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영화제 추천작을 소개합니다 1. 여성을 기록하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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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제 추천작을 소개합니다 1. 여성을 기록하는 여성들

SECOND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씨네 페미니즘 매거진 <SECOND>가 8월29일 개막하는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미리 봅니다. 전세계 쟁쟁한 여성 영화들 중 특별히 <SECOND>가 미리 본 작품들을 추천합니다.

 

일러스트 이민

여성을 기록하는 여성들
다큐멘터리 추천작

오랜 시간 동안 여성들에겐 언어가 없었다.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지 못한 삶들은 쉽게 역사에서 배제되었다. 언어, 기록, 역사, 어느 것 하나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 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에겐 평생이었다.

척박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여성들은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과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여성들은 기꺼이 이 목소리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성을 기록한 여성들의 다큐멘터리 속엔 기성의 권력이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있다. 존재를 빛내며 생생하게 말을 걸어온다. 이 이야기들이 보내오는 신호를 놓치지 말길 바라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감독 배꽃나래 / 2019 / 한국 / 38분 / 다큐멘터리 / 아시아단편경쟁

홍콩 여행을 갔다가 메뉴판에 쓰여있는 글자를 알지 못해 생각과 다른 메뉴를 먹게 된 감독은 이 경험에서 할머니를 떠올린다. 누군가에겐 여행 중 잠깐에 불과할 불편함과 부끄러움이 어떤 이들에겐 한평생을 짓누르는 감정이 되기도 한다.

‘여자가 배워서 무엇을 하느냐’며 멋대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했던 가부장제 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안치연 할머니와 한글교실 어르신들. 이들은 입을 모아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기억의 방식에 대해 들려준다. 문자를 몰라 어디에 쓰지는 못했어도 살아온 시간, 연결된 기억만큼은 결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영화는 내겐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동시에, 다 안다고 착각하지는 말라고 넌지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언제든 ‘아는 누구’가 될 수도, ‘모르는 누구’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연결되어 있으며, 언제든 서로에게 내가 아는 바를 알려줄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기억의 전쟁

감독 이길보라 / 2018 / 한국 / 80분 / 다큐멘터리 / 한국장편경쟁

때로 기억은 전쟁의 대상이다. 이 전쟁은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1400회가 넘도록 이어져 오고 있지만, 아베 정부는 여전히 역사를 부정한다. 피해 당사자들의 피맺힌 증언이 아무리 메아리쳐도 묵묵부답인 가운데 역사의 산 증인들만 하나 둘 스러져 가는 중이다.

영화는 우리를 또 다른 기억의 전장으로 데려간다. 1960년대, 베트남에서 학살이 일어났다.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었다. 8살 때 퐁니·퐁넛 마을 학살로 가족을 모두 잃은 응우옌 티 탄 씨를 비롯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기억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오랜 시간 매일을 전쟁의 기억 속에서 고통스럽게 보내온 응우예 티 탄 씨는 한국을 방문해 ‘왜 군인들이 여자와 아이들을, 민간인들을 죽인 건지’ 묻고자 하나, 그의 눈앞에 벌어진 풍경은 예상을 뛰어 넘는다.

학살의 피해자는 있는데 학살의 역사는 없다고 하는 현실. 기시감이 든다. 다행인 것은 두눈을 부릅뜨고 과거를 직시하며 기억을 보존하려는 이들의 존재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만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잊지 않기를, 기억의 대를 이어가려는 대열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매일매일

감독 강유가람 / 2019 / 한국 / 85분 / 다큐멘터리 / 한국장편경쟁

‘함께라면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페미니스트 친구들. 그들은 모두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페미니스트로서의 역할을 고민해왔던 감독은 옛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의 현재를 담기로 한다.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뭘까?’하는 질문과 함께.

폭력은 분명한 단어로 표현되지 않은 채 묵인되고, 잘못된 관행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곧 싸우는 것을 의미했다. 이들은 대학에서 총여학생회를 조직하고, ‘성폭력’을 규정한 뒤 이에 맞서는 학칙과 내규를 만들었다. 각종 활동에 앞장섰으며 공동체를 꾸리고 네트워크를 이어나갔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렇게 시작한 운동을 쭉 이어 와 전업 활동가로 살고 있는 이도 있지만, 이제는 ‘판’을 떠나 자기만의 삶을 꾸린 이들도 있다. 모두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나 삶의 방향성만큼은 여전히 또렷해보인다. 어쩌면 더 노련해진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면서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목소리 내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소싸움 반대운동을 하고, 안희정 무죄판결에 항의하며, 여성주의자들을 고용하기 위해 애쓰는 식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넓은 범위에서의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설 곳은 어디인지 가늠해본다.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 하나 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그 곳이 어디든 내 옆에는 페미니스트 동료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라도 이어질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이야기들을 써 나가고 있다. 여성들의 서사는 끈질기게 기록되어 마침내 기억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여성들은 언어와 기록, 역사를 되찾는 중이다. 그 한 가운데에 여성을 담는 여성의 카메라가 있다. 이토록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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