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탈출정이 바다 위로 솟구쳐 수면 위에 안착한다. 탈출정의 헤드 부분이 날아가고 몸체까지 열리며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코 모리(키쿠치 린코), 그녀는 생존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자신이 살아있음에 무심하다. 우주 반대편으로 떨어지다 겨우 지구로 귀환했음에도 여전히 길 잃은 어린아이의 표정이다. 사면이 망망대해일 뿐인데 무엇을 찾겠다는 것인지 눈동자가 물결이 이는 곳곳을 서성인다. 눈이 찾지 못한 흔적을 귀가 잡아냈다. 그녀의 뒤에서 두 번째 탈출정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솟아올랐다.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든 그녀는 두 번째 탈출정을 향해 쉼 없이 손을 뻗는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이 찾던 것에 닿는다. 롤리 베켓(찰리 허냄), 그녀와 모든 기억을 공유한 유일한 사람. 그러나 그의 맥박이 잡히지 않는다. 센서 고장일지 모른다는 텐도(클리프톤 콜린스 주니어)의 무전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Don’t go.
빠져나가는 그의 영혼이라도 붙잡으려는 듯 애절하게 속삭이는 그녀.
You're squeezing me too tight.
곧이어 그는 실없는 농담으로 그녀에게 살아있음을 알린다. 얼떨떨한 표정의 그녀에게 옅게 웃어 보이며 눈을 맞춰오는 그. 그녀와 그는 마치 자신의 생존에 안도하듯 서로의 생존에 안도한다. 이제 그들은 복잡한 기계 장치 없이도 서로에게 드리프트 할 수 있다. 단지 이마를 맞대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키스는 없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책장을 한 칸하고 반 정도 채우는 분량의 세계명작동화집이 있었다. 책 읽기보다 듣기를 좋아했던 나는 오디오에 카세트테이프를 꽂고 책상 위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이야기꾼을 기다렸다. 가장 자주 청해 듣던 이야기는 스크루지 영감이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는데 이유는 유령이 나와서였다. 지금은 호러 영화 근처에도 못 가는 주제에 그때는 꽤나 용감한 꼬마였던 것 같다. 공주가 나오는 이야기는 뒷전이었다. “왕자가 공주에게 키스하자 놀랍게도 공주가 깨어났어요!”보다는, 겨울바람에 덜컹거리는 창문 소리가 어린 마음을 더 사로잡았던 것 같다.
카세트테이프가 너덜거릴 정도로 듣다가 조금 더 자라서는 엄마 몰래 영화를 즐겨 봤다. 내가 키스에 눈뜬 것도 그때쯤이었다. 물론 키스는 익숙했다. 아무리 뒷전이라지만 나는 제법 성실해서 공주의 성에도 종종 방문하는 걸 잊지 않았으니까. 사실 독 사과를 먹고 죽은 공주도 물레에 찔려 백 년째 잠자고 있는 공주도 눈 뜨게 만드는 키스의 신비는 한 번 들어도 잊히지 않는 것이었다. 엔딩에 왕자가 공주에게 하는 키스는 독 사과나 물레보다 더 강력한 마법임이 틀림없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하는 키스는 그 정도의 마력까지 겸비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제 둘은 평생 사랑하며 행복하게 잘 살 테니 너도 마음 놓고 어서 자라는 묘한 안도감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지금은 죽은 자를 살리고 영원히 잠자는 저주를 푸는 것보다 평생 사랑하며 행복하게 산다는 단언이 더 위대하고 터무니없는 마법이라는 걸 안다. 스산한 바람 소리를 좋아하던 아이는 영화 속 키스의 달콤한 주문에 빠져들고 있었다.
<퍼시픽 림>(2013)의 마코와 롤리 사이에는 이 주문만이 쏙 빠져있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이마를 맞댄 후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할 키스의 실종. 이제 둘은 어떤 주술의 비호 아래 평생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 이전에 둘은 서로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 쓸데없는 망상이 많은 부류긴 해도 엔딩에서만큼은 두 사람 사이의 일렁이는 기류를 제대로 읽어냈다고 확신했는데. 이들의 사랑마저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오히려 ‘사라진 키스’의 마법
It's okay now, Mako.
We did it.
I can finish this alone.
All I have to do is fall.
Anyone can fall.
5등급 카이주 목에 칼을 꽂아 넣고 숨통이 끊길 때까지 버텨낸 마코는 괴수의 시체를 끌어안고 브리치로 진입한 후에야 정신을 잃을 수 있었다. 마코의 슈트 안에 남은 산소는 불과 5%. 조종석 안에는 쉴 새 없이 경고 메시지가 뜨지만 그녀의 표정은 평온하다. 롤리가 산소를 나눠줄 걸 예상이라도 한 듯. 곧 그의 산소 호스가 연결되고 이내 마코의 생명 활동은 안정을 되찾는다.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들을 리 없는 마코에게 롤리는 말한다. 우리가 해냈다고. 이제 남은 일은 브리치를 따라 떨어지는 일뿐. 떨어지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주인공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동료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그동안 못다한 말을 건네는 장면은 다른 히어로 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클리셰다. 그럼에도 <퍼시픽 림>의 이 장면이 내 머릿속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누구나’라는 세 글자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너를 먼저 탈출시키고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는 건 내가 너보다 유능해서도, 너보다 경험 많은 선배여서도, 너보다 체력 좋은 남자여서도 아니다. 이 일이 특별히 더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저 이 순간 내가 깨어있기 때문에. 너는 너의 몫을 충분히 다했고, 나는 그런 너를 탈출시키고 이 일을 완수해야 할 몫이 남았다. 만약 내가 의식을 잃었고 네가 깨어 있었다면 너도 분명 나처럼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저 세 글자에서 이와 같은 의미를 읽어낸 것에 대해 과잉 해석이라며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때때로 단 한 글자가 한 권의 책을 대신하듯 나에게 ‘누구나’는 이 문장을 대신하는 말이었다. 내가 너보다 더 나은 인간이어서 이 특별한 듯 보이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시각. ‘누구나’는 마코를 온전히 존중하려 노력하는 이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롤리의 이 말을 만져볼 수 있다면 분명 온기가 느껴질 것이었다.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에게 갖는 명백한 애정의 온도가.
키스가 없는 사랑을
의심해도 될까
사라진 키스에 천착해 사랑을 의심한 순간 이 세 글자가 떠올랐다. 키스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사랑을 의심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쉽게 쓰일 수 있는 말이지만 롤리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이 세 글자를 통해 둘의 사랑을 확신하지 않았었나. 나아가 마코와 롤리 사이에는 여러 관계의 결들이 살아있었다. 사실 둘의 사랑은 연인 관계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영화는 둘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연인만큼이나 중요한 친구, 동료, 선후배, 그 이외에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관계의 결들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사라진 키스가 바로 이 지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만일 마지막 순간 둘이 키스를 나눴더라면 어땠을까? 키스의 강력한 관습적 효과 즉 키스의 마법이 여러 관계의 결들을 오직 연인으로 수렴시켰을 것이다.
<퍼시픽 림>과 같은 계보에 있는 많은 히어로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은 서로에게 키스의 대상으로 머문다. 처음부터 연인이거나 친구 혹은 동료로 시작했다가도 어느 순간 키스의 블랙홀로 쑥 빨려 들어간다. 왜 남녀 주인공은 키스를 통해 사랑을 공표하고 연인으로 도장을 콱 찍혀야만 하는 걸까. 물론 남녀가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연인 관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많은 영화들이 연인 이외에 다른 관계는 애초에 불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오직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지루하고 불편할 뿐이다.
히어로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도 진한 우정이나 동료애를 나눌 수 있다. 연인, 친구, 동료의 레이어가 따로 또 같이 놀며 관계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이 중 어느 레이어도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히어로물이 남녀 주인공의 관계에 있어 오직 연인만을 부르짖고 있으니 그 모습이 참 기이하다. <퍼시픽 림>의 마코와 롤리는 고맙게도 이 점을 잊지 않고 있다.
단지 최소한의 기준
마코와 롤리를 동료의 레이어로 바라봤을 때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기존의 히어로 영화들에 비해 동등한 위치에서 여성과 남성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물론 롤리는 마코에 비해 경험 많은 선배 조종사다. 함께 예거를 조종할 때 어떤 전술을 구사할지 주로 제안하는 쪽도 그다. 가장 거슬리는 설정은 감정에 잘 휘둘리는 마코와 그에 비해 이성적인 위치를 점유하는 롤리의 구도다. 기존의 클리셰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한 부분들이다. 그럼에도 단순히 비판만 하고 지나갈 수 없는 이유는 그 반복 속에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예거는 두 조종사가 각각 좌반구와 우반구를 나누어 담당해 조종하는 시스템이다. 이때 두 조종사는 드리프트를 통해 서로 기억을 공유하며 예거와의 접속을 강화한다. 기본 세팅에서부터 누구 한 명이 부차적인 역할을 맡거나 누락되기 어려운 구조다. 마코는 첫 등장에서부터 유능한 요원으로 그려지며 무술 실력 면에서도 롤리와 타이를 이룬다. 그녀의 유일한 흠으로 감정적인 면이 부각되나 이 또한 해석을 달리해볼 여지가 있다.
마코와 롤리는 비슷한 과거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마코는 어렸을 적 카이주에게 부모를 잃고 도망치다 스탁커 대장(이드리스 엘바)에게 구조되어 예거 조종사로 자라고, 롤리는 임무 수행 중 드리프트 상태에서 형을 잃고 충격에 빠져 조종사를 그만뒀다가 스탁커의 요청으로 다시 돌아온다(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과 비슷한 급의 전사를 갖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지점 자체가 유의미하기도 하다). 카이주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적 있는 둘은 드리프트를 통해 서로의 기억과 감정을 공유한다. 마코를 딸처럼 감싸고도는 스탁커는 카이주에 대한 그녀의 분노를 걱정하며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주의를 주지만 롤리는 오히려 마코의 이 지점에 연대한다. 마코 또한 롤리가 형을 잃을 당시 그로부터 여과 없이 전해 받은 공포와 무기력을 함께 느끼고 연대한다. 감정은 둘이 서로를 신뢰하고 연대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으로 작용한다. 이성과 감정,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이성과 남성, 감정과 여성이 결합하며 후자를 열등하게 여기던 관습은 여기에서 어긋난다.
기존의
히어로 영화 도식에서
벗어나다
<퍼시픽 림>은 남녀 주인공을 거의 비슷한 비중과 무게감으로 다루며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동료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의 히어로물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기존의 히어로 영화들이 남녀 주인공의 관계를 어떻게 그려냈는지 한 번 떠올려보자. 일단 남녀 주인공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남성 히어로 원탑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그와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 동료조차 남성이다. 여성 인물의 비중은 적으며 개중 가장 비중이 큰 인물조차 남성 히어로와 연인 관계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 히어로가 지구를 구하는 와중 귀찮게도 악당에게 납치된 그녀는 지구와 함께 구조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가끔 의외의 괴력을 발휘하며 남자 친구를 돕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의외의, 우연적인 상황일 뿐이다. 만일 동료 관계를 이루고 있는 여성 인물이 있다면 십중팔구 진한 동료애를 나누기보다는 기능적 역할,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또 임무 수행에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타이트한 의상을 즐겨 입으며 몸매를 강조하고 나서기도 한다. 결국 그녀들은 남성 히어로에 의해 성애화되거나 보조적 역할에 머물거나,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다.
<퍼시픽 림>과 함께 로봇 영화이자 히어로 영화의 계보에 있는 <트랜스포머1>(2007)을 구체적인 예로 살펴보자. 남자 주인공인 샘 윗위키(샤이아 라보프)와 여자 주인공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요 여성 인물이자 샘의 여자 친구인 메간 폭스가 있다. 안타깝게도 메간 폭스가 맡았던 캐릭터의 이름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 어떤 이름이어도, 심지어 그냥 메간 폭스여도 크게 상관없었을 것이다. 미카엘라 베인즈(애써 찾아보았다)는 할리우드에서 메간 폭스가 상품화되는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메간 폭스의 복제품이기 때문이다. 샘이 로봇 친구들과 함께 지구를 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 멋진 남자를 돋보이게 해줄 섹시한 여자 친구가 바로 그녀다. 잘 빠진 노란 스포츠카 위에서 샘에게 자신의 육감적인 몸을 바짝 밀착시키고 키스로 보답해줄 구릿빛 피부의 여성. 언뜻 보기에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듯 보이나 오직 미카엘라를 향한 샘의 일방향적인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미카엘라는 샘의 판타지를 충실히 구현하는 피규어다.
미카엘라가 섹시해서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물론 캐릭터가 섹시한 매력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그 섹시한 매력이 이 캐릭터가 이 영화에 존재하는 이유의 전부라는 점이다. 미카엘라는 살아있는 인물로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일상이 어떨지 우리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녀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날 그녀의 욕망과 가치관, 신념 따위가 이 영화에서는 하등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걸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에게는 더없이 중요하며 평생을 두고 고민할 이 화두가 영화 속 여성에게는 주어지지조차 않는다는 것이 불편하다. 현실의 어떤 사람도 자신의 욕망과 가치관, 신념이 이런 취급을 받는 데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행동은 하지 못할지언정 울분이라도 갖는다. 이건 사람임을 인정받지 못한 치욕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마코 모리 테스트를
아십니까
‘마코 모리 테스트’라는 것이 있다. <퍼시픽 림>의 마코 모리 캐릭터에서부터 고안된 테스트로 영화 내 성평등 지수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몇 가지 기준이 있는데,
- 적어도 한 명의 여성 캐릭터가 있을 것
- 그녀에게 자기 이야기가 있을 것
- 그 이야기가 남성 캐릭터를 뒷받침하는 것이 아닐 것
이렇게 셋이다.
이 기준이 만들어질 정도로 마코 모리 캐릭터가 완벽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쓰고 보니 웃기다. 완벽한 캐릭터란 무엇일까? 정도의 차이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이 기준은 완벽한 캐릭터가 되기 위한 기준이 아닌 그저 살아있는 인물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다.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누구의 삶도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존재 이유가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않다. 마코 모리 테스트는 인간의 삶을 다루는 영화가 그 최소한의 기준을 지켰는지를 묻고 있다. 여성 캐릭터를 한 명의 인간으로 대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나올 많은 영화들이 이 기준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