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잘 결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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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잘 결혼할 수 있을까

유의미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결혼은 안 할거에요?

직장 동료가 묻는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더 복잡한 거짓말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런 거 관심 없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 나이를 몇 살 더 먹자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한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꿈꾸는 표정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알콩달콩 예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너는 그런 거 관심 없잖아.

친구들은 내가 결혼을 별로 안 하고 싶은 줄 안다. 젊은 날의 내가 ‘사랑은 이데올로기고 연애는 성역할 수행’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던 게 기억에 남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예전엔 정말 결혼을 꿈꾸지는 않았다. 자유로운 삶이 좋았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는 게 즐거웠다. 우리 엄마도, 엄마 친구도, 친척 언니도, 어느 선배 언니도 결혼 이후에 인생이 고달파졌다. 로맨스를 핑계로 여성의 가치를 후려쳐서 헐값에 가사노동, 성노동, 감정노동을 사는 게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합리적이지 못하게도

어떤 욕망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합리적이지 못하게도 언제부턴가 결혼하고 싶어졌다.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즐겁기보다는 피곤해지고, 이보다 더 나를 위해줄 사람은 없을 만큼 관계에 충실한 사람을 만난 뒤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강의를 듣는 애인을 기다리며 캠퍼스를 산책하다가, 이어폰에서 ‘지루한 듯 똑같이 매일 아침 해를 바라보면 좋지 않겠니’하는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자 분명해졌다. 애인을 일상으로 만들고 싶었다. 될 수 있으면 사라지지 않는 확실한 일상이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우리가 모두 우주를 떠다니는 한 조각의 인간들이라면, 둘이 손 꼭 붙잡고 있으면 조금 덜 외로울 것 같았다. 연애가 닿을 듯 말 듯 손을 슬쩍 스치고만 있는 기분이라면, 결혼이야말로 온 힘을 다해 꽉 맞잡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아무런 논리도 일관성도 없이 작년쯤 애인에게 결혼하자고 제안하고 말았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한국의 동성 커플이라는 점이다.

네가 하고 싶은 결혼이 뭔데?

애인은 결혼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했다.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애인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우리는 제도가 없어서 결혼해도 소용이 없다. 결혼식 세레모니를 하고 사회적 인정을 받는 거라면 우리의 좁은 인간관계 안에서도 나름대로 가능하지만, 나는 단순히 식을 올리고 싶은 건 아니다. 오히려 비용도 품도 많이 드는 허례허식은 최소화하고 싶다. 게다가 우리가 결혼한다고 같이 살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같이 살아봤고, 삶의 방식이 달라 많은 갈등을 빚었다. 둘 다 개인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이라, 좋은 관계를 위해 가능한 한 떨어져 살기로 결정도 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나는 어떤 결혼을 하고 싶은 걸까? 그동안 부모님이 뿌리고 다닌 축의금을 돌려받고 싶은 걸까? 어차피 동성 결혼이라면 친척들은 축의금을 거의 안 줄 것이다. 초대나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날 하루 주인공이 되어 파티하고 싶은 걸까? 아니다. 난 주인공도 파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난 그냥 치근덕거리는 남자들에게 ‘저 결혼했어요.’하고 말하고 싶다. 소개팅 제안이나 만나는 사람 있냐는 질문에서 해방되고 싶다. 동성연애를 할 때마다 ‘너 그래 봤자 한때야. 언제 철들래?’ 한 소리씩 하던 호모포비아 친구들에게, 이게 내 방황이 아니라 종착점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결혼하지 않은 내 삶을 아직 미완성이라고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나하나 해명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이제는 너무 피곤하다. 결혼을 하면 손쉽게 그 모든 귀찮음을 종결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결혼을 계기로 본격적인 새 출발을 하고 싶다. 부모님으로부터 온전히 독립하고, 정당하게 재산을 분할 받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또한, 지금은 애인과 재산을 공유하기 어렵고, 미래를 함께 계획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지만 결혼한 사이라면 조금 달라질 것 같다. 각자의 사정과 진로가 다르니까, 시기에 따라 금전적인 지원을 몰아준다면 선택지의 폭도 넓힐 수 있다.

안정감이다. 나는 더 단단한 결속을 원한다. 결혼이 경제 공동체든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든 결국 서로 얽힌 게 많아지는 것이다. 관계를 억지로 묶는 게 꼭 바람직하지는 않아도, 예측하기는 쉬워진다. 우리의 결속이 그저 의지에만 달려있다면 한순간 사라져버릴 것 같다. 무언가로 꽁꽁 묶으면 조금은 덜 불안할 것 같다. 그 꽁꽁 묶는 힘은 바로 제도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제도가 없으므로 그 효과를 얻고 싶어서라면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결혼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우리가 결혼했다 해도 이성 부부처럼 이혼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재산을 공유했을 때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집안에 알리고 지원을 받거나 신혼부부 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혼사진

경제적이고 제도적인 것들을 가질 수 없다면 결혼을 할 필요가 없나? 그래도 난 여전히 갖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바로 결혼사진이다. 친구들이 보낸 모바일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두 사람이 참 예뻐 보였다. 나도 그런 사진을 찍어서 벽에 걸어두고 싶고,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고 주변의 축하도 받고 싶다. 사실 내 SNS에는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 아웃팅 위험 때문에 애인은 늘 손만 조금 등장할 뿐이다.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결혼사진이 있더라도 여기저기 자랑할 수는 없겠지만, 사진을 가지고 있으면 기분이 다르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안정감도 결국 그냥 느낌일 뿐이다. 제도가 없는 결혼이 우리 관계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단, 기분은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기분은 분명히 관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결혼에 관해서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애인도, 사진을 남기는 건 찬성이었다. 내 이런 고민을 함께 해주던 친구들이 프로젝트에 동참해주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우리가 찍으려는 건 결혼사진인데, 결혼사진의 핵심은 신랑과 신부다. 이들을 행인이 아니라 신랑과 신부로 만들어주는 건 바로 턱시도와 드레스가 아닐까? 우리는 신랑도 없고, 신랑을 흉내 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친구 사이가 아니라 이게 결혼사진이라는 걸 드러내려면 뭐라도 조금은 흉내 내야 했다.

우리의 문제가 뭔지 알았어. 우리는 지금 특별하면서도 전형적인 것을 원해.

우리는 이걸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발견했다. ‘옷이 뭐가 중요해! 각자 입고 싶은 걸 입자!’하고 햇살 좋은 날 예쁜 억새밭에서 촬영한 뒤, ‘이게 왜 결혼사진 같지 않고 2인조 밴드의 앨범 재킷 사진 같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같이 사는 집 안에서 고양이와 함께 찍어도 봤지만, 결혼사진보다는 가족사진 같았다. 결혼이 어차피 가족을 만드는 일이긴 하지만, 사진 속 우리는 연인보다는 자매 같았다. 역시 여자 둘이라 그런가 싶어 다른 레즈비언 커플들의 결혼사진을 찾아보고 나서야 사진을 웨딩으로 만드는 건 턱시도나 드레스고, 최소 비슷한 느낌의 하늘하늘 원피스와 부케 정도는 있어야 결혼 느낌이 난다는 걸 알았다.

의상을 맞추면 장소도 문제였다. 우리는 야외에서 촬영할 생각이었는데, 웨딩드레스를 입으면 너무 주목받을까 걱정됐다. 장소 후보에 뒀던 학교 캠퍼스나 같이 살던 동네는 아웃팅 위험 때문에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가기에는 혐오범죄의 대상이 될까 봐 두렵기도 했다.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주먹질을 당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막상 촬영을 시작하자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촬영을 위해 얼른 자리를 피해 주고 걸음을 멈춰주기도 했다. 우리가 동성애자고 결혼사진을 찍고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드레스를 입고 나비넥타이를 하긴 했지만, 동아리 연극 포스터를 찍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여자 두 명이니까 우리가 아무리 결혼을 모방해도 남들 눈에는 결혼으로 안 보일 수도 있다.

별 거 아니었네

결혼처럼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은 별 게 아니었다. 사진을 보고 ‘결혼 안 같다.’고 할 때의 ‘결혼’은 무엇일까? 우리가 모방하는 결혼은 신랑과 신부가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꽃을 든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만 그 상상 속의 결혼을 모방하는 게 아니다. 이성 커플도 다르지 않다. 어차피 우리 머릿속에 있는 결혼식의 모습은, 어느 영화나 드라마 혹은 먼저 결혼한 이들의 결혼식을 통해 살면서 수집한 이미지들이다. 보통은 그 전형적인 결혼식이라는 큰 틀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변주해 각자의 결혼식을 기획한다. 그래서 결혼식인데 장례식 복장을 하거나, 할로윈 의상을 입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성 결혼의 아류처럼 보일까 걱정했지만, 사실은 그 어떤 결혼도 당사자가 여자와 남자라는 이유로 원본인 건 아니다. 그냥 우리는 서로서로 모방하며 살아가는 거고, 그렇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사진을 찍다 보니 주변에서도 결혼할 건지 물어보고, 사진을 활용할 방법을 찾다 보니 결혼식 얘기에도 진척이 생겼다. 법적인 결혼을 할 수 없는 지금, 우리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결혼은 뭔지 조금씩 생각해보고 있다. 다급하게 진행하는 건 싫다. 행복을 위한 일에 소진되고 싶지는 않아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민과 논의조차도 천천히 하기로 했다. 사진은 사실 그 모든 과정의 첫걸음이다.

보통의 결혼은 할 수 없어도 우리의 결혼을 하면 된다. 준비 기간도 밀도도 자유롭게 잡고, 우리의 방식대로 하는 게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일 것 같다. 중간에 엎어버릴 수도 있고, 우리가 헤어질 수도 있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이 될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살피고, 소중한 걸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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