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친구A가 임신 중절 수술을 하기 위해 수소문에 의지하여 병원을 찾던 중이었다. 가까스로 수술을 결정한 산부인과의 원장님은 여성 노숙인 및 성매매/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료 봉사 및 진료 후원을 오래토록 하고 계셨다. 당시 친구A의 애인은 살면서 처음으로 사회의 테두리 밖에 내동댕이쳐진 느낌을 받는 와중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성들이 서로 의지하고 연대한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어쩌면 그 지난하고 굳건했을 절박한 연대는 오랜 불법 시술 역사와 공존하는 우리의 불가피한 역사일지도 모르겠다.
“MY BODY, MY CHOICE”
작년 가을 폴란드에서는 전면적 낙태금지법을 추진하는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나의 자궁은 나의 선택’이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는 산모와 태아의 생명 위협,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등의 예외조항을 두고 낙태를 금지해왔는데, 집권 극우정당이 전면적 낙태금지법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낙태를 한 임신부와 의사는 예외 없이 범죄자가 되어 최대 징역 5년형을 받게 되는 법이었다. 이에 많은 폴란드 여성과 남성이 시위에 참여했고, 일부 유럽 주요 도시에서도 연대 시위가 열렸다. 시위자들은 ‘여성의 생식 결정권은 죽었다’며 검은 옷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오랜 기간 여성들이 임신 중절을 위해 사용한 철제 옷걸이를 들고 나왔다. 10만 명이 참여했던 이 시위는 ‘검은 월요일’로 불렸고, 이후 폴란드 정부와 의회는 개정 계획인 낙태금지법을 부결했다.
한국에서도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명명하며 의사 처벌을 강화하는 입법예고를 함으로써 산부인과 의사들의 인공임신중절수술 ‘전면 중단’ 선언과 시민들의 ‘검은 시위’가 시작되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의견서를 통해 "인공임신중절 수술은 선진국 대부분이 일정 임신주수까지 허용하고 있으며 일본은 사회경제적 사유까지도 허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인공임신중절의 적법한 사유가 거의 없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시민들은 폴란드의 ‘검은 월요일’과 같이 생식 결정권의 죽음을 애도하는 검은 옷을 검은 마스크를 착용했고, 시위 주최 측은 검은 옷걸이를 나누어주었다.
시위에서는 ‘MY BODY, MY CHOICE’, ‘내 자궁은 공공재가 아니다’, ‘내 몸은 불법이 아니다’ 등의 피켓을 들며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의료법 개정 철회 뿐 아니라 임신중절에 대한 형법 폐지를 요구했다. 현재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는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며 이에 따라 여성과 의료인은 처벌받는다. 심지어 ‘불법’임신중절수술을 하더라도 보호자로서 남성의 동의를 받는 와중에, 처벌 대상은 여성과 의료인 뿐이라 해당 법은 이별의 보복이나 금전요구 등 남성의 협박수단으로 악용되곤 한다. 이런 현실에서 임신중절에 대한 남성의 책임은 찾아보기 힘들고, 임신중절이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서 여성의 주체성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한 주체성은 철저히 삭제되어 왔다. 최근 생리컵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생리컵은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선 생소한 물품이었다. 작년 검은 시위가 있기 조금 전 나는 처음으로 생리컵을 사용했다. 한 친구가 독일에서 학회가 있어 다녀오는 길에 몇몇 친구들의 생리컵을 주문받아 구매대행을 해 준 덕분이었다. 생리컵을 사용하자 생리통도 줄고, 쾌적하게 생리 기간을 버틸 수 있고, 피부가 가렵지도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내 자궁’을 찾았다는 것이다. 나는 질부터 포궁까지의 구조도, 생리 기간에는 포궁이 내려온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손가락을 넣어 이리저리 만져보고, 포궁의 길이를 재고, 생리컵을 우걱우걱 넣어도 보고 밀어도 보는 과정이 새삼스러웠다. 자위를 처음 했을 때처럼 신기하면서도 내가 만져도 되는 나의 몸이라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내 몸에 대한 주체성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도 놀라웠지만 그간 주체성이 부재했음을 느끼지 못 했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내 자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지만, ‘내 자궁’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딱히 없었다. 우연히 생리컵을 보고 설명 들은 엄마는 ‘그런 것’을 ‘처녀’인 네가 사용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셨다. 마치 생리컵 판매를 금지하는 국가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는데, 나는 남성의 ‘어떤 것’이 ‘처녀’인 나에게 들어오는 것은 괜찮은지, 그리고 그것은 누가 판단하는 것인지 대답하려다 말았다.
당신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습니까?
1999년 한 네덜란드인 외과의사가 만든 Women on waves(약칭 : WoW)는 비수술 임신 중절 서비스를 제공하는비영리단체다. 안전하지 않은 임신 중절을 예방하고 여성들이 신체적, 정신적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연대하는 WoW는 여성들을 배에 태우고 공해로 이동하여 임신 중절을 위한 약물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제법상 특정 나라의 영역이 아닌 공해를 항해하는 선박 위에서의 행위는 선박의 국적에 따른 법률이나 명령이 적용된다. 따라서 WoW는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선박 위에서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 중절을 위한 약을 제공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냈고, 공해 위의 선박에서 정식 면허를 가진 의사를 동반하면 임신 6주 이내의 여성에게 약물 서비스를 합법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WoW는 웹사이트를 통해 안전한 낙태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임신 중절을 위한 의약품을 배송하기도 한다. 임신 중절 수술이 불법인 나라에 거주하며, 10주 미만의 임신 상태이고, 심각한 병을 앓고 있지 않은 여성은 온라인 상의 질문들을 통해 상담을 진행한 후 기부 형태의 70-90 유로를 지불하거나 무상으로 의약품을 받을 수 있다. 현재 15개 언어를 지원하는 온라인 상담은 초음파 검사를 통한 임신 확인 여부를 묻는 질문부터, 임신을 원하지 않는지, 결정에 따른 감정에 대처할 수 있는지, 강요받는 선택은 아닌지, 응급처치가 가능한 병원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인이 근처에 있는지, 신체적 상태는 어떠한지 등등 매우 구체적이고 도움이 되는 자가진단으로 시작된다. 한국에서도 신청이 가능하며 약 2주 정도 후에 약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해당 사이트에서는 임신 중절을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모여있어 다른 여성들의 경험에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다.
WoW는 본 단체를 소개하는 글에서 ‘여성들이 스스로 의료적 낙태를 행할 수 있고 혁신적인 방법을 통해 의료적 낙태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을 확신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것은 여성들에게 억압적인 문화와 법에 저항하는 도구를 쥐어주는 일’이라고 덧붙이며, ‘모든 여성이 활동가가 되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단언한다. 이처럼, 단순히 물리적으로 안전한 임신 중절이 WoW의 활동 목표가 아니라는 점은 아래와 같은 온라인 상담의 일부에서도 명확히 느껴진다. WoW는 여성들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의 상태’로서의 건강하기를, 그리고 함께 건강하기를 추구한다.
낙태를 결심하는 많은 여성들은 각기 다른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들을 느끼게 됩니다. 아마도 당신은 죄의식, 혼란, 이기심, 두려움, 위안, 겁먹음, 행복, 단호함, 비통함, 수치심, 자신감과 확신, 무책임, 슬픔, 망연자실, 편안함, 분노, 낭패감, 의심, 안도감, 실망등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을 느끼실 것입니다.
예, 나는 낙태하기를 원합니다.
여성들은 국가의 시선을 바탕으로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태아 생명의 존엄성부터 객체로서의 여성까지 학습받는다. 이러한 과정은 임신중절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을 뺏어갈 뿐 아니라 삶 전반에 거쳐 여성의 주체성을 삭제한다. 그러나 여성은 자신의 몸과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비록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드는 정부는 출산 후 길게는 6주까지 오로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신 태아의 존엄성을 영업하는 성교육을 하겠지만, WoW는 우리에게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는지 물으며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해주고, 검은 시위는 우리가 그 대답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며 결정권을 배제한 형법이 잘못되었다고 외친다. 여성은 수많은 연대와 지지 중 단편적인 모습에도 응원받아 주체성을 찾을 수 있고, 이어 임신중절을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다. 나는 임신중절 권하는 사회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이 임신중절을 건강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정치/경제적 이유로 임신중절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는 줄어드는 사회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