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SC, 욕구 실현의 장
최근 나의 고민은 이기적이게도 ‘나 자신'이었다. 그래픽 디자이너를 업으로 삼은지 4년차. 경력이 쌓이면서 디자이너로서의 나의 역할과 디자인 력에 혼란을 느끼던 차였고, 여성인 나를 바라보고 기대하는 주변의 시선까지 더해져 내가 정의해 왔던 내가 희미해지는 느낌마저 들고 있는 상태였다.
커리어 측면에서는 이런 나를 이끌어줄 인생의 선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언을 구하고 하찮은 푸념이라도 늘어놓을 수 있는 ‘여성’ 디자이너 선배가 없다는 갈증이 가장 컸다. 페미니스트 그래픽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는 다른 여성 디자이너들과 만나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곳이었고, 디자이너가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여성', ‘연대', ‘응원'의 키워드로 자신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장이었다. 때마침 두번째 스튜디오 어택 소식이 올라왔고, 그 주인공은 단단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보여주는 박연주 디자이너였다. 그가 어떻게 여성 디자이너로 롱런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거기에 나의 미래를 그려보는 데에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팬심을 섞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측정 불가한 디자이너의 역할
박연주 디자이너의 작업실은 높은 층의 홍대 시내가 잘 보이는 오피스텔이었다. 곳곳에 작업물과 종이 더미, 쪽지, 책이 빽빽이 꽂혀있는 큰 책장까지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시간의 레이어를 느낄 수 있는 차분한 공간이었다.
스튜디오 어택은 박연주 디자이너가 직접 내어준 차와 함께 본인의 소개로 시작됐다. 이어 박연주 디자이너는 작업물의 진행 과정을 하나씩 설명했다. 설명이 끝난 작업물을 펼쳐 놓고 실제 물성을 느끼며 인쇄 방식이나 구체적인 작업 과정을 묻는 시간도 충분히 주어졌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박연주 디자이너의 작업 과정은 클라이언트의 현재 상태와 의견을 반영해 도출하는 수동적인 디자인에 한정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가 본인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나 작품이 주는 인상(혹은 작품 그 자체)을 최대한 실체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기획/디자인/제작(인쇄)의 단계를 설계하는 디자이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도록 제작을 위해 페이지 수가 부족할 때에는 사진작가와 협업해 사진 소스부터 기획-제작하거나, 다소 일관되지 않는 작품의 톤을 묶을 수 있는 디자인 솔루션을 제안하고, 실제 작품과 가장 똑같은 발색을 위한 인쇄 방법을 고민하고 테스트하는 것 같이 말이다. 작품 자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전적인 책의 편집 구조를 벗어나는 시도처럼, 신기하게도 이와 같은 과정은 디자이너가 의식적으로 행한다기보단 탐구 정신이 자연스레 발현된 쪽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박연주 디자이너는 "의뢰로 일이 들어온 이상, 상당 부분 목적에 부합하도록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라며 ‘디자인업'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를 내렸다. 미팅 전에는 예상되는 문제들을 미리 점검해보고 대안이 될 수 있는 B안을 가져가는 것과 같은 서비스 측면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가끔 하나의 프로젝트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한정된 채 일이 진행될 때가 있는데, 디자이너의 적극적인 개입이 화가 될 때도, 득이 될 때도 있다. 여전히 이 완급조절이 어려워 남을 괴롭히는 모양이 되거나 제풀에 지칠 때가 많지만, 박연주 디자이너의 작업물로 하여금 각자의 역할에는 제한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예상되는 문제들이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인쇄소와 나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클라이언트 다음으로 많이 부딪히게 되는 게 인쇄소다. 경험이 쌓여도 인쇄소와의 연락은 늘 두렵다. 박연주 디자이너의 다양한 작업물을 보면서 인쇄소와의 의사소통 방법도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특히 색상 구현이 중요한 산출물의 경우 인쇄소와 디자이너 간의 묘한 기 싸움이 엄청난데, 디자이너가 제작에 참여하면 관리-감독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과 맞물려 필드에서 여성 디자이너의 비율만큼 인쇄소의 남성 기장도 많다는 현실적인 상황으로 인해 디자이너 사이에서 고충이 많은 부분이기도 했다.
박연주 디자이너의 답은 첫 번째는 “좋은(잘하는) 인쇄소와 일하자”, 두 번째는 “단호하고 명확하게 말하자”였다. 종이의 결뿐만 아니라 재단은 앞면으로 놓고 해달라는 자세한 요구사항까지 메일로 꼭 명시해야 책임소재를 따질 때 증거가 될 수 있다. 나도 디자이너 생활을 막 시작할 때에는 인쇄소에 디테일한 요구를 하는 것조차 해도 되는지 자문하기도 했었고, 감리 현장에서 윽박에 가까운 언사를 듣고 제대로 된 감리는 포기한 채 나와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을 성별과 나이를 떠나 ‘일’로 바라보고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뒤 인쇄소의 책임을 언급하는 것과 나의 요구를 말하기도 쉬워졌다. 가끔 개인의 성 역할, 권력에 대한 사고방식이 직업 역할과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돌아보면 나도 일을 하면서 여성이라 혜택을 보거나, 저자세를 이용한 적도 있었고 그 못지않게 부당한 일도 있었다. 역할에 대한 책임을 바탕으로 명확히 요구하면 일이 되게끔 기능한다는 것과 그 경험이 퍼져야 인식과 혼란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인의 역사
끝으로 1인 규모를 유지하는 이유와 그 방법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질문이 이어졌다. 박연주 디자이너는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본인의 직급도 올라가면서 미팅, 컨펌 등 관리자 측면의 업무량이 늘어났고 ‘회사’라는 구조적인 형태에서 실무자의 역할만 고집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의도적으로 1인을 유지하며 실무 활동을 이어 나가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나의 재능을 내가 알아보는 것은 꽤 힘든 일이라며 내가 어느 지점으로 갈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며 시간과 방향을 조금씩 조금씩 맞추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조언도 덧붙였다.
박연주 디자이너는 스스로 탐구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고, 그의 작업은 꾸준히 나를 이끄는 즐거움을 찾아 구축한 세계라고 느껴졌다. 다양한 연차와 형태로 일하는 여성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성',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어 소박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긴 경력으로 작업 자체를 즐기는 선배 디자이너를 보며 나의 세계와 직업에 대한 더 큰 애정을 갖게 된 뜻깊은 시간이었다. 1인의 역사에서 속도와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직원이 많고 수주한 일의 예산이 크다고 해서 규모가 큰 것이 아니다. 그는 태도와 시간으로 그 규모가 느껴지는 디자이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