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이끈다: 산사 스타크 & 아리야 스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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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이끈다: 산사 스타크 & 아리야 스타크

이그리트

*주의: 이 글은 왕좌의 게임 시즌 6까지의 스포일러가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산사 스타크 & 아리야 스타크 :
스타크의 방식을 버린 스타크

대너리스 타르가리옌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남자 형제(들)의 그늘에 가려 있다가 날이 갈수록 서사가 선명해진 산사 스타크와 아리야 스타크는 시즌 6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두 인물이라 봐도 무방하다. 두 자매는 장장 다섯 시즌 동안 겪었던 고난을 끝내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서사의 주체성을 되찾았다.

<왕좌의 게임> 시즌 1에서의 산사 스타크. 사진 제공 = HBO

산사 스타크는 세븐킹덤에서 제일 가는 미녀로, 자수를 좋아하고 왕자님을 꿈꾸며 예쁜 옷과 또래 여자 그룹이 있는 전형적인 귀족 아가씨였다. 북부에서 가장 유력한 가문의 장녀로 그가 평생 받아온 대우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첫 에피소드에서 이미 왕자와의 결혼을 약속받은 산사는 여왕이 될 날을 꿈꾸며 아버지와 함께 킹스랜딩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고 반역자로 처형당하면서 산사의 삶은 그야말로 생지옥이 되어 버렸다.

산사의 아버지, 네드 스타크는 권력 앞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세르세이 라니스터를 상대로 지나치게 명예로웠으며 지나치게 신사적이었다. 세상에 어떤 경쟁자가 기습과 병력 규모를 미리 예고하고 죽기 전에 떠나라고 얘기를 해 준단 말인가. 세상에 어떤 경쟁자가 ‘나는 너의 비밀을 알아버렸어’라고 자신을 필사적으로 위협할 빌미를 계속해서 얹어 준단 말인가. 네드 스타크는 우직하게 명예로웠고, 동시에 멍청했다. 그의 죽음은 안타까운 비극이지만 예견하지 못할 비극은 아니었다.

스타크 가문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간절히 비는 산사 스타크. 사진 제공 = HBO

킹스랜딩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요렌과 함께 도망친 아리야와는 달리, 산사는 얌전히 자신의 방에 있다가 라니스터 가문에 붙잡힌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는 순간을 바로 앞에서 보게 되고, 조프리에게 끊임없이 학대당한다. 하운드가 그나마 산사를 지키는 조금의 기사도를 보여주지만 왕궁에 실제로 산사의 편은 단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산사는 세르세이 라니스터가 여왕님이기 때문에 그를 믿고 따른다. 그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빨리 항복하라는 편지를 진심을 담아 보내고 제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끊임없이 세르세이와 조프리에게 간청한다. 산사는 그가 길러진 방식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네드 스타크가 길러낸 장녀는 네드 스타크 같았다. 그는 명예로웠고, 숙녀다웠으며, 동시에 숙녀답게 ‘순진무구’했다.

결국 램지 볼튼의 아내로 스타크 성에 돌아가는 산사 스타크. 사진 제공 = HBO

꾸준한 폭력을 겪고도 숙녀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산사의 성장 과정은 <왕좌의 게임>에서 등장하는 여성 인물 중 가장 고통스럽다. 그는 사람을 쉽게 믿었기 때문에 티리온 라니스터와 원치 않는 결혼을 했고, 기사도를 믿었기 때문에 광대 기사가 자신을 구해주겠다는 약속을 했을 때에도 그 말을 믿었다. 그러고도 리틀핑거를 또 다시 믿었기 때문에 램지 볼튼의 아내까지 되었다. 산사가 시즌 5까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은 꾸준히 산사에게 “이 길은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빨리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찾아라. 그것이 그가 겪은 여정이 그에게 보내는 신호다.

<왕좌의 게임> 시즌 5 피날레 에피소드. 드디어 탈출하는 산사. 사진제공 = HBO

테온 그레이조이가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용기를 짜내어 산사 스타크와 윈터펠을 탈출했을 때, 산사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처음으로 ‘반항’을 실행한 셈이다. 그리고 브리엔느, 리틀핑거와 재회하면서 그는 지금까지 겪어왔던 모든 사건이 자신의 순진함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명예로움에는 더 이상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사 스타크: 숙녀에서 플레이어로

산사는 스타크 가문의 숙녀가 아니라 게임의 플레이어가 됐다. 그의 이름이 가진 영향력을 최대한 발휘해 리버런의 숙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냉정하게 득실과 승패를 따지며 릭콘 스타크의 죽음에도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결국 존 스노우-램지 볼튼이 벌인 전투에서 두 사람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실천할 수 있는 전략을 온전히 자신의 지략으로 실천한다. 

사진제공 = HBO

베일의 기사들을 불러오며 산사는 리틀핑거를 ‘이용’했다. 리틀핑거가 산사를 이용한 게 아니라, 처음으로 산사가 리틀핑거를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전투 이후 존 스노우가 산사에게 ‘보상’으로 남겨둔 램지 볼튼을 잔혹하게 죽였을 때 그가 지은 미소는 우연이 아니다. 산사는 서자들의 전투를 통해 자신이 가진 플레이어로써의 능력을 확인했고, 이제 그 능력을 시즌 7에서 조심스럽게 펼치기 시작할 것이다.

산사 스타크는 세르세이 라니스터, 대너리스 타르가리옌 같이 가문의 지도자이자 맹주의 위치에 올라가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원한다면 그 이름을 가져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부의 수호자이자 윈터펠의 가주’ 타이틀을 굳이 존 스노우에게 넘겼다. 그리고 북부의 가문들이 다시 존 스노우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과정 역시 방조했다. 이것은 산사의 전략적 선택이다.

산사는 존 스노우 말고도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한 장 더 손에 쥔다. 바로 리틀핑거. 예전의 ‘숙녀’였다면 그저 몸서리를 치면서 즉석에서 거부했을 리틀핑거의 접근에 산사는 정말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가 가진 야망의 크기와 음험함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도 산사는 그의 제안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매번 내가 철왕좌에 앉는 것을 상상했소. 그리고 그 철왕좌 곁에는 당신이 앉아 있는 것. 그리고 그 상상에 한 발짝씩 가까워지는 전략에만 ‘예스’를 외쳤지.” - 리틀핑거

리틀핑거가 자신의 목적과 패를 다 까발린 순간, 그가 산사를 이용할 여지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이제는 산사가 그를 카드로 활용할 차례가 돌아온 것이다. 산사는 자신의 혈통, 존 스노우, 북부의 병력, 리틀핑거, 리틀핑거가 동원할 수 있는 동부의 병력까지를 아우르는 다양한 카드를 손에 넣었다. 그는 빛나는 지배자는 아닐지라도, 시즌 6에서 실질적인 이득과 권력을 가장 많이 얻은 인물이 됐다.

아리야 스타크: '아무도 아닌 이'에서 다시 아리야 스타크로

한편 산사와는 정반대 타입으로 꼬맹이 때부터 남자 형제들보다 무예에 뛰어났던 아리야 스타크는 모두가 예상하고 바랐던 대로 복수를 위해 암살자가 되어 웨스테로스로 돌아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리야 스타크가 시즌 6 파이널 에피소드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했을 때 팬들은 모두 환호성을 지르지 않았을지.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진 제공 = HBO

아리야 스타크도 산사 스타크와 마찬가지로 가족, 형제의 죽음을 너무나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그리고 세상의 밑바닥을 가장 빨리 경험했다. 그가 하운드와 함께 웨스테로스를 가로지르며 본 죽음과 더러움은 아리야를 지나치게 일찍 성숙하게 만들었다. 아리야 스타크는 그가 보고 들은 것을 모두 흡수할 만큼 대담했고 영리했다. 타이윈 라니스터와 보내는 극적인 순간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자켄 하이가르를 통해 결국 브라보스의 다면신 사원에 당도하는 아리야의 여정은 고단하고 지난한 만큼 스릴 넘쳤다.

다면신의 사원에서 아리야 스타크가 겪는 시련은 전형적인 영웅의 성장 서사다. 그것은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 더 비기닝>에서 겪는 단련 과정과 매우 닮았다. 자켄 하이가르가 내리는 시련은 가혹하며, 냉정하다. 암살자가 되기 위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일수도 있겠지만, 그의 요구는 아리야가 가지고 있는 스타크로서의 명예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아무도 아닌 이(No One)이 되려 했던 아리야. 사진 제공 = HBO

죽여야 할 이 대신 스타크의 복수를 감행한 아리야는 시력을 뺏기고 그를 괴롭히는 웨이프와도 끊임없이 갈등한다. 웨이프는 필요한 것보다 훨씬 아프고 고통스럽게 아리야를 구타하고 이를 ‘훈련’이라는 명목 아래 묵인받는다. 시즌 5, 시즌 6에 걸쳐 웨이프와 자켄 하이가르의 요구에 온갖 시련을 겪은 아리야는 결국 다면신의 윤리를 저버린다. 아리야는 다면신이 요구하는 ‘아무도 아닌 이’가 될 수 없었다. 산사와는 다르게, 아리야는 자신의 스타크스러움과 스타크로서의 자신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드디어 네가 ‘아무도 아닌 이’가 되었구나.”
“난 ‘아무도 아닌 이’가 아냐. 내 이름은 아리야 스타크다.”
- 아리야 스타크, 다면신의 사원을 떠나며

그 결과, 아리야 스타크는 솜씨 좋은 살인 및 위장 기술을 갖춘 데다가 목적의식이 명확한 스타크의 복수자가 되어 돌아왔다. 마치 브루스 웨인이 무예를 갖춘 배트맨이 되어 고담으로 돌아왔듯이 말이다. 그는 늙고 악랄한 왈더 프레이의 목을 시원하게 따 버리면서 평온한 미소를 짓는다. 아리야의 복수 리스트에 오른 사람은 몇 사람 남지 않았다. 세르세이 라니스터의 생을 마감할할 사람은 폭풍을 몰고 오는 대너리스 연합이 아니라 작고 빠른 아리야일수도 있다.

스타크 가문의 두 여성 후계자는 모두 긴 고통을 끝내고 시즌 6에 들어서야 승리자의 길에 들어섰다. 다만, 한 명은 스타크스러움을 저버렸기에 이겼고 다른 한 명은 스타크스러움을 지켰기 때문에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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