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영화 호황 속 가난한 여성 캐릭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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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영화 호황 속 가난한 여성 캐릭터에 대하여

SECOND

일러스트레이션: 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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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
전지현,
손예진이 있는데도

여성 영화(여자 배우가 주가 되거나 혹은 여자의 이야기를 주요 소재로 다루는 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90년대와 한국의 영화 시장이 폭발적으로 거대해진 2000년대를 거쳐 지금까지 여배우는 항상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트로이카라 불리며 당대 최고의 인기 스타 3인이 누구인지 대중들을 갑론을박하게 만들던 대상도 언제나 여성 배우들이었다. 

전지현, 손예진, 송혜교는 2000년대 가장 사랑 받던 여배우로 여전히 톱스타의 반열을 지키고 있고, 전도연과 김혜수, 김희애는 몇 안 되는 독보적인 중년 여성 배우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한국 영화의 여성 캐릭터들은 왜 이렇게 비슷하고 납작하게 느껴지나’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기사를 계기로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을 좀 더 진지하게 찾아보려 할수록(답과 비슷한 것을 찾는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이겠다) 우리뿐만 아니라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최근의 한국 여성 캐릭터의 기근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기근은 이미 많은 영화 잡지, 컨퍼런스, 논문, 그리고 영화인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고 있는 만큼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다. 많은 여성 배우들은 그동안 인터뷰를 통해 여성 배우들이 받을 수 있는 시나리오의 캐릭터 폭의 한계에 대해 한탄해왔다. 김혜수는 2012년 한 인터뷰에서 “여배우들이 몸을 불사를 만한 작품이 많이 없기도 해요. (중략) 적당히 예쁜 척만 하는 뻔한 캐릭터라면, 누가 해도 별 차이가 없을텐데 배우들이 무슨 욕망을 느끼겠냔 말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손예진, 전지현, 조민수, 김민희, 전도연, 문소리 같은 내로라 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이야기는 기존에 받은 시나리오들이 대부분 남성 배우를 뒷받침해주거나 단선적인 캐릭터라 고르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상업영화는 대중의 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제작되며 흥행예측가능성에 따라 투자와 배급이 이루어진다. 이 때 대다수의 배급사들이 남성 배우들의 티켓파워가 세며 남성 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운 남성 영화가 더 흥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남성 배우들을 위시한 영화나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들이 주로 제작되는 환경이 조성된다. 

특히 많은 영화 관계자들은 남성 배우 위주의 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남성 관객들뿐만 아니라 여성 관객들에게서 더 높게 나타난다고 해석한다. 영화 <검은 사제들>(2015)의 가장 큰 흥행요소가 ‘강동원의 사제복’이라거나 ‘강동원이 장르다’라는 얘기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매력적인 남자 배우의 출연여부가 여성 관객의 영화 선택에 큰 이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12월 말 열린 ‘대한민국 스토리 어워드&페스티벌’의 컨퍼런스에서는 한국 영화에서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찾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한국의 대표적인 유명 감독, 제작사의 대표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됐다. 컨퍼런스에 참석한 한 감독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나라 영화 시장에서 여성 영화가 많았으면 하는 대중의 욕구가 과연 있을까에 대해 먼저 고민하게 됩니다. (중략) 영화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대중의 결정권은 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성들이 여성 캐릭터가 주가 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를 절대적으로 선호합니다.

함께 참석한 한 제작사 대표는 ‘한국에서의 영화 관람문화는 일종의 데이트 문화와 비슷한데, 이 과정에서 여성의 영화선택비중이 높다. 그런데 여성 관객들이 남성 배우의 영화를 훨씬 선호하는 한국 영화 시장의 구조에서 제작자들이 여성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여성 영화, 여성 캐릭터 기근의 문제가 여성 관객의 선호 때문이라는 그들의 발언에 처음 거부반응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일차적인 반발감이 지나가고, 흥행 영화를 제작했던 감독과 한국의 유명한 한 제작사 대표의 이런 발언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정말로 대중이(그들 중에서도 주로 여성 관객들이) 남성 배우가 위주인 지금의 한국 영화 스타일을 여전히 원하고 있을까? 관객들이 주로 볼 수 있는 영화가 남성 영화이기 때문은 아닐까. 여성 영화에 대한 대중의 욕구는 정말 없는 걸까?

만들어진 성공?

먼저 지금의 흥행영화는 그저 단순하게 다수의 대중이 선택한 결과물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흔히 어떤 영화를 본 관객수가 1000만을 넘은 이유는 그 영화가 좋은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 영화들이 주로 남성 영화(남자 배우가 주가 되거나, 혹은 남자의 이야기를 주요 소재로 다루는 영화)인 이유는 남성 영화가 흔하게 다루는 장르물이 주는 거침없는 액션과 통쾌함, 강렬함을 관객이 원하기 때문이며, 남자배우의 티켓파워와 연기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가 여배우들의 그것보다 더 높다고 말할 수도 있다. 취향의 선호도는 세상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니 ‘이것이 틀렸다’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혹시 영화를 보러 갔던 어느 날, 영화관 매표소의 빽빽한 상영 시간표 앞에서 당신이 봐야 할 영화들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느껴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조심스레 묻고 싶다. 가끔 영화관 로비에 앉아 조조부터 심야까지, 또는 주중 저녁 시간과 주말 황금시간 대에 줄줄이 걸려있는 몇몇 영화의 상영 시간표를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흥행영화라는 것은 관객이 자의적으로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목적에 따라 타의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궁금해지곤 했다. 이런 생각이 개인적인 사변은 아닌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영화정보센터 홈페이지에서 어렵지 않게 검색할 수 있는 다음의 표들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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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래프는 2018년 10위까지의 한국영화 흥행순위를 각 영화의 상영 스크린 수와 상영횟수를 기준으로 비교해 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각각의 랭킹 변화가 아니라 흥행순위와 스크린 수, 상영횟수의 순위 사이의 ‘변화가 별 차이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상영횟수에 따른 흥행 순위는 관람관객수 순위와 더 닮아있다. 전부 10위권 안에서 제자리 앞뒤로 자리 바꾸기를 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흥행 순위 10등까지의 상위권은 상위권끼리, 중위권은 중위권끼리, 하위권은 하위권끼리 순위가 변했을 뿐 관람관객수의 순위는 스크린 수와 상영횟수에 따른 흥행 순위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 비교를 통해서만 ‘영화의 흥행은 영화가 극장에 얼마나 걸리고 또 얼마만큼 상영 되는가로 결정된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설 기간 도중 역대 최고의 스크린 점유율을 기록했던 영화 <검사외전> 논란에 대해서도 (배급사와 극장이 해명하듯) 많은 관객이 관람을 원하니까 특정 영화들을 많이 걸어야만 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18년 기준으로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같은 거대 멀티플렉스 극장이 전체 극장 수)의 79.5%를 차지하고 총 관객 수의 97.6%의 관객 점유율을 보이는 한국의 극장 시장에서 위의 주장은 결코 정당하지 않다. 대다수의 관객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특정 멀티플렉스로 가고 있는 구조에서 그 극장이 어떤 영화를 어떻게 상영하기로 결정했는가는 관객들의 영화선택에 결코 사소하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영향

배급사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의 2018년도 한국영화산업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월트 디즈니, 폭스 코리아, 유니버셜픽쳐스 등의 외국 배급사를 제외한 한국영화배급시장에서 CJ-E&M, 쇼박스,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이후 줄여 NEW), 롯데 엔터테인먼트 같은 4대 거대 배급사들은 합해 80.9%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외화를 제외하고 우리는 거의 대부분이 4개의 배급사가 투자, 배급한 상업영화를 극장에서 접하게 된다. 이러한 한국 영화의 시장구조에서 단지 ‘관객이 특정 영화를 원하니까 이를 더 많이 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특정 영화의 스크린 과점 논란에 대해 일부의 원인을 전부인 것처럼 호도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투자배급과 제작이 분리되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는 더 다양한 영화를 발굴해 관객들에게 선보이겠다는 이유로 일부의 대기업에서는 투자와 배급뿐만 아니라 그룹의 다른 계열사를 통해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 이들 기업은 한 영화가 기획되고 제작되고 유통되는 모든 것을 담당한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자사의 거대 멀티플렉스를 통해 상영까지 한다. CJ E&M이 배급하는 영화들이 CJ CGV에, 롯데 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영화들은 롯데 시네마에 걸리는 식이다.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가능한 일이다. 조금 욱하는 심정을 덧대어 표현하자면 이러다가 조만간 기업인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할 날이 오는 미래가 그려지기도 한다. 개런티 대신 연봉과 성과급을 받고 말이다.

대기업 상영업체의 우월한 지위는 얼마 전 수면 위에 드러났다. 영화 <내부자들>(2015)의 제작사는 자신의 영화를 좀 더 많은 상영관에 걸기 위해 영화로 얻는 수익배분을 1(투자 배급사): 9(극장)로 나눠 논란이 있었다(내부자들: 디 오리지널 감독판). 내 영화만을 더 걸겠다는 투자 배급사의 이기심은 질타받을만 했다. 하지만 극장에 영화를 걸기 위해 자신의 수익을 10%에 한정시키는 ‘극장 없는 배급사’의 모습은, 대기업의 멀티플렉스가 절대적인 슈퍼 갑이 된 한국 영화산업구조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불법이 아니라면 구태여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2014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CJ CGV와 롯데시네마에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과징금 55억원을 부과하며 검찰에 고발했다. 그들이 같은 계열 배급사나 스스로 공급한 영화에 대해 더 유리한 스크린 수와 상영기간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대기업 상영업체의 ‘자사 밀어주기’의 문제가 결국 가시화된 것이다. 이처럼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를 압도적인 점유율로 상영하고 황금 시간대와 다수의 스크린을 몰아주는 현행이 계속된다고 해도, 여전히 관객이 남성 영화 중심의 한국영화를 선호하기 때문에 제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러스트 킨지

Ctrl C+Ctrl V, ‘흥행 공식 영화의 반복되는 제작’

뿐만 아니라 일부 대형 투자 배급사들은 흥행 실적을 위해 이전에 흥행했던 영화의 흥행 공식을 따라 계속 비슷한 형식의 영화를 제작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쉬리>(1998)의 흥행 이후 충무로에서 한동안 대형 액션 블록버스터가 흥행했던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최근 상업영화들은 <추격자>(2008) 같은 투톱 혹은 여러 명의 남자배우들을 앞세운 스릴러 장르 위주로 제작되고 있다(최근에는 ‘감동 대작’이란 장르가 합류했다). 솔직히 이렇게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이 계속 생산되는 경향이 보는 관객과 만드는 감독이 원하는 것이라면 제작되는 영화의 장르가 다양화되어야만 한다는 당위적인 주장을 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요즘 제작된 남자 배우 주연의 스릴러 혹은 액션 영화의 흥행여부를 살펴보면 모두 만족스런 성적을 낸 것은 아니다. <강남 1970>(2014), <사랑>(2007), <통증>(2011), <우는 남자>(2014) 등의 영화는 스타급 남자배우들을 주인공으로 앞세우고서도 좋지 못한 흥행 성적을 거뒀다. <7광구>(2011), <마이웨이>(2011), <황해>(2010) 같은 제작비 100억 원대의 블록버스터급 영화 역시 흥행참패의 고배를 마셨다. 강동원이 장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M>(2007)과 <형사 Duelist>(2005)는 그저 강동원 화보 영화라는 오명을 썼다.

그럼에도 이제는 갑이 된 투자 배급사와 투자 배급 제작사들은 여전히 ‘안정적인 흥행공식’에 따라 힘 없는 비(非)스타급 감독들에게 이리 돌려 깎고 저리 같다 붙이면 어떻겠냐며 시나리오 ‘성형’을 주문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심지어 중진 감독들까지 현장에서 교체되거나 해고 압박을 받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전까지는 감독과 제작사의 방향을 존중해왔더라도, 편집할 때에 좋은 영화를 함께 만든다는 이유로 배급사가 메스를 들이대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기도 한다. 

이 가운데 여성 영화나 다양성 영화를 준비하는 감독들은 제작이 가능한 환경을 찾는 것부터 큰 난관에 부딪힌다. 장르물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 캐릭터를 남성으로 바꿔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기도 하고, 민감한 주제의 시나리오는 투자 배급과 상영 자체가 쉽지 않다. 처음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 차기작을 제작하기 어려운 신인 감독들에게 여성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대체로 부담스러운 모험이 된다. 제작사 역시 투자와 배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감안해 여성영화를 쉽게 시도하지 못한다. 이러한 구조에서 대중이 선택하는 영화는 주로 남성 영화일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다시 위에 언급한 컨퍼런스에서의 감독의 말로 돌아가 본다. 여성 관객이 매력적인 남성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만을 선호한다는 주장은 이민호, 강동원, 조인성, 장동건 같은 주연배우를 내세우고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일부 영화들의 예를 통해 볼 수 있듯이 다소 편협하게 느껴진다. 더욱이 한국영화시장의 대기업 수직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대중이 어느 정도 타의적으로 영화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의 한계를 보여준다. 흥행영화의 절반은 만들어진 성공에 가깝다. 

같이 ‘취향저격’하기 참 어렵다
혼밥, 혼술, 혼영!

영화 <접속>(1997)에서는 전도연과 한석규가 서로의 지나간 연인을 잊고 새롭게 출발하려고 하면서 채팅방을 통해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전도연은 한석규에게 자신이 오늘 처음으로 혼자 영화관을 갔는데 여자 혼자 영화 보는 것이 민망해서 중간에 그냥 나와 버렸다고 말한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간 것은 전도연이 극중 홀로서기를 시도하면서 한 일 중 하나였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필자인 나는 세일러문을 보며 울던 나이였던 관계로 내가 경험해본 것처럼 단정지을 순 없다. 그러나 그 당시 홀로, 특히나 여자가 홀로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은 큰 맘먹고 시도할 만한 일이었음을 이 장면을 통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지금까지도 주로 ’혼자 영화 보러 간다’고 누군가에 문자를 보낼 때 관용어구처럼 ‘ㅠㅠ’를 붙이지만, 더 이상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은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일이다.

CGV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 1인 관람객은 2014년보다 증가해 전체 관객 수(누적) 2억 1700만 명(21,729만 명) 중 10%인 2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1인 관객의 대부분은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더 이상 오름 추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전체 관람객수를 고려했을 때 이 같은 비중의 변화는 관객이 선호하는 영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지표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 같이 와서 굳이 취향을 희생해 맞지 않는 영화를 선택하는 대신에, 혼자 영화를 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남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자신의 취향에 보다 솔직하다. 이런 경향은 최근 들어(아니, 아마도 오래 전부터 조용하지만 꾸준히) 트렌디하고 일반적인 추세로 변해가는 ‘나홀로 라이프’ 문화의 하나다. 노명우 작가의 저서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 따르면, 1980년 4.8%였던 1인 가구의 비중은 2012년엔 25.3%로 증가했다. 어느새 전체 가구의 무려 4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이 혼자 살고 있는 것이다. 

증가세는 계속되어 2035년 무렵에는 전체 가구의 34.3%로 지금의 핵가족(자녀 없는, 혹은 있는 부부가구-결코 당신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다. 혹시 모를 수 있는 분들을 위해 적는다)보다 더 일반적인 가족의 형태가 될 것이라 예측된다. 이 같은 가족구성원의 변화와 현대 사회에서 시간의 촉박함, 넉넉하지 않은 자금에 대한 부담감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합쳐져 혼자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점점 더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갈 것이다.

일러스트 킨지

N개의 취향, N개의 영화

이렇게 변해가는 세상에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든, 슬픔을 느끼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선택할 때 타인을 위해 희생하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다양한 취향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1인 생활 문화는 곧 영화 선택에 있어서도 다양한 장르와 소재, 캐릭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아트버스터’나 ‘다큐버스터’라는 단어 역시 소위 마니아 층만 즐긴다는 예술 영화나 다큐 영화 등의 다양성 영화들이 다수의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로 성공하기도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다양성 영화가 점점 흥행성과 상업성 모두를 가지게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CGV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나타났던 1인 영화관람객 급증의 중심에는 20-30대 젊은 여성 관객들이 있었다. 이들이 가장 많이 봤던 영화의 1, 2, 3위는 각각 <인턴>(2015), <매드맥스>(2015), <뷰티 인사이드>(2015)였다.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거나 여성 배우 주연의 영화들이다. 혼자 영화를 선택할 수 있을 때 여성 관객은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더 찾는 것이다.

<검사외전>의 독주 속에 2위였던 <쿵푸팬더>(2016) 다음으로 설 관객 다수를 동원했던 <캐롤>(2015) 역시 여성 동성애라는 소재에 일부의 상영관에서 상영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인기와 화제성이 높았다. 관객의 반응 또한 케이트 블란쳇의 눈빛 연기와 촘촘한 서사를 가진 이 멜로드라마에 대한 공감으로 호응이 뜨거웠다. <캐롤>은 개봉 당시 평단과 마니아 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2013년 프랑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떠올리게 하지만, 단순히 퀴어 영화로 치부되지 않고 그때보다 더 보편적인 대중의 관심을 받아냈다. 물론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여성 배우인 케이트 블란쳇의 대체할 수 없는 명연기가 그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여성 영화의 흐름을 이어가기라도 하듯, 헐리우드에서는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드레스 메이커>(2015), 제니퍼 로렌스의 <조이>(2015) 등이 잇달아 개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귀향>(2015)에 이어 천우희와 한효주의 <해어화>(2015), 손예진의 <비밀은 없다>(2015)와 <덕혜옹주>(2016), 김민희의 <아가씨>(2015)가 개봉했다. 그 중 <귀향>은 평단의 적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뜨거운 관심 덕분에 결국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문을 열어 젖혔다. 제작 과정부터 사람들의 크라우드 펀딩 후원을 받았고, 서명운동을 통해 상영이 가능했다. 비록 역사적인 소재의 무거움과 영화 완성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관객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관람인’이 아니다. 주체적으로 영화를 선택하고 필요하거나 원하는 영화의 제작과 상영에 힘을 보태기 시작한 것이다. 각기 다른 취향을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될수록 대중의 영화 문화 역시 지금보다 더 다양한 장르, 캐릭터에 대해 요구하고 원하는 영화의 제작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는 사례도 늘어날 것이다.

다양성 영화가 상업 영화와 함께 걷는 길

대기업 투자, 배급사들이 무조건 비판할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차이나타운>(2015)과 <검은 사제들>(2015)의 제작기를 보면 메이저 배급사의 과감한 시나리오 선택과 원작에 대한 존중이 얼마나 긍정적인 결과(물론 매우 깊은 속사정까지야 알 수는 없었지만)로 나타났는지 볼 수 있다. CGV 아트하우스에서 투자 배급을 받은 <차이나타운>은 신인 감독이 입봉하는 영화 제작과정에서 예외적으로 영화촬영과 개봉을 2년 안에 마쳤다. 영화를 제작한 폴룩스픽쳐스 안은미 대표는 이 영화에선 캐스팅이 곧 기획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캐스팅만으로도 많은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여기고 여성 배우의 캐스팅에 공을 들였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하지만 그보다도 흥행에 대해 신인감독에게 단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고 믿어준 안 대표와 김혜수가 캐스팅을 확정하기 전에 투자를 결정한 CGV 아트하우스 사업부, 신인감독의 입봉작을 용기 있게 선택한 스타급 배우들의 시너지 효과로 여성 느와르물이라는, 좀처럼 한국에서 보기 드문 영화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검은 사제들>의 경우 역시 CJ E&M에서 투자 배급한 영화로 단편 <12번째 보조사제>의 장재현 감독이 직접 장편 상업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던 특이한 사례였다. CJ E&M이 같은 해 투자, 배급한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보면 <검은 사제들>의 투자배급은 큰 맘 먹고 결정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무리한 시장점유율 독과점, 흥행 실적을 위한 공식에만 얽매여 있지 않는다면 이러한 힘있는 메이저 배급사들의 투자는 한국형 여성 느와르와 엑소시즘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도전의 결과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영화 장르라는 의미를 남긴 것뿐만 아니라 칸의 부름과 900만의 관객으로 돌아왔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과감한 시도와 관객의 주체적인 영화 선택은 <파수꾼>(2010),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워낭소리>(2008), <원스>(2006) 같은 아트버스터 영화들이 더 다양하게 기획되고 뚝심 있게 제작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런 기반 위에서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들은 각기 다른 취향을 지닌 누군가의 인생영화 속에 기억될 것이다. 그 중 하나로 한국영화에서 여러 연령의, 다양한 욕망을 지닌, 각기 다른 성격들을 가진 주체로 현실감 있게 살아있는 여성 캐릭터를 더 자주 만날 수 있길 작게나마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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