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해?

생각하다임신과 출산임신중단권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해?

오래

일러스트레이터: 해일

친구A : ㅇㅇ 연략 가능하면.칼답 부타쾌요

나 : 워오

나 : 칼답

친구A : ㄱㅅ

친구A : 연락 가능한 상황이니?

나 : 응 전화할까?

친구A : ㄴㄴ. 나 사무실 ㅠㅠㅠ

나 : 아하

친구A : 응급상황이발생했거든

나 : 무슨 일이에요

친구A : 임신함

친구A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 아

4일 간의 명절 연휴를 하루 앞둔 오전 열시 반이었다. 친구A는 오전 일곱시 반에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았고, 개인 사정 상 당일에 임신중절 수술을 해야 했다.

수소문

회사 업무를 뒷전으로 하고 서둘러 이곳저곳 알아보기 시작했다. 오전 내내 친한 페미니스트 친구들에게 카톡과 문자를 돌렸다. 공적인 곳에서 믿을만한 정보를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몇몇 여성주의 단체에도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공식적으로는 알려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한 곳은 '낙태죄' 관련 법률 지원만 가능하다고 했다. 열심히 연락을 나눌수록 짜증과 화가 밀려왔다. 왜, 수소문을 통해 정보를 얻어야 하는가. 내 몸에 대한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하고자 할 뿐인데 기본권은 다 어디 갔나? 친구A는 졸지에 동의할 수 없는 사회적 사념(邪念)으로 인해,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 하는 국민이 되었다ㅡ헌법 제 36조 3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ㅡ. 혹은 약 2주 전부터 세포 분열을 시작한 그 어떤 존재가 친구A를 대신하여 국가의 보호를 충실히 받고 있거나.

그 와중에 지인들의 대답은 대부분 이러했다. 생각보다 수술하는 병원이 많지만 전화로는 대답을 꺼려하니, 번화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개인이 운영하는 산부인과를 직접 방문해보라. 그러나 막상 수술이 가능하다고 해도 불필요하고 억울한 감정 소모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를 마주하기 십상이니 당사자인 친구A와 또다른 당사자인 친구A의 애인에게 무턱대고 아무 곳이나 가보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당사자들은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충분히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신뢰할 수 있는 병원을 찾고 싶었다.

한 시간쯤 질문을 뿌리니 실체 없던 수술에 대해 몇몇 단서를 잡을 수 있었다. 처음 알게 된 병원은 여성주의 단체의 활동가와 어느 한 친구가 동시에 소개해주었다. 친구의 친구가 수술 경험이 있는 일산의 어느 병원이었고 수술비는 40만원 가량이 들었단다. 다만 친구A의 직장과는 멀어서 오늘 중으로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에 정보를 조금 더 모아보기로 했다. 그래도 나름 믿음직한 후보가 생겨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수소문한 병원은 친구의 직장과 가까운 동네의 개인 산부인과 한 곳이었다. 오래된 경력이 있는 산부인과였고 시간 상으로도 충분히 수술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금 멀지만 일산보다는 가깝고 여성주의 치료를 추구하는 어느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도 소개받았다. 해당 병원에서 수술이 어렵더라도 여성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다른 병원을 추천받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렇게 병원 후보는 세 곳이 생겼고 문제는 나름 차근차근 해결이 되는 듯 했다. 마침 점심시간을 맞은 친구A는 애인을 만나 병원에 전화 문의를 돌렸다. 그런데,

1차 절망 - 일산의 어느 병원 : 소개받았다고 얘기했음에도 단호하게 수술 불가 통보.

2차 절망 - 동네의 개인 산부인과 : 의사의 휴가로 다음주에나 가능.

3차 절망 -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 : 산부인과 진료가 없어 도움을 줄 수 없음.

 허망하게 점심시간이 끝나고 말았다. 다른 병원을 서둘리 찾아야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불안해하는 친구A와 애인이 더 걱정이었다. 그들은 수화기 너머의 건조한 반응을 마주할 때마다 한층 더 우울해졌고, 좌절감과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난 이제 수술 받을 수 없을 거야’. 친구A는 괴로워했다.

안 된다

정말 이렇게는 오늘 수술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들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우선 친구A 직장 근처 번화가의 산부인과 중 후기가 괜찮은 몇 군데를 골랐고,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혹시 낙태 수술 가능한가요?” 물으니 대답은 “안 된다” 혹은 “(가능하다는 대답 없이) 오셔서 초음파 검사부터 해보시라”였다. 우려했던 대로 전화를 받는 사람들의 태도도 기분이 나빴다. 뭔가 자연스럽게도 내가 어마어마한 을의 입장에서 어렵사리 부탁을 하는 모양새였고, 전화를 하는 나도, 전화를 받는 상대방도 임신중절수술이 무슨 지하세계의 마약 밀거래인양 쉬쉬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차례 전화 끝에 나름 친절하고, 편견 없는 듯한 말투에, 초음파 검사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며, 원장님 실력이 좋아 잘 해줄 테니 몇 시까지 방문만 해달라는 답을 들었다. 수술에 대해 간단히 물어도 대답을 꺼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역시 오늘 수술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이유를 물으니 명절에 맛있는 음식 많이 먹어야 하는데 입덧 없냐며.아하...? 찾았다!

게다가 친구A의 구글링에 다르면 해당 산부인과 원장님은 여성 노숙인 및 성매매/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료 봉사 및 진료 후원을 줄곧 해온 이력이 있으셨다. 친구A와 나는 비로소 안도했고, 친구A의 애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성들이 서로 의지하고 연대해왔다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저녁, 친구A는 병원 문을 연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수술을 마치고 눈을 떴다. 수술은 마취 후 흡입술로 진행되었으며, 특별한 수술 후유증은 없지만 생리통처럼 배가 아플 수는 있다고 했다. 우리는 다같이 맛있는 함박 스테이크를 먹으며 회복을 응원했다.

산 넘어 산

이렇게 스펙타클한 하루를 만든 과거의 그 날, 친구A 커플이 흔히 말하는 '노콘섹스'를 한 것은 아니었다. 콘돔이 자궁 내에서 미끄덩 빠져버렸을 뿐. 그리고 친구A가 사후피임약을 먹지 않은 이유는 ‘신체적/정신적 변화로 나타나는 흔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 정도로 단순하지 않았다. 피임약 처방을 받으려면 전문의 진료와 처방전이 필요한데 그 당시는 일요일이었고 월요일엔 출근이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서 처방을 받더라도 성관계 후 빠른 복용이 약효에 매우 중요한 피임약을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지나서야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친구A의 애인은 병원에 동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친구A는 본인이 ‘사후피임약을 받으러 혼자 산부인과에 온 젊은 20대 여자’로 패싱되는 것도 불쾌할 것 같았다고 했다. 또한 친구A가 20살에 처음 접한 산부인과는 고도로 상업화 된 장소였고 아직도 끔찍한 경험으로 남아있어서 결국 병원에 가지 않았단다. 약국에서 사후피임약을 구매할 수 있었다면 분명히 먹었을 테다. 이런 땅에서라면, ‘이성 간 섹스할 땐 산부인과 진료시간 따져보기 운동본부’라도 차려야 할 판이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현실이 이렇다. 총체적 난국이다.

친구A는 페미니스트였고, 나는 친구A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려 노력했던 시간들이 있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친구A가 여러 해에 걸쳐 연습하고 익힌 가치관에 따르면, 자신의 신체에 대해 결정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부당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고, 무엇이 불합리한 편견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은 친구A와 나는 꽤나 막역한 사이이고 페미니즘을 함께 공부하며 우정을 다져 탄탄한 관계인데도 사건이 있던 당일, 내게 임신 사실과 수술이 필요한 상황을 이야기하기까지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는 거다. 나름 당연하게 소식을 전한 줄 알았고 상당히 의연하게 연락한 줄 알았는데, 나에게조차 이야기하기 어려웠다니. 나로서는 굉장히 놀라운 사실이었다. 친구A에 따르면, 타인에게 알리는 순간 더 이상 사적 영역에서 머무는 사건이 아니라고 느꼈단다. 언어화하여 공적 영역으로 넘어가면 사적인 힘으로 덮어둘 수 없게 된다며. 게다가 사후피임약을 먹지 않은 본인이 한심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섣불리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이야기 하길 정말 잘 했다 느꼈고 현실적인 지원과 심적인 위로가 참 고마웠다 했지만. 아, 사회화 된 무의식의 영역은 역시나 여성에게 해롭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임신중절 수술을 할 수 있다. 국가의 입장에서 불법인지 합법인지는 그 다음 문제다. 명확하고 올바른 정보가 제공되지도 않고 40만원부터 100만원까지 부르는 게 값인 수술비용은 물론 비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 몸의 변화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사회는 일련의 고통과 부정적인 감정을 개인에게 부과하며 모든 책임을 여성의 몸에 지우려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위로와 용기와 응원을 건네받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덧붙여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느끼고 마는 일련의 고통과 부정적인 감정들은 결코 누구 하나가 떠맡을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신체에 종속된 변화라 한들, 주체는 두 사람이고 방해공작이 많고 많더라도 몫을 공평히 나눠가지려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또한, 분명히 지지받아 마땅한 존재의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결정을 앞두고서, 위로와 용기와 응원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혹은 건네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꼭 함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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