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영화는 어떻게 훌륭한 여배우들을 낭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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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영화는 어떻게 훌륭한 여배우들을 낭비하는가

해일

<닥터 스트레인지>가 흥행에 성공했다. 시각 효과와 음악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훌륭한 여배우를 낭비하는 방식은 종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를 가진 여배우들이 마블에서 별 볼일 없이 소비되어 버린 사례들을 보자. 

시간 여행자의 애인 매트릭스에 갇힌 레이첼 맥아담스

레이첼 맥아담스는 데뷔 15년차에 접어든 배우다. 2015년 드라마 <스포트라이트>에서 깊이 있는 연기로 호평을 받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그가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스트레인지의 애인 크리스틴 팔머 역을 맡았다.

팔머는 응급실장이라는 중요한 직업이 있고, 세계 최고의 신경과학 의사인 닥터 스트레인지와 공동연구를 진행할 정도로 실력있는 의사다. 그러나 그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세상을 구할 남주인공을 돕는 애인 겸 조력자에 지나지 않았다. 평범한 인간 여성 1로서 수퍼파워를 가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팔머는 뛰어난 의사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동료인 스트레인지에게 무시당하거나 맨스플레인을 당한다. 또한, 응급실장이라는 중요하고 바쁜 직업을 가졌음에도 스트레인지가 사고를 당하자 그를 간호하는 데 시간을 쏟는다. 철저히 주인공 닥터 스트레인지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스트레인지가 빠진 그의 삶은 드러나지 않는다.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레이첼 맥아담스가 맡게 될 역할로 가장 예상을 모았던 캐릭터는 ‘클레아’였다. 원작 만화에서 클레아는 다크 디멘션의 왕족이고, 강력한 마법사다. 닥터 스트레인지를 제거하기 위해 지구에 오지만 닥터 스트레인지와 사랑에 빠지고, 우여곡절 끝에 다크 디멘션으로 다시 돌아가 저항군의 리더가 된다. 그는 그저 평면적인 조력자가 아니라 남주인공과 동등한 마법사다. 또 히로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바람을 피우기도 한다. 단순한 애인 겸 조력자인 팔머보다는 훨씬 입체적이고 매력적이다. 이 캐릭터가 앞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등장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영화에서 레이첼 맥아담스가 맡게 된 역할이 클레아에 비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훌륭한 배우가 MCU에서 그저 그런 여자친구 역할로 소비되는 것은 레이첼 맥아담스뿐만이 아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을 비롯해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나탈리 포트먼이 있다. 

나탈리 포트먼의 자리를 찾아서

열한 살에 데뷔한 뒤 오스카 상을 비롯해 각종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던 그는 <토르:천둥의 신(2011)>에서 남주인공의 지구인(미국인) 여자친구 제인 포스터 역을 맡았다. 뛰어난 천체물리학자라는 설정이지만, 토르를 보자마자 자신의 커리어를 위험에 빠뜨려 가며 그를 돕는다. 위험에 빠진 애인 겸 조력자 역할이 수명을 다했는지 포스터는 <토르: 라그나로크>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앞으로도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포트먼은 월 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할 일은 이제 없다고 알고 있다. 나중에 어벤저스로 다시 부를지는 알 수 없지만’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가 <토르>에서 맡은 역할이 부차적이고 소모적이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이언 맨> - 기네스 팰트로

기네스 팰트로 또한 커리어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배우다. 그러나 그가 아이언 맨에서 맡은 페퍼 포츠 역은 바람둥이 히어로 애인의 ‘섹스해 주는 엄마' 였다. 그에겐 견고한 커리어가 있지만 철저히 스타크의 조력자이고 피고용인이다. 수퍼파워도 무기도 갑옷도 없고, 악당들에게 잡혀가서 애인이 구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인간 1임은 물론이다. <아이언 맨 3>에서 비교적 큰 비중과 특별한 신체 능력을 얻기는 하지만, 그가 위험에 빠지는 이유도 그를 다시 치료하는 것도 스타크다. 페퍼 포츠라는 캐릭터는 그만큼 남주인공에게 의존적이다. 

페퍼 포츠의 ‘애인 겸 엄마’ 역할을 함축해 보여 주는 포스터가 아닐까?

그가 등장하지 않는 MCU의 주요 영화에서는 토니 스타크의 말 한 마디로 그의 부재가 해명된다.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는 “휴식기를 좀 갖고 있다"는 스타크의 말로 그가 보이지 않는 이유가 간단히 설명되었다.

마지막으로 팰트로가 MCU에 등장한 것은 <아이언 맨 3>이었다. 페퍼 포츠는 그가 맡을 만한 역할이었나? 기네스 팰트로는 1998년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남성 히어로의 여자친구들은 모두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남주인공에게 헌신적인 젊고 아름다운 비장애 백인 여성’으로 요약된다. 서로 성격을 바꿔 놓아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닮았다. 철저히 남주인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남주인공 없는 이들의 삶이 어떤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난다 하더라도 남주인공들의 대사 몇 마디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반면 주인공 남성들은 개성 있고 입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토니 스타크는 바람둥이이고, 자아도취가 심하지만 불안장애로 고생하는 연약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까칠하고 이기적이다. 토르의 말투에는 독특한 액센트가 있다. 그러나 이들의 여자친구는 모두 성격과 말투가 비슷하다. 바람둥이거나 천재거나 자아도취가 심하거나 그 밖에 특별한 배경이나 개성을 가진 여자친구는 없다. 그저 예쁘고 착하고 성실할 뿐.

배우가 아깝게 느껴지는 MCU 여성 캐릭터가 여자친구 역할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기약 없는 블랙 위도우 영화를 기다리는 스칼렛 요한슨

스칼렛 위치가 등장하기 전까지 블랙 위도우는 어벤저스의 홍일점이었다. 블랙 위도우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웠을 때는 어벤져스가 모두 모여 전투 모드에 돌입한 이 장면을 봤을 때다. 

신이거나, 변신 상태이거나, 자신만의 무기 또는 갑옷을 장착한 남성 히어로들과 달리 블랙 위도우에게는 점프수트와 권총이 고작이었다. 블랙 위도우는 무술에 뛰어나고 비상한 두뇌를 지녔지만 딱히 천재도 아니고 수퍼파워를 가진 것도 아니다. 마블만의 독특한 캐릭터인가? 사실 저 복장은 그냥 별 특징 없는 검정색 점프수트다. 또 굳이 블랙 위도우가 아니더라도 팜므파탈 스파이는 많다. 오버워치의 위도우메이커는 심지어 이름도 비슷하다.

그래도 블랙 위도우가 누구의 애인도 아니라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팬들의 그러한 반응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곧 헐크의 애인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강력한 스칼렛 위치가 어벤저스에 합류해, 유일한 여성 히어로에게 자신만의 강력함이 없던 안타까움은 조금이나마 상쇄됐다. 그럼에도 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아깝다는 생각은 잘 가시지 않는다. 그가 가진 경력과 능력에 맞게 ‘섹시 팜므파탈’ 대신 깊이 있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맡았더라면 어땠을까.

스칼렛 요한슨은 블랙 위도우에 애정이 많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언젠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 블랙 위도우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구상도 밝혔다. 팬들 또한 #BlackWidowMovie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는 등 블랙 위도우 영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바라는 블랙 위도우 영화에 대해 마블은 아직까지 확실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스칼렛 요한슨이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을 듯하다.

만약에 블랙 위도우 영화에 출연한다면 쫙 달라붙는 캣슈트를 아직 입고 싶을 때여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더 오래일지는 잘 모르겠네요. 

소중한 캐릭터와 기대되는 캐릭터

안타까운 캐릭터들만 늘어놓았지만 소중한 캐릭터와 기대되는 캐릭터도 있다. 새로운 히로인은 언제나 환영이다.

에이전트 카터

에이전트 페기 카터는 그 자체로 성차별에 맞서는 존재다. 처음 등장은 캡틴 아메리카의 연인이었지만, 그가 없어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카터는 홀로 강력한 히로인으로 미션을 수행하는 비밀 요원이다. 미국인이 아니라는 설정도 그의 매력 중 하나. 히어로의 애인들은 모두 젊은 여성으로만 등장하지만, 페기 카터는 늙은 여성의 모습으로도 등장한다는 점에도 의미가 있다. <에이전트 카터 시즌 1>은 왓챠 플레이에서 볼 수 있다. 

앤트맨과 ‘와스프(Wasp)’

가장 똑똑하고 가장 많이 노력하는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다. 보통은 그보다 덜 재능 있고 덜 노력하지만 어떤 불가항력으로 ‘선택받은’ 남성이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드래곤 길들이기>의 아스트리드, <어메이징 스파이더 맨>의 그웬 스테이시, 그리고 최근의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다. <앤트맨(2015)>의 ‘와스프'도 그 중 하나다. 앤트맨 수트를 가장 원했고, 또 앤트맨보다 준비되어 있었지만 수트는 앤트맨에게 돌아갔다. <앤트맨>에서 안타깝게 히어로가 되지 못했던 와스프가 곧 <앤트맨과 와스프(2018)>로 돌아온다. 앤트맨과 함께 활동하는 듀오이기 때문에 홀로 존재하는 히로인은 아니지만, 수퍼파워를 가진 히로인 한 사람이 아쉬운 상황에서 앞으로 와스프의 등장은 기대가 된다.

캡틴 마블

2019년 미국 개봉 예정이다. 마블의 21번째 영화이자 첫 번째로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된다. 알려진 수퍼파워로는 비행능력, 강화된 신체능력, 그리고 손으로 뿜는 에너지 버스트가 있다. <룸(2015)>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리 라슨이 주연배우로 확정되었다.

<블랙 팬서>에서 루피타 뇽’오 (Lupita Nyong’O)가 맡게 될 캐릭터

Attribution: Gage Skidmore

지금까지 본 여성 캐릭터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MCU에서 비백인 캐릭터는 흔하지 않고, 비백인 여성 캐릭터는 더욱 드물다. <블랙 팬서>에서 루피타 뇽’오가 맡게 될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다. 루피타 뇽’오의 역할이 무엇일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마블 유니버스 최초의 비중 있는 흑인 여성 캐릭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MCU가 루피타 뇽’오 또한 평면적인 여자친구 정도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것은 마블에게 다양성을 원하는 팬들에겐 제법 화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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