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천주교인입니다. 저는 서명운동을 반대합니다.

생각하다임신과 출산임신중단권

저는 천주교인입니다. 저는 서명운동을 반대합니다.

Jane Doe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저는 뼛속부터 천주교인입니다. 부모님 두 분도 성당에서 만나시고 결혼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가지자 마자 아버지는 매일 아침 새벽 미사를 나가셨습니다. 당시에는 성당이 많지 않았어요. 먼 길을 버스로 움직였어야 했기 때문에, 몸이 무거운 엄마는 집에서 매일 기도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아직도 저를 포함한 동생들을 위해 기도하러 조용히 매일 아침 새벽 미사를 나가시고요.

제 세례명도 부모님이 다니시던 성당 수녀님 세례명을 본땄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절 잉태하고 계셨을 때부터 많은 기도를 받기도 했어요. 어렸을 적 병을 앓는 바람에 조금 걱정스러운 상황도 있었지만 많은 분이 기도를 해주신 까닭에 완쾌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 관계는 대체로 순탄했습니다. 성인이 되고 보니 지극히 순탄했다는 걸 느낍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렇듯 우리 모두 시기마다 개인적인 성장통을 앓았습니다.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때마다 가족 모두가 기도에 매달렸었습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이 문제를 피하지 않으려고 몹시 애썼습니다. 그래서 많은 상처도 입었습니다.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거라며 그만 포기하려고도 했었어요. 기도하면서도 도저히 기도할 힘이 안 나서 포기하고 싶었죠.

그래도 다행히 관계를 개선할 몇 번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서로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용서하게 됐습니다. 완전하진 않더라도, 조금씩.

12월 4일, 천주교 주도로 전국에서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천주교인이지만 이 서명운동을 완전히 반대합니다.

같은 사건에 하느님의 딸로서 갖는 시선은 천주교회가 알려주었습니다. 그동안 전 이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믿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삶에 대한 원동력과 믿음, 그리고 사랑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살아왔어요.

제가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제 옆에 하느님이 계신다고 느낄 수 없었다면, 여지껏 제가 생을 잘 이어올 수 있었을까요? 아뇨. 어머니가 10달을 품어 내게 숨을 불어넣어 주셨더라도 제가 그 삶을 원치 않아 언제든 저버리려고만 했다면 이렇게 살아올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희망을 잃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언제나 깨어 기다리라는 말씀을 24번의 대림을 통해서도 배워왔습니다. 성경이 제게 '너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 것이고, 입시 실패를 할 것이고, 수많은 절망을 하며 살 것이고, 삶을 살면서 수많은 자살의 유혹에 빠질 거'라는 구체적인 말은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모든 유혹을 이겨냈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제가 지은 죄에 대한 용서도 구했습니다. 용서를 아직 청하고 있는 일도 많습니다만, 아무튼 아직 희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속에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해, 신이 도모하려는 선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도록 은총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 역시 교회가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가 알려주려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큰 관심을 가지고 긴급하게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생명은 스스로 보호할 힘이 없는 약한 생명이다. (중략) 가톨릭 교회가 강한 반대를 표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보호되어야 한다는 기본입장’이라고요.

토론 못 하는 교리 교육

주일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어렸을 적 교리 시간에 ‘낙태란 해서는 안되는 죄악’이라는 내용을 배웁니다. 그때 학생들은 아무 주체의식 없이 받아들였었죠. 여성인 저조차도 낙태에 관해서는 성인이 된 이후에 관심이 생기더군요. 생명이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다는 교리를 가르쳐준 주일학교 교사 분들에 대한 기억을 이번 기회에 더듬어봤습니다. 반감이 있었지만 숨기고 전달하셨는지, 아니면 그분도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계셨는지 아직 잘 모르겠네요. 그러나 내년도 교리를 준비해야 하는 교사로서 저는 이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2015년 한국에서 열리고 교황님께서도 참석하셨던 ‘WYD(World Youth Day)와 KYD(Korean Youth Day, 한국 청년대회)’ 중 성교육 세션이 있었지요. 피임 도구는 모든 생명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는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사용해서 안 된다는 내용을 배웠습니다. 콘돔도 사용하면 안 된다더라구요. 당시 대회장에 있었던 분들이라면 기억하시겠지만, 강사의 그 발언 이후 장내가 술렁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일어서서 저희와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토론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의 생각을 교리를 다루고 있는 분들의 귀까지 옮기는 것은 지금의 분위기로는 매우 어렵습니다. 기원 전부터 예수님의 가르침이 제자들에게 내려오던 방식이 오늘날 교회에도 그대로 머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절충해야 하는 사안에 관해서는 모두가 쉬쉬하고, 조금의 반발에는 ‘크리스천이라면 교리니까 받아들이세요.’ 와 같은 일방적인 대답만 들을 수 있을 뿐입니다.

낙태는 욕망의 연장이 아니다

이러한 내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저는 콘돔 사용을 전적으로 지지해오진 못했습니다. 위생상 콘돔 사용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평생 배워온 교리와는 맞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강연자의 말에 일정 부분 동의했습니다. 

천주교 교구에서는 청소년(여기서 청소년은 어린이/청소년/청년을 모두 포함)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 나이대가 비슷하신 부주임신부님을 배정해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평상시 알고 지내던 신부님과 KYD 때 받았던 교육의 내용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 강연자가 성관계 시 콘돔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황하며) 음… 교리상 그게 맞아요.”

“네.. 그 부분은 이해했습니다만, 도저히 낙태를 법적으로 제한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낙태를 하지말라는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이상입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과 같을 뿐입니다. 미워하는 것을 종교적으로는 죄라고 여길지 몰라도 법적으로는 미움으로 인한 행위만을 범죄로 규정하듯, 낙태가 생명을 경시하기 때문에 벌이는 행위기 때문에 처벌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낙태는 신체적 변화 때문에 생기는 다양한 변수를 감당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보호 행위라는 측면에서, 낙태죄는 현실적으로 무리한 처사입니다.”

그러나 매번 돌아오는 답의 요는 이와 같았습니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싶은 욕망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 결혼을 빨리하세요, 자매들.”

낙태는 욕망의 연장선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임신 중단을 취향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생명 수호가 그렇게도 중요하다면 임신 중절을 선택하려는 여성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함으로써 이미 약자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제가 체험한 예수님께서는 약한 사람의 편이셨습니다. 때문에 저는 천주교회가 약한 사람을 왜 더 강압하고 제한하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짐을 더 얹으려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성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선택을 존중하고 더 상황이 나아질 수 있도록 형편을 도와야 하는 게 교회의 역할이어야 합니다.

지금 교회는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운동을 펼치며 성경 구절을 인용해 생명 수호의 중요성에 대해서 역설합니다. 우리는 성경에만 얽매여서 하느님을 섬겨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분이 일상 속에서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을 우리가 느꼈기 때문에, 그분께 더욱 믿고 의지할 수 있었죠. 일상을 사는 여성은 결코 성경에만 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천주교 여성 신자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부디 천주교회가 여성 자신의 몸에 벌어질 일에 대한 것들을 본인이 책임지고 선택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믿어주길 바랍니다. 평신도인 나는 이제 연대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천주교 사목자들도 이만 서명운동을 멈추어주길 촉구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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