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지 않은 사람들 시즌 2 8. '통념'답지 않은 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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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지 않은 사람들 시즌 2 8. '통념'답지 않은 하양

유의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티라미수가 맛있는 강남의 카페에서 하양을 만났다. 강남 한복판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조용했고, 내내 차분한 음악만 흘러나오던 곳이었다. 하양은 호탕한 웃음소리를 지녔는데 그의 작은 체구에 의외로 잘 어울렸다. 어떤 질문을 하든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거침없이 대답하고, 적극적인 반응과 열과 성을 다하는 답변에 인터뷰 내내 깔깔 웃을 정도였지만, 닉네임을 묻자 갑자기 말문이 막혀 ‘모르겠어요!’를 외쳤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며 생각해낸 이름이 ‘하양’이었다. 복슬복슬 따뜻해 보이는 하얀 플리스 재킷을 입고 있어서 잘 어울렸다.

Q. 하양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단순한 사람이에요. 최근에 누가 나한테 단순하다고 하더라고요. 얼마 전 부장님한테 엄청나게 깨졌거든요. 그게 끝이 아니고, 모든 부장님에게 돌아가면서 진짜 많이 혼났어요. 학교에서 친한 동료 선생님이 그 일로 저를 걱정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사실... 아무렇지 않았어요. 아니 물론 힘들긴 했고, 힘들 만한 일이었어요. 근데 이미 일어난 일이고, 지금 와서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잘못한 것도 있고. 그리고 저를 혼낸 그 사람들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 사람들도 화날 만했어요. 오죽했으면 그렇게 했겠어요. 아! 그리고 우리 학교 급식이 진짜 맛있거든요. 그 급식을 먹으니까 너무 맛있어서 기분이 좋아지고 다 풀리더라고요. 그날 꽃게탕이 나왔는데, 살이 진짜 오동통한 꽃게가 세 개나 들어있었고, 밥도 정말 그날따라 너무 맛있어서, 내가 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Q. 일하는 이유 중에 돈과 자아실현이 있다면 비중이 어떻게 될까요?

돈을 생각했으면 이 직업을 안 했을 것 같아요. 노력보다 돈을 많이 주는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자아실현이 99면 돈은 1, 99대 1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근데 얼마 전 제가 선배들한테 혼나고 힘들어하니까 친구들이 그렇게 학교가 싫으면 그만두면 되지 왜 하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제 입에서 바로 ‘이거 안 하면 돈을 어떻게 버냐?’라는 말이 먼저 나왔어요. 자아실현이 중요했다면 ‘그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근데 학교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쁜 날을 꼽자면, 학생들이 제게 뭔가를 되돌려 줄 때에요. 기대하지도 않았던 감사의 표현을 듣거나 ‘나중에 커서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 할 때는 정말 보람을 느끼죠. 사실 학생이랑 소통하고 수업만 하는 거라면 돈을 안 받더라도 이 일을 하고 싶어요. 근데 학교 일은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인간관계나 업무 스트레스도 있고, 가르치는 것보다 부수적인 업무들이 훨씬 많아요. 수업을 안 들어가는 공강 시간에는 수업 준비도 좀 하고 싶은데, 교육청에 보고할 게 있다거나 해서 서류 정리를 하거나 그럴 때가 많아요. 시험 기간에도 학생들이 이 문제를 잘 풀 수 있을지 더 고민하면 좋겠는데, 문제 간의 간격이 맞는지 뭐 그런 것들을 더 봐야 해요. 이번에도 시험문제를 냈는데 그림이 인쇄가 잘 안 된 거예요. 사회 과목이라 그림이 중요하니까 다시 인쇄했거든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다른 그림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런 일이 발생하면 혼자 처리하는 게 아니라 위에 교무부에 얘기해야 하고 부장 선생님께 얘기하고 결재받아야 해요. 이런 일들이 저를 지치게 만들어요. 물론 다 제가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꼼꼼하지가 못해서 그런 걸 잘 못 챙기나 봐요.

일러스트 이민


Q. 남들이 나에 관해 오해하는 점이 있나요?

네, 있어요. 제가 일부러 만든 오해인데요. 사람들이 저한테 눈치가 없다고 해요. 사실 눈치가 없는 척하면서 살면 편하거든요. 예를 들어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 있어요. 눈치껏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에요. 근데 저는 눈치 없는 척하고 안 합니다. 그럼 누군가 저한테 물어보죠. ‘어, 이거 해야 하지 않아요?’ 하면 ‘아, 맞다!’ 하면서 몰랐던 척해요. ‘아, 맞다!’라면 모든 게 만사 오케이입니다. 혹시 진작 했어야지 않냐고 하면 ‘죄송해요!’ 하면 되죠. 제 인생 꿀팁입니다. 이 오해는 절대로 드러나면 안 돼요. 저는 눈치 없는 사람으로 맨날 ‘아 맞다' 하는 사람으로 남아야죠. 제가 처음에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존경하던 선생님이 한 분 계셨어요. 그분은 진짜로 학생들을 위하는 선생님이었어요.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이 좋아할 것 같은 일도 있고, 교장 선생님은 좀 번거롭고 싫어하지만, 애들한테는 진짜 좋은 일이 있어요. 그 선생님은 자기가 귀찮더라도 애들한테 필요한 걸 밀고 나가는 분이셨어요. 근데 그러다 보면 맨날 뭘 놓치거든요. 그래서 그분도 맨날 ‘아, 맞다!’ 하더라고요. 그분이랑 저랑 성격이 비슷해요. 열정적이지만 최대한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노력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위주로 하는 그런 게 비슷해요. 그걸 보면서 저도 굳이 나서서 이것저것하고 이쁨받기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진짜 학생들을 위하는 일을 하기로 했어요.

Q.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아직 학교에 적응을 많이 못해서 될지 안 될지 모르겠는데 예를 들어 우리 반 애들이랑 아침에 와서 같이 시리얼 같은 걸 먹는 거예요. 시리얼을 대량으로 사놓고, 우유만 신선하게 사 오면 되잖아요. 아침에 일찍 오는 애들이랑 같이 먹으면서 얘기도 하고. 나도 어차피 집에서 아침 못 먹고 오니까 소통도 하고 아침도 먹는 거죠. 아니면 음, 우리 교실에도 보면 공부를 그렇게 잘 못 하는 학생 중에서도 공부를 정말 배우고 싶은 친구도 있거든요. 그러면 잘하는 친구랑 같이 짝을 맺어주는 거죠. 꼭 잘하는 애랑 못하는 애랑 억지로 맺어주는 게 아니라 공부를 좀 하고 싶지만, 성적이 안 나오는 애들이 친한 친구 중에서 공부 좀 잘하는 애를 정해서 ‘얘한테 배우고 싶어요.’ 선택하는 거죠. 그렇게 팀을 지어줘서 공부 잘하는 애가 좀 잘 안되는 친구 도와주면서 봉사활동 시간도 받고 그러면 좋잖아요! 지금은 그냥 아이디어지만 더 구체적으로 기획해보고 싶어요. 근데 지금은 용기가 없어요. 아직은 계속 혼나기만 해서요. 이런 얘기 하면 아마 지금 하는 거나 잘하라고 할 거예요, 하하.

Q. 학교에서는 어떤 선생님이에요?

제가 원래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좀 모범적인 선생님이 되고 싶죠. 멘토나 닮고 싶은 사람이요. 근데 그러려면 좀 안 웃어야 하는데, 권위나 경계를 더 지켜야 하는데, 저는 애들을 보면 너무 예뻐서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요. 그래서 학생들한테는 제가 정말 편할 수도 있어요. 저는 저희 반 애들이 지각해도 혼내지는 않아요.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죠. 자기도 지각하고 싶어서 지각한 거 아닐 거고, 헐레벌떡 왔는데 또 혼내기가 저는 좀 그래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지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수업 시간보다 늦으면 지각처리를 당연히 해야겠지만, 그거를 꼭 혼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학생이 9시까진데 9시 10분에 왔어요. 그럼 지각 표시를 출석부에 물론 해야죠. 근데 ‘너 왜 늦었어! 왜 그러는 거야! 자기관리를 못 하고!’ 이렇게 혼낸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어요. 그런 얘기는 해줄 수 있죠. 왜 늦었어? 어제 늦게 잤어? 어디 아픈 데 있어? 오는데 차가 많이 막혔니? 물어봐 주고 관심을 보여줄 수는 있죠. 그러면 애들이 ‘엄마랑 싸우다가 늦었어요.’ 해요. 다 사연이 있어요. ‘내일부터는 일찍 와라.’ 이렇게 하면 끝날 일 아닌가요? 늦은 애들은 자기가 잘못한 거 다 알아요. 꼭 혼나서 아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만약 어제 너무 슬픈 일이 있어서 잠을 설치다가 늦잠 잤는데 다짜고짜 혼낸다고 달라지진 않을 거예요. 내가 감정적인 사람이라 그럴지 모르는데 저는 좋아하는 사람의 일은 시키지 않아도 먼저 도와주고 싶거든요. 학생들도 학교에 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말을 듣고 싶지 않을까요? 굳이 화를 내지 않아도, 조금 일찍 와줬으면 좋겠다고만 해도, 그 학생에게 내가 인격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졌다면 그렇게만 얘기해도 충분히 들을 것 같아요. 만약에 내가 평소에 성격이 이상하고 ‘아, 저 선생님 왜 저래!’이랬으면 내가 혼낸다고 해도 말을 들어주지 않겠죠. 화내고 혼내는 것보다 내 인격이 더 중요하지 않나, 저 같은 학생에게는 그게 더 먹힐 것 같아요.

Q. 학창 시절에 존경하는 선생님이 있었나요?

고3 때 담임선생님을 존경했어요. 그분은 진심이 느껴졌어요. 물론 열정적이고 수업을 잘하시기도 했지만, 우리를 위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싫을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고 매일 작은 파도는 있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내가 만약에 선생님이 된다면 저 선생님처럼 되어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영향도 많이 받았어요. 그 선생님 담당 과목이 국어였는데, 제가 그때 국어 성적이 너무 안 나오는 거예요. 맨날 한두 개씩 틀리는 거예요. 저는 국어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왜 성적이 안 나오는지 궁금해서 여쭤봤죠. 그랬더니 선생님이 지금까지 풀어본 모든 문제집과 시험지를 다 가져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여행용 가방에 넣어서 다 가져갔어요. 선생님이 제 문제집을 하나씩 보면서 틀린 문제를 봐주시더니 제가 시 해석이랑 뭐 어떤 부분이 약한 것 같대요. 그러고는 시 해석을 같이해보자고 매주 저한테 시간을 30분씩 내주셨어요. 저는 그게 진짜 도움이 많이 됐어요. 사실 그렇게 하기 어렵잖아요. 그때 선생님의 진심이 느껴졌고, 국어 공부가 원래 재미없었는데, 그 이후로 재미도 생겼어요. 정말 좋으신 분이었어요. 학생들이 정말 존경하는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면, 다른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이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제가 인격 수양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정말 많이 하는데,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여전히 노력 중인 단계죠.

Q. 서울에서 청년 여성으로 사는 건 어떤가요?

A. 제가 자취를 시작했는데 며칠 전에 서랍장이 고장 나서 A/S를 불렀거든요. 저는 고칠 수가 없는데 수리 기사가 온다고 하니까 정말 고마웠고, 오셔서 문을 열어줬어요. 근데 그때부터 갈등이 시작됐어요. 보통 불안하면 현관문을 열어두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 사람이 의심받는다는 느낌이 들 텐데, 수리해주러 와서 의심받으면 기분이 나쁠 것 아니에요? 근데 그렇다고 방안에 그 사람이랑 둘이 있는 건 좀 그렇잖아요. 의심하는 걸 들키지 않으면서 조심해야 하는 게 어려워요. 여성으로 사는 건 그런 게 고민이에요. 혼자 사는 거, 청년으로 사는 거, 서울에 사는 건 다 너무 좋죠. 갈 데도 많고, 할 것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고. 즐길 거리도 문화생활 기회도 많고요. 경기도에 살았었는데 거기서는 뮤지컬 한 번 보려고 해도 한 시간씩 왔어야 하는데, 서울시에 사니까 너무너무 좋아요. 어디를 가나 가까워서 정말 좋습니다. 근데 동네 친구가 좀 생겼으면 좋겠어요. 동네에 가끔 같이 밥 먹는 동료들은 있지만, 나이 차이가 나고 다 남자분들이거든요. 또래의 여자인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근데 생기면 또 귀찮겠죠? 하하. 저는 집순이라서 사람이랑은 가끔만 노는 게 좋아요. 혼자 사니까 집에 있으면 할 일이 너무 많더라고요. 맨날 청소해도 맨날 머리카락이 너무 많아요.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화장실 청소하고, 하면 거의 하루가 다 가죠. 청소 다 하고 좀 쉴 때는 넷플릭스 보면서 밥 먹거나 그래요. 밥은 사 먹을 때가 더 많고 요리는 가끔 해요. 부엌이 너무 좁아서 힘들더라고요. 부엌이 아주 좁아요. 좀 넓었으면 좋겠어요. 싱크대 한 칸 있고 그거랑 비슷한 만큼 공간 더 있는 게 끝이에요.

Q. 살면서 ‘~답지 않다’고 생각해본 적 있나요?

저는 정상답지 않아요. 평범하지 않아요. 평범하다는 건 많은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사회 통념에 딱 들어맞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되기 싫어요. 그렇지 않아야만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데, 어른이랑 얘기할 때는 특히 어려워요. 어른들은 사회 통념이 진리라고 생각하는데, 저도 사회 통념에 젖어 그렇게 될까 봐 무서워요.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교복을 줄이거나 화장을 하잖아요. 저는 절대로 그런 거로 뭐라고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파마를 한다고 해서 화장을 하거나 치마를 짧게 입는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솔직히 저는 화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그게 잘 안 보이거든요. 근데 그런 거를 제가 잘 못 보니까 주변 선생님들이 불편해지는 거예요. 전에 우리 반 학생이 화장을 했어요. 저는 화장이 제 주된 관심사가 아니어서 잘 안 보였거든요. 모르겠어요.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신경 안 쓰니까 눈에 안 들어온 것 같아요. 근데 이 아이를 내가 못 잡아냈기 때문에, 그 아이 입장에서는 나는 착한 사람이고, 그걸 잡는 선생님은 나쁜 사람이 되니까 나쁜 사람이 된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거죠. 나쁜 역할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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