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이민갈까? 26. 첫 홀리데이, 네이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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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우리 이민갈까? 26. 첫 홀리데이, 네이피어

유의미

디자인: 이민

뉴질랜드에 온 지 삼 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처음 이 땅을 밟고 하늘도 바람도 새로워서 매일 즐거웠지만, 출근하고 퇴근하는 건 금방 지루한 일과가 되었다. 근무시간이 짧긴 하지만 주 6일씩 출근하며 번 돈을 대부분 주거비로 내는 것도 한국과 다를 바 없었다. 휴일에도 역시 한국에서와 다를 바 없이 밀린 빨래와 집안 정리를 하며 보냈다. 신나는 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뉴질랜드의 삶은 그저 무료하고 지루했다. 퇴근하고 도서관도 가봤고 책도 읽어봤고 심지어 영어 공부도 해봤고 요가도 해봤지만 남는 시간은 너무 많았고, 친구도 취미도 없는 채로 그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 한 몸 간신히 누일 수 있는, 고시원보다 조금 넓은 방 안에서, 이미 다 본 좋아하는 드라마를 틀어놓고 보는 둥 마는 둥 멍하니 응시하며 과자를 먹는 게 퇴근 후의 주된 일과였다. 시차 때문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한참 근무 중일 시간이라 자주 연락하기도 어려웠고, 재미있는 일을 찾으러 차를 끌고 시티까지 놀러 나가기엔 다음날 이른 출근이 부담스러웠다. 시간이 너무 많으니까 쓸데없는 고민이 자꾸만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영어를 못하는데, 여기서 안정된 직장을 가질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데, 앞으로 영주권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불투명한데,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건지 이제 나는 어떡해야 하는지 매일매일 불안했다.

만날 사람이 없는 삶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약속이 없으니 쇼핑도 하지 않게 되고 나중엔 잘 씻지도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없어졌다. 그냥 늘 같은 김밥을 사 들고 늘 같은 시간에 집에 들어와 멍하니 넷플릭스를 보다 잠들었다. (긍정적인 면도 있다. 이때 무한히 틀어 놓은 드라마가 영어로 되어 있어서 영어 듣기 실력이 많이 늘었다.) 자신감도 점점 떨어졌다. 늘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비슷한 대화만 하다 보니 내 세상이 좁아졌다. 그때쯤 나는 행복해 보이기 위해 SNS에 굉장히 열중했지만, 매일 비슷한 일상 속에서 올릴 사진도 다 떨어져 갔다. 한국에서는 여가에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시거나 맥주를 마시는 걸 좋아했다. 시간이 맞으면 뭘 배우러 다니기도 했고 관심 있는 분야의 강연이나 포럼 같은 행사에 가는 것도 좋아했다. 영화를 보거나 전시를 보거나 할 수도 있었고 친구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 쓸쓸하면 혼자 코인노래방이라도 들를 수 있었다. 물론 뉴질랜드에도 찾으면 다 있다. 다만 나는 운전에 서툴러 움직이는 게 부담이 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품이 너무 많이 들고, 이 모든 걸 함께할 친구도 없으니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똑같은 하루하루를 반복하며 돈이나 벌던 차에 매니저님이 휴가를 제안했다.

방학이라 일할 인원이 좀 많을 것 같은데, 다음 주에 잠깐 휴가 안 다녀올래요?

계획에도 없던 휴가 생각에 당황스러웠고, 휴가를 이렇게 갑작스럽게 쓰는 건 따지고 보면 부당한 제안이었지만, 나는 한국인답게 매니저님의 말에 좋다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매일 출근하는 것도 지쳤으니까 갈 데 없으면 집에서 드라마나 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날 퇴근하며 뉴질랜드 여행을 검색해보았다. 다른 도시에 놀러 간다고 해도 그 안에서 차가 있어야 다닐 수 있을 텐데 나는 렌터카든 뭐든 남의 차를 운전할 깜냥은 아직 안 되는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오클랜드의 대중교통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차가 없는 채로는 여행이고 뭐고 고생길이 열릴 게 뻔했다. 그날부터 나는 일하면서 만나는 동료와 손님들에게 여행으로 다녀온 도시를 물어봤다. 여기 사람들은 여행을 참 많이 가고, 여행 이야기도 좋아한다. 나는 그동안 피치 못해 지루하게 듣던 다른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들을 조금은 다른 마음가짐으로 흥미롭게 들었다. 약간의 기대감과 활력도 생기는 것 같았다.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네이피어

그렇게 정한 휴가지는 네이피어였다. 내가 있던 오클랜드와 마찬가지로 북섬에 있었지만, 오클랜드보다는 조금 남쪽에 있었다. 날씨가 아주 따뜻할 때가 아니어서 다들 남섬은 여름에 다녀오라고 했고, 네이피어는 차를 따로 빌리지 않아도 걸어서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고 해서 선택했다. 

또한, 나는 일주일의 휴가 중 반 정도는 여행을 하더라도 나머지 절반은 꼭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쉬고 싶었기에 짧게 갔다 올 수 있는 여행지를 원했다. 사실은 둘러볼 게 많지 않은 것도 좋았다. 하루에 한두 곳만 들르고 그냥 커피나 한잔하면서 낯선 동네에 앉아있는 게 내가 좋아하는 여행 방식이었다. 몇 군데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고,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했다. 그러고 나니 잃어버렸던 설렘이 돌아온 것 같았다.

네이피어는 뉴질랜드 북섬 호크스 베이에 있는 ‘1930년대 영화 세트장’으로 불리는 동네다. 네이피어가 이런 별명을 갖게 된 것에는 슬픈 사연이 있는데, 1931년에 거대한 지진으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고 도시가 파괴되어, 재건 사업을 하며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당시의 건축양식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네이피어에 도착하면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건물들과 잘 어우러지는 풍경에 감탄하며 왜 이곳이 영화 세트장이라고 불리는지 깨달을 수밖에 없다. 이곳을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천천히 걸어서 산책하는 것이다. 도시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어 감상하는 소소한 즐거움도 챙길 수 있다. 원한다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걸어서 도시를 산책할 수 있는 투어에 참여할 수도 있다. 네이피어는 북섬이지만 내가 있던 오클랜드에서는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 이동해야 한다. 근처에 역시 아르데코 양식의 건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헤이스팅스가 있어서 두 곳을 한 번에 둘러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볼 게 많은 건 아니어서 여행 일정을 잡을 때는 보통 이곳을 하루나 이틀로 잡는 것 같지만, 하루에 한군데 이상 보기 싫어하고 숙소에 오랜 시간을 머무는 걸 좋아하는 내 여행 스타일을 고려해 나는 3박 4일을 잡았다. 나와 같은 여행 방식은 숙박을 길게 잡아야 하므로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나는 현지인이 숙박을 제공하는 플랫폼에서 방을 혼자서 따로 쓸 수 있는 숙소 중 가장 가격이 싼 곳을 선택했다. 물론 집주인이 채식주의자인 것도 내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는 채식 식단의 저녁 식사도 함께 예약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잠시나마 뉴질랜드에 살아보니 아침저녁으로 밥을 사 먹기가 곤란할 것 같아 걱정이었다. 식당이 비싸거나 맛없거나 비싸고 맛없거나, 일찍 닫거나 늦게 열거나 일찍 닫고 늦게 열 것이 분명하다. 이 재미없는 뉴질랜드 안에서라면 어차피 늦게까지 돌아다니지도 않고 밤이면 숙소에 돌아올 것도 거의 확실했다.

마침내 네이피어로 떠나던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대중교통으로 공항까지 이동해야 했는데,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부터 집을 나섰고 추운 날씨에 비를 맞으며 버스를 기다렸다.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자 잠이 쏟아졌다. 짧은 비행이어서 잠깐 눈을 붙이자 금세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오클랜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구글맵을 손에 들고 길을 찾아보려 했지만 뭔가 잘 되지 않았다.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모르겠고, 오클랜드처럼 버스가 자주 있지 않은 건지 맵에 나오는 배차 간격이 너무 길어서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또 부슬부슬 비가 내렸고, 일단 비를 피하고자 지붕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때였다.

여행 왔어요?

어떤 남자가 말을 걸었다. 그는 호주에서 왔고 이미 네이피어 여행을 하고 떠나는 길이라면서, 같이 밥 먹자고 연락처를 주고는 내가 이용할 교통수단을 알려줬다. 나는 네이피어에 있고 너는 떠나는데 어떻게 밥을 먹냐고 물었지만 잘 전달되지 않았다. 아무튼 그가 저쪽에 가서 버스를 타라고 연신 가리키는 탓에, 그냥 택시를 타기로 하려던 참이었지만 자리에 앉아서 그가 알려준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버스는 15분 이상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마침내 인내심이 바닥나 돈이 얼마가 나오든 상관없이 무조건 택시를 타기로 하고 택시를 잡았다.

택시기사는 꽤 친절했다. 내가 목적지를 잘 모른 채 네이피어의 중심지로 가달라고 하자 나에 관해 궁금했는지 이것저것 물었고, 오클랜드에서 여행 왔다고 하자 친절하게 네이피어에 돌아볼 곳을 안내해주었다. 호주 억양인지 강한 뉴질랜드 발음인지 귀에 익숙하지 않아 그의 빠른 영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아쿠아리움’이라는 한마디와 그곳에 ‘펭귄’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마지막 날 잊지 않고 그곳에 들러 헤엄치는 펭귄을 봤다. 그 외 다른 말들은 대충 알아듣는 척 맞장구를 쳐주고 있는데, 커피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이거다 싶어 아주 좋아한다고 답했고, 그는 아마도 네이피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 틀림없을 한 카페 앞에 나를 내려줬다. 

사실은 커피보다는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아쉬운 대로 카페에서 플랫 화이트와 베이글을 주문해서 먹었고, 커피가 맛있고 베이글이 따뜻해서 기운을 금세 차렸다. 카페에서 나와 네이피어의 마린 퍼레이드 길을 따라 걸으며 해변을 산책했다. 흐린 날씨에도 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남태평양 바다가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그제야 주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양식이 멋지다고 들었는데 눈으로 확인하니 더욱 즐거웠다. 오클랜드가 제주도 같은 한적한 느낌이라면 이곳은 유럽의 작은 도시 같은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 그중에서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어놀고 있다는 점이 가장 뉴질랜드다웠다. 

한참 사진을 찍고 구경하며 걷다 보니 숙소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지도에 버스가 잘 안내되지 않아 관광안내소에 들어가 물어봤고, 버스 시간표까지 챙겨준 친절한 직원 덕분에 어떻게 갈지 쉽게 감이 잡혔다. 처음에는 한 차례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내 숙소는 예상과 달리 네이피어가 아니라 헤이스팅스에 있었는데, 직원은 내가 다시 네이피어로 돌아와야 할 줄 알고 돌아오는 차가 끊긴다는 걸 연신 설명했다. 나는 저녁때도 아니고 오후쯤밖에 되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차가 끊긴다는 것과 직원이 이렇게까지 나를 걱정해주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우여곡절 끝에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는 헤이스팅스로 가는 그 버스를 탔다.

헤이스팅스에서 만난 사람들

숙소가 헤이스팅스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본의 아니게 네이피어뿐 아니라 헤이스팅스까지 여행했다. 헤이스팅스는 네이피어의 쌍둥이 도시로 유명하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는 동네였다. 네이피어와 헤이스팅스 모두 뉴질랜드 호크스 베이 지역에 속하는데, 호크스 베이는 기후가 온화하고 건조하고 겨울에도 많이 춥지 않아서 세계적인 와인 생산지로 잘 알려져 있고 과수원과 농장이 많다. 나는 와이너리나 과수원을 보러 가지는 않았고, 헤이스팅스 도심을 조금 둘러보고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고, 랜드마크로 유명한 시계탑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도서관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길래 둘러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네이피어와 헤이스팅스는 멀었다. 버스로는 20분이었지만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의 두 개의 시를 잇는 좌석버스 정도 되는 버스여서 시간은 짧아도 거리가 멀었다. 네이피어 안내소에서 알려준 버스를 타고 헤이스팅스의 도서관 앞에 내렸다. 거기서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고 지도와 내 방향감각을 믿으며 꽤 오래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별로 심사숙고하지 않고 숙소를 예약하기는 했지만, 내 숙소는 방이 아니라 차였다. 정확히 말하면 캠핑 트레일러인 카라반을 집주인의 마당에 세워두고, 침대는 거기서 쓰고 욕실과 화장실은 집에 들어가서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가격이 현저하게 쌌던가 보다! 알고 예약한 건 아니었지만 공간이 아늑하고 사랑스러워서 마음에 들었다. 유일한 걱정이 있다면 잘 때 춥지는 않을까 싶었지만, 막상 하룻밤을 지내보니 전기장판과 히터가 있어 전혀 춥지 않았다. 

그곳에는 나 말고도 하숙을 하는 친구들이 더 있었다. 첫날은 한 하숙생이 일하는 터키 음식점에서 다 함께 외식을 했는데, 집주인 부부와 두 아이 말고도 그곳에 사는 약 대여섯 명의 사람들까지 모두 모여 왁자지껄하게 식사를 했다. 나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는데 맛이 나쁘지 않았다. 워킹홀리데이로 와서 스시집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었고, 대만에서 온 친구는 아이들을 봐주는 대가로 숙소를 받고 있었다. 나는 영어로 소통이 잘 안 될까 봐 걱정했지만, 손짓과 발짓으로 어떻게든 이야기가 통해서 재미있었고, 현지인에게 다음 날 꿀 박물관에 가보라는 조언을 듣고 그 자리에 있던 친구와 약속을 잡아 즉흥적으로 함께 여행도 했다. 그날은 너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서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새로운 경험이 낯설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나와 함께 여행한 친구는 카라반도 아닌 텐트에 살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시리얼과 빵으로 아침을 먹고 차까지 마신 뒤 ‘아라타키 허니’에 가기 위해 떠났다. 아라타키 허니는 헤이스팅스도 네이피어도 아닌 ‘해블록 노스’에 있었고, 우리는 함께 버스 시간표를 보고 방향을 찾으며 이동했다. 서툰 영어로 느리지만 한 마디씩 주고받으니 신기하게도 즐거웠다. 아라타키 허니에서는 다양한 꿀을 기념품으로 살 수 있었고, 처음 보는 수많은 종류의 꿀을 시음해볼 수도 있었다. 생각보다 작았고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나는 박물관도 박물관이지만 숙소에서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어 함께 여행한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고, 우리는 버스를 함께 찾았고,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함께 뛰었고, 오래 걸어 힘들어지자 함께 커피를 마셨고, 지나가다 발견한 딸기 농장에서 생딸기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호크스 베이 지역에서 재배한 사과로 만든 알코올 음료인 애플 사이다를 사 왔고, 저녁을 먹은 뒤 그 친구를 카라반으로 불러 함께 마셨다.

저녁 식사 시간에 나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기꺼이 집으로 불러들여 공존하는 주인 부부의 삶의 방식이 궁금해서 많은 질문을 했다. 아이들이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과 교류하기를 바라고, 이런 기회에 손님들끼리 교류하는 경험을 보는 게 즐겁다는 답을 들었다. 내가 상상하지 못한 삶의 방식이고 선호하는 방식도 아닐 것 같지만, 역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먹으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었다. 모두 각자의 이유로 뉴질랜드에 와 있었고, 저마다 다른 조건으로 이 집의 방이나 텐트나 카라반 등 곳곳에 살고 있고, 저마다 짧게 혹은 길게 그 집에 머무르기로 되어 있었고, 다른 일을 하고 다른 꿈을 꾸고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나는 바리스타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 하는 일본에서 온 친구와 연락처를 교환했다. 가장 짧게 머무르기로 되어있는 게 나였는데, 오클랜드에 일자리가 있는 것만 아니었다면 더 있고 싶을 정도였다. 공동생활을 싫어하는 나지만 서로 배려하는 사람들이 모인 그곳에서의 경험은 즐거웠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온 오클랜드는 사뭇 달랐다. 내가 하는 워킹 홀리데이도 길지만 하나의 여행이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 더 의욕이 생겼다. 내 여행이 즐거웠던 건 만나고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고 교류했던 수많은 사람 덕분이었다. 이 글에 다 적지 못했지만 크고 작은 도움을 주거나 이야기한 사람은 더 많다. 길을 찾거나 사진을 찍을 때 도움받기도 했고, 카페에서 바리스타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심지어 길을 잘못 들어 고속도로를 걷다가 차를 얻어타고 도심으로 가기도 했고, 머무르던 숙소의 어린이들과 함께 게임도 했다. 여행한다는 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여행할 때의 기분을 떠올려보니 돌아온 오클랜드에서도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노력도 하게 되었다. 어렵겠지만 언제나 조금은 여행하는 것처럼 산다면 쉽게 일상에 잠식되어 무기력해지지 않고 즐거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에겐 조금 효과가 있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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