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이민갈까? 5.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

알다워킹홀리데이

언니, 우리 이민갈까? 5.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

유의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사실 나는 이민이 뭔지 잘 몰랐다. 누군가 이민을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막연히 온 가족이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비행기를 타는 장면을 상상했을 뿐이다. 알고 보니 단순히 외국에 살기로 결정한다고 해서 정말 외국에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주소지를 변경하듯 간단하게 국적을 변경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나만큼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거라 믿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알아낸 사실을 바탕으로,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감을 잡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민을 간다는 것은

이민은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것이고, 가서 계속 외국인으로 살 게 아니라면 국적을 변경해 그 나라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국, 일본, 중국, 유럽에 국적이라는 개념이 있다면, 뉴질랜드를 포함해 미국, 캐나다, 호주에는 시민권 제도가 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출생과 동시에 한국 국적을 받았으니, 내 이민은 뉴질랜드에서 시민권을 받아야 완료된다. 그런데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은 영주권자에게 주어진다. 영주권은 외국에 기한 없이 장기적으로 있을 수 있는 자격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사실 일상생활에서는 영주권과 시민권의 큰 차이를 느낄 수 없고, 범죄를 저지르면 영주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것 정도가 다르다. 단, 한국에서는 국적이 여러 개면 하나를 선택할 의무가 있기에, 한국 국적을 유지하기 위해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고 영주권 상태로 머무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다’는 건 구체적으로 ‘영주권을 받겠다’는 걸 의미한다.

말로만 듣던 비자

영주권이 외국에 계속 머물 수 있는 자격이니까, 처음부터 영주권을 신청하고 그걸 받은 다음 입국하면 조금 더 쉬워진다. 그럼 법적으로는 계속 머물 수 있으니, 무사히 일자리를 구해 생활비만 해결하며 살면 된다. 실제로 한국에서 조금 더 준비해서 영주권을 신청한 뒤에 입국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나와 파트너는 그렇지 못한 케이스다. 후술하겠지만 영주권을 아무나 주는 게 아니라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한국에서 준비하는 게 한계가 있었다. 영주권 없이도 뉴질랜드에 입국하기로 하면, 외국인의 입국이므로 허가가 필요하다. 그 입국허가가 바로 비자다. 한국의 경우 수많은 나라와 비자면제협정이 있어, 목적이 관광인 한국인은 별다른 절차 없이 외국 입국과 동시에 관광비자를 받기도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그러나 관광비자는 학업이나 취업이 제한된다.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는 학업이나 취업을 해야 하기에 우리는 별도의 비자가 필요했다. 비자는 영주권과 달리 기간과 조건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는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기간은 기본 1년이고, 어학연수를 6개월 이상 할 수 없다. 또한, 학생 비자의 경우 방학 기간 외에는 한 주에 20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없다.

영주권을 갖고 싶다면

뉴질랜드 영주권을 받는 방법은 다양하다. 거액의 돈이 있다면 투자로도 받을 수 있다. 자원과 상황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길을 택할 수 있어서, 조언과 상담을 해주는 업체도 많을 정도다. 우리는 ‘기술 이민’으로 불리는 스킬드 마이그런트(Skilled Migrant Category Resident Visa) 유형을 준비한다. 학력, 경력 등을 조합해 점수를 산출하고, 기준을 넘으면 영주권을 신청하는 방식이다. 이 점수는 얼마나 뉴질랜드에 필요한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어서, 객관적으로 좋은 커리어를 가진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조건에 맞는지가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에서 부족한 직업인 요리나 정보 기술 쪽에 종사한다면 더 많은 점수를 받는다. 구체적인 내용은 뉴질랜드 이민성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고, 검색을 통해 번역된 자료도 찾을 수 있다. 단, 주의할 점이 있다. 이민 정책은 매년 바뀌고 때로는 한 해에도 여러 번 바뀌므로 반드시 최신 정보를 참고해야 한다. 큰 틀에서 어떤 방식인지 살펴볼 수 있도록 아래의 표로 정리해보았다. 구체적으로 특정 사항이 인정되는지의 여부는 변호사나 전문가가 판단할 영역이므로, 단순히 어떤 식으로 계산하는지만 참고하기를 권장한다.

2019년 현재, 이 표를 보고 낸 점수가 160점 이상이면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다. 우리의 사례로 예를 들면, 신청자의 나이가 20-30대고(30점), 학사 학위가 있어서(50점) 80점을 받는다. 현재 유학 중인데, 유학을 마치고 오클랜드 이외의 지역에서(30점), 일자리를 구하면(50점) 이론적으로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다. 단, 그 일자리가 저 표에서 인정되려면 임금을 뉴질랜드 노동 시장의 평균보다 더 받아야 하고, 직업별로 그 구체적 금액이 정해져 있다. 따라서 그렇게 빠른 영주권 신청은 어렵고, 보통은 경력을 쌓아 연봉을 올린 후에 신청한다. 물론 연봉을 올리는 그 날까지 현행법이 더 불리하게 바뀌지 않아야 한다. 또한, 영주권 신청자는 별도의 영어 실력 기준도 충족해야 하고, 파트너도 같은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추어야 가산점을 보탤 자격이 생긴다.

이민에 꼭 필요한 세 가지

처음 이민을 준비하던 때에는 뭘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모르는 게 가장 힘들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계속 맨땅에 헤딩한 끝에 어느 정도 윤곽은 잡혔다면, 그때는 정말 확실한 게 하나도 없었다. 유학원이나 컨설팅 업체의 정보가 너무 다양해서 갈피를 잡기 어려웠고, 사전 지식이 없어서 잘 이해도 안 됐다. 그냥 뉴질랜드에 이민을 가려면 실제로 뭐가 필요한지가 알고 싶었는데, 영주권을 이미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많은 이민자들이 공통으로 꼽던 요소 중, 직접 부딪혀보니 가장 간절하게 느껴졌던 세 가지를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싶다.

1. 일단은, 영어

사실 외국 생활 후기를 찾아보면 영어를 못해도 살 수 있다는 이야기와 영어를 못하면 큰일 난다는 이야기가 섞여 있다. 와보니 이것은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후기를 볼 때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사는지, 영어를 얼마나 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사회에 적응하고 취직하려면 당장 영어가 필요하다. 오기 전에는 영어 때문에 직업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막상 와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최저임금을 받는 일자리도 괜찮다면 취직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나는 뉴질랜드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데, 주로 기술을 사용하는 일이고 업무에 고급 의사소통이 필요하지 않은 데다가 한국에 경력이 있어서 쉽게 일을 구했다. 하지만 다른 경력으로 일을 찾을 때는 확실히 어려움을 겪었는데, 한국에서 주로 글을 쓰는 일을 했기 때문에 다른 언어로 일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사실 한국인들 사이에서의 영어를 잘한다거나 못한다는 말은 꽤 모호하다. ‘영어를 못한다’고 똑같이 말해도 그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뉴질랜드에 5년, 10년을 살았어도 영어로 커피를 주문할 수 없는 이민자들도 많고, 모두 기술을 사용하거나 영어 소통의 비중이 적은 분야에서 일하며 잘 지낸다. 어떤 일을 하며 살게 될지에 따라 요구되는 영어 수준은 다르다. 그런 삶에 불만족하지 않는다면 영어가 무슨 문제일까 싶다. 그러나 의사소통은 일상 전반에서 사용하는 기술이므로 당연히 그게 있다면 많은 것들이 쉬워진다.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하는지에 정답은 없지만, 내가 준비하는 유형의 영주권 신청 조건은 아이엘츠 평균 6.5 이상이다. 나처럼 스킬드 마이그런트 유형으로 영주권을 희망한다면, 언젠가 그 점수를 받을 수는 있어야 한다. 그게 뉴질랜드 정부가 추천하는 영어 실력이라고 볼 때, 사실 나는 그것도 부족하고 정말 최소한의 점수일 뿐이라고 느낀다. 다른 시험으로 동급의 성적을 받은 적 있으니 그 정도 실력이 된다고 가정할 때, 나는 여전히 뉴질랜드 일상과 업무에서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않다고 느낀다. 반면에 비슷한 성적을 가진 파트너는 영어를 주로 쓰는 직장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으니까, 개인의 성격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를 것이다.

2. 당연하게도, 돈

이민은 생활비 외에도 목돈이 들 일이 많다. 비자에 따라 일을 할 수 없는 시기가 생기거나 갑자기 출국해야 할 일에도 대비해야 한다. 다른 생활비는 물가가 조금 비싸도 임금이 높아서 한국과 큰 차이가 없는데, 주거비가 많이 차이 난다. 어느 지역에 어떻게 사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현재 합쳐서 10평 이내의 방 한 칸, 거실 하나를 갖춘 집에 살고, 한 달에 약 120만 원이다. 오클랜드지만 도심은 벗어난 지역이고, 누군가와 방을 공유하지 않는 독립된 집 중에서는 저렴한 가격이다. 같은 지역에서 남의 집에 방 한 칸을 임대하는 플랫으로 살고 화장실이나 부엌을 공유하는 조건으로는 월 50만 원 선으로 지낼 수 있다. 물론 하나의 방을 둘이서 쓰면 더 저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슷한 가격으로 서울의 원룸은 주방과 화장실도 독립적으로 쓰는 셈인 데다가, 뉴질랜드 주택은 서울 원룸보다 훨씬 더 낡았고 허름하다. 비자 신청에도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 비자마다 가격이 다르지만, 내가 이번에 낸 비자 신청 비용은 약 20만 원이었고, 비자 때문에 받은 신체검사는 30만 원이었다. 또한, 비자를 신청할 때 충분한 생활비와 돌아갈 항공권 구매력이 있는지 은행 잔액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내야 할 비용은 아니지만, 최소한 해당 금액을 잠깐 융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경우 2018년에 일 년 치 학생비자 신청 시 한화로 약 1,300만 원 정도의 통장 잔액이 있음을 증명해야 했고, 2019년에 파트너십 관광 비자를 신청할 때는 800만 원 정도를 증명했다. 이 또한 비자 종류와 예상 체류 기간, 신청 시점 등에 따라 다르므로 대략적인 액수만 짐작하는 것이 좋다.

3. 몸과 마음의 건강

일단 몸이 건강해야 비자가 나오고, 영주권이 나온다. 신청할 때마다 신체검사를 통해 확인한다. 그뿐 아니라 병원비도 비싸고, 말도 안 통하고, 한국처럼 의료 서비스가 훌륭하지도 않아서 아프면 나만 괴롭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의 건강도 꼭 챙겨야 한다. 뉴질랜드가 특히 그렇긴 하지만 타지 생활은 기본적으로 외롭다. 친구도 모임도 없을 뿐 아니라 여기는 밖에 놀 데도 없다. 쇼핑하기가 좋은 것도 아니고, 술을 마실 곳도 별로 없다. 예쁜 카페나 맛집, 유행하는 전시나 예술, 다 먼 얘기다. 한국에서 나가 노는 걸 좋아했다면 스트레스를 풀기 어려울지 모른다. 게다가 외국인으로 사는 건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가진 돈을 투자하며 나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거니까, ‘영주권에 실패하면 노후는 어쩌지’하는 생각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훈련을 더 하고 왔어야 한다는 후회를 좀 했다. 요즘은 어쨌든 여기에 살기로 했고, 앞으로도 삶이 이렇게 흘러갈 텐데, 그 점을 체념하고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대로 이민에 실패해 한국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불안과 외로움을 다스리는 법 하나는 배워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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