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이민갈까? 25. 워킹홀리데이, 절망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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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우리 이민갈까? 25. 워킹홀리데이, 절망편

유의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한국에서 중식당이나 베트남 요리 전문점에 가면 한국어에 서툰 직원을 마주칠 때가 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다면 요즘은 뉴질랜드에서 일하는 내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에 왠지 유심히 보게 된다. 매년 5월경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비자 신청일이 돌아오고, 한국에서만 3,000명의 청년이 선발된다. 이들은 외국에서 일할 기회라는 이유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경험은 값진 것이지만 농업에 뜻이 없는 사람도 키위 농장에서 키위를 따고, 공업에 뜻이 없는 사람도 홍합 공장에서 홍합을 까는 워킹 홀리데이가 과연 ‘꿈과 희망’씩이나 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시야를 넓히고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고, 돈이나 영어 실력이나 여행이나 추억 등을 얻고 싶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워킹 홀리데이를 꿈꾼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처음에 부푼 마음과 환상을 안고 뉴질랜드 땅을 밟았다가 기대와 달리 고된 현실을 마주하거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혀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아무리 자료조사를 철저하게 했어도 막상 와서 살아보는 것과는 또 다르고, 여행으로 방문해봤던 나라여도 그 나라에서 노동하며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를 수밖에 없다.

처음에만

나도 워킹 홀리데이로 뉴질랜드 생활을 시작했다. 출발하기 전부터 인터넷으로 정보를 많이 찾아봤고, 후기에서 일도 금방 구하고 직장에서 신뢰를 받아 쉽게 승진하여 워크 비자까지 얻어내 체류를 연장한 사례를 보았다. 함께 살던 플랫 메이트와 가족처럼 친해져 함께 놀러 다니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사람도 있었고, 뉴질랜드에 있는 일 년 동안 영어가 일취월장으로 늘어 한국에 와서도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워킹 홀리데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비자를 연장하거나, 한국보다 시급이 높은 뉴질랜드에서 일하며 학비를 마련하여 유학한 뒤 훗날 영주권을 받을 생각으로 이곳에 왔다. 후기에서 봤던 희망적인 내용을 떠올리며 기대를 잔뜩 가지고 도착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누군가 올려놓은 정보를 참고하며 비자를 직접 신청했고, 선착순에서 탈락하지 않아서 뛸 듯이 기뻤다.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본대로 신체검사를 예약하고, 정해진 날짜에 병원에 가서 검사도 받았다. 비행기표를 사고, 입국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필요할 물건들을 떠올려보며 신중하게 짐을 꾸리고, 고민 끝에 적당한 금액의 생활비를 환전했고 여행할 때처럼 숙박 시설을 예약했다. 나는 바리스타 경력을 살려 카페에서 일하고 싶어서, 뉴질랜드 카페에서 사용하는 영어 단어도 많이 찾아보고, 주문받을 때 사용하는 영어 문장도 외우고, 일하는 동안 틈틈이 라테아트도 연습하고, 뉴질랜드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사람들의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면서 열심히 준비했다. 귀국 날짜가 적히지 않은 오픈 티켓으로 비행기를 탈 때는 정말 가슴이 두근거렸고, 입국 심사에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내밀고 여권에 도장을 받았을 때는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에서 본 대로 휴대폰을 개통했고, 공항에서 도심으로 연결해주는 스카이 버스를 타고 무사히 시티에 도착하여 은행 계좌를 만들고 숙소에 체크인했다. 정착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이런 일련의 과정에 도움을 제공하는 유학원이나 어학원도 많지만, 직접 해보고 싶어서 모든 과정을 일일이 검색하고 물어가며 스스로 해냈고 그만큼 자신감도 생겼다. 처음에는 조금 어려웠지만,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이내 익숙해졌다. 그러나 쉬운 건 거기까지였다.

일러스트 이민

외국인 노동자 되기

본격적인 어려움은 내가 돈을 벌려고 할 때부터 시작이었다. 뉴질랜드에 와서 천천히 둘러보며 시간을 보낼 때는 정말 여유로웠다. 살면서 봉착하는 난관도 밀크티를 주문하는데 영어가 조금 복잡했다거나 아직 이른 시간 같은데 상점이 문을 닫아 저녁을 먹을 곳을 찾기 어려운 정도가 전부였다. 구경하며 버스를 타거나 영화를 보거나 집을 구하는 일도 모두 어려웠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일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백화점, 카페, 학원, 술집, PC방 등에서 일하기 위해 수많은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지만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면접은 대체로 잠시 이야기한 뒤에 스케줄을 조정하고 계약서를 쓰는 자리였다. 만약 내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했다면 얘기가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국어 원어민이라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은 뽑아서 가르칠 수 있지만, 소통이 어려운 사람과는 함께 일하기 힘들다. 뉴질랜드에서도 마찬가지다. 돈을 쓸 때는 영어를 못해도 되지만 돈을 벌 때는 다르다. 나는 누군가 영어로 한마디를 하면 ‘익스큐즈 미?’나 ‘파든?’을 몇 번씩 해야 하는 상태로 일자리를 구해야 했고, 당연히 잘 될 리가 없었다. 오기 전에 뉴질랜드 라디오도 듣고 회화 공부도 나름대로 했지만, 평생을 미국식 영어를 배운지라 뉴질랜드 억양에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영어뿐만은 아니었다. 이력서 양식도 한국과 너무 달라 이력서를 쓰는 것부터가 넘어야 할 산이었고, 머리를 싸매고 그걸 다 쓰고 나면 이제는 인쇄가 문제였다. 도서관에 가서 인쇄하는 법을 익히고 나면, 그 인쇄된 이력서를 제출하기 위해 일하고 싶은 가게까지 찾아가는 게 또 일이었다. 평생 살던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해도 에너지 소모가 클 텐데, 낯선 나라에 와서 생활하며 적응까지 병행해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이력서를 돌려도 연락은 오지 않았고, 어쩌다 면접이 잡힌다고 해도 나는 고용주의 기대에 미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매번 탈락이었다.

한국에서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구인공고를 검색하고 인터넷으로 이력서를 전송한 후 연락이 오면 면접 날짜를 잡았다. 뉴질랜드는 조금 다르다. 한국만큼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일상에 깊게 침투해있지도 않고, 주변의 추천을 받은 사람이 더 믿음직스럽다는 인식도 있어, 사이트에 올려 공개적으로 사람을 구하기보다는 주변에 먼저 수소문을 한다. 그래서 사람이 필요해도 공고가 올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고, 수많은 워킹 홀리데이 후기에서는 주변 가게에 무작정 들어가 이력서를 내밀며 ‘일할 사람 안 필요하니? 매니저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하라는 조언이 넘쳐난다. 그러나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에게는 그게 정말 쉽지 않았다. 성격에 영향을 많이 받는 부분이라 사실 여기가 한국이었어도 그런 건 잘 못 했을 것 같고, 한국말로 해도 어려울 일을 영어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구직의 기본인데 그걸 안 해본 건 아니고, 눈 딱 감고 용기를 내어 몇 번 해봤지만 이내 포기했다. 자연스럽게 이력서를 내밀며 대화를 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 면접을 보기도 전에 탈락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고, 역시 그런 방법으로는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러 자주 가던 카페들은 모두 내가 이력서를 낸 뒤 연락이 오지 않았다. 괜히 어색해져서 다시는 가지 못하게 되었고, 괜히 주변에 갈 만한 카페만 모두 잃어버린 셈이 되었다.

또한, 뉴질랜드에서는 면접도 한국과 다르다. 면접 자리에서 이야기만 나누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잠깐 함께 일해보며 호흡을 맞춰보는 시간을 갖고 채용을 결정한다. 그런 이유로 내 면접은 늘 악몽 같았다. 이력서에는 한국에서 일했던 카페 경력이 있어서 어느 정도 그에 맞는 수준을 기대할 수밖에 없을 텐데, 나는 늘 손님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두세 번씩 되물어봤으며, 들은 것조차 불안해서 자신감 있게 행동하지 못했다. 기계는 낯설어서 우유 스팀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빵을 데워서 나가는 것도 음식을 서빙하는 것도 모두 익숙하지 않아 실수만 해댔다.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려고 매번 설거지만 죽도록 하다가 왔고, 그렇게 면접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당연하게도 면접 이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일러스트 이민

하고 싶지 않았던 일

가지고 간 생활비를 다 쓰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애인에게 몇 번이고 돈을 송금받았다. 그때는 아무리 주변 풍경이 아름다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어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고, 한국에서보다 더 미래에 대한 불안에 압도되어 밤새 구인공고를 뒤지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후기에서 누구는 2주만에 일자리를 구했다고 하던데, 오자마자 어학원을 다녀야 했던 건 아니었을지, 내 영어가 문제인지 내 성격이 문제인지, 이렇게 성과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내 인생은 어떻게 되어가는지 고민하며 우울해졌다. ‘거기는 노동력이 부족해서 쉽게 취업을 할 수 있다더라.’, ‘한국에서의 경력이 있으면 한 달 안에 충분히 일을 구한다더라.’, ‘꼭 영어를 잘해야 하는 포지션에 지원하지 않으면 못할 것도 없더라.’ 하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말들만 믿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런 말을 했던 사람들이 정말 다 일자리를 구했어도 나는 예외일 수도 있는 거고, 내가 구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거였다. 일자리는 오직 내가 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이었고, 그건 내가 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지, 이곳에서 계속 살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척도였다.

워킹 홀리데이를 와서 끝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결국 원하던 곳은 아니어도 당장 사람이 부족한 곳에 들어가 일할 수밖에 없다. 점점 줄어드는 생활비를 보충할 묘안이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보통은 도시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고, 공장이나 농장 일자리는 구하기가 조금 더 수월하다고 들었다. 혹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이나 일식당에서 일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농장이나 공장을 피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서비스업 경력을 더 쌓고 커피를 배우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길도 잘 모르는 나라에 와서 산 넘고 물 건너 면접 보러 찾아간 데마다 탈락하고 나니 그나마 있던 일말의 자신감조차 모두 잃어버렸다. 

결국 내 영어 실력으로는 카페에서 손님을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해본 적 없는 식당 일에 지원했다. 사람이 매우 부족한지 늘 공고가 새로 올라오는 한식 패스트푸드점이었는데 일을 시켜보지도 않고 바로 합격이었고 면접 대신 간단한 소개와 근무 스케줄 안내가 있었다. 매장이 너무 바빠 보여서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일을 구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고, 생활비를 벌면서 원하던 카페 일을 찾으려고 했다. 그렇게 첫 출근의 날이 돌아왔다. 첫 출근이 늘 그렇듯 정신없고 힘들었지만, 나는 익숙하지 않은 업무와 빠르게 변하는 주변 환경에 너무 지쳐 퇴근하기도 전에 영혼을 빼앗겼고, 최대한 빨리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물건들을 들고 날라야 했고, 쉴 틈 없이 빠르게 움직여야 했고, 큰 소리로 손님을 불러 호객행위를 해야 했던 점이 유난히 적성에 맞지 않았다. 녹초가 되어 왕복 두시간 거리의 퇴근길 버스에 올랐을 때는 조금 울고 싶어졌다. 카페에서 일할 때는 늘 머리카락에서 커피와 크림 냄새가 났었는데, 여기서 일하고 나니 음식 냄새가 배어있었다. 커피 냄새도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냄새 때문에 평소에 한식을 잘 요리하지도 먹지도 않는 사람이라 음식 냄새가 나는 건 더 싫었다. 그곳에서는 결국 오래 일하지 못했다.

워킹 홀리데이로 온 청년들을 만나면 다들 ‘어쩌다 운 좋게’ 일을 구했다고 말하던데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정말 어쩌다 운 좋게 원하던 카페에 취직이 되었고, 그런 운이 오지 않았더라면 계속 절망의 워킹 홀리데이를 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법정 임금을 주지 않는 한국인 사장을 만나기도 하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구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지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나 또한 카페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계속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운 일상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뉴질랜드에 산다 해도 과로하거나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행복할 수 없다. 일이 너무 힘에 부치면 여가에 여행을 다닐 수도 없다.

성공적인 후기를 주로 읽어서 그런지 뉴질랜드 땅을 밟기만 하면 모든 일이 저절로 진행될 것만 같았다. 처음에 어려운 시간을 겪지만, 결국은 원하던 곳에 취직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후기들을 많이 봤는데, 나 또한 운이 좋아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되었지만, 사실은 내내 그러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막상 와도 영어가 쉽게 늘지 않고, 심지어 경력이 있는데도 구직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알았더라면 오기 전에 영어 공부라도 더 열심히 했을 것 같다. 가장 운 좋은 케이스가 꼭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영어 실력이든 생활비든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을 꼼꼼하고 넉넉하게 준비한다면 조금 더 상황이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절망의 워킹 홀리데이가 누구에게도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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