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미혼모로 살아가는 법 (下)

알다임신과 출산결혼과 비혼

프랑스에서 미혼모로 살아가는 법 (下)

홍소라

지난 글에서는 프랑스 내 높은 혼외자 비율의 원인에 대하여, 또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 혹은 남성이 프랑스 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 및 혜택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대략적으로 살펴 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 미혼모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조금이나마 엿보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 전에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 첫 번째는 저번 글에서 사용한 ‘편부모’라는 용어가 ‘치우치다’라는 뜻의 편(偏)을 담고 있는 바, 차별적이라는 지적 끝에 현재는 ‘편부모’보다는 보다 중립적인 용어인 ‘한부모’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저번 글에서 소개한 프랑스 내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이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프랑스 사회에 사는 외국인 한부모 가정이라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차별적 시선을 받지는 않겠지만, 지난 글에서 다룬 각종 지원 및 혜택을 받지는 못한다.

독자 여러분의 피드백에 감사드리며 ‘프랑스에서 미혼모로 살아가는 법’ 두 번째 글, 시작한다. 

마린(가명, 35세)은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학교에서 크게 주목 받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곁에는 언제나 친한 여자 친구들이 있었다. 단 한 번도 대도시에서 살아 본 적은 없지만 고등학교 시절,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한국이라는 나라의 한 아이에게 먼저 편지를 보냈을 만큼 문화적 호기심도 강한 아이였다. 또한 그렇게 맺어진 인연을 지금까지 넘게 이어올 만큼 사려도 깊은 사람이다.

마린은 언제나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 했다. 그래서 대학 전공은 심리학으로 선택했다. 공부는 재미있었다. 보다 전문성을 키우고 싶었기에 석사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던 마린의 부모님은 마린이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기를 원했다. 결국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 심리학 석사 과정을 병행했고, 지금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한 시골에서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다.

마린의 가족은 총 네 사람이다. 두 아이와 남자 친구 알렉상드르(가명, 만33세). 첫 아이 앙투안(가명, 남)은 올해로 일곱 살이 되었고, 둘째 자비에(가명, 남)는 태어난지 이제 4개월이 되었다.자비에의 아버지는 알렉상드르. 반면, 앙투안은 마린의 전 남자 친구 에릭(가명, 만 33세)의 아들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그러니까 앙투안이 아직 2살 반밖에 되지 않았을 때, 에릭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 마린과 앙투안을 떠나 버렸다. 에릭이 자신의 불륜 사실을 고백하고 마린을 떠나겠노라 통보했을 때, 마린은 커다란 슬픔과 분노를 느꼈지만, 자신의 감정에 천착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살아내야 했다. 앙투안에게는 자기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릭과의 시민연대계약(PACS)이 그렇게 끝났다. 과정은 간단했다. 시청에 찾아가 더 이상 두 사람이 같이 살지 않는다고 신고했고, 5년을 함께 했던 둘은 일주일만에 남남이 되었다. 이후 2년 동안 마린은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했다. 집세, 생활비, 일 그리고 육아. 경제적인 부분은 사실 양호했다. 시간제 계약직으로 일하던 마린의 수입은 650유로에 불과했다. 한국 돈으로 85만원 가량. 집세는 그 절반이 넘는 350유로(약 46만 원). 하지만 마린이 혼자 아이를 키운다고 신고를 하자마자 정부에서 지원하는 주택보조금이 대폭 올랐다. 이 기간 동안 마린이 실제 집세로 낸 금액은 매달 20유로 (약 2만6천 원) 정도였다. 한부모 가정에게 주어지는 보조금도 매달 300유로 (약 40만 원)씩 나왔다.

아이가 상처받고 아플 때
홀로 선다는 것

문제는 아이였다. 에릭이 떠났을 때 앙투안의 나이는 겨우 두 살 반에 지나지 않았다. 앙투안에게 아빠가 자신을 두고 떠나버렸다는 사실은 어마어마한 충격이었고, 이는 폭력성으로 표출되었다. 아이는 물건을 던지거나 마린을 때리려 했다. 한번은 마린을 물려고 한 적도 있었다. 앙투안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 마린은 당황했다. 에릭에게 연락했으나 그는 한 달에 단 한 번 방문해 앙투안과 잠시 놀아주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결국 마린은 앙투안을 심리치료사에게 데리고 갔다.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센터도 있지만, 그곳에서는 대기 시간이 길기 때문에 아이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사설 의료 기관을 선택했다. 한번 방문에 50유로 (약 7만5천 원).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앙투안에게 더 좋은 선택이었다고 믿었다. 다른 지출이 정부 지원으로 해결되는 덕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다행히 앙투안은 점차 안정을 찾았고, 지금은 4개월 된 동생을 잘 돌봐 주는 멋진 형이 되었다.

앙투안이 아플 때면 마린의 삶은 훨씬 더 고달파졌다. 매달 보육비로 320유로(약 42만 원)를 지원받았지만, 아이가 아파 집에 있어야 하는 비상상황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당시 계약직이었던 마린이 앙투안 간호 목적으로 받을 수 있는 유급휴가는 1년에 단 3일이었다. 이 3일을 다 쓰고 나면 마린이 사용할 수 있는 법정 휴가를 다 끌어 써야 했지만 마린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학교에 특수교사가 마린 단 한 명이었기 때문에 무턱대고 휴가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럴 때는 유모를 추가로 고용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없었다. 또한 자신이 학교에 나가지 못한 날의 수만큼 추가로 일을 해야 했다. 동료나 친구들이 앙투안을 돌봐 주기도 했지만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마린이 현재 프랑스 정부의 한부모 가정에 대한 정책에서 유일하게 불만족스러워 하는 부분이다.

혼자 앙투안을 키운 2년 동안 마린에게 있어 가장 힘이 된 것은 정부 지원이었다. 그 외에도 주변 사람들의 보살핌과 응원도 마린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동시에,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 역시 사람들의 말이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확실히 없었다. 마린은 프랑스에서 한부모 가정은 너무나 흔한 것이라 특별히 색안경을 끼고 바라 보는 사람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다만 에릭이 마린을 떠나자,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마린에게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걱정 섞인 조언을 해 주었다. 진심 어린 배려에서 나온 말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마린은 그것이 싫었다. 집을 떠나 이만큼 일구어 온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고 부모님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마린에게 있어 유치한 발상이자 퇴보였기 때문이다. 마린은 물러서지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도 않았다.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혹은 스스로 정보를 구해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을 하나 하나 찾아 갔다. 프랑스에는 분명 적잖은 정부 지원이 있지만, 당사자가 직접 찾아가 요청하지 않는 한 지원금을 챙겨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과 주변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그 2년 동안 마린에게 자신의 삶이란 없었다. 앙투안을 돌보기 위해 돈을 벌고, 일을 하지 않는 시간 동안에는 앙투안을 돌보아야 했다. ‘나’가 없는 ‘나의 삶’은 견디기 쉽지 않은 것이었지만, 앙투안이 별 문제 없이 자라 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앙투안이 유치원에 들어가면 그 때부터는 자신의 생활이 달라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 역시 하나의 희망으로 다가 왔다. 실제로 앙투안이 유치원에 입학하자, 마린은 조금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유치원에서 최대 저녁 7시까지 아이를 돌봐 주기 때문이다. 마린은 먼저 근무 시간을 늘렸다. 또한 짬을 내어 파리로 여행을 다녀 오기도 했다. 그리고 점차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마린은 그렇게 알렉상드르와 만날 수 있었다. 마린은 다시 사랑에 빠졌고, 알렉상드르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와 시민연대계약을 맺은 마린은 작년 초, 알렉상드르와 함께 집을 구입했고, 두 사람이 함께 직접 집을 수리해 가며 스스로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정규직이 되어 이전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마린은 자신의 경우는 수월한 편이었다며, 자신의 동료 중 이혼을 하고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는 정말 힘들게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자신은 시골에 살기 때문에 특히 집세가 그리 높지 않아 부족하지 않게 앙투안을 무사히 혼자 키울 수 있었다면서 대도시, 특히 파리에 사는 미혼모의 삶을 걱정했다. 파리에서는 정부 지원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울 것이라면서. 마린은 또한 한국 미혼모들의 삶에 대해 물었다. 한국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 또한 그들에게 보내는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마린이 받았을 충격은 이 글에서 굳이 보태지 않아도 무방할 것 같다.

'혼외자'란 말이
사라지기까지

사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마린의 편지를 받은 한국의 여학생은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 마린에게 이 글의 주제를 소개하며, 홀로 앙투안을 키웠던 2년간의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을 때, 마린은 주저했다. 정부의 지원, 직장에서의 배려, 그리고 친구들의 적극적인 응원이 있었음에도 불구, 마린의 인생에서 그 2년간은 가장 어려운 시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마치 어두운 터널과 같은 그 때를 떠올리며 하나 하나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 것이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으리라. 그러면서도 마린은 그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 알렉상드르와 행복할 수 있다며, 자신은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친구로서는 마음이 아팠지만, 한 명의 한국 여성으로서는 아주 많이 부러워졌다.

지난 글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프랑스에는 한부모 가정에 대한 다수의 지원이 존재한다. 마린의 경우처럼 정부 지원은 완벽하지는 않아도 미혼모로 하여금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프랑스라고 해서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국어로 ‘혼외자’에 대응하는 프랑스어 용어는 시대에 따라 적지 않은 변화를 거쳐 왔다. 카톨릭 전통이 강하던 시기에 혼외자는 ‘bâtard (사생아. ‘잡종’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로 불리거나, 그보다는 어감이 조금 나은 ‘enfant adultérin (간통으로 태어난 아이)’로 불렸다. 공식적으로는 ‘enfant illégitime (합법적이지 않은 아이)’가 빈번하게 쓰이다가 ‘enfant naturel’로 대체되어 가는 과정을 겪었다. 여기에서 ‘naturel’은 ‘자연의, 타고난, 천성의’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보다 중립적인 용어였달까. 그마저도 2005년부터는 혼외자와 혼내자의 민법상 구분 자체가 없어지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용어가 되어 가고 있다. 즉, 지금의 프랑스에서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가 하나든 둘이든, 더 나아가 보호자 둘의 성(姓)이 같든 다르든 아이는 아이일 뿐이고 보호자는 보호자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오기까지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하나 되는 과정이 있었다.

한국에서 조금이나마 한부모 가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인구절벽과 저출산을 말하며 위기 의식에 기대어 출산을 장려하는 것으로는 앞으로 더 나아가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마린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매달 천 유로에 육박하는 정부의 지원이 아니었다. 앙투안을 낳아 혼자 기르는 동안 단 한번도 부정적인 시선을 느낀 적이 없다는 마린의 말이 나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았다.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혼자 아이를 기르는’데도 마린은 단 한번도 사회에서 그 사실로 인하여 부조리를 경험하거나 불이익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 누구도 마린에게 헤프다거나 부정하다고 욕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또한 심정적으로도 불안했지만 마린에게는 기댈 수 있는 정부와 지역 사회와 동료,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프랑스가 완벽한 복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린의 사례에 비추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한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삶을 최소한 ‘인간답게’ 영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언제쯤이나 제2의 마린을 볼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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