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반대하세요?
대선 투표 얼마 전, 친구와 술을 먹다가 대선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자 친구는 혹시 그 토론회 때문이냐고 물었다.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문재인은 홍준표가 동성애에 반대하냐는 질문에 “그럼요”라고 대답한 일을 묻는 거였다. 맞다고, 그게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더니 친구는 정치적인 판단으로 그렇게 대답할 수 있지 않냐고 내게 다시 물었다. 친구는 짧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말이 길어졌다.
나는 그게 정치적 판단으로 가능한 발언의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해. 성적 지향을 근거로 어떤 차별도 받아서는 안 된다던 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이 몇 년 전의 입장과 다르게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했어. 그게 문재인의 소신 발언이어도 문제고, 정치적 판단에 의한 전략적 발언이어도 큰 문제야. 말도 안 되는 문장이기도 하고, 지지율 1위 대통령 후보로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런 발언이라니.
트럼프가 당선된 바로 다음 날 미국 전역에서 성소수자 혐오 사건이 일어나 피해자가 속출했고, 많은 사람은 자신의 존재에 위협을 느꼈어. 몇몇 국민들에게 트럼프의 당선은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해도 된다는 근거가 된 거야. 많은 사람들이 토론회가 끝나고 울었고, 절망했고, 죽고 싶다고 했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정체화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인 그 기간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을 탓하고 왜 이럴까 묻지. 사회의 테두리 밖에서 그 기간을 이겨내고 가까스로 땅을 딛고 섰는데 지지율 1위 대선 후보라는 사람이 토론회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은 거야.
모든 성소수자가 힘든 과정을 겪었다는 것도 아니고, 힘들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니야. 아닌데, 성소수자의 인권을 부정한 그 발언의 배경이 그렇다는 거야. 공식적으로 자신의 인권,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거지. 그런데 이게 더 큰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성소수자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거야. 성소수자의 인권은 부정한 것 알겠는데, 그럼 장애인의 인권은? 여성의 인권은? 청소년의 인권은? 임신부의 인권은? 소수자의 정체성을 근거로 인권을 부정한다는 건, 인권의 대상을 선별하겠다는 거야. 너는 이런 정체성이니까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고, 너는 저런 정체성이니까 인권을 보장받지 않아도 되고. 그런 인권 의식을 가진 사람을 나는 절대 지지할 수 없어.
어느 퀴어 퍼레이드 사진 중 세월호 리본을 가방에 매단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분들이 관장에 앉아 계신 뒷모습을 보았다. 이런 연대가 단지 소수자의 처지를 아는 사람들끼리 돕는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건 누군가가 인권을 보장받지 못 하는 사회라면 그건 결국 나의 문제이기도 하고 너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보장받고 있는 인권에 대한 근거가 사라진 사회에서 어떤 안정감을 가질 수 있을까.
“낙태, 합법화할 것인가?”
사실 나는 임신중절을 둘러싼 논의에 큰 관심이 없었다. ‘낙태, 합법화할 것인가?’ 혹은 ‘태아의 생명이 중요한가, 산모의 선택이 중요한가?’ 따위는 지루한 질문이기도 했고, 결혼이나 임신은 계획도 흥미도 없었다. 무의식적으로는, ‘동성애 찬반’처럼 당연한 것을 두고 이상한 말이 많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친구의 임신중절 수술 경험을 함께 겪으며 내 게을렀던 자세를 반성했다. 내가 반성했다는 건 모든 시위에 참가하지 않았다거나 논의의 장에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주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나의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이건 논술의 주제도 아니고, ‘가족계획’도 아니고, 인권이 부정당하는 현실이었다. 선별된 생명의 인권만 보장받는 현실에서 이건 누군가의 몫이 아니라 모두의 몫이다.
기존의 논의에서 여성의 생명권이 삭제되고 태아의 생명권만 보장된 것이 가장 대표적인 문제였지만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법에서는 배아, 태아, 영아, 사람, 사체에 대한 보호법익이 다르고 그에 따라 형량이 각기 다르게 책정되어 있다. 상황에 따라 법적 인격권과 생명권이 인정되는 시점을 다르게 판단하며, 이러한 판단은 모체 혹은 사회와의 관계보다는 의학적 조건에 좌우된다. 어떤 생명이 어떤 이유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그 판단은 누가 하는지 모를 일이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임신 24주 이내이며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가 있다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배우자의 동의는 부득이한 경우 생략할 수 있고,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경우 친권자, 후견인,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갈음할 수 있다.)
시행령 제15조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은 ‘연골무형성증, 낭성섬유증 및 그 밖의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질환’으로, ‘전염성 질환’은 ‘풍진, 톡소플라즈마증 및 그 밖에 의학적으로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전염성 질환’으로 허용 가능한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1973년 제정된 시행령이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에 유전성 조울증, 유전성 정신박약, 현저한 범죄경향이 있는 유전성 정신장애 등을 포함하다가 2009년 개정된 결과이다. 이러한 의학적 판단의 근거가 어떠한지, 과연 윤리적인지 또한 모를 일이다.
“저는 결혼 안 할 건데요?”
성소수자 운동은 당사자성이 꽤나 강해서 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하고 있으면 ‘너 동성애자야?’하는 말을 듣기도 하고,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면 동성애자겠거니 생각하곤 한다. 송어축제에 참가한다고 송어되는 것도 아니고 튤립축제에 구경간다고 튤립되는 것도 아닌데 꼭 그런 반응들이 있다. 그런데 이 운동의 당사자성이라는 게 그렇게나 간단한 것은 아니다. 당사자성이 약해도 문제요, 강해도 문제다. 영화계에서 성차별을 느껴본 적 없다는 김민희의 발언이 놀라운 것을 보며 본인의 경험한 것을 소화하기 나름이구나 싶고, 당사자마저 인권 감수성이 약하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한편, 본인은 성소수자가 아님을 밝히면서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심상정을 보며 당사자가 아닌 사람의 지지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느낌과 동시에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은 성소수자겠거니 여기는 경향을 더욱 짙게 만드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는 것이다. 의도와 달리 비성소수자라 커밍아웃 하는 것도 권력을 얻는 과정일 수 있으니. 그럼에도 이런 지지가 많아지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소수자의 인권은 결코 당사자만의 노력으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지점도 있고, 당사자가 아닌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 달 전, 페미니즘 관련 강의를 듣던 도중 한 남성이 강사에게 질문을 했다. 본인은 남성인데 페미니즘을 접하고 생각이 많아졌다며, 남성으로서 어떤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했다. 질문자는 (물론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운동은 아니지만)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할 여성의 목소리를 자신의 주장이 뺏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다. 강사는 들어야 할 때 듣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남성도 페미니즘의 당사자이므로 모든 사람의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례로 부적합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대부분의 운동에서 당사자성이 비슷한 위치일지도 모른다. 사실 모두가 당사자성의 일부분을 공유한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잣대는 모두에게 적용되고, 평가 결과에 따른 정체성에 걸맞는 역할을 요구받는 것 역시 양쪽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그러나 결국 보장받지 못하는 여성의 인권이 있고, 페미니즘은 그 잣대부터 현실의 인권까지 모든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는 장애인도, 군인도, 퀴어도 모두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을 보장받을 대상이 선별적이지 않다는 것은 개개인의 인권에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인권에는 이유가 없다. 그런데 어떤 주체가 인권을 보장받을 대상을 선별한다면 그 때부터 나의 인권과 너의 인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병역 의무가 없으니 군인의 복지와 관련이 없다거나, 나는 결혼 생각이 없으니 동성 결혼 합법화에 의견이 없다거나, 나는 비장애인이니 장애등급제에 관심이 없다거나, 나는 임신 계획이 없으니 임신중절을 둘러싼 논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수록 ‘나’의 인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병역 면제자도 군인의 복지에 관심을 가질 이유, 헤테로도 동성 결혼 합법화에 관심을 가질 이유, 비장애인도 장애인의 이동권에 관심을 가질 이유, 동성애자도 임신중절권에 관심을 가질 이유 모두 개개인의 인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