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에서 내년 한 해 동안 자신의 계획을 써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 모든 기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이었다. 그 중에는 자신의 미래 모습을 상상해보라는 질문도 있었는데 여기에 선뜻 답하기가 어려웠다. 여자이자 기자인 내가 현재 회사에서의 미래를 그리는 일은 뜬구름을 잡는 것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요즘에야 일하는 여성이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여자들은 직장에서의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여성 기자의 경우는 어떻냐고? 주변에서 보고 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좀 풀어 보고자 한다.
여성 기자에 대한 복지가 좋거나 정년이 보장되는 일부 '좋은 언론사'의 이야기는 빼겠다. 이 글을 읽게 되는 누군가가 "우리 회사는 안 그렇던데"라고 말씀하신다면, "축하드립니다" "부럽습니다" 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
결혼은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
데스크에게 있어 여자 기자는 결혼한 사람 아니면 결혼 안 한 사람, 단 둘로 나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여자 기자의 얼굴만 보면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꼬치꼬치 묻기 일쑤다.
동료 기자 A는 데스크로부터 "너는 결혼하지 마라"는 폭언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사무실에 그냥 앉아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A와 같은 부서의 또 다른 여기자를 함께 지목하며 "너희 둘은 결혼하지 마라"고 했다는 것이다. 데스크는 "입사할 때 결혼 안하기로 하고 계약한 것 아니냐"며 느물댔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하면 일에 소홀해질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A는 "데스크는 내가 남친과 헤어졌을 때도 '옳거니' 했다더라"며 "연애한다는 이야기만 하면 '연애하느라 결과물이 이 모양이냐'고 비아냥거린 적도 있다"고 푸념했다. A는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데스크에게는 아예 알리지 않거나 결혼 전날에야 청첩장을 줘야 할 모양이라고 이를 갈았다.
취재 현장에서 친해진 다른 회사의 사회부 기자 B는 나이 서른을 넘긴 이후부터 회사 선배들로부터 듣고 싶지 않은 '결혼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곁에서 보기에 그는 결혼을 못한 게 아니라 단지 안하고 있을 뿐인, 그리고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화려한 싱글임에도 불구하고(심지어 단독 기사도 많이 썼는데) 결혼 문제에 있어 회사에서 능력 없는 여자로 취급당하고 있었다. 남자 선배들은 그와 마주치면 회식 자리에서건 사무실에서건 결혼 이야기로 놀려대기 바쁘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고 한들 성공적인 가정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일단 '일 가정 양립'을 해낸 여자 선배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그런 의문을 갖게 만든다.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아 살아남은 사람도 찾아보면 있긴 있을테다. 그러나 그들은 가정을 일부 포기했거나, 커리어를 일정 부분 포기한 경우가 많았다. 결혼한 지 갓 1년 된 어떤 동료 기자는 "2세 계획은커녕 남편의 얼굴을 잊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일과 가정 모두 쟁취한 몇몇 선배의 미담이 기자사회에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여성 기자의 일 가정 양립은 그야말로 ‘전설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모 인터넷 언론사의 부장급 여기자 선배가 자신을 혹사하고 일·가정을 쟁취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한번 듣기는 했다. 그는 그야말로 '독종'에 가까웠는데,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두 자녀와 남편의 밥을 모두 챙기고서야 회사에 출근한다고 말했다.
어린 기자일때는 집안에서의 살림은 모두 도맡아 하면서도 회사에서의 일까지 모두 해내는 선배의 이야기가 마냥 존경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살면서 일과 가정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진정한 '일-가정 양립'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사례다.
일단 내 몸 하나 챙기는 것도 어려워
미래는커녕 당장 내일의 건강과 목숨(?)도 불투명하기도 하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의 기자는 언론사 구조 상 가장 일을 활발히 해내는 '허리' 역할이다. 그래서 이들은 날로 이어지는 술자리와 당직 근무, 바쁜 취재 일정과 퇴근 후에도 이어지는 업무 지시 등으로 인해 자기 몸조차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자 기자들은 과중한 업무를 소화하다 보면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생활에 갑작스레 생리 주기까지 바뀌어 버린다. 몸이 '약하다'는 소리가 아니고,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 되어 산부인과 질환을 앓게 된 사례가 주변에 실제로 넘치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기자사회에서 아직 어린 축에 속하는 C는 우연히 맹장염 수술을 했다가 나팔관 근처에 물혹 같은 게 보여 산부인과의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소견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1년째 병원에 얼씬도 못하고 있다. 평일엔 새벽별 보고 출근해 또다시 별보고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했고, 주말에 하루 쉬는 날은 밀린 잠을 몰아 자느라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같은 부서에 사람도 적어, C가 쉬기라도 하는 날이면 다른 사람이 고생할 것이 불 보듯 뻔해 연차도 맘껏 쓰지 못했다. C는 일에 치여 그 '물혹'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는데, 여성 기자끼리 '건강'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그 물혹이 생각났다고 했다. 나는 C에게 얼른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지만, C는 당장의 당직 근무를 떠올리며 그게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이기를, 요행을 바란다고 했다.
이런 산부인과 질환의 경우 데스크나 팀장, 선배에게 보고하고 쉬기도 '분위기상' 뭣하다. 정말 극단적인 사례인데, 나와 같은 회사의한 후배 D는 수습기자 시절 경찰서에서 먹고 자며 몇달간 잠복 취재를 하는 '하리꼬미'를 하다 괴로운 경험을 했다고 했다.
피곤한 일정이 이어지자 유독 생리통이 말도 못하게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D는 자신의 '일진'(출입처를 담당하는 선임 기자) 선배가 남자이기도 했고, 무슨 말만 하면 혼날 것 같아 무섭기도 해서 생리통 때문에 아프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속이 좋지 않다고 대강 둘러댔다고 한다. 일진은 영문도 모르고 후배가 걱정이 되니 경찰서에 활명수 같은 소화제를 사다 주었다고 한다.
유리 천장은 깨지지 않아
헌정 사상 초유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마당이라 각 회사들은 이번 사태를 전담 취재할 다양한 TF(태스크포스)를 꾸린 모양이다. 한 주요 일간지 매체에 다니는 선배 E는 최근 내게 “남존여비 조선시대 마인드를 가진 국장이 여기자들을 이런 사건에 파견조차 보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취재와 관련한 특별기획팀이 꾸려졌는데 남자 기자가 100% 라는 것이다. E는 “그렇다고 일이라도 잘하면 내가 말을 않겠다”며 “무능한데도 남자라고 윗자리 앉아 있는 걸 보면 숙청하고 싶다”고 혀를 찼다.
대부분 언론사들이 최근 점점 여기자 입사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각 부서에서는 아직도 ‘남자 기자’를 찾는다. 그들에겐 ‘까라면 까는’ 정신이 있다는 것이다.
잠시 나를 제외한 부장과 팀원이 모두 남자인 팀에서 근무해 본 경험이 있는데, 너무나 쉽게 해결될 만한 일인데도, 심지어 모두가 같은 문제에 공감하고 있으면서도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하면서 신기함을 느꼈다.
같은 팀 선배들은 부장이 없는 곳에서 나를 붙잡고 담배를 뻑뻑 피워가며 불만을 토로하고, 선배 행세는 엄청나게 했으면서, 부장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부당한 일인데도 일단 시키면 하고 보는 것이었다.
기자로 사는 나의 미래는 도대체 뭘까
기자의 미래를 생각해보려고 이런 저런 사례를 아무리 찾아봐도 ‘미래’가 보이는 사례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암울한 이야기만 계속 적어내려 가자니 여성 혐오 문제에 무심한 데스크라던가, 취재원에 의한 성추행 같은 건 오히려 대수롭지 않은 문제처럼 여겨질 정도다. 좋지 않은 사례는 일일이 떠들자면 숨이 가쁠 정도로 차고 넘친다.
이런 상황이니 어린 시절부터 ‘기자’만 생각하고 공부해 온 나로서는 최근 정말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기자를 꿈꿨던 나는 5년 뒤, 10년 뒤에 이뤄나가고 싶은 것들이 아주 많다. 주요 보직에 대한 야망도 있고, 취재력과 문장력을 인정받고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훌륭한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있다. 좋은 남자와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라면 당장 내가 그리는 미래 같은 건 떠오르지 않는다. 다음 주의 발제는 무얼 해야 하느냐는 불안감이 숨통을 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