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디자이너, 우린 여기에 있다: FD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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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디자이너, 우린 여기에 있다: FDSC

이예연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FDSC 시작의 풍경

111년 만에 유례없던 폭염 속으로 향해가고 있던 2018년 7월 15일, 성수동 밀리언아카이브에서 FDSC (Feminist Designer Social Club)의 첫 설명회가 열렸다. SNS로 탄생 소식을 접한 순간 무릎을 탁 쳤던 나는 ‘너무나 필요했던 게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 주다니! 진짜 진짜 좋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면 어떻게 하지?’ 신청서에 온 정성을 기울여 써야겠어!’ 하며 신청서를 제출했고 설명회를 손꼽아 기다렸다.

더위를 뚫고 장소에 가까워지면서 한산한 거리에 여성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밀리언아카이브 안 천장과 바닥에는 그래픽이 입혀진 공과 현수막이 설치돼있었고 참여자들은 가져온 간식들을 서로 나누고 있었고, 이따금씩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언뜻 보기엔 도시의 평범한 평일 저녁, 밝은 미소와 재기발랄한 야망이 배어 나오는 소셜클럽 분위기가 났다. 

사진 RAYA
사진 RAYA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곳 FDSC로 여성 디자이너들이 모이게 된 배경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2015년부터 페미니즘 이슈가 활발히 공론화되며 그래픽디자인계 역시 그간 드러나지 못했던 사건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2016년 10월, 모 큐레이터의 성추행 사건 이후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정책 연구모임 WOO>가 발족했고, 이를 계기로 주변의 많은 여성 디자이너들이 이제는 ‘페미니스트’로서 자리에서 입을 모아 그들이 겪었던 일과 생각을 꺼내놓곤 하였다.

하지만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 일터는 늘 제자리걸음이었고, 여성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 떠올려봤을 불길한 문장 ‘그 많던 여성 디자이너는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그리고 ‘왜 위대한 여성 디자이너는 없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WOO 모임을 통해 생각을 함께 모은 신인아, 김소미, 우유니게, 양민영 디자이너는 이 질문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였고 FDSC가 탄생하게 되었다.

사진 RAYA

어떻게 활동하나요?

설명회 전반부에서는 FDSC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동안 여성 디자이너들이 남성 중심의 산업구조 안에서 마주해야 했던 어려움을 토대로 세워진 활동 규칙을 나누었다. 배경과 규칙을 공유하는 회원들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정기적/산발적으로 구성되는 소모임 및 행사에 참여해 연대를 강화하고 서로의 커리어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온라인 활동은 ‘슬랙’이라는 커뮤니케이션 툴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일종의 ‘주제별 방(채널)’이 있는 메신저앱과 비슷하다. 후반부에는 FDSC에 초대된 55명의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자유발언을 하며 네트워킹이 진행됐다. 

사진 RAYA

어쩌다 보니 나는 설명회에서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끝에 가서 디자이너들의 자세가 대부분 구부정하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이래선 안 돼!’ 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유발언 시간에 디자이너가 장시간 앉아 일하는 직군인 만큼 건강한 자세와 체력을 돕고 공유하는 채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했다.(사실 내가 제일 필요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소모임 채널에서 모인 6명의 디자이너들과 ‘일요-운동-모임’을 개설해 매주 운동하고 있다. 이 밖에 슬랙에서 서로 마무리한 일을 자랑하고 축하하며 이모지 폭탄을 날리기도 하고, 업무적으로 필요한 질문(물어보기 애매하고 부끄러웠던)과 답변을 실시간으로 나눈다. 견적서 작성 노하우를 공유하는 소모임이 열리는가 하면 FDSC디자이너들이 멘토가 되어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리뷰하는 행사도 진행될 예정이다. 여성 디자이너가 안심하고 성장에 필요한 시행착오를 겪고, 넉넉한 배려와 조언, 정보공유가 이루어지는 토양이 만들어져 이를 원동력으로 여성 디자이너가 더 활발히 활동하고, 더 많이 벌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최종 목표다. 

뭐가 어떻게 좋아요?

FDSC에 참여하며 좋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유리천장을 극복해 조직 안에서 더 많이 벌고 더 높이 올라가고 위대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성장하는 것 이외에도 최근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독립/1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개인사업자, 프리랜서들에게 꼭 필요했던 부분을 충족시켜주는 활동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슬랙이라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툴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내용을 나누고, 내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일이나 상황이 발생할 때 유연하게 협력이나 도움을 구할 수 있다. 끼리끼리로 대표되는 남성중심적/수직적 조직문화에서 벗어나 일과 삶의 균형점을 찾으며 독립적으로 일하는 개인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느슨한 연대한 방식이 장기적으로 페미니즘 실험 안에서 유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점도 물론 있었다. FDSC를 처음 알리고 설명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활동 방향에 대한 설명이 주가 되었고 모인 페미니스트 디자이너들에 대한 소개와 알아가는 시간이 적었다. 후반부에 자유발언 시간이 있었지만 아직 낯선 상황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는 게 다소 큰 용기가 필요로 하는 것이었고, 슬랙에서 이어지는 커뮤니케이션도 온라인상의 자기소개 글에만 기대어 자발적인 추가 네트워킹이 일어나기에는 아직 시간이 부족한 것 같다. 회원들이 슬랙이라는 아직 낯선(?) 커뮤니케이션 도구에 익숙지 않은 면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이건 시간이 차차 지나며 슬랙에 익숙해지고 오프라인 행사 때 종종 보고 알게 되는 디자이너가 많아질수록 개선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하나는 아쉬웠던 점이라기보다 FDSC라는 단체의 방향에 대한 궁금증이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의 목표는 여성 디자이너의 발전과 지속가능한 커리어를 위한 토양이 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가입방식을 다수를 대상으로 오픈하고 되도록 많은 여성 디자이너들을 초대하고 함께하는 것이어야 할지, 아니면 제한된 회원 안에서 탄탄한 연대와 활발한 활동이 기반이 되어 시너지를 내는 것이 좋을지 두 생각이 충돌했다.(허허 난 운영진도 아닌데..) 됐고 이제 막 시작한 만큼 지금 활동에 한마디라도 더하고, 한 명이라도 더 친해지고, 댓글이나 하나 더 달자! 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 전 올라온 슬랙 채널 게시물에 이모지 리엑션을 달았다. 두 개 달았다!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여성 디자이너인가? 페미니스트인가? 함께하고 싶은가? 아래 FDSC 소셜 계정에서 다음에 있을 설명회 소식에 관심을 기울여라. FDSC 가입은 오프라인으로만 가능하다. 가입은 무료이지만 자율 후원금을 모금 받고 있으며 활동에 필요한 금액으로 쓰인다. 머지않은 미래에 함께하길 기대한다. 

사진 R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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