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너리스 타르가리옌:
타르가리옌의 후계자,
도트락의 칼리시
세르세이 라니스터에 비해 대너리스 타르가리옌은 자신이 지배자가 되어야 함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더할 나위 없이 도구적이다. ‘목욕' 장면이라지만 벌거벗은 몸으로 등장해 뜨거운 물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대너리스에게 얼마나 핵심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야만족에게 군사를 대가로 바쳐지는 공물이고, 칼 드로고에게는 그저 이방인 아내, 아이를 낳아줄 도구일 뿐이었다. 대너리스 역시 이 운명에 순응하는 어린아이였다. 그의 희망이자 혈족인 비세리스의 말을 따라야만 한다고 스스로도 생각했고, 따랐기에 열 여섯 살 (원작에서는 열 세 살이다)에 칼 드로고에게 강간당했다.
하지만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긴 여행을 거치며 그는 비세리스 타르가리옌의 오만함과 멍청함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대너리스는 비세리스와 자신의 남편을 어떻게든 중재해 보고, 화해시켜 보지만 소용이 없다. 비세리스에게 대너리스는 야만족의 군대를 얻게 해줄 비싼 대가였기 때문에 결혼을 하기로 한 순간부터, 비세리스는 끊임없이 철의 왕좌를 요구했다.
이후 대너리스가 야만족을 더 이상 야만족이 아니라 ‘도트라키'로 인식하게 되고, 그들의 언어, 풍습을 배우며 남편과 교감하면서 모든 상황은 바뀐다. 자신이 그저 팔려온 트로피 와이프가 아니라 ‘칼리시'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매매혼으로 만났지만 남편은 웨스테로스의 어떤 귀족 가문보다 대너리스에게 자상했고 대너리스는 자신의 이방인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남편에게 매인 아내가 아니라 남편과 동등한 아내의 위치를 획득한다. 칼과 칼리시. 그는 지배자의 자리를 처음 경험하게 된다. “난 그냥 집에 가고 싶을 뿐이야.”라고 말하던 아이에서 보살펴야 할 사람과 이끌어야 할 집단이 있는 여왕이 된 것이다.
칼리시 대너리스가 다시 마주하는 비세리스는 더 이상 예전처럼 무섭지도, 절대적이지도 않았다. 대너리스는 칼리시가 되면서 비세리스의 가부장적 권력에서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도 탈출한다. 게다가 대너리스는 칼 드로고의 아들을 가지고, 아들의 이름을 짓는 의식까지 성공적으로 마친다. 그는 완전히 자신의 역할을 다 한 칼리시가 되었다. 관계의 역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비세리스뿐이다. 그에게 아직도 대너리스는 어린 여동생이자 훌륭한 도구이고, 칼 드로고의 10만 군대를 움직일 창녀다.
“필요하다면 그와 그의 모든 군대, 그리고 그의 말까지 너를 범하게 할 수 있어.”
- 비세리스
결국 대너리스는 타르가리옌의 후계자는 비세리스가 아니라 자신임을 깨닫는다. 비세리스는 불과 피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칼 드로고가 내린 ‘황금 왕관'을 견디지 못했다. 대너리스에게 비세리스의 죽음은 생각보다 큰 사건이 아니었다. 결국 그렇게 될 것임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어서일 것이고, 비세리스는 “용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후 자비심을 가졌기에 칼 드로고를 잃은 대너리스는 피와 불로 통치하는 타르가리옌이자 칼리시로 거듭난다. 남편, 아들, 형제 대신 얻은 세 마리의 용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배를 위한 여정은 끊임없이 조롱당한다. 대너리스가 어린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든든한 가문의 세와 나이, 자식들 등 권력자본이 이미 있는 세르세이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가문도 없고(본인 빼고 모두 죽거나 나이트워치에 들어가 있다), 나이도 어리고, 자식과 남편도 없다. 하지만 가장 언더독인 인물이기 때문에, 시청자는 대너리스의 행보에 열광한다. 그가 용을 넘겨주는 척 하며 언설리드 군단을 얻어냈을 때나, 언설리드를 이끌고 아스타포르와 윤카이, 미린을 해방시키며 진군하는 장면은 사실상 각 시즌시즌의 엔딩 피날레나 하이라이트로 부각되어 다뤄졌다. 하지만 부수기만 하는 정복자가 ‘통치자'가 되려고 할 때부터 대너리스의 고난함과 스토리라인의 지지부진함이 시작됐다.
그가 미린에 눌러앉으면서 드래곤 두 마리는 가두어 버렸으며, 한 마리는 날아가 버려서 언제 돌아올 줄 모른다. 그의 노예 해방에 불만은 품은 하피의 아들들은 언설리드, 도트라키를 죽이고 다닌다. 아스타포르의 노예주들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 그는 성을 함락시키고 노예를 해방시킬 수 있지만, 그 이후의 문제에 대해선 해결할 방법도 힘도 없었다. 결국 대너리스는 여기서 타이틀 있는 여성이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카드, 결혼을 꺼내 든다. 그는 미린의 오래된 귀족 가문과 결혼해 정세를 안정시키려고 하지만 결혼 직전 용이 다시 나타나 그를 미린에서 머나먼 도트라키의 영역으로 데려가 버린다.
<왕좌의 게임> 시즌 6는 도트라키의 포로가 된 대너리스가 어떻게 다시 지배자이자 철의 왕좌를 노리는 유력한 후보가 되었는지 보여 준다. 대너리스의 기본적인 ‘정복' 방식은 전 시즌들과 같다.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 가장 극적인 패로 가장 최상의 결과를 얻는 것. 어쩌면 대너리스의 방식은 세르세이에 비해 운과 원래 가진 카리스마가 많이 따라주는 타고난 방식이다.
그가 보여주는 기지, 대담함 그리고 운은 그가 지배자가 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걸 주변인물들에게도, 스크린 밖 시청자들에게도 끊임없이 각인시킨다. 포로로 잡혀 들어가 평생 나오지 못할 운명이었던 바에스 도트락에서도 자신을 비웃던 이들을 모두 태워버리고 또다시 불로 모든 이들을 휘어 잡은 후, 이들을 이끌고 용과 함께 미린을 탈환하는 대너리스의 모습은 공포로 다스리는 전형적인 타르가리옌 지배자다.
“원래 그렇게 하기로 되어 있어요(It is known.)”
“안 돼. 나는 여기서 그럴 수 없어. 난 해야 할 일이 있어”
- 바에스 도트락, 도쉬 칼린과 대너리스의 대화 중
대너리스는 불에 타지 않는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아직까지 혼자밖에 없는 드래곤 라이더다. 두 가지의 압도적인 능력으로 그는 극적인 위기 상황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돌파한다.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경외,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그가 가진 자산이다. 드래곤과 병력의 규모가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즌 6에서는 그와 적극적으로 연합을 도모하는 세력도 생긴다. 야라 그레이조이가 끌고 온 강철군도의 함대, 그리고 바리스가 넘어가 협상을 타결시킨 샌드 스네이크, 그리고 타이렐 가문이 그들이다. 물론 유론 그레이조이도 대너리스의 군사력과 그와의 결혼을 노리고 오지만 이미 한 발 늦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막강한 여성 리더들의 연합이다. 그리고 그 연합의 리더는 당연히 대너리스가 되었다.
시즌 7에서 이 연합이 보여줄 파괴력은 기대할 만 하다. 그 동안 <왕좌의 게임>에서 만들어진 남성-남성의 연합, 혹은 결혼을 통한 가문 대 가문의 연합은 모두 망했다.
끈끈한 알탕 타입
- 로버트 바라테온 - 네드 스타크 (둘 다 라니스터에게 죽음)
- 롭 스타크 - 북부의 여러 가문 (라니스터-프레이 연합에 죽음)
결혼 타입
- 롭 스타크 - 프레이 가문 (프레이 가문의 배신)
- 렌리 바라테온 - 로라스 타이렐 혹은 마저리 타이렐 (렌리 바라테온이 죽고 타이렐가는 바라테온을 배신함)
- 조프리 바라테온/토멘 바라테온 - 마저리 타이렐 (라니스터가 마저리 타이렐을 죽임)
대너리스의 새로운 연합은 서로를 배신하고 손익을 따지고 누가 먼저 뒤통수를 칠지 가늠하는 멍청한 남자들의 세계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엘리리아 샌드, 야라 그레이조이 그리고 대너리스까지 세 명이 바이섹슈얼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점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고 이 연합을 돋보이게 만든다. 세 명 모두 권력을 얻을 때도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권력을 유지할 때도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심지어 개인의 쾌락을 찾을 때에도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말로 ‘다르다’.
도구에서 권력으로: 대너리스의 나신이 가지는 의미
대너리스는 여성 주요 등장인물 중 가장 많은 나체를 보였던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가장 섹슈얼하게 소비되는 여성 등장인물이 아니다. 그의 ‘전신 노출’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의미가 전복되기 때문이다.
그의 맨 처음 등장은 나신이다. 그 때의 대너리스는 연약하며, 섹슈얼하게 소비될 만한 도구적 인물이다. 그의 가다듬어진 몸은 대너리스가 뜨거운 것에 강하다는 특징을 보여주는 것보단 그가 얼마나 ‘여물은’ 여성인지를 보여주는 데에 집중한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대너리스의 육체를 클로즈업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그 자체로 관음적이다.
대너리스의 두 번째, 세 번째 나신 노출도 이와 맥락을 함께한다. 두 번째 누드는 칼 드로고와 처음으로 가지는 관계 혹은 강간이다. 그는 울고 있고, 칼 드로고는 그의 옷을 벗긴다. 그리고 뒤에서 그녀를 안아들고 그대로 관계를 가진다. 석양이 지는 바다 앞에서 말과 함께 치른 그의 첫날밤은 그만큼 기이하고 슬프다. 대너리스는 그 바다를 보면서 웨스테로스의 집과 가족을 떠올렸을 것이고, 그래서 울었을 것이다.
여기에서도 대너리스의 육체는 약탈자에게 약탈당하는 도구적 육체다. 다만 세 번째 노출은 같은 섹슈얼리티를 표현해도 대너리스가 주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자는 말과 같기 때문에 후배위만 고집하는 도트락 부족의 수장에게 대너리스는 다른 자세, 다른 섹스를 요구하고 이를 리드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의 나신은 자신감의 표현임과 동시에 섹슈얼리티의 표현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몸은 도구적이지 않다.
그리고 시즌 1의 피날레 에피소드에서 네 번째로 노출되는 그의 나신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대너리스는 칼 드로고를 화장하는 불에 함께 들어가서 모든 것을 태운 채, 드래곤 세 마리와 함께 재에서 걸어 나온다. (참고로 원작소설에서는 대너리스의 머리도 모두 타 버린 채 불 속에서 나온 것으로 묘사돼 있지만, 드라마에서 머리는 태우지 않는다.) 이 때 보이는 그의 나신은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그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상징한다. 동시에 재에서 걸어나오는 그의 회생을 뜻하기도 한다.
그의 나신을 보고 당황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는 채 모두가 무릎을 꿇고 그에게 경배하는 시즌 1 피날레의 모습은 시즌 6에서도 재현된다. 그를 대놓고 미친 여자라 부르는 모든 칼(Khal)에게 대너리스는 또다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후통첩을 보내고, 이에 불복하는 모든 이들을 태워 죽여버린다. 불타는 칼라 베즈벤(칼들의 회의용 천막)을 보고 뛰쳐나온 모든 도트라키들은 그 불구덩이에서 혼자 살아 나온 대너리스의 압도적인 능력에 무릎 꿇는다. 이쯤 되면 대너리스의 벗은 몸은 그가 가진 힘의 물리적 상징과도 같다. 보였을 때 부끄러운 무언가가 아니라, 초자연적이고 신성한 무언가.
과연 대너리스 타르가리옌 - 야라 그레이조이 - 엘리리아 샌드-올레나 타이렐 연합은 세르세이를 철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죽음을 선사할 수 있을까? 해방자, 노예들의 어머니(윤카이 어로 ‘미사Mhysa’), 거지들의 여왕, 정복자, 드래곤의 어머니, 불타지 않는 자, 대너리스 스톰본이 곧 웨스테로스에 상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