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예상한 대로 갈 필요는 없잖아요. <얼터드 카본>을 끝까지 정주행 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얼터드 카본> 미리보기를 쓰면서 이 드라마가 얼마나 예상 가능한 범위 안의 흥행 요소를 잘 가져다 쓸지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는 것 외에 이 드라마를 어떻게 요약해야 할지 잘 감이 오지 않을 뿐이다.
사이버펑크의 고루한 여성혐오
우선 드라마 자체의 감상을 펼치기 전에 <얼터드 카본>의 장르적 속성으로 변명할 수 있다고 믿은 드라마 전반의 여성혐오를 짚고 넘어가야 마땅하다. 모든 SF의 세계가 그렇진 않을진대, 특히 사이버펑크로 분류되는 SF의 하위장르는 하드보일드 느와르와 결합하면서 손쉽게 여성적 클리셰를 동반한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디스토피아 배경의 비정한 느와르 사이버펑크라고 요약되는 장르의 콘텐츠에서 창녀는 필수요소나 다름없이 취급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얼터드 카본>은 '원작이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와 같은 더욱 만만한 핑계거리가 있으나 원작의 변용은 제작자의 의지만 있으면 상당히 폭넓게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저 게으른 변명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 <얼터드 카본> 역시 이야기가 창녀에서 시작해 창녀로 끝난다는 말이다.
아시아(정확히는 일본-홍콩풍의)적이고 우울한 미래사회에서 더더욱 만만한 것은 역시 창녀인 모양인지 사이버펑크 느와르 장르에서는 그 창녀의 유전적 신분이 무엇이든 (클론인 경우도 있고, 인공지능이 들어간 로봇인 경우도 있으며, 그냥 사람인 경우도 있다) 창녀의 사망으로부터 모든 사건이 시작되고 이야기가 굴러가기 시작한다. 대부분 그 창녀의 살해 혹은 상해는 그 사회에서 매우 흔한 일이고 창녀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이 사건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으나, 우리의 주인공 되시는 분께서 이 사건에 주목하게 되면서 모든 드러나서는 안 되는 사회와 특권층의 어두운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얼터드 카본> 역시 별 다를 바 없다. <얼터드 카본>의 공식 예고편에 등장하는 사건의 발단은 로렌스의 살인사건이나, 그 살인사건에 얽힌 전말은 결국 창녀(들)의 죽음일 뿐이다.
사회의 약자, 게다가 적당히 예쁘고 아름다울 것이며 그렇기에 가련하여 독자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 '그녀는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됐어' - 창녀의 일차원적인 활용은 장르의 습속으로 따지기에는 너무나 낡았고 시간이 지나도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터드 카본>의 습관과도 같은 여성혐오가 여기 쯤에서 그쳤다면 좋았을 것이다.
<얼터드 카본>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은 사회적 위치 및 직업의 맥락, 인종과는 상관없이 모두 마르고 '여성스러운' 모습을 취하고 있다. 전 우주에서 제일가는 테러리스트/혁명가든 (퀠), 초재벌이든(미리엄 뱅크로프트), 강력반의 형사든(크리스틴 오르테가) 여성 캐릭터들은 일관적으로 여성적인 체형과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으며, 단지 그것을 총이나 칼과 같은 소재로 포장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마치 킬힐을 신은 여성 킬러들이 느와르 영화에서 일종의 판타지로 구현되는 것처럼 (씬씨티에 나오는 여성 인물들을 상상해 보자. 특히 <얼터드 카본> 후반부의 리지는 거의 이 레퍼런스를 그대로 따 왔다고 해도 무리가 없는 비주얼을 갖추고 있다), <얼터드 카본> 역시 등장하는 여성들에게 강화된 신체부터 총이나 칼 등을 쥐어주지만 그들은 모두 남성 의존적이며, 사랑에 빠지고, 주인공에 의해 의사결정을 번복하며 주인공으로 인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이 모든 여성혐오적 장치가 단지 '비정한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사이버펑크 느와르 장르의 어쩔 수 없는 특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하지만 적어도 2018년은 그런 시대가 아니고 아니어야만 한다. 그래서 <얼터드 카본>이 전면에 노출하는 여성에 대한 한심한 태도는 짚고 넘어갈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오리엔탈리즘 양념 이제 그만
기존 <얼터드 카본>을 리뷰한 리뷰어들의 시선에서 손쉽게 간과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바로 디스토피아 사이버펑크 장르 특유의 오리엔탈리즘 활용법인데, 간단명료한 예시를 들라면 <공각기동대>를 떠올리면 된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말고, 영화화된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말이다.
고도로 기술은 발달했으나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며 거리는 온갖 일본어-중국어 네온싸인(어쩌다 한국어도 끼어 있다)으로 도배되어 있는 미래의 어느 사회에서는,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읽히고 감시당하며 비행정과 대체-강화 신체/의식 등으로 인간이 닿을 수 있는 영역이 한없이 넓어져 있다. 이렇게 요약될 수 있는 디스토피아 사이버펑크의 배경을 공유하는 <얼터드 카본>의 세계에서 지금도 가장 위험한 반동분자로 분류되는 사람은 퀠크레스트와 그가 키운 엔보이들인데, 이들은 명상과 수행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고도로 통제하는 법을 익힌 일종의 선각자들이다.
<얼터드 카본>에서 활용되는 오리엔탈리즘 요소는 크게 그 두 극단으로 나뉜다. 도시의 곳곳에 깔려 있는 단순한 배경으로써의 동양, 그리고 그 세계의 중심측을 뒤흔드는 '미스테리'한 힘. 전자의 경우 중국 음식 포장마차나 각종 싸구려 네온싸인 등, 도시의 하층부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로 세계관 상 영생을 누리는 부자들이 사는 구름 속 정원과 도시에 동양의 흔적은 없다. 즉 표상만 남은 동양 문화는 일종의 하류 문화로 취급되고 있는 셈.
하지만 엔보이들이 가진 힘은 다르다. 명상과 정신단련의 힘과 사상은 너무나 전복적이어서 반드시 제거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생존자(인줄로만 알았던)인 타케시 코바치는 전 은하계에서 가장 희귀한 애완동물 취급을 받는다. 엔보이들로 대표되는 동양 문화/철학은 도시에 찌꺼기처럼 부유하는 동양 문화와 완벽히 분리되어 서양인이 가진 동양의 판타지를 대변한다. 뭔진 정확히 모르겠고, 이해하기도 힘들고, 뜬구름 잡는 소리 같지만 참으로 고급스럽고 멋진. '젠'이나 '치', '인&양' 등의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실사 아니메
즉, <얼터드 카본>은 여성혐오의 클리셰 뿐만 아니라 오리엔탈리즘의 클리셰 역시 빌려와 엔터테이먼트 콘텐츠 흥행의 필수 요소를 구축했다. 보기엔 참 찝찝하고 너무 익숙해서 약간 지루할 정도지만, 그렇기에 다수의 시청자가 익숙하게 드라마가 제공하는 서사에 몰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충분히 의도적인 선택이다. 그 클리셰들이 품은 문화적인 비윤리성을 알고도 제작진은 이를 기꺼이 감수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얼터드 카본>은 도저히 흥행에 실패할 수 없다.
위 요소를 드라마 전반에 활용한 <얼터드 카본>은 늘씬하고 아름다우며 표독하고 때로는 강인한 여성 조연들(크리스틴 오르테가 형사 역시 주연급이긴 하지만 조연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타케시 코바치의 수사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삶의 모든 것이 뒤틀리는 수동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과 사랑을 나누는 잘생긴 백인 남성 주인공이 도시의 밑바닥과 상층부를 휘젓는 실사 아니메와 같은 느낌을 준다.
<얼터드 카본>의 영상에서 구현된 도시는 그 고루한 사이버펑크적 요소를 모두 과할 정도로 반짝이게 살렸으면서도 굉장히 매력적이고, 마찬가지로 주/조연 캐릭터들 역시 적당한 클리셰를 각자 품고 있음에도 꾸준히 드라마를 보게 만들 만한 인력을 지닌다. 액션 장면들 역시 제작진이 예고한 대로 제법 화려하고 인공적인 면이 없잖아 있지만 충분히 멋지다. 그래서 조금 과한 설정과 유치한 대사도 어쩐지 모르게 너그러운 마음에서 허용하게 되고 (수백년 간이나 오빠를 향한 유사 애정을 가지며 집착의 끝을 보여주는 레이라를 보라) 별 생각 없이 틀어놓고 즐길 만 하다.
엔터테인먼트 드라마의 숙명?
종합 한줄평: 아무 생각 없이 즐길 만 하다. 가급적이면 일부러 생각의 플러그를 뽑고 보는 것을 추천한다. 조엘 킨나만이 잘생겼다.
다만 <얼터드 카본>이 최소한 망하지는 않은 준수한 드라마라고 평할 수는 있어도 수작이라고 평하지 못하는 것은 이 드라마의 서사 전개부터 캐릭터 활용, 배경과 요소 활용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도 시청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 없도록 모두 안전한 선택지만을 취했기 때문이다. 나는 <얼터드 카본>을 보면서 한국에서 흥행한 이른바 천만 영화들이 떠올랐다. 도저히 흥행에 실패할 수 없는 요소와 캐릭터와 배우만을 뽑아다 조합한, 어떠한 '실패에 두려움을 품은' 결과물. <얼터드 카본> 역시 그랬다. 여성혐오를 버리기에, 오리엔탈리즘을 버리기에, 아직 SF는 저변이 얕은 하위 장르일 뿐인가? SF를 즐기는 장르의 팬으로써 이 선택이 아쉽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래서다. SF라는 장르의 핵심은 '다른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