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다, 그리고 보듬다 - 남과 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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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다, 그리고 보듬다 - 남과 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진전

조아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만나다, 그리고 보듬다

사진에 감정을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진에 특정한 ‘목적’을 담는 건 어렵지 않다. 모든 사진에는 목적이 있다. 하늘이 예뻐서 소장하고 싶었다든가, 음식을 보여주고 싶었다든가. 굉장히 영혼이 없어 보이는 SNS용 사진일지라도 항상 목적은 존재한다. 하지만 목적이 보이는 사진은 그럭저럭 만들어 낼 수 있다해도 감정이 보이는 사진은 찍기가 쉽지 않다.

거기다 만약 내 사진의 목적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고발하는 것이고, 고발하는 과정에서 피사체와 깊은 대화가 필요한데, 그 피사체가 쉬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있고, 게다가 피사체와 나와의 관계가 썩 좋지만은 않다면?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 1층에서 열린 <남과 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진전 : 만나다, 그리고 보듬다>에 갔다. 일본인 남자 포토저널리스트인 이토 다카시가 북한과 남한의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정식 사진전 제목에는 ‘피해자’라는 단어가 들어있지만, 이 글에서는 생존자들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의미로 단어를 대체한다)을 찍었다. 이 전시를 처음 알았을 때 “대체 어떻게?” 라는 의문이 들었였다. 일본인 포토 저널리스트와 북한과 남한의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 전혀 어울리지 않고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혹시라도 만난다면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 같은 단어들의 나열이었다. 

전문 사진작가의 인물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표준렌즈라 통칭하는 35mm 렌즈로 상체가 나오도록 사진을 찍으려면 피사체의 코앞에 사진기를 들이대야 한다. 포토그래퍼는 사진을 찍기 전에 인물과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형성하고, 얼굴 앞까지 근접해 자연스러운 감정을 얻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일본인 포토저널리스트는 대체 어떻게 관계를 형성했을까.

의심의 시선을 가지고 들어갔지만

개회식과 사진전을 감상하기 위한 휴식시간 후, 3시부터 이토 다카시 포토저널리스트와 함께 하는 토크쇼가 진행됐다. 이토 다카시는 진행된 토크쇼에서 이러한 기록들을 남기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역시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시 내용 중에는 북한 생존자 14명의 인터뷰와 사진, 영상이 있다. 북한에 출입할 수 없는 한국인 저널리스트들은 도전조차 하기 힘든 기록물들이다. 자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이 귀중한 사진들을 기꺼이 공개하고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이토 다카시는 4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취재를 계속했다. 기록을 진행하는 와중에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나 자신이 일본인이고 남성이라는 입장을 늘 마주 대해야하는 취재였다.
피해자분들께서 저에게 분노를 강하게 표출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괴로워도 많은 일제 피해자들의 분노를 껴안고 가야 한다고 작정한 채 마음을 다잡고 들었다.”

사진 속 생존자들의 표정에는 아직도 아픔이 생생히 남아있는 듯했다. 사진 촬영 전에 충분히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일까, 눈 앞의 일본인에 대한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에 겪은 고통을 떠올리고, 증언하는 사람의 복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가까스로 탈출해 겨우 살아남아 북한에 정착하신 분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족의 손을 꼭 잡고 사진을 찍었음에도 영원히 털어내지 못할 기억이 드러나 보였다. 생존자들 본인 외에 다른 증거가 필요 없는, 살아있는 감정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전시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벽면에 걸린 사진과 영상, 피해 생존자들의 고통 섞인 증언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에 전체적인 전시 분위기는 그만큼 무겁고 숙연했다. 사진마다 함께 게시된 증언들은 하나같이 잔혹했다. 지금은 돌아가셨을 사진 속 생존자들의 모습은 관람객인 나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본이 저지른 일에 대한 문제 제기가 목적이었다면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로 어제 일과 같이 뚜렷하고 노골적이었다.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해야 하는 일은 과거에 일본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토 다카시는 이렇게 고된 취재를 하는 이유를 "결과적으로 더 나은 일본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이어 가해 사실을 잊은 나라에게 발전은 없으며 그 일을 교훈으로 삼아 같은 잘못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정의감만을 가지고 위안부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신뢰감을 주었다. 어쩌면 그랬기에 더 성심껏 감정노동을 해 가며 일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진에서 느껴지던 진실됨의 근원을 하나 들은 것 같았다.

진심이 드러난 사진들

사실 전시를 접하기 전에 일본인 포토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에 대한 은근한 불신이 있었다. “굳이 왜?”라는 생각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일본의 실수라는 주제로 취재할 수 있는 많은 다른 기삿거리들을 두고 굳이 한국, 그것도 북한의 위안부 문제를? 어쩌면 일본인 남성이라는 입장에서 취재했을 때 가장 화젯거리가 될 만한 문제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부에서 내부의 문제를 재발견 하는 것 보단 외부에서, 그것도 가해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재조명하는 쪽이 여러모로 훨씬 흥미로울테니까 말이다. 더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관심을 갖기도 더 쉽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나서는 의심을 조금 거두고 의도 파악을 그만두기로 했다. 무엇보다 그의 사진이 큰 역할을 했다. 피해자들이 렌즈를 바라보는 눈에서 느껴지는 감정들. 사진에 감정을 담으려면 우선 진실된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진중하게 다가가 교류를 통해 피사체가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적어도 진심이긴 했구나.

포토저널리스트의 사명감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현장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더 큰 힘에 의해 묻히고 사라질 수 있었던 일들이 사진을 통해 기록되고 세간에 알려져 큰 파장을 몰고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그랬고, 로버트 카파의 작품들이 그랬다. 사진이 가진 힘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분야가 아닐까. 전시장에서 대형 방송사의 카메라를 여럿 보았다. 이번 <남북 위안부 피해자 사진전 : 만나다, 그리고 보듬다> 역시 그런 효과를 가져오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 / 조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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