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넷째주의 넷플릭스: 망가져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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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넷째주의 넷플릭스: 망가져도 괜찮아

이그리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또 다시 12월이 돌아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은 년도의 끝자리만 바뀌었지 별 다를 것 없이 알차게 낭비한 1년을 돌아보게 된다. 반복되는 연말 역시 화려하지 못하다. 맛 좋은 술에 음식과 함께 은은하고 따뜻하게 지난 한 해의 이야기를 나누는 송년회 파티보다는 오밤중에 이불을 뻥 차게 만드는 순간들을 잊고 싶어서 늘 가는 술집에서 늘 먹는 술을 꼴꼴,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붓는 정도일까. 어쩐지 모르게 반짝이고 행복하며 소비적이어야 할 연말을 배신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그랬다. 오랜만에 <스킨스>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 

청소년 관람 불가인 청소년

<스킨스>의 캐릭터들과 디테일에 대한 감상 혹은 분석은 깊게 파고들지 않겠다. 스토넘 남매의 존엄한 외모나 제작진의 힙한 선곡 센스에 대해서도 (시즌 3의 제이제이 에피소드는 배경 음악이 전부 클래식인 것처럼) 굳이 나열할 필요가 없다. 이 드라마가 무엇으로 유명한지는 이미 우리 모두가 알 터. 나는 이 드라마가 다루는 인간 군상을 짚으며 때아닌 <스킨스> 부흥회를 열고자 한다. 

<스킨스> 타이틀

영상물 분류위원회에 의해 딱지가 붙은 채 넷플릭스에서 다시 만난 <스킨스>는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다. 다루는 내용을 잠시 떠올려보면 금세 납득은 가지만 그 등급 분류가 한국적인 아이러니를 성립시킨다. 대학 가기 전의 십대 청소년들이 등장하지만, 이 나라에 사는 대학 가기 전의 십대 청소년들은 분류에 의하면 그들의 모습을 볼 수도, 봐서도 안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비단 이 드라마가 섹스와 마약을 전면에 배치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느낀다. 그러한 어른들의 필사적인 배제는 '너희들은 이런 삶이 있다는 걸 알지 않았으면 좋겠어'에 가까운 부질없는 소망 아닐까. 

<반올림> 스틸컷. KBS 제공

한국의 '청소년 드라마'로 군림하고 있는 <반올림>과 <학교> 시리즈, 혹은 조금 더 최근으로 거슬러오면 <드림하이>에서 조명하는 청소년과 <스킨스>의 또래들을 비교하면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상태에서 미래와 진로와 사랑과 우정에 대한 고민을 하며 가끔 서로 싸움도 하지만 결국 어쨌거나 대학 진학에 무난하게 성공하는 아이들을 봐 왔다. 이탈은 없다. 이탈해야 할 이유도 없다. 오직 앞으로 나아가고 밝은 미래를 꿈꿀 이유와 동력만 존재한다. 어른들은 그 아이들을 어떻게든 도우려고 애쓰며, 이미 없는 부모가 아니라면 부모들은 아이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여기에 상당한 자원과 노력을 쏟아부어 응원한다. 

그 속에서 비추는 한국 청소년의 삶이란 것은 비현실 중에서도 비현실인 셈이다. 첫째는 아이들의 모든 고민은 제도권 안에서 해결된다는 점에서, 둘째는 그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이 완벽하게 만들어져 진공포장 된 트루먼 쇼 속의 조연들 같다는 점에서. <스킨스>가 보여주는 청소년의 삶을 긍정하는 게 아니다. 리얼리티를 따지자면 그쪽이 훨씬 현실에 가깝다는 점이다. 현실과의 낙폭이 크지 않다는 점은 드라마를 보는 이가 스스로에게 던질 질문을 줄인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 '우리 집은 엄마와 아빠 사이가 서먹하고 집안도 엉망진창인데 괜찮은 건가?' 같은 것. 내가 <반올림>을 보던 청소년으로서 품었던 질문 같은 것들. 저기에는 훌륭한 선생님과 부모들이 손만 뻗으면 있는데, 저는 없는 것 같은데 이게 대체 뭡니까? 싶은 것들. 

그렇게 살 수도 있지, 뭐 그래. 엄마랑 아빠가 바람을 피우고 이혼할 수도 있고, 너를 통제하려 들지만 사실 자기 통제는 못할 수도 있고, 폭력적인 말을 할 수도 있고, 어쩌다 내가 섹스할 수도 있고, 살이 찔 수도, 동네를 몰려 다니면서 엉망진창인 사고를 치고 후회할 수도, 바보 같은 소리를 친구에게 하고 안 그런 척 할 수도 있지 뭐. 청소년기의 혼란스러움과 그 주변을 둘러싼 어른들의 불안함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스킨스>는 그래서 되려 드라마의 시청자가 스스로를 긍정하게 되는 다양성을 담보한다. '그럴 수도 있지'. 삶이 좀 엉망일 수도 있지. 

망가져도 괜찮아

<스킨스>가 그런 삶의 망가진 부분들을 태연하게 드러냄으로써 위안을 주는 건 비단 그 드라마의 주인공과 비슷한 또래인 청소년 뿐만이 아니다. 그 즈음일 때 한 번,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되어서 다시 <스킨스>를 보는 내게 이번엔 주인공들의 주변에 있는 어른들의 얘기가 유독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멋대로 구는 아이들만큼이나 멋대로 서툴게 아이들을 대하고, 싸우며, 혼란을 겪고, 헤어지고, 도망쳤다 후회하며 돌아오고 점잔을 빼는 어른들. 모든 것이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렬된 기내식 같은 삶을 누구나 사는 것은 아니므로. 이 드라마가 대단한 성취도, 대단한 실패도, 어떤 인생의 엄청난 분수령도 겪지 않은 밍숭맹숭한 한 해를 보낸 후에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적당히 남은 연말을 버틸 힘을 주는 건 그래서다. 넷플릭스에서 시즌 1~7까지 전부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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