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pro 1. 양민영

알다커리어여성의 노동디자인인터뷰

I'm a pro 1. 양민영

이그리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여성 디자이너는 많다. 그런데 알고 있는 여성 디자이너는 없다. 잘 나가는 여성 디자이너도 드물다. 커리어를 꾸준히 쌓아가고 더 ‘잘나질’ 기회는 수많은 여성 디자이너를 제치고 남성 디자이너에게 먼저 주어진다. 한두 번이면 그건 상사의 편애다. 쌓이고 쌓여 그게 암묵적인 법칙이 되면, 그건 고루하고 공고한 성차별이다.
그 벽에 가로막혀 우리는 알고 있는, 잘 나가는, 잘 하는 여성 디자이너를 모른다. 그래서 <핀치>는 알 만한, 잘 나갈 만한, 그리고, 잘 하고 있는 현업 여성 디자이너를 만나기로 했다. <I’m a pro>는 그렇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여성 프로 디자이너를 소개한다. 

을지로는 어떤 사람에겐 지겹도록 익숙할 동네다. 특히 인쇄물을 다루는 디자이너들에게 그렇다. 인쇄 받아와야 할 게 있어서요, 을지로 근처의 카페에 앉아 자신이 디자인한 냉면 티셔츠를 입은 그래픽 디자이너 양민영이 말한다.

Q. 당신은?

책이나 잡지같은 인쇄물을 주로 디자인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그래픽 디자이너 같지 않은 일을 할 때도 많은데, 예를 들어 ‘잡지쿨’이나 ‘옷정리’처럼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는 기획자와 디자이너 역할을 겸한다. 기획을 하는 것도 결국 그래픽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 단어로 줄이면 결국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Q. 어떤 디자인을 하기를 좋아하나?

재밌는 디자인. ‘재미’라는 것이 주관적인 단어이긴 하지만 나는 주로 내용과 맥락에 맞아 떨어져서 ‘재미있어 보이는’ 디자인을 그렇게 부른다.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추구하는 특정한 시각적인 스타일이 확고하게 있는 편은 아니다. 대신 디자인의 재료가 되는 내용을 보고 그걸 어떻게 표현하면 재미있어보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맥락에 맞는 시각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내용에 맞아 떨어지는 디자인을 했을 때 만족을 느낀다. 

CA #239 ‘여름과 디자인’. 지면에 물방울이 맺힌 것 같은 디테일을 넣었다.  ⓒ 양민영

<아키바 손의 사고>, 미디어버스. 코가와테츠오가 쓴 라디오아트에 관한 책이다. 책 자체가 라디오처럼 보이도록 디자인했다. 라디오의 주파수 네비게이션 바 부분의 모양을 차용해 책의 페이지 부분을 디자인했다. ⓒ 양민영

Q. 어떻게 디자이너가 됐는가?

대학에 진학할 때, 막연하게 디자인과를 가면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디자인과를 갔다. 졸업할때 쯤에 한창 소규모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붐이었기도 했고, 졸업하자마자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하고 싶었다. 다른 디자인 분야는 초기자본이 많이 드는 편인데 시각디자인은 컴퓨터랑 노동력만 있으면 될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재미있어 보이고, 좋아 보였다. 결국 졸업하고는 가장 중요한 점인 어떻게 일을 따야 하는지가 막막해 작은 회사에 들어갔지만. 

Q. 회사를 다니다 지금은 결국 생각했던 대로 1인 스튜디오를 하고 있지 않나.

뭔가 포부를 가지고 1인 스튜디오를 차린 것은 아니지만 혼자 프리랜서로 일을 받아서 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아까 말한 회사에는 1년 정도 다니다가 대학원에 갔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작년까지는 김영나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테이블유니온에서 일했다.

디자인은 서비스업이다

Q.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는 어떤가. 보이는 것과 많이 다른가?

멋지게 꾸며놓은 작업실에서 멋있는 작업을 하는 것이 겉으로 보이는 디자이너의 이미지라면, 돈을 버는 조금은 덜 멋진 일이나 클라이언트와 소통 혹은 세금 처리 등이 좋아보이는 이면에 있는 실제 같다. 겉으로 보이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이미지는 ‘예술가’에 가깝지만 디자인은 실제로는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며 디자인을 제공하는 서비스업이다. 시각적으로 멋진 작업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과 그 디자인으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디자인 결과물은 순수한 아트워크라기보다는 디자이너의 디자인 방법론과 클라이언트의 요구사이에서 최적의 타협선을 찾은 결과다. 

Q.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장점을 꼽자면.

아무래도 ‘옷정리’나 ‘잡지쿨’ 같은 자체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기획력 아닐까. 그리고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점은 나와 비슷한 시각문화를 학습하며 자라온 사람들이 재미를 발견할 만한 요소들을 디자인에 넣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입고 있는 냉면 티셔츠 같은 경우에는 멋있는 티셔츠 디자인의 고전 문법이 된 ‘락 티셔츠’처럼 디자인해 디자인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해당 요소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소재가 냉면이라서,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를 한데 모아 이상함을 연출한 셈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요소’를 알아차릴 때 디자인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에이랜드의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 그래피커와 함께 만든 냉면 티셔츠. ⓒ 양민영 

Q. ‘’, ‘스와치’, ‘옷정리’ 등 옷에 관한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옷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나?

대학 때까지 부모님 집에 살아서 그런지 옷 사는 것 말고는 내 걸 산다는 기분이 안 들었다. 옷장만이 나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쌓이는 공간 같은 느낌? 그래서 옷을 사고 입는 것을 좋아하게 됐는데, 다른 분야에 이정도의 노하우면 직업으로도 써먹고 돈도 버는데, 옷을 계속 사고 입어 오면서 쌓아온 생활적인 지식은 써먹을 데가 없더라. 옷은 좋아하지만 패션 업계의 관행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패션에 관련된 직업을 가질 생각은 하진 않았고. 내가 있는 분야에서 옷을 좋아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업계 바깥의 패션

잡지 <쿨> 같은 경우에는 일상에서 옷을 입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옷에 대한 면모가 드러나는 잡지를 만들고 싶었다. 보통 패션 잡지가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고가의 옷에 여성의 단편적인 이미지만 반복적으로 다루지 않나. 이렇듯 세 프로젝트 모두 패션 업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패션 컨텐츠가 아닌 업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옷을 다르게 바라보는 프로젝트다.

쿨 3호 WORDS. 기존 패션 잡지의 목차를 참고해 독자의견, 쇼핑, 트렌드, 마켓동향, 독자응모, 별자리 등의 내용을 담았다. ⓒ 양민영 

Q. 올해 가을 - 겨울에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가?

지금 진행중인 ‘옷정리4’가 9월 중순에 끝난다. 옷정리4가 에너지가 드는 꽤 큰 행사였어서 남은 올해는 자체 프로젝트는 쉴 것 같다. 프리랜서로 일한지 얼마 안 되어서 남은 올해에 해야하는 것은 자기 PR과 포트폴리오 정리다. 그래픽디자이너로 살아남으려면 가장 중요한 할 일이다.

옷정리4.는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34명의 여성 작업자들의 옷과 작업물을 판매, 전시하는 행사다. 서울역 tmo에서 9월 14일까지. 사진 임효진

Q. 그럼, 꼭 올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좀 막연하지만 큰 규모의 일을 해 보고 싶다. 돈의 단위든 규모가 크든 뭐든 큰 일! 맨날 작은 일만 해서 큰일은 어떻게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Q. 현실적인 얘기를 좀 할 시간이다. 디자이너의 적정 작업료에 관한 얘기.

하루 종일 날을 잡고 얘기해도 모자랄 주제다(웃음). 곧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에서도 이 주제를 얘기하는 자리가 열린다.* 나 같은 경우는 프리랜서가 된지 얼마 안 돼서 이 문제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는데 경력이 있는 FDSC 회원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견적서 소모임’ 등에 참여하며 배우고 있다.

단가에 대해서는 업계 전반의 적정 수준에 대한 공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리랜서 작업자들은 공유된 적정단가가 딱히 없다보니 클라이언트와 단가를 이야기할 때 불필요한 오해나 감정 소모가 생기기도 한다. 큰 디자인 회사에는 단가표가 있다고는 하지만 1인 스튜디오들이 실질적으로 참고하기에는 단위 자체가 다른 경우가 많다.

작업 단가는 적정 수준이 공유돼야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름을 알리려고 일단 적게 돈을 받고도 하는 시기가 디자이너들마다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적정 수준의 작업료를 받고 일을 하는 거지만. 적게 받고 작업을 하는 경우에도 내가 하는 일이 평균적으로는 얼마를 받아야 하는 일인데 내가 이 가격에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아야하 고, 최소한 원래는 얼마 정도의 돈을 받고 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클라이언트에게 말하는 것이 좋다. 서로 이 가격이 표준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그 가격이 당연시 되지 않으니까.

디자이너가 받는 단가도 중요하지만 편집자나 사진가를 디자이너가 섭외하는 입장이면 상대방에게도 얼마를 주어야하는가 하는 부분이 잘 몰라서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고. 이 분과 이 일을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과연 얼마를 제시해야 실례가 아닐까 늘 망설인다. 

Q. 디자인 업계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관습 혹은 고정 관념을 한 가지 꼽는다면?

‘디자이너님이 자유롭게 해 주세요.’ 라는 말. 그게 제일 무책임하고 어렵다. 그 말을 듣고 작업을 해서 가져가면 전혀 자유롭지 않은 수정이 들어오니까. 디자이너들은 작업에 어떤 제약사항이 있다고 알려주면, 그 제약을 이용하고 오히려 단서로 활용해 디자인을 뽑아내는 사람들이다. 조건을 맞추고 아귀를 맞추어 구조를 짜내는 일에 능숙하다. 디자이너가 아티스트라는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유로운 작업이 가능하려면 오히려 규칙이 필요하다. 

또, 일할 때 힘이 드는 부분은 디자이너의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점이다. 클라이언트가 바뀔 때마다 디자인 영역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니까 그 갭을 맞추는 건 나의 일이 된다. 어쩌다보면 기획자나 편집자가 해야될 일을 하고 있기도 하고, 일정을 검수하는 프로젝트 매니저 같은 역할까지 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

그리고 이건 반대로 어떤 디자이너와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클라이언트에게 줄 수 있는 팁인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어떤 디자이너에게 일을 맡길까 고민이 된다면 디자이너들이 해왔던 작업들을 자세히 보자. 디자이너마다 캐릭터가 다르니 자기가 가진 컨텐츠의 방향성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맡는 디자이너에게 맡기면 작업이 잘 나오지 않을까?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맡긴다고 해서 작업이 잘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일단 검색이 되고 정보가 있어야 어떤 디자이너인지도 파악이 되겠지만 말이다. 아이고. 결국 자기 PR을 잘 해야 한다는 자기반성을 하게 되네(웃음). 나는 책이나 잡지 편집 디자인을 잘 하고 좋아한다. 소재에 관해서라면 패션, 혹은 옷에 관한 프로젝트라면 잘 할 수 있다. 재미있어보이는 것은 대환영이다. 진지한 것도 물론. 


디자이너 양민영의 포트폴리오는 여기에서.

meanyounglamb.com

* 8월 26일 wrm에서 디자이너의 수입과 지출이라는 주제로 FDSC가 주최한 타운홀 행사가 열렸다. 약 25명의 디자이너들이 1부 ‘디자인 단가와 우리가 벌어야 하는 적정 금액’ 2부 ‘외주 업체와 적정단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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