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임신 중절이 죄스러운 일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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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임신 중절이 죄스러운 일이었나

오래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죄책감?

가난하다는 것 때문에... 임신을 하게 됐는데 낳을 수가 없더라고요. (...) 지금 같으면 당연히 안 하죠. 그때는 너무 어렸고 가난했고, 또 그게 죄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죄를 지으니까 얘기를 못하겠더라고요. 부모한테도 형제한테도 그런 얘기를 안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도 얘기를 안 했어요. - 43p

아무래도 제일 큰 것은 나에 대한 실망이요. 그래서 막 자학 비슷한 걸 많이 했는데 그 한 달 쉬는 기간에는 지금 생각할 때 드는 느낌은 자학도 좀 너무 내 죄책감 면하려고 나를 불쌍하게 만들고 싶어서, 내가 그렇게 하면 내가 용서받을 수 있다 생각해서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렇게까지 생각은 안 하는데요. 그래도 그거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 101p

특별히 몸이 아픈 데도 없었고 심리적으로도 뭔가 우울하거나 내가 죄의식이 생기거나 그런 마음도 전혀 안 들었어요. 저는 그게 더 걱정이고 이상했던 거예요. 나는 왜 어떤 죄의식이나 미안한 마음이나 그런 동요가 없을까, 그리고 어쨌든 이게 모성애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까? 아무 변화가 없는 제가 오히려 더 의아했죠. 이게 정상일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뭔가 끝내고 잊어버렸거든요. 더 생각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생각할 일도 없었고요. - 103p

저는 낙태 경험이 잊혀지는 건 안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좀 이거를 경험하면 평생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아이한테 빌고, 죄지은 사람들처럼...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잊고 살아야 하는 건 맞는데. 아이의 기억을 지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10대들한테 피임 똑바로 하라고 말해 주고 싶고 중절이 있는 친구들에게는 죄의식을 갖기는 해야 될 것 같은 마음도 있긴 한데... 죄인처럼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 117p

 ‘25명의 낙태에는 25개의 사연이 있다’며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펴낸 <있잖아… 나, 낙태했어>에는 임신 중절 수술 경험이 있는 20대에서 50대의 여성들의 목소리가 있다. 죄책감을 자연스레 느끼는 여성,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데에 의문이 드는 여성, 심한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자학을 하던 여성, 죄인처럼 살지는 않더라도 평생 죄의식은 가져야 한다는 여성 등. 

그리고,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에서는 한복집에 둘러 앉아 고스톱을 치는 중장년 여성들의 대화 장면이 나온다. 

“세 번 했지”, “네 번 했나? 아닌가, 한 번 더 했나?”, “ㅇㅇ이는 열일곱 번을 했다잖아.”, “그 때는 다 그랬어”. 

남의 이야기인 듯 덤덤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중장년 여성들은 당시 국가는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고 있었고 수술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다들 경험하는 일상적인 일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당시에는 ‘낙태’ 혹은 ‘임신 중절’이 아니라 ‘유산’이라고 일컬었단다. 중장년 여성들의 대화 씬을 찍고자 감독님의 어머님이 동네 언니들을 부르셨는데, ’유산한 거 이야기하자’, ‘우리 가족 계획한 거 이야기하자’고 하셨단다. 그렇게 ‘유산’으로 불리던 임신 중절 수술은 당시 ‘가족 계획’에 따른 피임의 한 종류로 여겨졌다고 한다. 이미 임신을 했는데, 피임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떵떵 거리며 외치는 생명 존중 사상은 당시 ‘가족 계획’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태아의 생명을 위한다던 국가는?

우리들이 숱하게 들어 온 ‘생명 존중’은 사실 ‘지금’에나 그렇다. 그래서 (물론 나이에 따라 가치관이 뚝딱 나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낙태’에 대한 죄책감이 보이는 대개의 양상도 쉽게 이해가 간다. 같은 시대를 거쳐도 모두 다르게 소화하는데 심지어 국가 정책이 오락가락 하는 사회 속에서는 오죽 다를까.

해방 이후 한국에서는 다산, 특히 아들 출산에 대한 요구가 만연했고, 총선을 대비하는 다른 목적이 더해진 정부는 적극적으로 출산을 장려했다. 그러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피임약 수입 금지를 해제하고 피임약의 국내 생산과 판매를 허용하는 등 산아제한과 가족계획 정책이 시작된다. 이러한 국가적 정책은 매우 적극적으로 행해졌는데, ‘우리집 부강은 가족계획으로부터’, ‘덮어 높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세 살터울 셋만 낳고 35세 단산하자’ 등의 표어가 대표적이다. 임신 중절 수술은 여전히 불법이었고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았지만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중단하는 수단으로 곧잘 활용되었고, 정부는 ’월경조절술’이라는 이름으로 비용을 지원하기도 했다. 심지어 1975년 대한가족계획협회에서 펴낸 정부간행물 ‘가족계획 홍보사업 전략을 위한 조사연구’에서는 ‘30이 넘어서 배가 부르면 꼴불견’이라는 식으로 사회 인식을 바꾸는 것이 매우 효율적이라는 제안도 보인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대두되며 그 양상이 180도 바뀌어서는,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며 종합대책으로 불법 낙태 단속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 때에도 사회 인식을 바꾸려는 정부의 노력은 활발했고, 영부인 및 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2005년 전국여성대회에서는 ‘결혼은 선택이 될 수 없고 출산은 여성의 창조적 의무’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비슷한 ‘노력’으로 최근에는 지역 별 가임기 여성 수를 나타낸 지도를 공개하기도 했다. 어처구니 없는 인식은 역사가 깊다. 국가는 생명 존중 혹은 윤리적 가치에 따른 판단으로 임신 중절 수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 조절에 맞는 정책을 펼치며 인구 조절의 수단으로 여성을 바라본다.

인공 죄책감

 2000년대에 어린이 및 청소년이었던 나는 정부가 펼치는 저출산 종합대책의 대상이었다. 나름 정기적으로 있었던 성교육이었음에도 자세한 기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남자 아이들이 운동장에 돌 주우러 갔을 때 생리대를 팬티에 붙이는 법을 배웠던 것을 빼면 학창시절 받은 성교육은 대개 태아를 위한 교육이었다. 낙태 수술 중 태아가 도망다니는 유명한 영상을 보거나, 혼전 순결 캔디를 나눠받거나. 임신 중절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을 하며 ‘태아의 발’ 뱃지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몇몇 동창들에게 물어도 기억에 없다고들 하는 것을 보니 정기적인 시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뱃지는 손발이 형성되는 시기인 10주 된 태아의 발을 실제 크기로 만든 모양이었다. 나에게 성교육 시간은 다양한 방법으로 태아의 소중함을 어필하는 시간이었다.

아일랜드는 유럽에서도 임신 중절 수술이 모든 경우에 금지 된 극단적인 나라였다. 2012년 말, 산모의 건강과 생명이 위험할 경우에 한해 임신 중절 수술을 허용하는 것으로 법안이 개정되었지만, 그 전까지는 한 해 4,000~5,000명의 아일랜드 여성들이 영국으로 건너가 수술을 했다고 한다. 비교적 자유로운 이미지인 아일랜드가 그토록 강경하게 임신 중절 수술을 금지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웠던 건, 영국의 산부인과에서 임신 중절 수술을 앞둔 여성 중 죄책감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여성은 모두 아일랜드 출신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죄의식은 자연 발생적인 것은 아니다. 낙태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여성의 낙태에 대한 느낌은 전적으로 그녀의 주변 환경과 사람들이 낙태를 대하는 태도에 의해 조건 지어진다고 말한다. 만약 사람들이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하면 죄책감을 느낄 것이고, 낙태는 괜찮은 것이라고 하면 그런 의식을 수용할 것이라는 것이다.(중략)

메리 케니(Mary Kenny)는 낙태 경험으로 인해 여성은 영원히 정서적으로 상처받는다는 연구가 있는 한편, 다른 연구는 낙태는 머리를 자르는 것만큼이나 사소한 행위라고 주장한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일반적으로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경험은 개인들의 다양성만큼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 99p [재인용]

흔히 임신 중절 수술을 이야기하며 태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윤리적인 잣대를 세울 때, 여성은 생명과 삶이 삭제된 채 태아의 모체로 호명된다. 그로 인해 임신 중절 수술을 택하는 여성은 사익을 선택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묘사되는데 이러한 관점은 국가 정책과 더불어 사회에, 그리고 우리에게도 자리잡고 있다. 일평생 페미니스트로 살아 온 친구도 임신 중절 수술 후 알 수 없는 자책을 하고 만 것처럼 말이다. 태아 생명의 존엄성마저 국가는 필요에 의한 근거로 활용하고 있을 뿐인 사회에서 우리는 태아에 대한 감정을 언제쯤 투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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