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이민갈까? 19. 가장 구체적인 두려움

생각하다이민커리어

언니, 우리 이민갈까? 19. 가장 구체적인 두려움

유의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한국에만 살아봤을 때는 외국에 나가면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책을 읽고 신문을 보며 관심 분야라면 어떻게든 찾아보니까, 외국이라고 해도 대단히 새로울 것도 특별히 더 배울 것도 없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와보니 읽거나 들어서 이미 다 알던 이야기라도 와서 직접 온몸으로 경험하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한국보다 땅이 엄청 넓다더라.’ 하는 말은 아무리 걸어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던 날의 얼얼한 발바닥과 상점 하나 보이지 않는 텅 빈 거리의 막막한 기분으로 생생해졌고, ‘겨울이 엄청 습해서 춥대요.’하는 말은 삼 일째 마르지 않던 면생리대와 겨우내 콧속에 머금던 차고 축축한 곰팡이 냄새로 기억이 되었다.

떠나기 전에 두려웠던 것들은 지나고 보니 반쯤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들이었다. 일을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 두려웠지만 무사히 구해서 즐겁게 일했고, 길을 모를까 봐 걱정했지만 그저 몇 번 헤맸을 뿐이었다. 마지막까지 챙길까 말까 망설였던 롱패딩을 입을 일은 한 번도 없었고,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가져왔던 우산과 우비도 쓰지 않았다. 머리가 띵하게 찬 칼바람이 추운 게 아니라 뼈가 시리게 실내가 추워서 패딩보다 따뜻한 실내복이 필요했고, 뉴질랜드의 비는 조금 기다리면 그치곤 했고 적당히 내릴 땐 맞을 만했다. 온종일 세차게 쏟아지는 비는 어차피 우산과 우비 따위로는 막을 수 없었다. 이렇듯 막상 부딪혀보면 현실은 또 달라서 미리 걱정하고 준비한들 소용이 없는 걸 안다.

알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두렵다. 떠나기 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두렵고 불안하다. 아무리 잘 해내고 있어도 마음 한쪽에는 언제나 불안이 체한 것처럼 걸려 있다. 무엇도 정답이 아니고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내는 게 삶이라는 걸 알지만, 끊임없이 이게 정답이 아닐까 봐 걱정된다. 그래도 한국에서부터 불안과 더불어 살아온 세월에서 배운 게 있다면, 불안은 불확실한 상황 앞에서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그럴 때 더는 막연해지지 않도록 무엇이 두려운지 걱정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적어보면 도움이 된다.

경력 단절

나는 일을 하고 있어도 불안해 한다. 내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지금 일을 잘 하고 있는지 늘 의심스럽다. 회사에 다닐 땐 매일 첫 출근이라도 하는 것처럼 가서 일을 잘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런 걱정은 과로로 이어졌다. 퇴근 이후에 집에서도 쉬지 못하고 자료를 찾았다. 아무리 반복해도 내겐 업무가 일상이 되지 않았다. 2년 동안 한 커피 전문점에서 일했을 때도, 마지막 근무일까지도 내가 일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가 않았다. 매일 눈을 뜨면 맡은 업무를 다 해낼 수 있을지, 행여나 해내지 못해서 동료들에게 부담이 되거나 회사에 누를 끼치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한국에서 퇴사하고 한 달 정도 쉬다가 뉴질랜드에 왔는데, 그 한 달 동안 쉬기는커녕 커피를 만드는 법을 다 잊어버릴까 봐 계속 걱정만 했다. 그런 나에게 경력 단절은 매일 불안 속에서 사는 일이다. 다시 취직할 수 있을지, 어떻게든 취직한다고 해도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점점 확신이 없어진다. 이곳에서는 필연적으로 일을 못 하게 되는 순간이 자꾸만 생긴다. 비자가 끝나서 한국에 가야 할 때도 있고 반대로 한국에 있었는데 비자가 나와서 들어와야 할 때도 있고, 비자는 있지만 취업은 못 하는 조건인 시기도 있다. 지금도 카페 일을 쉬고 있는데 매일 불안하다. 내가 다시 영어를 쓰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고, 전처럼 라테아트를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영주권을
못 받을까 봐

영주권을 못 받고 비자가 만료돼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봐, 돌아가서 한국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두렵다. 한국에서 취직하기에 나이가 많아졌고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오지 않았다. 운좋게 취직에 성공한다고 해도 사실은 이제 한국식 회사에 적응할 자신도 없다. 뉴질랜드에 있을수록 한국의 회사에 적응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텐데 뒤늦게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 얼마 전 한국에서 잠깐 회사를 다닐 때, 사람들이 모두 저녁 일곱 시까지 퇴근하지 않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아홉 시간이나 사무실에 있어야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말은 그렇게 해도 다섯 시쯤 되면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서 집에 갈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일곱 시가 될 때까지 정말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며 다들 나랑 다른 몸을 가진 걸까 어떻게 이렇게 허리가 아프고 머리가 아픈데 일어나 집에 가지 않을 수 있는 건지 의아했다. 퇴근 시간인 일곱 시 정각이 되어도 1분도 지나지 않아 사무실을 떠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뉴질랜드에서 해가 떠 있을 때 퇴근하는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서 열 시부터 일곱 시까지 약 아홉 시간을 회사에 있으려니까 몸이 버틸 수가 없었고, 통근 시간과 출근 전 일찍 도착하고 퇴근 후 늦게 나오는 것까지 포함하면 못해도 열한 시간은 밖에 있는 것인데, 야근에 주말 출근까지 있어 개인 생활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더는 그런 삶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싫은 정도가 아니고 불가능이었다. 생리도 멈추고 위도 뒤집어지고 병만 다양하게 얻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돌아가 한국에서 일할 자신이 점점 더 없어진다.

일러스트 이민

내 인생
이러다 망할까 봐

모순적이다. 한국에서 일하지 않기로 했는데도, 뉴질랜드까지 와서도 계속 한국 알바 사이트와 구직 사이트를 떠나지 못한다. 몇 살까지 뽑는지, 어떤 스펙을 갖춰야 하는지, 자격증이 필요한지 관심 있는 분야의 구인 광고를 계속 검색해보고, 지금 지원하지도 않을 거면서 스크랩하고 캡처해둔다. 불안해서 검색하기 시작하는데 그러다 보면 더 불안해져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다. 밤새 검색하는 건 구인공고뿐만이 아니다. 어떤 날은 영주권을 받지 못할까 봐 끊임없이 이민법을 찾아보기도 한다. 마치 대학 입시처럼 매년 바뀌는 데다가 그 변화에 따라 누군가는 굉장히 불리해지기도 해서, 우리가 세운 계획이 잘못된 전략이 되지는 않을까 늘 불안하다. 인터넷에는 떠도는 부정확한 정보도 많고, 실질적인 내용보다는 업체 홍보나 광고가 더 많은 것도 알면서 관련된 모든 글을 읽어보며 정보의 조각을 찾아 헤매며 잠들지 못한다.

혹시라도 애인과 헤어져 이 모든 계획이 무너질까 봐 두렵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내가 갑자기 몸이 아프면, 열세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하는데 그럴 힘이 없을까 봐 무섭다. 아파서 한국에 못 가고 뉴질랜드에서 치료를 받는다면 외국인이라 어마어마한 병원비가 나올까 봐 무섭고, 그럴 때마다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등도 아프고 소화도 안 되는 내 몸 상태가 걱정된다. 이렇게나 몸이 약해서 노동을 별로 많이 하지도 못하는데, 팔자에 물려받을 재산도 없어서 언젠가 정말로 굶어 죽지는 않을까 두렵다. 

그 외에도 이 좁은 사회에서 아웃팅을 당할까 봐 걱정이고, 고양이가 아플까 봐 혹은 고양이가 언젠가 죽을까 봐 두렵다. 우리에게 영원히 집이 없을까 봐, 겨우 회복한 정신 건강이 이 나라에 와서 다시 나빠질까 봐, 이민 과정에는 계속 돈이 드는데 그 비용을 조달하지 못할까 봐, 내 경력은 탄탄하지 않은데 이대로라면 죽을 때까지 나만의 전문 분야를 가질 수 없을까 봐, 점점 손목과 허리가 아파서 바리스타로 계속 일하지 못할까 봐, 이제 와서 다른 경력을 쌓기엔 너무 늦었을까 봐, 영어를 평생 못해서 이 나라에서는 평생 회사를 못 다닐까 봐, 나이는 더 먹는데 한국에서 다시 시작할 수는 없을까 봐 다 불안하다. 삶에서 만나는 막연한 두려움은 직면하는 순간 의외로 쉽게 사라졌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내 불안과 두려움은 막연하지가 않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떻게 해결도 할 수 없다. 처음 겪어보는 구체적인 두려움이다.

잘 해낸 일들

그래서 요즘은 잘 해낸 일들을 세어보려고 노력한다. 운전을 일 년 넘게 했는데도, 얼마 전 한국에 다녀오면서 다시 뉴질랜드에서 운전할 수 없을까 봐 불안했다. 사실 비자만 아니었으면 그게 불안해서 한국에 가지 않으려고도 했다. 어렵게 운전을 혼자 배웠고,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만족스러웠는데 이걸 또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는 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다들 그런 건 몸이 기억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내 몸은 운동 신경이 부족해서 자전거를 타는 것도 쉽게 잊는 몸이라 그런 말로는 전혀 위로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지내다 다시 돌아온 지난달, 여기 와서 운전대를 잡자 역시나 떨리고 막막했지만, 며칠 동네를 조금씩 돌아다니니 예전에 하던 만큼 할 수 있게 되었다. 몸이 기억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내 몸도 무언가 기억할 수 있기는 있나 보다.

처음에 뉴질랜드에 왔을 때 영어를 써야 하는 환경에서 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 년쯤 일한 뒤에는 주문을 잘 받는 건 물론 손님들과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도 이 집에 살지 못할 줄 알았다. 내가 사는 집은 한국이었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보안에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집이다. 현관문이 자세히 보면 안이 들여다보이는 반투명한 재질이고, 집 곳곳에 난 커다란 창문으로 바깥에 행인과 눈이 마주칠 수도 있다. 심지어 잠금장치도 부실해서 도어락도 없고 이중잠금장치도 보조키도 없다. 그냥 열쇠 하나로 간단하게 잠근다. 처음에는 누군가 창문 틈새로 불법 촬영을 하거나, 문을 흔들거나 따고 들어와서 나를 죽이거나 해칠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아직 그런 일은 없었고, 그 비슷한 일조차 없었다. 창문으로 자주 눈이 마주치던 이웃은 이내 커튼을 달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내 집 안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이 집에서 마음 편하게 잘 살고 있다.

한편 예전에 두려웠지만, 지금은 하나도 두렵지 않은 것도 있다. 외로움이다. 예전에 나는 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걸 좋아했고, 주말이 비면 약속이든 데이트든 잡아 일상을 꽉꽉 채우려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봐 늘 불안했다. 커밍아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나기 전까지는, 모두 내 정체를 알면 날 싫어할 거라 믿기도 했다. 한때는 그런 생각에 압도되어 일상생활이 어려웠던 적도 있다. 지금의 나는 적어도 그런 건 두렵지 않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걱정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이미 나를 좋아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친구들이 많이 있고, 나를 믿고 의지해주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해서 살고 있다. 

혹시 애인과 헤어지더라도 외롭게 늙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도 있다. 좋은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계속 곁에 있을 것 같고, 함께 무엇이든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은 애인도 친구도 없이 혼자가 된다고 해도 뉴질랜드에 살면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많이 배워서인지 더는 그 시간이 두렵지 않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다른 경험을 하며 예전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의 고통도 언젠가는 그렇게 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때까지 잘한 일을 더 많이 세어보며 기다리려고 한다.

유의미님의 글은 어땠나요?
1점2점3점4점5점
SERIES

언니, 우리 이민갈까?

이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커리어에 관한 다른 콘텐츠

콘텐츠 더 보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