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넷플릭스 애청자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꽤 많은 수의 영상 사이를 하릴없이 헤메다가 어느 날 벼락과도 같은 계시를 맞고 특정 시리즈를 정주행하게 되는 법이니까. 한국에서도 리메이크된 <굿와이프>를 처음 보게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장장 시즌 일곱 개, 매 시즌마다 22화 이상의 에피소드를 끈질기게 보게 될 줄이야.
굿 와이프
시리즈 제목: 굿 와이프 (the good wife)
제작사: CBS
시즌: 7개
완결 여부: 완결
넷플릭스로 몰아보기 가장 좋은 점. 이 드라마는 완결됐다. CBS 제작진은 2016년 마지막 시즌을 방영하면서 "더 이상의 시리즈는 없다"고 확언하였으며 (물론 무게감 있는 조연들을 내세우는 스핀오프 시리즈는 제작될 예정이라고 했으니, 이 역시 기대된다) 그러니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갑작스러운 제작 중단이 되지는 않을지 등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완결은 <굿 와이프>를 추천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이유 중 꽤 사소한 것에 해당한다. 최대한 스포일러를 줄인 선에서 <굿 와이프>의 매력을 몇 가지만 꼽아보자.
단연코 첫째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국내 드라마는 물론이고 외국 드라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다층적인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굿 와이프>의 주인공인 얼리샤 플로릭은 아이 둘을 키우는 검사장의 아내로, 로스쿨을 졸업하고도 13년동안 법조계에서 일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사장인 남편이 사퇴하며 당장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처지에 놓인 그는 다시 로펌에서 일하게 된다. 이게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다. 모범적인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경력단절을 당했던 고학위 여성인 얼리샤 플로릭의 시작은 모두의 예상대로 험난하다. 그 어느 로펌에서도 그를 채용하려 하지 않고, 어떤 로펌은 변호사 면접을 보러 간 얼리샤에게 법률 보조(paralegal)직을 무료 자원봉사로 제안한다. 옛 로스쿨 동기인 윌 가드너를 만나서야 얼리샤 플로릭은 1년차 변호사로 다시 일하기 시작한다.
얼리샤 플로릭이 주인공으로 겪는 문제 상황은 유구하고 오래된 것들도 있지만 - 성희롱을 일삼는 고객들, 경력단절 여성을 비웃는 경쟁자 신입 변호사, 나이는 많지만 연차는 적은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해 하는 다른 상사 - 동시에 캐릭터를 전형적인 틀에 못박지 않을 정도로 신선하다. (어떤 상황인지는 스포일러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입을 다물도록 한다.) 얼리샤 플로릭은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간적인, 그리고 전문가다운 태도를 견지하며 꿋꿋이 자신 앞에 산적한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그는 아이도 챙기고 업무적 성취도 완벽하며 남편도 흠 없이 내조하는 '인공적인' 주인공이 아니다. 얼리샤 플로릭은 그가 가진 훌륭한 변호사로서의 능력을 에피소드 전반에 걸쳐서 시청자에게 꾸준히 어필함과 동시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언제나 스스로를 우선시하는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 그렇다. 이 주인공은 자기희생적이지 않다. 그는 스스로가 져야 하는 아내와 엄마의 의무를 쉽게 져버리지 않지만, 그것이 자신을 잡아먹도록 절대로 두지 않는다. 그렇게 얼리샤 플로릭은 드라마 전체의 제목인 <the good wife>를 당당하게 비웃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저 좋은 아내가 아닌, 얼리샤 플로릭이라고. 이 캐릭터는 완벽하고 고결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한 성취를 이루는 대신 스스로를 항상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에 어떤 다른 여성 주인공들보다도 강력하게 나를 이입시키고 설득시켰다.
둘째는 드라마의 주인공 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도덕성에 대한 최저선이다. 주류를 이루는 법정 드라마와 소설에서는 변호사들은 대부분 약싹빠르게 법의 허점을 악용해 최대한의 이익을 취하는, 소위 '머리 좋은 개새끼'류이기 쉽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들은 언제나 불법의 여지가 있는 일과 마주친다. 거대한 회색 영역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증인을 확보하기 위해 뇌물을 줄 수도, 협박을 할 수도, 회유를 할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불사하는' 태도를 보이곤 한다.
그것은 <굿 와이프>에서 통째로 부정당한다. <굿 와이프>는 일리노이 주 시카고를 배경으로, 시카고의 가장 유명한 로펌들과 그 변호사들을 다룬다. 그 명성과 배경, 그리고 프로페셔널리즘에 걸맞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견고한 커리어와 전문 영역이 있는 변호사들이다. 이들은 때로는 그 법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할 정도로 밀고 나가며 자신에게 유리한 허점이 있다면 서슴지 않고 이를 이용하지만 어디까지나 전문가의 공적 영역, 그 안에서다. 절대로 이를 사적인 문제로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들은 서로를 비방할 때도 품위를 지킬 줄 알며 (물론 몇몇 예외적인 상황이 연출되기는 하지만) 사생활을 끌어들이는 저열한 판단은 최소한으로 줄인다. 그렇게 드라마는 가장 불쾌하고 영악해 보일 수 있는 변호사들의 전문성을 살리는 동시에 드라마 전체의 품격을 적잖게 상승시켰다. 즉, 드라마에서 제공하는 캐릭터와 전체적인 서사에서 어떠한 저열함에 치를 떨 일이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로써 꽤나 안심할 수 있는 중요한 점 중 하나다.
셋째. <굿 와이프>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방영되었는데, 이 방영 기간 동안 미국 사회, 혹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이슈들과 문제를 피하지 않고 드라마의 서사와 소재로 포함시켰다. 현대의 구글을 떠올리는 대형 검색 포털 회사 첨험, 그리고 이와 관련된 소송 및 에피소드들이 그렇고 가볍게는 한창 당시에 유행하던 드라마인 <글리>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 국가안보국(NSA)은 물론이고 퍼거슨 사태까지 제작진은 모두 직접 다루기를 택하며 드라마가 시대와 호흡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다루어지는 이슈가 가볍지 않은 만큼, 제작진 역시 이에 관해 굉장히 신중히 접근하고 있으며 특히 이는 퍼거슨 사태를 언급한 에피소드에서 도드라진다.
법에 대한 불신은 팽배하고, 우리는 그 법을 악용하며 남용하고 오용하는 이들에 대한 서사가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 가깝다고 우리는 쉽게 믿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본 법의 모습이므로. 그 편견에 대한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굿 와이프>의 가치는 충분하다.
추신 1. 물론 드라마도 재밌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하나의 사건 위주로 굴러가는 만큼, 기승전결도 뚜렷하다.
추신 2. 그리고 이 드라마의 배경음악 선정은 천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