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똑똑하고, 재미있고, 엄청 골치 아픈 사람이야.
그리고 내가 아는 가장 강한 사람이야. 네가 주먹에서 불을 뿜기 훨씬 전부터 말야.
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냐고!
영화 <캡틴 마블>(2019) 마리아 램보
기승전결이 다소 뻔한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에서는 보통 주인공을 중심으로 세계가 돈다. 조연들은 주인공과 어떤 관계인지에 따라 각각 다른 방식으로 주인공을 빛내고, 주인공의 서사를 위해 복무한다. 라이벌, 친구, 연인, 심지어 악역까지도.
마리아 램보는 주인공의 가장 충실한 친구다. 주인공의 가장 행복한 기억의 일부이고, 주인공이 가장 힘들 때 든든히 받쳐주고, 적군 무리 중 ‘부대장’에 해당하는 존재와 보조적인 결투도 한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캐릭터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특별히 빛난다. <캡틴 마블>의 주인공은 여성이고, 마리아 램보는 가장 믿을 만한 여성 동지이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멍청하고 약하고 한심하게 느껴질 때,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었을 때, 발 밑이 무너지는 막막한 기분이 들 때,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가 잊었던 나의 장점과 강함을 큰 소리로 일깨워주는 친구.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길게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꼭 듣고 싶었던 말을 귀신같이 귀에 꽂아주는 그런 친구. 바로 마리아 램보다.
영웅의 곁에는 영웅이 있다. 흑인 여성으로 혼자 아이를 길러내고 공군 파일럿으로 하늘을 누비는 사람이 맞서 싸워야 했을 지구의 ‘악’은 외계침공세력 못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마리아가 이겨내야 했던 부당함과 좌절과 편견을 구구절절 다루지 않는다. 관객은 그저 짐작할 뿐이다. 캡틴 마블이 영웅이 되는 길에는 마리아 램보라는 위대한 ‘페이스메이커’가 있었다는 것을. 영웅들은 서로를 거울처럼 바라보며 웃고, 경쟁하고, 위로하고, 지지하며 성장했을 것이다. 2019년 한국에서 여성임에도 살아남고 성공하고 행복하고자 하는 모든 일상적인 영웅들처럼.