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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삶

<생각하다> 카테고리의 최신 기사

언니, 우리 이민갈까? 21. 고작 그 소속감

유의미

대학교 시절, 정말 들어가고 싶었던 봉사 동아리가 있었다. 경쟁률이 높아서 면접까지 통과해야 활동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정성껏 자기소개서를 써내고 저녁때까지 학교에 남아 면접을 봤고, 면접 때도 최선을 다해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해서 겨우 합격했다. 그렇게 들어간 그 동아리는 처음에는 정말 천국 같았다. 원하던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사람들도 모두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딘가 불편하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아리 엠티에 가서 그 이상한 느낌은 좀 더 선명해졌다. 준비된 프로그램이 다 끝나 자유시간이 되자 여성 회원들은 따로 마련된 방에 둘러앉아 사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한두 달쯤 활동한...

무거운 여자가 되면 18. 남자는 뚱뚱해도 괜찮다니

김현진

뚱뚱한 사람에 대한 혐오(펫 셰이밍)는 여남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인 것 같지만, 사실 세상의 시선은 뚱뚱한 남성에게 훨씬 너그럽다. 44, 55, 66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다 내 돈 내고 내 옷 사러 갔는데도 마치 그쪽에서 내게 옷을 팔아 준 듯한 고마움을 느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여성복과 달리 좀더 유동적이라 모욕을 느낄 일이 보다 적은 남성복 시장이 그렇고, 풍성한 몸집을 가진 남자는 있어도 날씬하다 못해 말라깽이가 아닌 여자는 후덕한 어머니나 할머니 역할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연예계가 그렇다. 무거운 남자들은 여전히 섹시하다고 여겨지며,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헐리우드 배우 중에도 비교적 뚱뚱한 편인 폴...

TV 언박싱 14. <신입사관 구해령>, 가장 거짓되고 가장 진실된

이자연

영화 <콜레트>는 인물의 정체성과 ‘이름’이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남편을 대신 해서 글을 쓰던 콜레트가 남편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자신의 이름을 적어버렸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타인과 확실히 구별되는 자기정체성을 느끼면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이름을 확인하고, 부르고, 또 그에 대답하는 과정은 결국 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는 일이 된다. 얼마 전 종영한 MBC <신입사관 구해령>은 노처녀인 채 사관이 되어버린, 조선시대 가부장사회에서 쓸모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구해령’의 이야기이다. 평소에 서책을 좋아하지만 연애 소설은 소...

이상한 나라의 영문학자 9. 백인이 아니라서

숙희

한국 대학에서 영문과 학부생이던 시절, 필수로 수강해야 하는 과목 중에 “고급영어글쓰기 1”과 “고급영어글쓰기2”가 있었다. 나는 성적을 후하게 주기로 소문 난 외국인 교수의 수업을 들었는데, 그는 우리 과에서 “머리 숱 많은 주드 로”로 알려진 유명인이었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첫 수업을 듣던 날 주드 로 2.0을 보고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그가 너무 젊었기 때문이다. 학계의 위계 질서나 풍토에 무지했던 나는 주드 로 2.0이 너무 똑똑해서 어린 나이에 박사학위도 받고 교수 임용도 (왜인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받은 줄로만 알았다. 지금 와서 깨달은 것이지만 주드 로 2.0은 아마 대학원생이었을 것이다. 박사논문을 쓰는 동...

답지 않은 사람들 시즌 2 6. ‘사회초년생’답지 않은 따금

유의미

어느 주말에 구로동의 한 카페에서 따금을 만났다. 실내에 야자수가 우거진 독특한 인테리어가 기분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카페였다. 따금은 페미니스트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안경을 쓰고 운동화를 신은 편한 차림이었다. 그는 질문마다 의도를 섬세하게 되물었다. 대답하기 전에 매번 추임새처럼 ‘이런 말 해도 되나?’ 하며 망설이는 시늉을 하지만, 결국 할 말은 다 하고 마는 점이 재미있었다. 따금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이따금 변화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가 ‘따금’이잖아요. 대학교 때 교수님이 ‘너는 학교를 이따금씩 나오는구나.’ 하셔서 같이 웃다가, 갑자기 그 말이 마음에 들어서 ‘어, 따금? 괜찮은데?’하며...

무거운 여자가 되면 17. Do / Don't

김현진

무거운 여자는 집에 한 사람만으로 족한데, 내가 요즘 정신과 약을 바꾸면서 그에 잘 적응하지 못해 매일 하던 아침 공복시간에 30분간 달리기, 50분간의 근력 운동, 50분간 필라테스, 2만보 걷기라는 엄격한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면서 살이 도로 조금 찌고 스트레스를 받는 와중에 우리 집에 무거운 여자가 한 사람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 두 마리, 친한 언니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내가 18평 정도의 집에 살고 있는데 개 1마리가 비만, 나 역시 과체중, 언니 역시 고도비만이다. 무거운 존재가 집에 너무 많다. 나는 요즘 그나마 나아진 상태라 침대에만 들러붙어 있는 시기는 지났지만, 키도 170센티미터가 훨씬 넘는...

언니, 우리 이민갈까? 19. 가장 구체적인 두려움

유의미

한국에만 살아봤을 때는 외국에 나가면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책을 읽고 신문을 보며 관심 분야라면 어떻게든 찾아보니까, 외국이라고 해도 대단히 새로울 것도 특별히 더 배울 것도 없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와보니 읽거나 들어서 이미 다 알던 이야기라도 와서 직접 온몸으로 경험하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한국보다 땅이 엄청 넓다더라.’ 하는 말은 아무리 걸어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던 날의 얼얼한 발바닥과 상점 하나 보이지 않는 텅 빈 거리의 막막한 기분으로 생생해졌고, ‘겨울이 엄청 습해서 춥대요.’하는 말은 삼 일째 마르지 않던 면생리대와 겨우내 콧속에 머금던 차고 축축한 곰팡이 냄새로 기억이 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영문학자 8. 무엇이 문학인가, 무엇이 인간인가

숙희

미국에서 영문학 박사과정 3년차가 되면 보통 구술 시험을 본다. 학교마다 시기나 방법은 조금씩 다른데, 대체로 텍스트를 20권 전후로 추려 목록을 몇 개 구성한 뒤 한 학기 내내 공부를 한다. 그 내용으로 학기 말에 2시간 정도 교수 세 명과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이 구술시험을 통과해야 논문 계획서 (prospectus)를 쓰고 논문 쓰기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논문을 쓰기에 앞서 그 동안 들었던 수업과 자신의 연구를 체화하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시험이기에, 많은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목록의 내용이나 구술 시험에 들어가는 교수 위원회를 구성할 자유를 준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16세기 문학의 제국...

무거운 여자가 되면 16. 살만큼 붙은 편견에 대해

김현진

‘무거운 여자로 살기’에는 비용도 많이 들지만,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욕 같은 것들. 그런데 모욕감처럼 ‘KIBUN'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무거운 여성이라는 이유로 실제 피해를 입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물론 ‘무거운 남성’도 있겠지만, 그들이 받는 피해는 무거운 여성보다 훨씬 경미하다. 무거운 남성은 불룩 나온 배도 ‘인격이 훌륭하다’며 올려쳐주는 농담을 받고, 곰돌이같다. 듬직하다, 풍채가 좋다 등 사회에서 온통 ‘뚱뚱하다’를 돌려 말해 주느라 바쁘다. 물론 무거운 여성은 그런 배려를 받지 못한다. 미국 웨스턴미시건 마크 로흘링 교수의 연구 결과, 직장에서 무거운 여성이 남성보다 심한 차별을 받는다고 한...

허윤, 오혜진의 백일몽 5. 혁명이 끝난 자리에서

허윤

백일몽 [day-dreaming, 白日夢]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 끝나지 않았던 운동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사람들은 ‘운동’은 이미 끝났고, 신자유주의가 대학가를 지배했다며 혀를 찼다. 그 말은 분명 일부 사실이었다. ‘한총련’으로 상징되었던 대규모 학생운동은 이전만큼 동원력을 가질 수 없었고, 매년 4월 30일에서 5월 1일로 이어지는 민중대회에도 대학 단위의 대오는 적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학교 본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삭발식을 하던 언니들의 모습을. 갑작스레 인상된 등록금 문제를 중심으로 교육 투쟁이 진행되고 있었고 학생회장단은 한 달간 단식투쟁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때 천막을 지키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며...

언니, 우리 이민갈까? 18. 뭐 해 먹고 살 거냐면

유의미

커튼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뜨거운 볕이 얼굴에 내리쬔다. 그 눈부신 열기에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조금 열고 커튼을 확 젖히면, 태양 빛이 방안으로 한꺼번에 쏟아진다. 함께 침대에 누워있던 고양이들은 신이 나서 한달음에 뛰어올라 창가에 앉는다. 저 뜨거운 태양 덕분에 뉴질랜드는 겨울에도 때때로 덥다. 물론 흐리고 비가 오는 종일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는 날도 있지만 말이다. 밤에는 차가워서 맨발로는 밟을 수도 없었던 거실도, 날이 밝으면 따뜻하게 데워진다. 시리얼, 요거트,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고양이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워준다. 틈틈이 던져 넣어둔 빨래가 꽤 쌓인 게 보이는 날에는 세제를 넣고 세탁기를 돌린다. 인간의 머리카락...

답지 않은 사람들 시즌 2 5. ‘대학생’답지 않은 자몽

유의미

인터뷰에서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내용을 미리 준비한다고 달라질 게 없는 것 같더라고요. 원래 말을 길게 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냥 최대한 길게 말하자고 다짐하고 왔어요. 서초구의 한 복합문화공간 안에 위치한 활기찬 분위기의 카페에서 자몽을 만났다. 자몽은 커피를 잘 못 마시지만 새로운 카페에 가보는 걸 좋아한다며, 도착한 카페에서 차가 들어간 음료를 주문했다. 이내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자몽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한 태도로 열심히 답해주었다. 떠오르는 대로 답하기보다는 질문을 듣고 언제나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비로소 신중하게 입을 뗐다. Q. 어제의 사소한 잘한 일이 있나요? A. 어제는 강남역에서 친구를 만나고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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