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이민갈까? 9. 처음 만나는 당연함

생각하다뉴질랜드

언니, 우리 이민갈까? 9. 처음 만나는 당연함

유의미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은
세상

일러스트 이민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있다. 한국에 있다가 뉴질랜드로 오니까 그랬다. 세상에 당연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사람이 신발을 신고 밖에 나가야 하는 것조차 당연하지 않다. 여전히 이유를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길에서는 물론 마트에서도 신발을 안 신고 다닌다. 뉴질랜드에서는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도 당연하지가 않다. 한 동료가 자기는 팔이 부러지지 않는 한 절대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다. 멋모르고 가벼운 감기 따위로 병원에 갔다가 터무니없는 액수의 병원비를 지급하고 나오자 그 말이 이해됐다. 내 상식으로는 집 안에 거미가 있으면 죽이든 쫓아내든 해야 하는데, 당시 함께 살던 네 명의 동거인들은 그것조차 당연하지 않았나 보다. 그 거미는 내가 발견한 이후로도 몇 달 동안을 그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살았다. 처음엔 그 모든 게 낯설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뉴질랜드에 살다 보면 또 뉴질랜드의 삶이 당연해진다. 일 년 넘게 있다 보니 공기가 맑은 것에 감흥이 없어지고, 교통 체증이 덜하다는 점도 잊어버린다. 처음에는 서울에 비하면 이까짓 게 무슨 교통 체증이냐고 웃어넘겼는데, 이제는 이십 분만 차가 막혀도 한숨이 나온다. 서울에는 재미있는 일도 많았던 것만 같고, 뉴질랜드의 불편한 점들만 보인다. SNS에서 유명한 연남동 카페도 가보고 싶었는데, 신촌에 쇼핑하러 나가면 예쁜 것도 참 많았는데, 택배도 빨리 오고 온라인 결제가 어마어마하게 편리했는데, 가진 건 없어도 졸업장이 있었고, 한국어를 잘해서 아르바이트도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다 꿈같은 일이다. 

그래서 한국에 잠깐 돌아가야 했을 때 기대가 되었다. 뉴질랜드식 무료한 생활에 싫증도 나고, 얼른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어서 들뜬 마음이었다. 돌아와서 마주한 한국 특유의 어려움도 물론 있지만, 이제는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잘 견뎌낼 수 있었다.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도 잠깐 참으면 되고,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이 나를 밀치고 지나가도 양보할 수 있었다. 낯선 사람이 길을 묻길래 반갑게 알려주려 했다가, 사실은 판매나 포교가 목적이었다는 걸 알게 되어도 그런 일도 있는 거라고 넘길 수 있었다.

처음에만 그랬다.

한국에서 다시 매일 출근을 하자 그런 인내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잠시 여행 왔다고 생각하고, 뉴질랜드에서 배운 사소한 행복에 주목하는 삶의 방식을 적용해보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길 가다 예쁜 고양이를 마주치는 사건이나 퇴근길에 저녁 노을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정성껏 만끽한다면 쉽게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삶을 경험해봤고 다 알고 있고 이제는 자신이 있었는데도 더는 쉽지 않았다. 

순식간에 돌아간
삶의 방식

일러스트 이민

근무 중에 들었던 폭언이 귓가를 떠나지 않아 길고양이를 마주쳐도 눈길을 줄 수 없었고, 대중교통에서의 지옥 같은 긴 시간을 보내고 나면, 노을은커녕 깜깜한 밤하늘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공기는 나쁘고 거리에서는 악취가 나고 담배꽁초가 많았다. 여전히 버스는 멀미가 나고 지하철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회사는 일이 밀렸다는 이유로 야근과 주말 출근을 강요했고, 사람들은 점심을 거르면서까지 급한 일을 처리했다.

서서히 예전처럼 변해가는 나를 발견하는 게 무엇보다 싫었다. 뉴질랜드 생활을 하며 몸에 배었다고 믿었던 여유마저 점점 사라졌다. 아무것도 듣지 않기 위해 다시 이어폰을 끼고 다니게 됐고, 어느 날부턴가 출근길에 누군가 건네는 전단지를 받지 않았고, 가족들의 싫은 점을 조금도 참지 못하게 됐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먼 길을 가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고, 좋아하지도 않는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있는 것도 지겨웠다. 어느새 브라를 착용하고 다니게 됐고, 다시는 쓰지 않으려고 갖다 버렸던 화장품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미용실에 돈을 내고, 옷과 신발에 돈을 썼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또 죽도록 돈을 벌었다. SNS에도 길거리에도 파티에 가는 것처럼 꾸민 여자들이 많았고, 나는 다시 예전처럼 성형수술을 검색해보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들은 ‘아이섀도를 다섯 개쯤은 발라야 밖에 나가지, 안 그래?’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의 존재가 나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한국에서는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회사에 슬리퍼를 신고 다녀도 되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만 스스로 스캔하며 파악해야 한다. 어느 회사가 복장을 단정하게 하고 다니라고 말한다면, ‘아, 크롭탑을 입고 출근하면 안 되는구나!’, ‘팬츠의 길이는 이 정도여야 하는구나.’,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하며 눈치로 알아내는 건 내 몫이다. 모두 짙은 눈화장에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곳에, 내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을 수는 없다. 적어도 슬랙스에 단화를 신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회사에 양말을 신지 않고 다니거나 안경을 쓰고 다니는 사람의 존재는 그 자체로 양말을 신지 않아도 되고, 안경을 써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오늘 내 존재로 어떤 복장에 힘을 실어줄지 고민하면서, 왜 이걸 고민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어디에, 아니 어떻게

일러스트 이민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무엇이 당연한지가 달라진다. 어디에 살 것인지보다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몇 번씩 길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내가 내리기도 전에 지하철 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오늘도 이렇게 인류애를 잃었다고 쉽게 말한다. 클럽에서 약물을 이용해 여성을 강간하고, 아는 여성의 자택에 침입해 성폭력을 시도하고, 남의 집 출입문을 강제로 열려 하고 길고양이의 밥에 독극물을 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삶의 의욕까지 잃는다.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런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그럴 수가 있는지 어떻게 같은 인간끼리 이렇게도 극단에 서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때는 내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감흥이 없고, 특정 맥락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잘 예상이 되지 않아 도무지 대화에 자연스럽게 응할 수 없었다. 어제 일어난 일을 얘기하고 있는 친구의 감정선을 잘 따라가지 못해서 ‘즐거웠겠다.’와 ‘힘들었겠다.’중 뭐가 모범답안일지 모르는 상태로는 좋은 대화 파트너가 되기 어렵다. 게다가 나는 맛있는 것도 재미있는 것도 별로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에 맛있겠다거나 재밌겠다고 말해도 조금씩은 거짓말이 될 텐데, 그렇다고 말끝마다 나한테는 그런 게 별 의미 없다는 과도하게 솔직한 대답만을 할 수도 없다.

뉴질랜드에서 마침내 매사에 냉소하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 기쁜 일에 기뻐하고 속상한 일에는 속상해하고 좋아하는 걸 마음껏 표현하는 사람에 좀더 가까워졌다. 그동안 버틸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 편을 택했나 보다. 행여나 마음 쓰지 않으려고 고집 부리느라 맛있는 것도 재미있는 것도 잘 모르고 지냈다. 그걸 택하지 않고 모든 걸 마음껏 느끼다가는 매일 울며 지내야 했을 거다. 사실은 친구의 부탁에 마음을 쓰다가 원하지 않던 종교 행사에 끌려간 적이 있고, 길을 묻는 낯선 사람에게 호의적으로 대답해주다가 화장품을 강매당한 적이 있고, 택배 기사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감사합니다.’ 인사했다가 개인적으로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노동자가 죽었다는 기사를 보면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눈물이 난다. 여성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사생활 폭로 협박에 한없이 취약해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하는 누군가를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운다. 열심히 쌓아 둔 마음의 방어벽을 잠깐 내린 채 한국에 왔더니 하루가 멀다 하고 눈물바다다.

잃어야만 하는 것

일러스트 이민

모든 걸 계산했다면 뉴질랜드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뉴질랜드에 살기로 했기 때문에 잃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부모님이 아플 때 옆에 있지 못할 것이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 나누며 편하게 술 마시는 순간이 쉽게 오지 않을 거다. 한국의 페미니즘 공동체처럼 ‘척하면 척’ 말이 잘 통해서 신나게 토론할 수 있는 일이 평생 다시는 없을지도 모르고, 겉모습부터 아시안인 나는, 잠시나마 착각으로라도 주류가 된 기분을 느껴볼 수 없을 것이다. 늘 2등 시민으로 받는 호의든 무시든 감내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뉴질랜드와 한국을 단순히 비교하기 어렵다. 뉴질랜드 사회를 아직 잘 알지도 못하고, 나는 여전히 한국에 살았던 시간이 훨씬 길다. 다만, 한국 사회에 강하게 관여되어 있으면 감당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는 건 분명하다. 수시로 무너지는 마음을 안고 사는 예민한 내게는 많이 힘들고 해로운 일이다. 이민자로 살게 되면 어떤 사회에도 평생 속하지 못하게 될 게 걱정은 조금 되지만, 속해서 느껴야만 하는 감정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 같다. 

뉴질랜드의 삶은 나를 이미 충분히 변화시켰다. 사람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친구들의 안부를 먼저 묻는 사람이 되었다. 뉴질랜드가 외로워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 삶에 치여 친구들의 연락을 받고도 귀찮아하던 때보다는 낫다. 인터넷이 느리고, 카페 화장실이 깨끗하지 않고, 수리 기사가 빨리 오지 않고, 비싼 월세 때문에 커피 한 잔 사 먹는 것도 고민해야 하고, 때때로 거미랑 같이 살아야 할 때도 있지만, 지금은 나답게 살 수 있는 곳에 살고 싶다. 사람들의 선의를 믿고,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고 생각하고, 그랬으면 좋겠고,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유의미님의 글은 어땠나요?
1점2점3점4점5점
SERIES

언니, 우리 이민갈까?

이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콘텐츠 더 보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