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 파이널 시즌에 화가 나는 이유

생각하다왕좌의 게임여성 주인공드라마

<왕좌의 게임> 파이널 시즌에 화가 나는 이유

이그리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주의!

이 글에는 <왕좌의 게임> 파이널 시즌인 시즌 8을 포함해, 시즌 1~7의 핵심 줄거리가 누설되어 있습니다. <왕좌의 게임>을 끝까지 정주행하신 후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거의 10년이다. <왕좌의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하나의 신드롬으로 자리잡아 수많은 사람들을 '입덕'시킨 시간이. <왕좌의 게임> 시즌 1의 첫 에피소드가 방영된 날짜가 2011년 4월 17일(미국 기준)이다. 2019년 5월 19일(미국 기준), 시리즈의 파이널 에피소드가 방영됐다. 

대단원의 막이 내렸는데 팬덤의 분위기는 영 좋지 못하다. 사실 영 좋지 못한 수준이 아니다. <왕좌의 게임> 마지막 시즌 재제작 청원은 2019년 5월 27일 기준으로 서명인 150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시즌 7, 8에 분노를 표하는 팬들이 많다. 9년 동안 열렬히 <왕좌의 게임>을 덕질해 온 입장에서 이 분노는 정당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실망스러운 마무리였다. 사실 이게 공식적인 결말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심정이다. 그렇게 느낀 사람이 나 말고도 150만명이 더 있다는 얘기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초라함

<왕좌의 게임>을 시즌 1부터 쭉 따라가면서 드라마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캐릭터의 흡인력이다. <왕좌의 게임> 원작 소설인 <얼음과 불의 노래>는 아예 챕터에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붙어 있고, 챕터마다 이들의 시점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원작 소설을 거의 그대로, 섬세하게 옮겼다는 호평을 듣는 <왕좌의 게임> 시즌 1, 2의 경우 이와 같이 낯선 세계에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시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각 캐릭터가 가진 내러티브를 따라가다 보면 살아남아 원하는 것을 이루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캐릭터가 생긴다. 그의 향방이 궁금해서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캐릭터에게도 눈길이 간다.  그렇게 <왕좌의 게임>은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빼곡히 등장시켰다. 

물론 드라마의 내용이 진행될수록 등장인물들은 죽는다. 대부분 그 죽음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닥친다. 이 드라마의 반전 중 대부분이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큰 서사의 줄기는 시청자가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간다. 존 스노우가 사실은 리안나 스타크와 라에가르 타르가리옌의 자식이었다는 설정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그토록 수많은 캐릭터들이 말 그대로 죄다 죽어나가는 탓에 시즌 7, 8 즈음에 다다르면 '뜻밖의 죽음'을 맞을 캐릭터마저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 더 이상 놀라운 죽음의 가능성 따위는 없다는 것. 이야기를 힘있게 이끌어나갈 생존자와 트릭스터가 몇 명 남지 않았다는 것. 시즌 7, 8은 빈약한 캐릭터에 기인한 빈약한 서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기에 더해, 제작진이 후반부 시즌에서 캐릭터의 죽음을 사용하는 방식조차 매력적이지 않다. 기어이 대너리스를 존의 손에 죽게 만드는 스토리는 예상 불가능한 것도, 놀라운 전개도 아니었으며, 전 시즌을 관통하는 메인 캐릭터 중 하나인 대너리스를 너무나 초라하게 만드는 결말이었다. 시즌 7, 8을 아우르는 대너리스의 서사에 대해서는 뒤에 별도로 언급하겠다. 

그리고 결국 살아남은 한 줌의 캐릭터들은 여덟 개의 시즌 내내 얼룩진 암투와 전쟁, 죽음에 지칠 대로 지쳤는지, <왕좌의 게임>이 가진 비열한 매력을 모두 포기하고 갑자기 교훈적인 정치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되어, 공화국에 가까운 임시 왕조를 고작 20분의 분량 동안 뚝딱 만들어낸다. 

심지어 드라마의 결말에 해당하는 이 상징적인 장면에서조차 제작진은 세븐킹덤을 대표하는 메인 캐릭터들만으로는 의자를 꽉 채워 놓을 수 없었는지 겐드리, 어린 아린 공,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도른의 귀족(아마 마르텔 가문의 누군가겠지 싶다)까지 등장시켜야만 했다. 이토록 빈약한 결말이라면, 캐릭터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죽고 무엇을 위해 살아남았단 말인가? 

여왕이라는 클리셰

<왕좌의 게임> 파이널 시즌의 가장 큰 위화감은 여성 캐릭터의 결말에 있다. 시즌 8까지 살아남아 세븐킹덤의 왕좌를 놓고 다투는 메인 캐릭터의 셋 중 둘이 여성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누구보다도 초라한 퇴장을 겪고, 결국 철왕좌는 녹아버린 채 아무도 (좋지 않은 방식으로) 예상하지 못했을 브랜 스타크가 왕으로 등극했다. 세눈박이 까마귀이자 그린시어인 그가 왕좌에 오르는 게 세계관상 무척 부자연스러운 점은 차치하고, 이 결말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왕좌를 얻어내고자 했던 세르세이와 대너리스의 캐릭터성을 통째로 부정해버린다는 점에서 힘이 빠진다. 

사실 제작진이 넘쳐나는 여성 캐릭터를 대체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듯 골머리를 앓는 느낌은 시즌 6부터 분명했다. 시즌 6의 파이널 에피소드로 <왕좌의 게임>에서 사라져버린 것은 그레이트 셉트 뿐만이 아니다. 세르세이를 지속적으로 위협하며 남부의 거대세력으로 군림했던 마저리 티렐과 올레나 티렐도 이 때 사망한다. 

대너리스를 지지한 후 배를 타고 수도로 거슬러 올라오던 엘라리아 샌드는 시즌 7의 3화에서 딸과 함께 잡혀 지하 감옥에 갇혀버리고, 그가 정확히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더 이상 드라마에서 밝혀지지 않는다. 바다의 거대한 해상 세력이 될 예정이었던 야라 그레이조이와 그의 함대는 유론 그레이조이를 만나 대패하고, 한참을 사라져 있다가 강철 군도를 재정복하고 시리즈 피날레 에피소드에서야 다시 등장한다. 

그렇게 각자의 세력을 이끄는 여성들로 구성되어있던 대너리스의 연합은 처참히 부서진다. 이 연합이 산산조각나야 하는 유일한 서사적 정당성은 대너리스가 세븐킹덤의 기존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곁에 존을 둘 이유가 된다는 것뿐이다. 

이제 세르세이와 대너리스의 서사를 짚어 보자. 시즌 7-8로 마무리되는 이 둘의 이야기는 전혀 납득 이 안 된다. 먼저 세르세이부터 돌이켜 보자. 세르세이는 악인이다. 그것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공포를 제대로 휘두를 줄 알고, 백성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통치자다. 그는 권좌에 앉기 위해 아들의 자살을 방관할 정도로 왕좌를 원했다. 왕좌를 지키고자 골든컴퍼니와 유론 그레이조이까지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세르세이가 맞는 결말은 멀고 먼 길을 돌아온 제이미의 품에서 두려움에 떨다가 죽는 것이다. 이 통치자의 여정은 결국 '언제나 이 세상에는 우리 둘뿐이었지'라는 로맨틱하지만 허무한 제이미 라니스터의 대사로 끝이 난다. 

대너리스의 경우는 시즌 1부터 7까지 쌓아온 방향성을 시즌 8에, 그것도 마지막 두 에피소드에서 모조리 날려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너리스 타르가리옌이 이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내고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타르가리옌이자, 타르가리옌이 아니기 때문이다. 혈통의 이름값에 취해 허황된 꿈을 쫓는 데다가 폭력적이고 허영심이 많았던 오빠 비세리온과 달리, 대너리스는 약자들의 입장을 이해할 줄 알고 자비와 관용을 베풀 줄 안다. 그는 에소스를 가로지르며 여왕으로 성장하고, 때로는 가언인 '불과 피'로 사람들을 다스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 역시 나란히 깨닫는다. 무자비함과 관용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측근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에 그에게 감화된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대너리스는 시즌 8의 에피소드 5 "The Bells"에서 킹스랜딩이 대너리스에게 항복하며 종을 울리는데도, 이해할 수 없는 분노에 가득 차 드로곤과 함께 도시를 통째로 불태운다. 단지 그가 타르가리옌이기 때문에 불과 피를 원해 정복한 도시를 불살라버렸다고 퉁치기엔 너무나 빈약하다. 제작진은 이 장면 앞뒤로 존 스노우가 지닌 출생의 비밀이 서서히 알려지면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보다 존 스노우를 더 적합한 왕좌의 주인으로 생각한다는 데에 분노하는 대너리스의 모습을 비춘다. 여기서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해석은 왕좌를 빼앗길까봐 불안에 가득 찬 대너리스가 압도적인 공포를 심어주기로 결심했다는 것인데, 그동안 대너리스가 에소스의 도시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면서 보여준 방식과 완전히 다르다. 전혀 이성적이지도, 통치자답지도 않은 사고다. 

세르세이 라니스터와 대너리스 타르가리옌의 결말은 흔히 생각하는 '여왕'들의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때의 권력에 취하였으나 결국 사람들로부터 모두 버림받고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린 후 몰락하는 왕국을 품에 끌어안고, 사랑을 믿으며 비참하게 죽는 것. 빈약한 상상력이다. 이들이 그토록 탐하던 철왕좌는 드로곤이 녹여버리고 (드로곤은 왜 눈앞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존 스노우를 녹이는 대신 철왕좌를 녹였단 말인가? 게다가 대너리스의 칼리사르와 언설리드는 아주, 아주 얌전하게 장악한 도시를 넘겨주고 자신들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다니.) 세븐킹덤의 새 왕은 권력 구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이가 차지한다. 존 스노우가 대너리스를 죽이도록 부추긴 티리온 라니스터에 의해서. 

히어로물이 아닙니다만

제작진이 세르세이 라니스터, 대너리스 타르가리옌의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시즌 8의 명실상부한 주인공이 있다면 그는 바로 존 스노우다. 그는 결국 철왕좌에 앉지 못했으나 누구보다도 시즌 8의 분량을 많이 차지한 데다가 온갖 비이성적인 결정과 의심이 판치는 어설픈 스토리의 진행 사이에서 홀로 양심과 이성을 담당한다. 시즌 8을 아우르는 부제를 하나 붙이자면 <존 스노우 일대기>가 될 것이다. 시즌 8의 모든 에피소드는 그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 모두가 그에게 깨달음을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히어로가 성장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에게는 시련과 고난들이 주어진다. 결국 그는 번민의 끝에서 도시를 차지한 대너리스 타르가리옌을 살해한다. 결정의 근거는 빈약하다. 그가 갇힌 티리온 라니스터를 독대했기 때문에. 그가  대너리스는 좋은 통치자가 될 거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대너리스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비수를 꽂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어쩌면 벌어질 수도 있었던 대너리스의 폭정과 멈추지 않는 전쟁에서 사람들을 구원한 구원자가 된 후 다시 나이트워치로 향하며 왕좌를 등지고 길을 떠난다. 시즌 8의 모든 이야기 전개는 존 스노우의 시점에 이입한다면 꽤 편하게 납득이 가능하다. 이는 시즌 8의 스토리 구성이 다분히 편파적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그리고 이 모든 판을 제 손 안에서 주무르며 신념과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남은 사람이 티리온 라니스터가 되었을 때, 이런 편파를 젠더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SKY캐슬>의 잔상

전혀 다른 소재와 전혀 다른 배경, 전혀 다른 볼륨의 이야기이지만 <왕좌의 게임>을 보기 시작한 이유와 같은 이유로 열광하고 같은 이유로 실망한 드라마가 있다. 올해 초를 뜨겁게 달군 JTBC의 <SKY 캐슬>이다. <SKY 캐슬>은 각자 출중한 커리어를 가진 훌륭한 여배우들이 잔뜩 등장하고 이들이 이야기의 방향성을 휘어잡으며 인상 깊은 장면을 몇 번이나 만들어냈다. 이에 여배우들의 제대로 된 몫을 원해 왔던 팬들은 열렬한 시청률으로 <SKY 캐슬>의 방향성을 지지했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가 끝을 맺을 때가 다가오자 모든 빛나던 여성 캐릭터들은 모성애가 지극하며 남편의 말에 순종하고 가족을 지키는 데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엄마들이 되어버렸다. 이 결말에 얼마나 힘이 쭉 빠지던지. 

<왕좌의 게임>에 마음을 쏟은 이유 역시 같았다. 중세풍의 배경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힘있는 여성 캐릭터들이 다양한 인종과 나이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대단원이 막을 내린 지금, 그 수많은 여성 캐릭터 중 어느 누구도 만족스러운 결말을 맺지 못했다. 아니, 그 전에, 살아 있는 이들조차 몇 없다. 그래서 <왕좌의 게임> 전체 대사 중 겨우 3분의 1만이 여성 캐릭터의 대사라는 분석은 유의미한 분석이 된다. 시리즈 전체에서 대사가 가장 많은 캐릭터 열 다섯 명 중 아홉 명이 남성이다. 끝까지 살아남은 여성 캐릭터보다 이미 죽은 남성 캐릭터가 더 많은 대사를 하기도 했다. BBC의 기사에서 스테파니 겐즈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여성이 눈에 확 띄고 신체가 잘 보이기 때문에 오해할 수 있다. 가시성이 의미있는 언어와 같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확인해주는 것 뿐이다. 여성의 목소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2019년이라면 여성 캐릭터에 대한 매너리즘은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성 캐릭터가 많은 <왕좌의 게임>이라면 더더욱. 파이널 시즌은 그렇지 않음을 증명했다. 이 결말은 당연하지도, 자연스럽지도, 납득 가능하지도 않다. 그래서, 화가 난다. 

이그리트님의 글은 어땠나요?
1점2점3점4점5점

이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왕좌의 게임에 관한 다른 콘텐츠

여성 주인공에 관한 다른 콘텐츠

드라마에 관한 다른 콘텐츠

콘텐츠 더 보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