 버티고 있는 거다. 제가 사업을 하는 것 자체가 차별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기존 시스템 안에서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계속 승진할 수 있었다면 굳이 창업을 했을까? 시작 자체가 차별이었다. 하지만 해 보니까 좋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가요.(웃음)

양효진: 누군가는 창업을 독려해야 한다. 그 역할을 지금 잘 해주고 계신다.(웃음)

이은빈: 저도 정말 욕 나오는 일 많이 겪었는데... 어떤 지원 프로그램에서 OJT 같은 곳에서 교육을 하러 나온 남자분이 말을 하다가 ‘룸살롱’ 비유를 드는 거다. 정부기관에서 마련한 자리였는데. 그래서 ‘와...’ 하고 바로 신고했다.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서는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올해는 여풍이어서 여자 창업자가 이렇게 많다’라고 하는데 전체 비율 중 10%도 안 된다.

창업을 하면 한국 사회의 많은 차별이 피부로 와 닿는다. 예전에는 다 같은 근로자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한 사업의 대표인데 다른 곳에는 사장님이라고 하면서 나한테는 아가씨라고 한다. 그 외에도 투자를 받는다든가, PT를 할 때, 모든 곳에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다. 제가 직접 겪은 적은 아직 없지만, 주변에서는 더한 경우도 봤다. 투자를 해준다며 호텔방 넘버를 보낸다든가, 결혼을 했으면 한 대로 애 봐야 되지 않냐, 안 하면 안 한 대로, 그렇게 쓸데없는 말을 한다.

제가 핀치와 함께 패널 섭외를 할 때, 일부러 기혼 두 명, 미혼 두 명, 업력과 업계도 각각 다르게 했다. 그러면서 공통점은 페미니스트로서의 자각이 있고, 그걸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었다. 페미니스트라고 인터뷰하면 잘려서 나가기도 하고, 기자가 저한테 ‘그런 거 말해도 돼요?’하고 물어보기도 한다.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대표의 리스크로 보기도 한다. 그런 점이 여성으로서 버텨나가기 어렵다.

홍진아: 여성 창업가들은 남성은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하나의 리스크가 또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여성 창업가 비율은 37%이고, 생계형 개인사업자를 제외하면 이 비율은 8.5%로 급 감한다. 여성 창업가의 투자 유치율은 11%에 불과하며, 금액면에서는 전체 투자금액의 4% 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여성 대표들은 과대 대표되는 리스크가 있다. 저는 가끔 멘탈이 안 좋을 때 시달리는 생각이 있다. 제가 빌라선샤인을 시작하고 ‘여자들끼리 모이는데 어떤 여자가 돈을 써?’ 이런 얘기를 되게 많이 들었다. 여성은 남성과 같이 있지 않는 데에 돈을 쓰지 않는다는 거다. 이건 저에게는 상식이 아닌데, 많은 사람들한테는 상식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실패할 수도 있다. 비즈니스 모델이 구려서든 뭐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회사가 실패하나. 그런데 내가 여성으로서 과대 대표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것 봐. 여자들끼리 모이는 거, 안 된다고 했잖아. 그거 비즈니스 안 돼.” 그런 얘기를 듣지 않을까 무서운 것이다. 실패도 자유롭게, 성공도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는데, 여성 창업가들에게 제약이 있는 것 같다. 그것과 싸우며 버텨야 하는 점이 있다.

남성 관객: 큰 자본이 필요할 때, 남성 VC의 자본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이은빈: 돈이 싫지는 않다.

김지양: 투자를 거절한 적이 있다. 남자여서 거절한 게 아니다. 그 분이 너무 별로였다. 여러분들은 어떤 기회든 잡을 수 있다. 남자여서 거부하는 일은 없다. 상황이나 조건이 안 맞을 때 거절하는 것이다. 아무리 큰 돈이라도 우리 비전을 이해 못하는데 투자를 받을 순 없다. 저한테 “이거 그렇게 하시면 안 되고, 그냥 중국에서 5천원짜리 만들어서, 소셜커머스에서 만원에 팔아야지 돈 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안 한다고 했다. 창업가의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내가 돈 좀 대면 많이 팔리겠지’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자본이나 투자자가 많다. 그런 것만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

이은빈: 저는 소셜벤처가 아닌 일반 영리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투자도 이미 받았다. 투자자 대표님도 남자고, 포트폴리오 60개사 중에 저희가 한 개 회사다. 남자라고 해서 투자를 받지 않는다면, 직원도 남자 안 뽑고 오는 손님도 남자 안 받게? 그런 건 아니다. 이 사회에서 여자로서 당하는 차별, 한국에서 여자가 차지하는 위치,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런 문제를 인지하면서 비즈니스를 만들어가는 게 알디프의 핵심 가치다. 알디프는 존엄성과 다양성을 추구한다. 따라서 모든 약자와 소수자를 지지한다.

따라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다 무시하고, ‘그냥 살 빠지는 보이차라고 하면 많이 팔 텐데, 왜 안 파세요?’하면 당연히 투자를 받을 수 없다. 현재 투자자는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좋게 평가를 해 줬다. 그런 투자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투자자가 많이 없다면, 그걸 바꾸도록 하는 게 저희가 비즈니스를 하는 목적이다. 그래서 아까부터 얘기하는 게 사랑은 돈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다.(웃음)

홍진아: 여자 창업가 중 ‘이건 남자 돈인데, 어떡해!’ 이런 걸 고민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돈은 남자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이 있으면 좋지만, 여성한테만 받고 싶다면 이뤄질 수 없는 게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다. 어떻게 가치와 비즈니스를 동시에 유지할지, 그게 제일 큰 고민일 것 같다.

제가 작년에 여성창업가들 대상으로 인터뷰를 해서 책을 썼는데, 그 중 에누마 이수인 대표가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난다. 누적 투자액이 100억이 넘으셨지만 똑같은 문제를 겪으셨다고 한다. 여성 차별적인 말이나 상황을 실리콘밸리에서도 경험한다고 한다. 이 대표님에 따르면 창업 초기에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그 돈이 굉장히 필요하기 때문에 그 의견을 듣는 것이다. 그러면 회사는 잘 될지 몰라도 사업을 하는 본인한테는 두고두고 상처가 된다는 거다.

물론 초기 여성창업가가 그걸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힘을 기르고, 좋은 투자자를 만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담배를 배우고 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얘기를 들어 줄 사람이 없는지 찾아보는 거다. 그게 위로가 된다. 저 역시 타협해야 할 시기가 오면 이수인 대표가 했던 말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실패한 얘기나 성공한 얘기나 여성의 얘기가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양효진: 여성 창업가가 늘어나는 만큼 여성 벤처투자자도 많이 늘어났으면 한다.

토크쇼가 끝나고 집에 가는 관객들의 표정이 밝았다. “내내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핀치> 팀에게 “너무 좋았다. 이런 자리를 많이 만들어 달라. 또 참여하겠다”고 당부하고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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