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이 대중음악의 메이저 장르로 자리잡은지도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다. 나는 힙합 리스너가 아니지만, 나의 취향과 상관없이 힙합은 익숙한 장르가 되었다. 차트를 점령하는 인기 힙합 곡도, TV를 틀면 나오는 힙합 아티스트와 예능도 한 몫 했다. Mnet의 예능 <쇼미더머니>는 벌써 여덟 번째 시즌을 맞고 있다. 해마다 어딘가 비슷한 듯 다른 참가자들과 비슷한 듯 다른 심사위원이 출연하지만 <쇼미더머니>의 인기는 여전하다. 어쩌면 여기서 영감을 받은 걸까? 넷플릭스는 새 오리지널 리얼리티 쇼로 힙합 서바이벌 예능인 <리듬+플로우>를 선택했다. 힙합의 본고장에서 힙합 예능을 제작한 것이다.
밋밋함? 충실함?
사실 <쇼미더머니>의 자극적인 문법에 너무 익숙해져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듬+플로우>가 선전하는 경쟁, 서바이벌 등의 문구와 달리 <리듬+플로우>는 다소 직선적인 편집을 선보인다. 밋밋해 보일 수 있다. 서바이벌의 고전적인 포맷대로 지역 예선을 치르고, 거기서 본선 참가자를 뽑고, 매 라운드마다 본선 참가자의 절반 가량이 탈락한다. 여기서 특별한 기회를 한 번 더 준다거나, 시청자 투표 혹은 소셜 투표로 누군가를 살린다거나,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는 등의 드라마틱한 요소가 없다.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그렇다면 <리듬+플로우>는 차라리 충실하게 등장인물을 관찰하는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까? 이 부분도 고민이다. 본선에 진출할지, 진출을 못 할지 모르는 예선 참가자들이야 그들의 사연을 조금만 다루고 넘어가도 괜찮다. 사실 예선부터 과하게 참가자의 드라마를 강조하는 방식은 지겹기도 하고. 하지만 카메라에 잡히는 인물이 몇 안 되는 본선 단계로 넘어가서도 <리듬+플로우>는 각 경연 과제를 치러내는 참가자들의 이야기, 심정, 과제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세세하게 담지 않는다. 각 에피소드는 60분 이하인데, 경연 순서대로 참가자들이 등장해 공연을 하고 코멘터리를 받는 내용의 반복일 뿐이다. 직선적이라거나, 정직하다는 표현으로 커버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되려 성의없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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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재료에
그저 그런 레시피
<리듬+플로우>가 선보이는 경연의 콘텐츠는 제법 훌륭하고 스케일도 크다. 일단 심사위원들의 이름값이 제법이다. 물론 힙합을 잘 아는 리스너라면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힙합을 잘 모르는 일반인일지라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아티스트의 이름을 알거나 그가 피처링한 곡을 들어봤을 정도니까. 상금도 크다. 1등에게 25만달러를 준다. 본선 무대는 할리우드의 스튜디오다. 마지막 세 번의 본선 경연에서는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한다. 그 중 한 번은 피처링 과제로, 유명한 기존 가수들이 출연한다. 소재는 분명히 풍부했다. 하지만 <리듬+플로우>는 그 요소들을 다루는 데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어쩌면 쇼를 제작할 시간이 모자랐을 수도 있다. 처음부터 에피소드의 개수를 적게 기획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선부터 본선까지 딱 열 편으로 요약되는 분량의 쇼는 절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쉬운 점 하나 더.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들을 공개하면서 <리듬+플로우>는 음원도 나란히 공개했는데, 실제 경연에서 라이브로 호평을 받았던 곡의 요소들을 밋밋하게 죄다 빼버렸다. 스포일러는 하기 싫으니 곡 이름은 언급하지 않겠다. 우승자의 마지막 경연 곡 음원과 에피소드 속 라이브 버전을 비교하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쩐지 모르게 처음부터 끝까지 밋밋하다. 분명 힙한 문화와 힙한 사람, 힙한 스토리를 다루는데 에피소드를 틀어놓고 있다 보면 김이 샌다. 그게 아쉽다. 넷플릭스는 이 화려한 출연진과 프로듀서, 객원 아티스트,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힙합 스타’들을 조금 더 잘 포장해야 한다.
사족: 그나마 좋았던 점 몇 가지
- 심사위원에 카디 B를 포함시킨 것. 비록 그게 ‘토큰’같이 보일지라도, 심사위원에 여성이 있고 없고는 당연히 큰 차이가 난다. 심지어 여성 참가자만 등장하는 <언프리티 랩스타>에서조차 심사위원은 죄다 남성이었던 점을 생각해 보면 매우 그렇다.
- 여성 힙합 아티스트들을 전면에 드러내기 위한 노력이 군데군데에서 돋보인다. 그들이 특별 우대를 받았다는 게 아니다. 출중한 실력을 가진 여성 아티스트들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평가하지 않고 마이크를 쥐어줬다는 것 뿐이다. 동시에 그들이 경연에서 별로 훌륭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을 때도 ‘배려’ 같은 건 없이 곧장 탈락시킨다. 공정하다.
- 좋은 프로듀서들이 경연 곡을 작업했다. 결과물이 매우 좋다. 그냥 경연 땜빵용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별도의 트랙으로 들을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