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이민갈까? 11. 퀴어를 위한 나라는 없지만

생각하다이민퀴어

언니, 우리 이민갈까? 11. 퀴어를 위한 나라는 없지만

유의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파트너십 비자를 신청할 때의 일이다. 한국에서 신체검사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관계를 파트너라고 써 달라고 하니까 단어를 이해 못했는지 남편이냐고 몇 번을 물었다. 비자 신청에 혼선이 생기는 게 싫어서 정확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 자리에서 커밍아웃하고 싶지는 않았다. 파트너로 표기해 달라고 여기저기에 반복해서 요청했으나 하나같이 남편인지 묻는 집요한 상황에 결국 남편이라고 쓰시든지 마음대로 하시라고 해버렸다. 뉴질랜드에서는 그런 일이 아직 없다. 파트너가 아직 입국하지 않아 대신 전화했을 때 은행 업무 상담도 가능했고, 공동 계좌를 만들러 갔을 때도 무슨 관계인지 왜 만드는지 쓸데없는 개인적인 정보를 물어보지 않았다. 고양이 보험을 알아보던 중, 고양이의 정확한 나이를 파트너가 안다고 이야기해도 그게 ‘허스밴드’냐고 아무도 안 물어본다.

친구 관계라서

한국에서는 우리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간단한 업무 처리도 쉽지 않았다. 꼭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 집요하게 개인 정보를 묻는 것도 불편하지만, 가까운 관계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위임하기 어려운 점도 매우 불편하다. 

임대 아파트를 신청하기 위해 선착순으로 번호표를 받고 아침부터 줄을 섰던 날이 있다. 중간에 출근해야 했던 나는 파트너에게 대기를 넘겼는데, 친구라고 하니까 가족 관계의 경우보다 위임 서류가 훨씬 복잡했다. 그날 우리는 홍대에서 강남까지 택시를 몇 번이나 탔고, 촉박한 시간에 주민센터를 오가며 복잡한 서류를 다 떼고 인감도장까지 가져왔다. 서류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이성애자 부부의 두세 배에 달하는 교통비를 쓴 것 같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됐다. 함께 살면서 서로를 돌보는 건 서로이지만 병원에서도 파트너로 인정받기 어렵다. 응급실에 가거나 수술동의서가 필요하다면, 파트너가 옆에 있다 해도 멀리 있는 부모님께 전화해야 할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오히려 성별이 같다는 점을 이용해 상대방 본인인 척하는 것에 익숙했다. 택배를 대신 받아주는 건 물론이고, 서로의 서명도 잘한다. 전화로 해야 하는 용무를 시간이 되는 쪽이 대신해줄 경우가 있는데, 성별이 같고 개인정보를 알고 있으면 본인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빠르다. 가족이나 부부 관계에서는 위임해서 처리할 수 있는 간단한 서류 발급이나 접수도 친구 관계라면 불가능하다. 쓸데없이 법을 어기고 싶지 않지만, 법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다.

일러스트 이민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처음 뉴질랜드에 도착한 날, 우리가 파트너라는 걸 인식하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던 은행 직원을 기억한다. 운전면허 시험 때문에 간 교통센터에서도 보험을 홍보하던 직원이 ‘너의 남편이나 파트너도 함께 가입할 수 있어.’라고 명시해줬다. 함께 온 파트너에게 눈길을 한번 준 이후에 그렇게 말해서, 일부러 파트너라는 단어를 넣어 배려해준 게 느껴졌다. 우리는 사소한 말과 행동에서 사회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태어난 한국에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었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커플로 보여도 일부러 못 본 척 외면하거나 투명인간 취급하는 일이 없다. 

물론 뉴질랜드에도 차별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혼자 다닐 때 한 번도 캣콜링을 당한 적 없는데, 파트너와 함께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는 야유하며 지나가는 자동차를 유독 많이 만난다. 파트너는 이곳에 이주해온 뒤로 한동안 길에서 사람들이 자꾸만 쳐다본다는 이야기를 했다. 파트너의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이 전형적인 여성과는 거리가 멀고, 그렇지 않은 나는 비슷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는 거로 보아 성소수자 차별일 거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나에게 그런 대우를 하는 게 아니고, 특정 사람 하나가 편견과 혐오를 가진 것뿐이다. 한국에서 집단적인 성소수자 혐오를 마주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절망감과는 분명히 다르다. 서울 퀴어문화축제 인근에서 우리를 일방적으로 폭행하던 혐오 세력보다 더 무서웠던 건, 그 현장을 말리지도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과 경찰들이었다. 물론 그 축제는 몇 년 전이고 현 정권 경찰의 태도는 또 다르다.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고 나도 느끼지만, 경험을 통해 겹겹이 쌓인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개인적 무력감이 단숨에 바뀌지는 않는다. 

뉴질랜드는 성소수자 인권 측면에서 한국보다 훨씬 진보한 나라다. 2013년에 동성혼이 법제화되었고1 인권법(Human Rights Act 1993)으로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에 따른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2. 심지어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도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고,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적도 있다3. 그런 점들이 하나하나 믿음과 안심이 된다.

사람대접

어떤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인정받는다는 감각은 중요하다. 사실 그 감각을 위해 나는 나라를 바꾸는 무모한 짓을 감행했다.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한다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거다.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건 그래서 성가신 일이었다. 일상에서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게 하나둘 늘어갈수록 나는 일에서도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레즈비언 혐오를 쏟아내는 상사와 원만하게 잘 지내지 못하는 게 내 잘못인 건 아니다. ‘남자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소개팅을 주선하려는 동료와 잘 지내지 못하는 것도 그렇다. 거기서 커밍아웃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떳떳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해보니 더 큰 불편이 기다리고 있을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카페 메뉴 중에는 플러피(Fluffy)가 있다. 커피가 들어가지는 않고, 양육자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어린이들이 함께 커피처럼 마실 수 있는 메뉴다. 작은 컵에 우유 거품을 넣고 레시피에 따라 초콜릿, 마시멜로 등을 얹는다. 뉴질랜드 마트에는 ‘Free Fruit for Kids’라고 쓰인 과일 바구니가 곳곳에 놓여있다. 어린이들이 무료로 집어먹을 수 있는 과일이다. 어린이라면 누구나 마트 중간중간 놓인 바구니에서 자유롭게 바나나, 귤 등을 꺼내 먹을 수 있고 계산은 필요 없다. 이렇게 사소하지만 귀여운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나라에서라면, 어린이들도 어디에 가도 환영받으며 자랄 것만 같다. 이 나라는 심지어 새가 식당에 들어와도 쫓아내지를 않는다. 뉴질랜드인들의 새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기로 유명하다. 

이렇듯 사회적 약자뿐 아니라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도 따뜻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 또한 안전하다고 믿게 된다. 제 세상처럼 뛰어노는 어린이들을 보며 아이를 낳아도 괜찮을 거라 믿고, 반바지부터 패딩까지 가지각색인 거리의 패션을 보며 나도 이곳에서 어떤 차림을 하든 안전하다고 느낀다. 내 차를 견인해준 트럭 운전사도 수리점에서 만난 자동차 정비사도 여성이어서 몇 번 깜짝 놀란 다음엔, 나 또한 어떤 직업이든 꿈꿀 수 있게 된다. 한국인 고용주가 아니라면 내가 성소수자라는 게 밝혀져도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친구의 직장에는 커밍아웃한 퀴어 동료가 있다. 동성 애인이 직장에 매번 데리러 온다. 그런 분위기라면 동료가 주말에 뭐 했냐고 물어도 경계하지 않고 답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일러스트 이민
우리는 모두 낯선 존재로 이 세상에 도착하여, 환대를 통해 사회 안에 들어오지 않았던가?4

여전히 길에서 성소수자 혐오자를 마주치는 날이 있다. 그러나 혐오자와 내가 같은 직장에 다닌다면, 자신을 숨겨야 하는 사람은 더는 내가 아닐 것이다. 성소수자 혐오가 지탄받는 사회에서는 혐오 발언을 입 밖에 내기가 더 어렵다. 커밍아웃까지 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아시안이고 이주민이라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겠지만, 이곳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대놓고 그 이유로 차별할 수는 없는 사회다. 

옆집 백인 아저씨는 매일 아침 ‘How are you, today?’ 하며 안부 인사를 해주고, 약국이나 카페의 직원은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겉으로는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준다. 사실 나는 스몰토크가 싫은 차가운 서울의 한국인이다. 일터에서 받는 손님들의 다정한 안부 인사가 어색하고, 동네에서 이웃들의 반가운 인사는 더 당황스럽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을 길에서 마주쳐도 ‘굿 모닝’ 인사하고, 누군가 어려운 일이 있다면 오지랖일까 걱정하지 않고 주저 없이 도움을 주는 세상에 이제 조금은 적응해보려 한다.

 

유의미님의 글은 어땠나요?
1점2점3점4점5점
SERIES

언니, 우리 이민갈까?

이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퀴어에 관한 다른 콘텐츠

콘텐츠 더 보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